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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가 달아지는 이유

 

박 기 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74년 봄 우린 서울로 이사왔다. 청주에서의 살림을 정리하여 210만원을 갖고 시작한 서울 살림이었지만 1년도 못되는 시간에 살림은 반으로 줄었다. 생전 해보지도 않은 식료품점을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할머니는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시작하셔야 했다. 그 무렵의 서울살이 풍경이 대개 그러했겠지만 부모님은 가게에서 늦게까지 계셔야 했고, 집안 살림과 아이들 건사는 모두 할머니 몫이셨다. 아이들 다섯의 끼니는 물론 다섯 개의 도시락과 가게에 계신 부모님의 끼니까지. 청주에서만 사시던 분이 서울에 올라오셨으니 지리도 모르고 지리를 안다고 해도 딱히 갈 곳도 갈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작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의 공식적인 외출은 내 결혼식이 유일한 것이었다. 20여년의 참 길고도 지루했던 수감생활(?)이었다.

그 지루했던 할머니의 서울살이를 나름대로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진로 소주였다. 할머니가 언제부터 소주를 드셨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할머니의 소주 심부름은 아마도 서울 살이를 시작한 그 무렵부터인 것 같다.

다행히 옆집 할머니와 쉽게 친해지셨던 할머니는 이따금 길음시장의 녹두빈대떡 심부름을 내게 시키시곤 하셨다. 신문지에 그 뜨뜻한 것을 싸서 집으로 달려오면 할머니는 어디서 나셨는지 소주를 준비해 두셨었다. 그때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 정정하시고 힘이 있으셨던 시절이다. 한 번 실패했던 아버지의 일들이 같은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면서 할머니는 녹두 빈대떡을 더 이상 시키실 수 없었다.

철이 들면서 할머니께 왜 그 쓴 소주를 드시냐고 여쭈어보면 속이 상해서 마신다고 하셨다. 소주 심부름이 귀찮아서 소주 좀 그만 드시라고 하면 니 놈이 소주 한 번 사주어 봤어?”하고 서운해하시기도 하셨다. 할머니의 소주를 이해하게 될 때쯤 할머니의 잔에는 소주보다는 더 많은 물이 섞이게 되었다.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기 때문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머리가 커진 손자들이 소주 심부름을 꺼려해서 소주 한 병을 두고 오래 드셔야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소주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된 것은 내가 술을 마시면서부터였다. 집에 들어가다가 할머니 생각이 나면 소주를 사다드리곤 했다. 그 무렵부터 할머니는 쉽게 취하셨다. 소주잔에 반쯤 소주를 따르고 반쯤은 물을 타서 드시면서도 너무도 쉽게 취하셨다.

부모님이 가게에서 주무시고 아이들을 혼자 키우셔야 했던 할머니는 이것저것 가슴앓이가 많으셨다. 청주에 살 때만 해도 주변에 친구분들도 많았고 당신이 돈을 버실 때니까 기활 좋게 털 것은 털어 내실 수 있었다. 집에는 늘 할머니의 친구분들로 북적대었으니까. 하지만 서울살이는 그렇지 못했다.

제 몫의 일들에 쫓기던 손자들 누구도 할머니와 마주 앉아 곰살맞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아이들을 학교로 일터로 보내고 나면 아버지가 아침을 드시러 들어오시고 서둘러 가게로 나가시면 덩그러니 빈집엔 할머니만 남으셨다. 어린것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한다시며 TV요리 프로를 즐겨 보셨던 할머니. 하지만 그 끝 말씀은 늘 저렇게 양념 넣고 누가 못해?”라고 하시며 한 번도 그 음식을 만들지는 못하셨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아는 몇 안되는 것들을 TV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가우셨던 것이다. 당신은 늘 TV를 보셨지만 여쭈어보면 내용은 알지 못하셨다. 그저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TV였다. 저녁상머리에서 할머니는 그날 뉴스를 할머니 나름대로 조각조각 잇곤 하셨다. 당신의 기억 속에 정지했던 드라마는 70년대 초의 <꽃피는 팔도강산>이 전부였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물론 성장기의 우리 오남매에게 부모님 역할까지 하셔야 했기에 늘 마음을 졸이고 염려가 많으셨다. 밥은 먹었느냐? 밥 더 먹어라. 굶지 말고 다녀라. 늘 먹는 것에 관한 염려가 많으셨다. 밥은 할머니의 신앙이었다. 그래서 집에 밥이 떨어지는 것을 몹시 불안해 하셨다. 찬밥이 남아서 아침에 당신이 드시더라도 꼭 나간 형제가 있으면 그를 위해 밥을 담아 두셨다. 그래서인지 나도 밥을 먹다가 밥이 떨어지는 것은 못 참는다. 그럴 때면 아내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밥은 떨구지 말라고 화를 내곤한다.

