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토럴 시대의 스토리텔링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스토리텔링은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창출하는 능동적인 소통이다. 가치나 즐거움을 지나치게 교조적인 의미나 윤리적인 의미로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가치, 즐거움, 능동적 소통은 스토리텔링의 특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다. 축자적인 의미에서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다양한 방식(tell)을 통하여 향유를 강화하는(ing)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좀더 심도 있게 읽어보면, 스토리텔링은 향유자의 적극적인 참여 과정을 통해서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창출할 수 있는 일체의 소통 과정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스토리텔링은 그것이 통용되는 문화권, 적용 분야 및 해당 장르, 구현 미디어 환경, 최종 콘텐츠의 형태 등에 따라 상이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개념에 대한 합의나 실체에 대한 규정은 지극히 개방적인 형태로 설정되어 있다.


존 라세터가 강조한 바와 같이, 현재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압도한 픽사 애니메이션의 핵심은 스토리다. 사실 이 말은 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스토리는 단지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구현 방식 그리고 향유자와의 소통이 어우러지는 일체의 과정, 즉 스토리텔링이다.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즐거움은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어린 시절 장난감, 주제가(You've got a friend in me), 성장과 이별의 두려움과 같은 보편적 정서의 유대 요소들과 패러디, 대구와 강화를 통한 안정적 서사 구조 구축, 속편으로 수렴하는 프리퀼(prequel)의 적층적 활용, 집단적인 중심 캐릭터 설정과 편마다 새로운 캐릭터의 보강을 통한 서사의 심화, 애니메이션의 본질인 투명한 액션의 효과적 구현 등을 통해 성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스토리텔링의 문제는 스토리와 구현방식 그리고 향유가 어우러지는 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창출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느냐에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구현 미디어 환경, 최종 콘텐츠의 형태 등은 스토리텔링 전략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곳을 압도하고 있는 디지털 문화환경은 정보의 복합성, 쌍방향성, 네트워크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말은 무엇보다 향유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존 닐슨은 디지털 문화환경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형질의 스토리텔러를 디지털 호모나랜스(Digital Homo Narrans)’라고 부른 바 있다. 그들은 디지털 문화 조건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만의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을 전개한다. 디지털 호모 나랜스는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포털, 동호회 등에서 문자·그림·사진·영상 등을 주도적으로 활용하여 스스로 이야기를 생산-공유-전파하는 주체적인 스토리텔러다. 적극적인 생산자이자 향유자인 그들에게 더 이상 생산과 향유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단지 소통할 뿐이다. 그러한 소통은 가치 있는 즐거움 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초당 3,500장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페이스북과 분당 72시간의 영상을 업로드하는 유투브는 이미 격렬하게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의 장이 되었다. 누가 지시하거나 어떤 물질적인 보상을 전제하지 않는데도 각종 디바이스를 가지고 다양한 플랫폼에 접근하여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스토리텔링의 양상은 이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유전형질을 지녔다. 그 형질의 특성을 읽고 싶다면 당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열어보라. 향유자의 체험에 기반한 자발적 생산과 창작 그리고 무한 공유의 스토리텔링이 다양한 층위에서 격렬하게 증식하고, 공유로서 더욱 강력한 맥락을 생산하고, 그만큼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열고 있지 않은가?

헨리 젠킨스도 󰡔컨버전스 컬처󰡕에서 지금 이곳의 향유에 주목하고 주체적인 체험의 생산성과 향유의 자발성 그리고 공유의 즐거움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그가 제안한 장르 간, 플랫폼 간, 저자와 독자 간, 생산과 소비 간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은 디지털 문화 환경 속에서 스토리텔링의 핵심을 지적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생산자에 의해 이미 완성된 스토리텔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향유자에 의한 참여중심, 과정중심, 향유중심의 스토리텔링이다.

