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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장관

 

박기수(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전문가는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가지고 그 분야에서 비해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이 하루아침에 체득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전문가는 대부분 오랫동안 그 분야의 일을 한 사람이다. 하여 그들은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거나 혹은 밥벌이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꼭 해야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문가라는 말에는 자기 분야에 대한 자부와 자존의 품격을 가진 사람들의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Aura)가 있다.

서울신문 중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끈 총감독 송승환 씨의 며칠 전 인터뷰가 화제다. 그는 자신이 잘한 일 중 하나가 MB정부 때 문화부 장관을 거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MB정부에 방점이 찍힌 것인지, 문화부 장관에 방점이 찍힌 것인지는 직접 물어봐야 알 일이지만, 나는 그 의미가 후자일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그러한 선택이 그가 문화기획전문가로서, 연극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전문가다운 자부와 자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을 한다. 이 말은 문화부장관이 별 것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일생을 바쳐 일궈온 자기 분야 전문가로서의 열정과 자부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멋지지 않은가? 누구는 하지 못해 안달인 자리를 거부하고 자기 분야에서 자기가 즐기는 일을 꼿꼿한 자부와 자존으로 성공적으로 일궈내는 전문가.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폐회식에서 가슴 뛰는 감동을 얻은 이들이라면, 아무도 생각지 못한 드론쇼와 마지막 성화 주자였던 김연아의 공중 스케이팅 그리고 선수단 입장 내내 춤을 함께 춤을 추던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에 압도된 이들이라면, 그러한 성취가 어디에서 올 수 있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송승환 씨는 젊은 시절 텔레비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도 늘 자신을 연극배우라고 불렀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젊은 시절 그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지향점에 대한 반복적인 선언이 아니었을까? 지향해야할 정체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 연극으로 시작해서 방송과 공연계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교수로서 후학을 지도하는 그가 보여준 전문가로서의 성취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 분야에서 브랜드를 갖게 된 전문가에게 마치 시혜나 베풀듯 장관직을 권하는 풍토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장관이야 해당부서에서 그 분야 일을 평생 해 온 전문 관료들이 맡으면 될 일이다. 20년 전쯤 김영하 작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 대다수 작가들이 대학교수로 가는 세태를 꼬집었었다.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작가의 궁극적인 목표가 마치 교수인양 대학으로 가서는 창작을 이어가지 못하는 세태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작가의 유명세에 편승하기 위하여 앞 다투어 모셔가는 대학교를 비판한 것이다.

장관이든 교수든 그것도 전문가의 영역이어야 할 것이다. 뚜렷한 성격을 지닌 전문가의 영역에 불쑥 다른 영역의 전문가가 들어오는 것은 둘 다의 전문성을 모욕하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분들이 장관 자리를 제안 받고 입각한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대부분 기대만큼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에 상처만 내고 초라하게 물러났다. 전문가의 전문성을 유명세 정도로 이해하거나 지나치게 신화화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지위나 권력을 앞세워 시혜를 베풀 듯 제안하기 전에 그가 갖고 있는 전문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할 것이다.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살아가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송승환 씨의 장관직 거부와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회식 자꾸 연결되며 멋져 보이는 것은 나만의 감상은 아니리라.

 

2018.03.30.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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