중학교 때인가, 친구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아직 저녁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라면을 먼저 먹고 기다리라고 라면을 끓여 주셨다. 라면이 밥보다 더 좋을 나이였던 우리는 그러마고 했다. 잠시후 할머니가 끓여주신 라면은 웬일인지 하얀 색이었다. 알고 보니 빨리 대접해야한다는 마음에 스프를 넣지 않고 끓여주신 것이었다. 다 끓은 라면에 스프를 넣어 먹던 그 비릿한 라면.

제사 다음날이나 명일 때에는 관리 아저씨나 청소 아저씨를 불러서 당신이 아끼는 진로소주 한 병과 음식들을 내어가곤 하셨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 박하면 안된다고 하시며.

부모님은 떨어져 계시니까 늘 우리들의 귀가 시간을 전화로 점검하셨는데, 대학 다니던 누나나 내가 잘 지켜질 리 만무했다. 아이들 들어왔냐는 엄마 전화를 중간에서 막아주시는 것은 늘 할머니였다. 그렇다고 당신이 마음 편안히 우리를 기다리셨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늦는다고 전화를 드려도 손자들이 들어올 때까지 뜬눈으로 기다리셨다. 그러다 지루하면 혹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하면 한 잔씩 하셨다.

하루에 두세 잔인 소주였지만 팔십 노인에게는 늘 과한 주량이었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르면 할머니는 젊은 시절 고생하시던 말씀을 하셨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만주까지 갔다가 서울로 왔다가 청주에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 그래서 할머니의 서울에는 625가 끝나지 않아 있었고, 간혹 로스케 병사들이 등장하고, 때로는 만주에서 피난 나오면서 두고 온 소, , 닭 등이 살아오기도 했다.

한 번은 서울에 공습경보가 내린 적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우리 오남매를 단속하시고 제일 먼저 집안에 있던 계란을 모두 삶으셨다. 혹시 피난을 가야될 지도 모르는데 그 아까운 것을 두고 가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40여년 전에 만주농장에 두고 오셨던 그 가축들 때문이라고 하셨다. 딱히 가지고 갈 것도 없는 우리 살림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어디 한 줄의 계란이었으랴?

이제는 제법 밥벌이를 할 나이가 되어 할머니 소주를 넉넉히 받아 드릴 수 있게 되자 당신은 소주를 드실 수 없게 되었다. 얼마나 상투적인 시간의 전개인가? 하지만 삶은 얼마나 상투적이고 통속적인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넘어지시는 일이 잦아지고, 그 횟수가 반복될수록 할머니는 자주 치매 증상을 보이셨다.

운신도 제대로 못하시는 분이 새벽 4시만 되면 아이들 방문을 두드리며 빨리 일어나 학교에 가라고, 아내와 본가에서 자는 날이면 어여 일어나 밥을 하라고 깨우셨다. 참 그로테스크하고 눈물나는 풍경이었다. 오남매의 새벽밥을 20여년 지으시며 그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짐이었는지, 난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당신이 건강하실 때, 내가 새벽까지 책을 보거나 무엇을 쓴다고 깨어 있으면 슬며시 문을 열어보시고, 그 어려운 골파먹는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걱정이셨다. 그러고는 배고프지 않냐고 묻는 것도 잊지 않으셨던 할머니. 당신 손에 밥을 얻어먹을 때는 비루먹는 말처럼 비비 돌아가더니 마누라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살이 찐다고 기쁨 반 서운 반 웃으시던 할머니.

할머니가 누워 계시는 시간이 늘면서 치매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당신의 아들에게 오빠라고 부르시기도 했고, 당신의 며느리에게는 누구시냐고 물으시기도 했다. 그러다 모두 출가하고 오남매중 유일하게 집에 남아 있던 아우가 필리핀에 가이드로 떠나기 며칠 전, 할머니는 풍을 맞으셨다. 막내가 떠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으셨던 거라고 식구들은 말했다.