그래서 타이 몬터규는 스토리텔링을 넘어선 스토리두잉(story-doing)을 주창한다. 실천으로서의 스토리를 강조하는 스토리두잉에서 핵심은 향유자가 어떻게 그 스토리에 참여-반응-생산-공유하는 실천을 활성화할 수 있느냐이다.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스토리를 실천하고 자기화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동안 향유과정의 이면에 잠재된 형태였지만 이제는 실천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필수적이고 노골적인 형태로 기획된다. 스토리두잉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데, 신발 한 켤레를 사면 한 켤레를 어려운 이에게 기증한다는 기부 실천행위를 브랜드 전략으로 활용한 탐스, 자신이 만든 디지털콘텐츠를 등록하고 한번 다운로드 받을 때마다 1.25달러씩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식량으로 기부하는 ‘1.25 미라클마켓’,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남미의 어느 가난한 농부에게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한다는 공정무역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향유자가 어떤 형태로든 스토리에 참여해야함으로써 구현할 수 있는 스토리두잉의 전제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요소였던 가치 있는 즐거움이다. 최근 유명 인사나 스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아이스버킷 챌린지(Icebucket challenge)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기부문화를 환기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유명 인사나 스타가 참여하고, 그것이 딱딱한 기부행사가 아니라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퍼포먼스로 즐겁게 진행하고, 참여자가 세 명의 다음 사람을 지정하는 기록을 웹에서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기부라는 가치 있는 행위를 간명하게 제시하고 즐거운 퍼포먼스로 3배씩 확산해나가는 스토리텔링 전략은 그 효과면에서도 탁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곳은 디지토럴의 시대(Digitoral Era). 죠나 삭스가 창안한 디지토럴은 아이디어의 창조와 전파에 향유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적합한 아이디어만 살아남던 구전전통이 디지털 문화환경과 창조적으로 결합한 양상을 말한다. 구전전통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곧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스토리텔링은 고정되지 않고 향유의 횟수만큼 격렬한 활성화가 이뤄지며, 그 활성화의 정도가 스토리텔링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한 구전전통의 현재적 구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문화 환경 덕분이다.

세계의 콘텐츠 시장을 주도한 디즈니 회장인 로버트 아이거는 디지토럴 시대 스토리텔링이 맞춤화된 경험고치 벗어던지기라는 형태로 구현될 것임을 예언한 바 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및 빅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화된 경험을 활성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경험이 공유의 기술을 통해 고치 벗어던지기를 통해 무한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공감 가능한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 <레미제라블>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좋은 예이다. 공감 가능한 보편성을 확보한 스토리를 최신의 최고 기술로 구현하고, 향유자의 수준과 취향에 소구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텍스트에 수렴하고, 거기에 뮤지컬 넘버들을 삽입함으로써 텍스트 전체가 아니라 뮤지컬 넘버별로 공유 확산할 수 있는 전략을 전면화하였다. 그 결과, 당신은 지금도 <레미제라블><겨울왕국>의 뮤지컬넘버들을 흥얼거리지 않는가?

IT 강국 한국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이야기 하지말자. 디지털 문화 환경을 어떻게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기획할 것인가, 향유자별 맞춤화된 경험과 그 경험의 무한 공유를 지속-확산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 전략은 무엇인가, 정서적 보편성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과정을 통해 구현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자. 다시 문제는 체험, 참여, 공유의 가치 있는 즐거움이다.

<방송작가> 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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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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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비평의 방법론 탐구를 위한 문제 제기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방법론 탐구, 수용과 극복의 이율배반적 시도

 

방법론에 관한 탐구는 연구 대상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기존의 영역과 새로운 지평 사이의 실체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논리적 토대 위에서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이율배반적인 긴장을 내포한다. 이율배반적 긴장은 방법론을 탐구하는 내내 연구 대상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는가에서 출발해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규명/갱신의 연속이다. 물론 여기서 연구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산-유통-향유되는 생태계를 전제로 해야 한다. 생태계라는 상호유기적인 거시구조 안에서 생산 주체, 유통 구조, 향유 양상의 미시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때, 이 세 요소가 상호 연동함으로써 연출하는 총체적 상관관계의 다양성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을 신뢰할 수 있다면, 만화비평의 방법론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만화의 정체와 기능 방식에서 출발하여 만화비평의 목적 및 방법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안을 각 구성 요소의 상관망을 통해서 실천적으로 규명해야만 한다.

 

만화의 정체, 건강한 개방과 확장의 無限 根力

 