결국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가 할머니 간호를 위해 가게에 나가지 않으시고 집에서 할머니를 돌보셨다. 대소변을 받아 내야하고, 진지를 챙겨드려야 하고, 시간 맞춰 당신을 돌아 눕혀드리고 등창난 부분에는 약을 발라 드려야 했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는 당신의 며느리나 손자며느리가 아니면 기저귀에 손도 못 대게 하셨다. 가시는 그날까지도 당신의 아들에게 어머니의 품위를 지키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 무렵 딸아이가 태어났다. 몸의 반쪽을 운신하지 못하시면서도 당신의 증손녀를 보면 미소를 지으시고 늘 같은 말을 물으셨다. 그것도 손자며느리 몰래 당신의 손자에게만 낮은 소리로 아들이지?”. 발음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늘 당신의 증손녀를 보시면 울음 반 웃음 반의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당신의 아들조차 가끔씩 오빠라고 부르셨지만, 당신의 손자들만은 정확히 알아보셨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치매와 풍이 심해져서 아무도 할머니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당신들의 손자들만은 알아들었다. 할머니와 나눈 외로움의 교감이 그렇게 깊은 것이었을까? 가금 정신 돌아오시면 내 손을 잡고 힘들지 않냐고 너무 골 쓰며 살지 말라고 걱정이셨다. 가시는 그날까지 끝내 손자들이 마음이 걸리셨던 것일까?

할머니는 풍을 맞으신 지 딱 일년만에 가셨다. 가게를 그만두고 집에 계시던 당신의 며느리가 위층에 간 사이, 당신의 맏손자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시간, 당신의 막내 손자가 여행객을 데리고 보라카이로 날아가던 그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신의 아들만을 곁에 두고 가셨다고 했다.

생전에 당신의 푸짐한 밥인심에 이건 순전히 밥고문이라고 엄살을 떨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당신이 대접하시는 음식들이 모두 맛있다고들 했다. 그래도 막내손자까지 출가하는 것보고 돌아가시어 복 받은 분이라고들 했다. 편안히 가시어 좋은 데로 가셨을 것이라고 했다. 그 걱정 많던 분이 어떻게 안심이 되어 가셨는지 모른다고들 했다. 결코 쓰러질 것 같지 않던 분이 쓰러지셨고, 결코 돌아가실 것 같지 않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렇게 가셨다 할머니는.

당신이 가시고 부모님은 우리가 사는 수지로 이사를 오셨다. 집에서 불과 50여미터쯤 되는 거리다. 아내가 일을 할 때에는 아이를 맡아주시고, 저녁을 준비해 주신다. 부모님은 하루종일 딸아이를 기다리신다. 더구나 나가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성격에 서울 한 번 나가는 것이 일이고 보니 두분은 산책하시는 것 외에는 하루종일 집에 계신다. 어머니는 그나마 시장 보셔야 한다고 백화점 셔틀 버스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시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제발 나가셔서 친구분들과 약주도 하시고 스포츠 센터도 다니시라고 말씀드리지만 소용이 없다.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딸아이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그러셨듯 달력을 오려 딸아이의 낱말 카드를 만드시고, 녀석의 말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것을 즐거워하시고,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하루라도 딸애를 본가에 보내지 않으면 무척 서운해하신다. 혹 외출을 했다가 약주라도 한 잔 하시는 날에 우리가 먼저 본가에서 오면 전화를 하셔서 애를 데려 오란다. 보고싶으시다고.

저녁 식탁에서 고봉밥을 떠주시고도 더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서 할머니의 모습을 본다. 반주로 드시는 소주의 잔 수를 조절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할머니가 보인다. 그것은 누가 내게 아버지와 꼭 닮았다고 하는 것만큼 싫은 일이다. 하지만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다가, 소주잔을 들다가,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양복주머니에 왼손을 찌르며 걷다가 나도 아버지를 내게서 느끼는 것처럼, 당신들도 어쩔 수없이 할머니의 연세를 맞고 계신 것일까?

요즘은 문득문득 할머니를 느낀다. 그만큼 내 삶이 가파라지고 있다는 뜻일 게다. 전에는 힘들 때면 할머니에게 털어놓곤 했었다. 알아듣는 말보다는 그렇지 못한 말이 더 많아도 당신은 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이셨다. 그러고 다듣고 나서는 별말씀 없이 당신의 소주를 나누어주시곤 했다. 이제는 물 탄 소주를 나누어주시던, 아무 것도 모르지만 너는 내가 안다는 표정으로 손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는 그분이 계시지 않기 때문일까?

점점 소주가 달다. 오늘은 집에 들어갈 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막걸리라도 받아 가야겠다.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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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베개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연구실에서 밤늦게 퇴근하여 들어와 보면, 둘째의 책상에는 오늘 본 책들이 잔뜩 쌓여 있고, 제 어미와 함께 공부했을 식탁에는 서너 개쯤 까먹은 귤껍질과 틀린 문제만큼 만들어졌을 지우개 찌꺼기가 수북하다. 녀석은 들어서는 내게 느닷없이 안기지만 이제 자야한다는 아내의 말에 투덜대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내의 베개를 들고 구시렁대며 제 방 침대로 간다.

이 이상한 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내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둘째에게 아내의 베개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는 알고 있다. 아내의 베개를 두 팔로 꼭 껴안고 그것도 부족해서 다리로 다시 힘껏 조이듯이 끼고는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녀석의 모습만 보아도 그것은 쉽게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둘째의 행동은 Charles M. Schulz의 만화 <피너츠>에서 엄지손가락을 물고 담요를 끌고 다니는 라이너스처럼 부모의 맞벌이로 인한 애정 결핍이 원인은 아니다. 전업주부인 아내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넘치면 넘쳤지 부족하지는 않는 까닭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둘째의 또 다른 이상한 잠버릇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녀석은 제 방문을 항상 2/3쯤 열어 놓고 잔다. 푹 자라고 문이라도 닫아줄려고 하면, 언니가 놀려주려고 아내의 베개를 감추었을 때처럼 아주 야단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대답이 그럴 듯하다. 늘 자기 곁에 엄마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둘째에게 엄마는 지독한 중심이다. 흔들리지도 변하지도 않는 중심, 언제나 자기 뒤에서 어떤 경우에도 지켜줄 든든한 중심, 누구도 뭐라 그럴 수 없는 합법적인 부조리, 그 중심이 둘째에게는 엄마인 것이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 침대와 자기 침대를 묶어놓고 아내의 손가락을 만지며 잠이 들곤 했었다. 돌아보면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할머니의 말라버린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들지 않았던가? 할머니가 싸주시던 도시락으로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와 힘들어할 때, 아무 것도 모르지만 너는 내가 안다는 표정으로 손자를 끝까지 지켜봐주시던 그 든든한 후견(後見). 둘째에게 아내의 베개는 엄마요 중심인 것이다, 내게 할머니의 젖가슴이 든든한 후견이었던 것처럼.

일본 준아이(じゅんあい)물의 대표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서로가 서로의 중심이 되는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는 까닭에 죽은 엄마가 비의 계절에 돌아온다는 황당한 설정을 너무도 가볍게 넘어선 작품이다. 비의 계절이 끝나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미오가 남아야 할 아픈 남편을 위해 요리법이나 세탁법을 어린 아들에게 가르치고, 어린 아들을 위해서는 성년이 될 때까지의 생일 케익을 미리 주문하는 모습은 자신이 그들의 중심임을 절절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중심이 되고 있는 한 타쿠미의 가족은 아프지만 아프지 않고, 삶과 죽음으로 갈렸으되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이번 겨울이 유난히 길 것이라고 한다. 이 겨울을 어떻게 건너가야할지 누구도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졸업을 앞 둔 4학년 제자들은 사회에 나가 취업을 해야 한다. 또 그들의 후배들은 해외 인턴과 어학연수를 나가고 있다. 터무니없고 느닷없이 찾아온 위기 앞에서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만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은 위기를 인정하고 그것에 당당하게 맞서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 지독한 혹한의 계절에 사회로 나가야하는 제자들과 해외로 인턴과 연수를 나가야하는 제자들에게 비록 변변한 경제적 후원이 되어주지는 못하더라고, ‘아내의 베개할머니의 젖가슴처럼 그들의 변하지 않는 든든한 중심이 되어 주고 싶다. 제자들이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고 후견이 될 수 있는 그 자리, 난 그곳에서 아내의 베개이거나 할머니의 젖가슴이 되고 싶다