만화의 정체(正體)에 대해 병렬된 이미지들의 연속성으로 구성된 연속예술과 같은 식으로 규범론적으로 정의하거나 카툰화법(cartooning), 글과 그림의 이코노텍스트(iconotext), 이미지의 연속성(narrative) 등을 중심으로 범주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추수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현재까지의 만화를 재구할 수는 있어도 만화가 지닌 언어와 표현의 건강한 개방성과 총체적 감각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무한 확장의 가능성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만화는 1) 치열한 작가의식의 창조행위냐 / 가장 저급한 상업문화의 결과물이냐, 2)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냐 / 왜곡된 현실의 의미 없는 과잉이냐, 3) 전 연령이 향유 할 수 있는 문화냐 / 아이들만의 하위문화냐, 4) 웹툰은 만화의 독립적인 영역인가 / 하위 영역인가 등등의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작위적인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처럼 보이는 이 논란은 후자인 현실태 앞에서 전자는 요원한 당위적 요구 수준을 넘지 못하는 기형적인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오히려 양자는 전자와 후자의 바람직한 긴장을 통해 표현 언어, 구현 방식, 취급 소재, 주제의 깊이, 사회적 맥락과의 상호관계 등을 풍성하게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방적인 산업 종속과 문화 수준의 정체(停滯)를 극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만화는 창조적인 언어예술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음성언어나 문자언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가능한 다양한 언어를 모두 포괄하는 말이다. 샤르트르는 색과 음은 사물이지 기호가 아니라라고 단언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문학의 특수성을 부각시키려는 강조화법일 뿐이다. 오히려 만화의 문면/이면을 구성하는 언어, 가시적/비가시적으로 구현하는 언어, 언어 계열체( Paradigme) 간의 결합 방식을 통해 생산되는 새로운 형질의 언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만화의 언어는 매우 다양하며, 거기에 각 언어의 상호 조합까지 고려한다면, 그것은 무한 가능성의 영역이며 지속적인 개방과 확장의 영역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만화의 언어는 글과 그림의 창조적인 결합이라고 소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면, 디지털 문화 환경의 도래 이후 다양한 언어들이 만화로 수렴되고 있는 양상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수렴의 결과가 만화 자체의 고유한 문법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웹툰의 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만화는 언어의 조형과 문법의 갱신을 반복하면서 그 정체의 의미지평은 물론 표현지평까지 지속적으로 개방하고 확장하는 동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만화가 지닌 언어예술로서의 무한 창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풍요롭지 못한 것은 만화생태계의 역동성을 만화 안으로 온전히 수렴하지 못한 탓이다. 만화를 구성하는 창작자, 텍스트, 향유자, 유통업자, 플랫폼 등등의 최근 역동적인 행보를 고려할 때, 만화는 자기 정체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개방성과 확장가능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내부로 수렴함으로써 새로운 정체를 조형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만화 스스로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시도와 노력은 창작자, 텍스트, 향유자, 유통업자, 플랫폼 등등 모두가 만화생태계의 거시 구조 안에서 총체적 상관망을 형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결과를 확보할 수 있다.

만화의 가장 큰 힘은 자유다. ‘질펀하고, 넘쳐흐르고, 흩어지고, 어지러럽다는 만()의 축자적 의미(literal meaning)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화는 소재나 주제에서부터 구현 언어나 소통 방식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지향한다. 이러한 자유의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누가(소통의 주체), 언제(맥락의 시의성), 어디서(상황성), (소통의 원인), 무엇에 관하여(소통의 주제), 어떤 효과를 노려서(기대 반응), 누구(향유자)에게 말하는가라는 소통과 향유의 기본 모델 안에서 최적화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자유로의 지향은 스스로의 구속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경쾌한 변화를 주도한다. 때문에 스스로 구속하지 않는 만화는 경직된 고정태라기보다는 부단히 변화하는 살아있는 모습이어야 한다. 여기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은 만화의 구현 언어, 술화(述話) 방식, 주변 장르와의 관계, 향유자와의 상호작용 방식과 결과, 사회문화적 맥락성 등의 변수가 끊임없이 개입하는 지금 이곳의 상황에서 스스로 최적화 방식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다양한 변수들의 개입과 상호 충돌은 만화의 다의성(多義性), 다층성(多層性), 다성성(多聲性)을 확보해주는 생산적인 결과를 낳는다.

 

만화비평, 의미지평 확장과 가치 평가 사이

 

모든 비평의 시작은 리터러시(literacy). 리터러시는 텍스트와 향유자 간의 가장 적극적인 대화다. 리터러시는 텍스트에 대한 변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읽고, 그것의 내재적 문법 및 세계와의 상관성을 규명하기 위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대화과정이다. 때문에 리터러시는 비평가가 고유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읽고 평가하는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 텍스트의 구성 요소 간, 텍스트와 향유자 간, 텍스트와 세계 간, 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각기 다른 차원과 층위의 대화를 창조적으로 수렴-조합-확장하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이다. 비평은 이와 같은 리터러시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대화에 출발한다. 축자적인 의미에서 비평은 말 그대로 준거를 마련하여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만화비평도 리터러시를 토대로 비평의 대상과 관점을 제시하고 텍스트의 가치를 발굴하여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만화비평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만화미학이나 텍스트의 완성도를 귀납적으로 지향하는 것보다 새로운 창작자, 미디어 환경, 독서체험의 변화에 따른 텍스트의 변화를 종합적인 관점에서 각 요소의 층위와 상관망을 개방적인 자세로서 주목해야만 한다. 그러한 개방적인 자세를 바탕으로 텍스트의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함으로써 텍스트의 의미지평 확대하고 거시적으로는 만화미학 개발과 평가의 토대를 마련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다소 거친 일반화가 허용된다면) 만화비평의 대상은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창작자/텍스트/향유자/미디어 등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창작자 중심으로 살펴보면, 작가의 정체성, 작가의 전기적 탐구, 만화미학과 만화수사학 등의 생산중심 미학 탐구, 창작 방법론, 작가와 세계와의 상관성, 작가의 창작 환경 등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텍스트 중심으로 살펴보면 구현 언어의 문제, 서술 미학, 장르의 문제, 다양한 텍스트 이론, 텍스트와 구현 미디어의 관계, 상호텍스트성,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향유 활성화 전략의 텍스트 내 수렴 여부 등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향유자 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향유 양상, 해석 공동체(interpretive community)의 정체, 수용미학, 해석론, 상호작용의 구조, 팬덤(fandom)의 양상과 생산성 등을 탐구해야 한다.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구현 언어, 구현 방식, 유통 방식 및 과금(課金) 체계, 최적화 구현 양상 등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창작자/텍스트/향유자/미디어 구분은 논의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실제 만화비평에서는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양상으로 논의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텍스트 해석 문제에 규명하기 위해서는 텍스트의 구조, 작가심리학, 해석의 체계와 구조, 향유양상, 상호작용의 전개 양상 및 텍스트 수렴 양상, 구현 미디어와 최적화 구현 양상, 기존 만화미학의 수용과 극복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다채로운 상관망을 전제로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글에서 언급한 만화비평의 대상들은 그들 간의 다양한 조합을 통하여 구현도리 뿐만 아니라 하위에 수다한 개별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복잡하고 쉽지 않은 양상을 드러낸다. 거기에 만화비평의 목적과 개별 관점이 개입한다면 그 양상은 더욱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만화비평에서 전체를 온전히 다 말하겠다는 의욕은 일종의 실현 불가능한 과잉이다. 오히려 비평 목적과 대상을 초점화하고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하여 그 안에서의 충실성,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결과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비평의 목적은 미시적으로는 텍스트의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하는 일이며, 거시적으로는 즐겁고 의미 있는 향유 체험을 강화하고, 창작 및 리터러시 능력 향상을 통하여 풍요롭고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따라서 만화비평은 항상 텍스트와의 건강한 견제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건강한 견제와 독립성은 텍스트의 의미지평을 발견-확장하고 만화미학을 지속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지적인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만화의 새로운 지평과 양식을 도전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

만화비평은 만화와의 상보적 긴장을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만화 창작-제작-유통-향유의 생태계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만화가 고유의 언어로 허구적인 것을 형상화한 것이고, 허구의 라틴어적 기원이 창안, 발상, 새로운 고안 등을 의미한다고 할 때, 만화비평의 몫은 분명해진다. 허구적인 것을 생산하는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와 동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적실한 언어를 찾았는가? 적실한 언어를 통해 형상화의 차별적인 미학을 창출하고 있는가? 그 차별적 미학은 만화의 새로운 지평에 일조하고 있는가? 이와 같이 비교적 분명해 보이는 만화비평의 몫은 다시 만화 창작-제작-유통-향유의 상관 망으로 환원되어만 한다. 최근 웹툰의 압도적인 전개를 보면, 제작-유통의 지배적인 힘이 창작과 향유의 양상 자체를 강하게 변화시키고 있고, 변화된 창작과 향유의 양상이 다시 제작과 유통을 상호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요소들의 하위 요소들에 대한 변별적 접근도 요구된다는 점엣 논의의 어려움과 복잡함이 있다. 가령 창작을 규명하기 위해서 텍스트에 구현된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그 성취의 정도와 상관없이 그것이 지닌 특수한 사회문화적 기능양태 안에서 분석하고 평가해야만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맥락을 토대로 할 때, 만화비평은 이론비평(theorytical criticism), 실천비평(practical criticism), 메타비평(meta criticism)으로 나누어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현재 만화비평이 이렇게 나뉘어 구현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만화비평이 의미 있는 실천으로서 생산적인 결과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평의 세 양상이 상보적으로 순환하는 구조로 구현되어야만 한다.

이론비평은 창작자와 텍스트를 평가하기 위한 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탐구인 동시에 텍스트 분석과 해석의 중심 개념을 합의하고 분석 방식과 해석의 방법론을 마련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다. 만화의 정체와 역할을 중심으로 한 고유의 미학을 찾아가면서 동시에 텍스트의 리터러시 방법과 체계, 사회문화적 맥락의 해석체계, 구현 미디어와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다.