2009년<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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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삶의 기쁨이야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어제는 둘째 생일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많았고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그저 아침 따뜻한 미역국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했던 어린시절의 생일을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참 쑥 쑥스러운 짓을 하네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에 때마다 선물하는 것이 몹시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아침부터 맞춘 떡을 찾아다가 첫째 친구 엄마들과 나누는 모양이었습니다. 둘째 생일이라고 첫째가 친구들에게 알려서 뭐 그래그래 되었답니다. 백설기 한 조각 뜯어 먹고 나왔다가 점심 무렵에 들어가서 떡을 들고 본가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절에 가시고 아버지 혼자 계신데 떡을 드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삼성플라자 플레이 타임에 갔습니다. 아이들을 놀라고 들여놓고 아내와 몇 년 만에 팔짱도 기고, 커피도 마시고, 아이 쇼핑도 했습니다. 두 시간쯤 후에 아이들을 찾아서 피자헛에 가서 피자를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보아둔 둘째 강아지 인형을 산다고 2001아울렛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고맙답니다. 글쎄, 아이들과 그저 하루 함께 했다는 것이 고맙다는 뜻 같은데, 그 말에 오히려 제가 미안했습니다. 얼마나 가족들과 하는 시간이 없었으면 아내는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요. 집에 있어도 서재에서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늘 일 때문에 분주하니 저도 모르게 그랬나봅니다.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하고 씻겨주었더니 이내 잠이든 모양입니다.

며칠 전, 오전 강의를 나서는데 아내가 밖에 비가오니 첫째 우산을 가져다주고 나가라고 해서 아이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도 가깝고 강의하러 가는 길이라서 우산을 들고 아이 교실 옆에서 공부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밖에 아이의 신주머니를 찾아서 우산을 넣어두고 왔는데, 저녁에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가 무척 좋아했습니다. 녀석의 기쁨이 저를 가르칩니다. 제게 부족한 사랑과 사랑하는 법을.

사는 일이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나이를 세는 일만큼이나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은 양가적 감정인데, 배워야할 것만큼 아직 제가 어설프다는 뜻이고, 또 모르는 그 만큼 새롭게 저를 채워줄 것이 많으니 기쁜 것이겠죠.

둘째는 이제 네 살이 되었습니다. 36개월을 꽉 채우고 녀석은 참 신기하게 조금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목요일에 아내와 아니는 유치원 등록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용변을 혼자서 가리려고 하고 반찬도 이것저것 먹으려 하고, 제 어미가 무엇을 시키면 , 엄마-”라고 제 언니도 쑥스러워서 잘 하지 않는 말을 자주합니다.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제가 쓰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가 전혀 다른 순간에 한방씩 날리기도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노트북에 담아두고 자주 꺼내 봅니다. 사진을 보아야 커가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참 부쩍부쩍 큽니다. <조블랙의 사랑>에서 아버지의 말처럼, 저도 녀석들에게 너희는 내 삶의 기쁨이었다고 말하길 소망합니다. 물론 녀석들은 지금도 제게는 삶의 기쁨입니다.(20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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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니와 한글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둘째의 이가 엉망입니다. 아내나 제가 닦이느라 닦였는데, 아이가 자다가 우유를 먹는 습관 때문에 빚어진 결과입니다. 며칠 전 아이 이를 닦이던 아내가 놀라서 가보니 아이 어금니부터 성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치과를 데려가야 한다고 아내와 저 모두 생각을 했지만, 특히 생각하면 즉시 해야 하는 아내의 성격에 미적대는 것을 보면, 아내는 제 논문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습니다. 문제는 제 논문이 몇 개가 연속되는 바람에 아내는 혼자서 아이를 치과에 데려가는 벅찬 일을 감당하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몇 해 전에 첫째의 이 때문에 친구 치과에 데려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치료를 잘 참던 첫째가 어금니를 덮어씌울 이를 고르라고 하자 핑크색은 없냐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째는 첫째와 전혀 다릅니다. 첫째의 참을성이 둘째에게 있을 턱이 없으니 아내는 어제 치과 예약을 하고 와서부터 걱정을 했습니다. 아이가 참지 못하면 수면상태에서 치료 받는 것이 있는데, 인근 치과에서 그거 하다가 아이 하나가 잘못되었다는 둥, 아내는 밤새 걱정을 했습니다. 아침에 강의가 있어서 학교에 가서도 저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전화를 했더니 예상했던 대로 울었답니다. 세 명이 달려들어 아이를 잡았으니 잡은 사람이나 잡힌 아이나 모두가 고역이었을 일입니다. 어쨌든 아이는 오늘 두 개의 이를 치료했습니다.