실천비평은 텍스트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이해, 심층구조의 의미에 대한 해석, 텍스트의 가치 발굴 및 의미지평 확장, 텍스트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 등으로 구현된다. 실천비평은 객관성을 지향하지만 비평가의 교양, 관점, 세계관, 미학관 등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관점을 내포하고 있어서 양자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그 성패의 첫 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실천비평은 이론비평에 의존함으로써 합리성과 체계성을 갖출 수 있고, 이론비평은 실천비평의 결과들이 축적됨으로써 넓이와 깊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보적인 순환관계를 구성한다.

메타비평은 비평의 자의식을 마련하고, 비평의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는 비평에 대한 비평을 말한다. 기존의 실천비평이론비평을 대상으로 그것의 관점, 방법론, 해석체계 등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평가를 수행함으로써 비평의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이와 같은 비평의 세 양상이 지금 이곳의 만화비평에서 얼마나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소박한 해설이나 사적 전개의 정리, 신작 소개 수준으로 전개되는 지금 이곳의 만화비평을 고려할 때, 그나마 대부분이 실천비평에 편중되어 있고 본격적인 의미의 이론비평이나 메타비평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건강한 비평담론의 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학술논문을 중심으로 이론비평과 메타비평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역시 해외 이론을 토대로 한 매우 고답적(高踏的)인 양상이기 때문에 웹툰과 같은 최근 만화의 역동적인 전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만화비평의 방법론, ‘따로 또 같이의 다양성

 

만화비평의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그것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전략적으로 매우 유효하다. 이론비평이든, 실천비평이든, 메타비평이든 간에, 그것을 의식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간에 방법론의 전략적 선택은 만화비평에서 가장 필수적인 전제이다.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창작자/텍스트/향유자/미디어의 복잡한 조합과 그 하위 요소들의 무한에 가까운 상관망을 모두 다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며, 또한 전체를 이야기하는 넓이보다 일반적으로 비평은 특정 관점을 렌즈로 하는 선택적 깊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된 방법론들은 텍스트의 총체성을 지향하며, 개개의 방법론이 거시 구조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은 확보하고 있어야만 한다.

방법론에 관한 이론은 객관적 인식과 합의 가능한 논증 그리고 납득 가능한 가치 평가를 탐구하고 체계화하려는 논리적 결과물이다. 비평 대상을 독립시켜 변별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를 마련하고, 고유의 내적체계와 논리 준거를 구성해냄으로써 분석과 해석 그리고 평가의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고 객관적으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은 비평이 텍스트와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듯, 부단히 조형적으로 파악해야할 성질의 것이다.

본격적으로 만화비평의 방법론을 고민하기 위해서 목적과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만화비평은 만화의 언어적, 구조적 특성을 변별적으로 파악하고, 만화의 의미지평을 확대하고, 그것이 성취한 가치를 발굴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만화비평의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둘 때, 만화비평의 방법론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화비평이 고려해야할 요소들과 전통적인 비평의 방법들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수렴할 것인가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만화비평의 목적을 고려할 때, 텍스트를 중심으로 사회문화적 맥락과 그것의 향유방식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다른 장르에서 이미 상당한 진척을 이루고 있는 비평이론들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비평 이론 위에 역사 비형, 사회학적 비평, 정신분석 비평, 원형 비평, 독자-반은 비평, 형식주의 비평, 구조주의 비평,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등이 될 것이다. 또는 그것을 크게 범주화하여 실증주의 비평, 구조주의 비평, 마르크스주의 비평, 해석학적 비평 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가 지닌 복합성, 다층성(음향, 단어의 의미, 반영된 현실 요소들, 문체, 장르법칙들, 사회적 맥락과 의미 관련성 등) 등을 염두에 둘 때, 기존의 어떤 이론도 부분적인 분석과 해석에 적합할 뿐, 총체적 양상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종래의 만화관이나 이론도 정태적 시각에서 역동적인 방향으로 확연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소박한 의미에서 전통적인 만화의 내포나 외연이 확충되고 있다는 의미이며, 적극적인 의미로 만화 자체의 뚜렷한 형질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격랑 위에서 만화비평의 자의식에 대한 고민과 그 방법론에 대한 실천적 탐구는 어쩌면 제일 먼저 풀어야할 과제라 할 수 있다.

만화가 문화콘텐츠로서 문화산업의 체제 유지적, 현실 추수적 경향을 내포하고 후기산업사회의 논리에 맹목으로 따라간다는 식의 논리는 당위적이고 이데올로기 중심적 사고다. 중요한 것은 개별 텍스트의 의미생산 구조 및 그것의 향유 구조를 파악하고, 그것이 소통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와 상관하여 어떠한 리터러시가 가능한지 살펴보는 것이다. 책읽기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텍스트 향유 체험은 체계화될 수 없다. 언어예술로서 만화는 다양한 비언어적 구현 전술들을 수렴하여 자기화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만화미학을 토대로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규범을 정하는 일은 다소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뢰할만한 전문적인 향유자의 경우에도 주관적 관점을 통해 차별적인 가치를 확보한다는 태생적 이율배반성과 그가 구현하는 비평 양상 역시 그것의 목적, 타깃, 텍스트의 특성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평가는 1차적으로 향유자로서 주어진 텍스트와 관계하며, 그 텍스트의 의미론적 구조와 잠재적 기능은 향유과정에서 구체화될 뿐이며, 그 결과는 해석적 언술을 통해서 구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화비평은 다양한 방식의 제한 없는 다차원성을 전제해야만 한다. 다만, 만화비평의 실천을 통해서 총체적 언어를 제공하고 텍스트를 새로운 소통의 탐험적 결과물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만화가 지닌 근원적인 의미론적 중의성과 구현 전략의 자유로움, 예측불가능성은 향유하는 향유자들을 매료시키는 가장 강력한 기제 중에 하나다.

만화비평에서 텍스트와 향유자 간의 대화성, 과정성, 개방성은 상호주관성의 차원을 지속적으로 주목해야만 한다. 상호대등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입장과 자격에서의 대화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 간주간성은 대화의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와 윤리적 측면에서도 강조되어야 한다. 리터러시의 구성요소인 인지-해석-평가의 상관적 체계를 구현하는 맥락 위에서 텍스트 고유의 특수성을 확보하여 미학적, 현실 반영적, 향유론적 경험의 체계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만화비평은 만화의 리터러시 맥락 위에서 파악한 분석과 해석은 심미적 이해를 거쳐 역사적, 사회문화적 인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탄력과 개방 그리고 확장 가능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언어예술로서 만화의 소통이 일반소통과 다른 것은 그것이 정보와 미학의 잉여성과 특수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학적 체험이나 역사적 경험 그리고 사회문화적 반영의 컨텍스는 기존 질서에 대한 종속과 동시에 저항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해온 결과다. 더구나 새로운 만화적 소통에서 개방성이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는 시점에서 그것의 끊임없는 갱신성과 과정성은 창작의 새로운 동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만화비평은 텍스트 해석의 마지막 지평은 의미가 아니고 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담론 구조이며, 평가의 준거는 규범적 완성도가 아니라 개별 텍스트의 변별적 특성과 그것의 구현 정도에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생태계의 개별 구성요소와 그 전체의 구조 그리고 그들 간의 콘텍스트를 종합적으로 관찰 할 수 있을 때, 만화비평의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상의 전체 콘텍스트 위에서 분석된 개별 정보는 계기화된 의미잠재력을 지닐 수 있고, 그 잠재력의 구현태가 텍스트의 의미지평을 확장하게 될 것이고, 다양한 구현 전략은 고유의 문법을 형성하는 특유의 향유구조를 창출할 것이다. 이러한 향유구조 위에 앞으로의 만화, 그리고 만화비평은 서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만화비평의 방법론 역시 이러한 맥락성을 고려한 자의식이 필수다.

이 글은 앞으로 만화비평의 다양한 양상을 점검하고, 그것이 새로운 만화문법과 만화형질에 최적화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할 것이다. 이러한 탐구는 만화비평의 변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만화비평가의 자의식이 차별적 미학으로 전개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할 것이다. 문학, 영화, 연극, 미술, 음악 등 주변 장르에 축적되어온 비평이론과 방법론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필요한 요소를 어떻게 벤치마킹할지에 대하여실천적인 고민도 병행해야하는 고단한 작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만화의 장르적 차별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지속적인 모색과 만화비평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방적인 시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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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Source Multi Use, 향유가 먼저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One Source Multi Use는 원천소스(One Source)의 창구화, 장르 전환, 관련 상품화, 브랜드 창출(branding) 등을 통해서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마케팅 활동을 말한다.

창구화(windowing)는 콘텐츠를 시간적으로 계열화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콘텐츠를 창구별(매체별)로 노출시키는 시점을 달리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장르 전환에 비해 변환 비용이 적게 들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신규시장 창출 효과가 없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은 수익 창출 방법이다. 이와 같은 창구화의 결과를 창구효과(Window Effects)라고 하며, 이것은 시간적/공간적 노출의 차별화를 통하여 배급효과를 높이고, 홀드백(Holdback)을 설정하여 개별 창구 간의 충돌을 전략적으로 피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함으로써 콘텐츠의 수익 창출 기간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다. 영화를 극장, 유료TV, VOD, DVD, 공중파TV, 케이블TV 등과 같이 다양한 창구를 통해 향유하게 함으로써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장르 전환(adaptation)은 콘텐츠를 장르 별로 계열화시켜 신규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미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한 소설, 만화, 웹툰 등을 매스미디어와 결합하여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거점콘텐츠로 전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장르 전환은 향유자들이 전환 전후의 콘텐츠로부터 동일한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장르 전환은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하지만 독립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므로 전환비용이 많이 들고, 선행콘텐츠의 성공이 전환하는 콘텐츠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창구화에 비해 위험도가 높지만, 그만큼 신규시장 창출 효과가 크기 때문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상품화(merchandising)는 콘텐츠 내용이나 소재를 상품으로 개발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상품화는 캐릭터, 중심 소재, 배경, 이미지, 소품 등과 같이 콘텐츠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관련 상품(merchandised goods)과 직접적 연관은 없으나 물리적으로 덧붙여진 PPL(Product Placement)과 같은 부가 상품(tie-in)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품화는 콘텐츠의 성공을 전제로 하지만, 기획 단계부터 상품화 전략을 수립하여 콘텐츠와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유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브랜드화는 콘텐츠의 인지도와 지속적인 향유를 통해 확보된 충성도를 활용하여 브랜드 가치를 유지, 확장하는 과정을 통하여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해리포터시리즈는 소설, 영화, 게임, 테마파크 등으로 장르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압도적인 브랜드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이미 시리즈가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콘텐츠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One Source Multi Use의 동력은 원천콘텐츠의 후광효과 여부, 원천콘텐츠의 전환 적합성, 거점콘텐츠의 최적화 여부, 연동 콘텐츠 간의 상호 프로모션, 다양한 창구로의 확산, 브랜드 가디언의 효과적인 통제에 의한 상품화, 지속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 확보 등에 있다. 그동안 콘텐츠 업계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하여 강력한 원천콘텐츠의 확보 방안, 전환의 최적화 장르 파악 및 전략 탐색, 상호 프로모션 방안, 상품화 전략 등에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나는 2012년 이래 가공할만한 신드롬을 낳고 있는 미생이다. 웹툰은 11억 뷰 이상, 책은 250만부 이상, 6-7%대의 드라마 시청률, 콘텐츠파워지수 1위라는 가시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미생의 사회적 담론을 생산함으로써 미생 법안이라는 웃지 못 할 명명을 낳기도 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생신드롬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웹툰 <미생>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연재되는 동안(2012-2013) 단행본 미생이 순차적으로 출간되고, 캔커피, 맥주컵, 종이컵, 노트, 이력서 등의 부가상품이 개발/출시되고(2012-현재), 드라마 <미생 프리퀄>(2013), 웹툰 <미생-사석>(2014), 드라마 <미생>(2014), 패러디 버전인 드라마 <미생물>(2015) 그리고 웹툰 <미생>가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생One Source Multi Use는 웹툰 연재 당시부터 비정규직 문제, 직장생활 애환과 불안정성 등을 핍진한 에피소드, 촌철살인의 경구, 이완의 절묘한 서사 전개로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이를 통해 사회적 담론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지금 이곳의 문제를 향유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구체적인 퍼포먼스를 통하여 단행본, 부가상품, 드라마, 광고, 패러디 드라마의 연속적인 성공을 이끌었고 연재될 <미생>를 통해 프랜차이즈 콘텐츠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은 반드시 주목해야할 지점이다.

2009년 디즈니가 4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은 마블이지만, 실제 그들이 원한 것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arvel Cinematic Universe)였다. 마블은 이미 영화 판권을 팔아버린 원천콘텐츠를 제외하고도 5000여개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구축할 수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무한한 까닭이다. 이것은 헨리 젠킨스가 주장했던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의 가장 소박한 형태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할 수 있는 양상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은 멀티플랫포밍을 통해 개별적인 스토리들이 모여 하나의 서사 세계’(narrative universe)를 구성하는 일종의 상업주의적 팬덤 현상이다. 이와 같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유사한 예가 소박하지만 미생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미생신드롬 혹은 미생프랜차이즈화 과정은 One Source Multi Use의 선순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 ‘미생을 통해서 적은 비용으로 대중성 검증이 가능한 스토리성을 풍부한 원천콘텐츠의 확보, 일정 기간 주기적인 노출을 통한 지속적인 향유의 장 마련, 브랜드 가디언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서사 세계’(narrative universe)의 탄력적 운영, 미디어별, 장르별 특성에 최적화된 전환 전략 탐구 등의 성공적인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출판계의 불황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 만화도 그랬다. 새로운 플랫폼과 창조적으로 결합하여 웹툰으로 형질변환에 성공함으로써 시장은 3000억 규모로 커졌다. 그런면에서 출판과 유기적으로 연계된 웹툰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드라마, 게임 등과 같은 거점콘텐츠와 상호연동하려는 One Source Multi Use의 전략은 물론 마블의 예에서 보듯이 보다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서사세계 구축의 시도 역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아 가능성의 영역에 남아있는 전자책이 본격화될 때, 마치 만화가 웹툰으로 위기를 타개한 것과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은 웹툰이 급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충성도 높은 향유자층의 지속적인 참여 유도와 소통의 공간 마련, 원천콘텐츠로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성 확보, 거점콘텐츠화 과정에서 보다 유기적인 서사세계 구축의 유연한 자세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최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출판사 팟캐스트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책이 언제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듯이 One Source Multi Use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유연하고 적극적인 출판계의 시도를 꿈꿔본다.


<책&>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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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Sunny, Sunny!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마츠모토 타이요(松本 大洋)의 작품에 작가주의 운운하는 것은 다소 번거롭다. 소위 작가주의라고 말하는 것들은 주류 상업만화의 관습이나 장르적 특성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 고유의 세계를 특유의 방식으로 창출한다. 그림에서부터 서사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을 향유해본 사람이라면 그 특유의 세계 안에서 작가주의라는 수사(修辭)는 오히려 뱀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 마츠모토 타이요, 써니》, 애니북스, 2013 중에서

그의 작품은 대부분 딱히 역동적인 구도가 아님에도 정적이라는 느낌보다는 나름의 속도감이 느껴진다. 칸 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표정이 모두 각기 살아있고, 배경도 쉬지 않고 제 표정을 만들어냄으로써 칸 전체가 정지된 역동성을 갖는 까닭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화면연출과 캐릭터 구현 과정 그리고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이것은 그의 작품의 매우 중요한 입점이 되겠지만) 시점과 내레이션의 유기적인 조화는 주목할 지점이다. 클로즈업한 정지영상을 캡처해놓은 듯한 화면연출을 통해서 캐릭터 개개의 성격을 모두 살려내고,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임도 개별적인 감정선을 매력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당위론적 결론이나 성장의 신화에 매몰되지 않는다. 특히 텍스트 전체를 보이지 않게 압도하는 시점은 내레이션과 함께 특유의 페이소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화는 작품별로 갱신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작화의 완성도는 매번 자유로움으로 갱신되고 갱신의 차이만큼이나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고 있다. 죽도 사무라이에서 보여주는 작화는 일가를 이룬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유의 압도가 아니겠는가?


마츠모토 타이요는 이율배반의 미학을 구현한다. 이러한 이율배반의 미학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써니. 써니는 이제는 멈춰버린 자동차 써니 안에서 보육원 밖을, 돌봄이 필요한 유년의 밖을,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의 밖을 꿈꾸는 아이들의 간절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이야기를 시간적 거리와 감정적 거리를 유지한 자세로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은 그들 생에 가장 화창하고 빛나야할 그 시절(sunny)을 겨우 멈춰버린 자동차 써니 안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낸다. 가족이 아닌 가족들, 아이가 아닌 아이들. 사실 이러한 구도의 이야기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써니는 식상하지 않다. 성장담의 컨벤션을 사용하고 있지만 성장에 집착하지 않기에 특정 시기 특정 사건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드러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레이션의 페르소나가 견디는 지금 이곳의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보육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홀로 던져져서 오롯하게 살아내야 하는 시간에 주목해보면, 지금 이곳은 당신의 화양연화(sunny)인가, 당신의 삶은 그저 움직이지 못하는 써니에 머물고 있지 않나, 오롯하게 혼자서 삶을 잘 견디고 있나 등등 다양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 그래서 써니의 캐릭터들은 각각의 내력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개개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모두의 이야기로 수렴되어 특유의 페이소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페이소스는 향유자가 그들의 이야기 위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투사하게 만든다. 문제는 향유자의 투사는 이야기 속의 유년시절로 가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개개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간 추억 속의 유년을 우리가 공유했기 때문에 눈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이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지금 이곳에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는 가장 대중적이고 안정적인 서사인 성장담으로 규정하고 싶어 하지만, 그곳에 머물지 않아야 제대로 된 써니를 향유할 수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써니는 그냥 그림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고, 각각의 캐릭터만으로도 대화할 수 있으며(이들 중 누구 하나가 빠져도 서사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것이 어느 시대, 몇 살쯤의 이야기라고 규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지독한 자유가 데려다주는 Sunny, Sunny, Sunny한 지금 이곳, 우리 삶의 화양연화가 아니겠는가?


<만화규장각>  201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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