사실 어제 예약을 하러 가서 아이가 입을 잘 벌렸다고 치과에서 장난감 반지를 준 모양입니다. 아니는 그것을 받아 제 언니를 가져다주겠다고 모처럼 가상한 생각을 했다가 오늘 큰 고생을 한 것입니다. 전화에 대고 자기가 얼마나 장한 일을 했는지 아기 소리로 울먹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둘째의 첫 선생님이 집에 다녀가셨습니다. 둘째는 35개월인데 나이는 다섯 살입니다. 11월생이라서 억울하게 나이를 먹은 것이죠. 제 언니가 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엄마와 매일 저녁 공부를 하는 모습이 부러웠는지 읽지도 못하는 책을 들고 다니며 읽어달라고 조르다가 요즘은 제가 지어서 읽고는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아내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첫째의 일학년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분주하고, 둘째가 첫째만큼 차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첫째의 학습지 하나와 미술학원을 정리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명목상으로야 첫째의 영어 학원을 옮기면서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둘째가 내심 걸렸던 모양입니다. 드디어 어제 싱크빅 선생님이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저는 서재에 있었지만 무척 좋은 선생님 같았습니다. 둘째는 매일 첫째의 선생님을 제 선생님이라고 우기더니 정작 제 선생님이 오시니까 부끄러워서 인사도 제대로 못합니다.

이제 둘째도 글을 배우려나 봅니다. 열 칸짜리 노트에 할아버님께 제가 글을 배우던 나이가 둘째보다 어렸을 때였을 텐데,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나는 일은 아마도 글 배우는 일이 우리 성장에 잊기 어려운 기억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를 그토록 이뻐해주시고 늘 함께 생활했던 할아버님의 음성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글을 배우던 때의 기억은 새로우니 말입니다.

아직 둘째는 치료해야할 이가 남아 있습니다. 한글을 한 자 한 자 익힐 때마다 치료가 진행되고, 혹은 젖니가 빠지고 새 이가 나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녀석이 새벽 3-4시쯤에 일어나 안방으로 건너와 문을 열고 엄마 나가서 자자하고 아내를 거실로 데리고 나가는 일은 없겠지요. 혹은 아침에 일어나 안방 문을 열고 안녕히 주무셨습니다.”라고 어설픈 아침인사를 하는 일도 없어지겠지요. 그렇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가르쳐 주어도 녀석의 고집은 아비의 교양을 늘 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어설픈 순간이 저는 늘 아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만 보면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고 온갖 포즈를 요구하나 봅니다. (20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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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인터넷서점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식탁에 앉아서 가계부를 정리하던 아내가 궁시렁거립니다. 아내는 곧 제 서재로 들어와 지난달 제가 산 책의 내역을 들이밀고 그 금액을 확인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책을 조금만 사라고 부탁을 하거나 가계부를 가져가라고 협박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공부하는 사람에게 사고 싶은 책을 사지 말라는 것은 전투병에게 실탄을 아끼라는 것과 같다고 우기거나 아내의 분위기를 봐서 이내 꼬리를 내리고 다음달에는 책을 사지 않겠다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모르겠습니까, 결혼 후 월말마다 반복되어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싸움의 결말을. 사실, 주말마다 각 신문에서 알려주는 책 정보나 이메일로 날아드는 인터넷 서점의 신간 안내는 유난히 책 욕심이 많은 저에게는 참기 힘든 유혹입니다. 그것들을 메모해두었다가 가능하면 제가 강의 없는 날에 집에 도착하도록 아내 몰래 주문을 합니다. 따라서 배달되온 책의 포장박스만 아내 눈에 띄지 않게 하면 완전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발각되고 저는 아내에게 비굴한 미소를 지어야합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는 제게 누이들과 당신의 구두를 닦게 하고 용돈 500원을 주셨습니다. 그 돈은 토요일 오후 축구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분식집에서 300원짜리 라면을 사 먹거나, 모아두었다가 시장 입구에 있었던 헌책방에서 삼중당 문고나 500원 내외하던 헌 책들을 구입하는 데 쓰곤 했습니다. 시장 입구 노점상들이 즐비한 가운데 환한 형광등 불빛으로 빛나던 그 헌책방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점 앞에 쌓아두었던 헌책들과 그 사이사이에 싸한 냄새와 함께 따듯하게 타오르던 카바이드 불빛, 천장까지 닿아있던 책꽂이와 빼곡히 들어차있던 책들, 그리고 거기서 풍겨나온던 얕은 곰팡이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고 싶은 책들은 늘 주머니의 돈보다 많았습니다. 책을 읽어보고, 주인아저씨에게 그것의 가격을 몇 번씩 되물으며 아쉬운 마음으로 주머니의 돈을 가늠하곤 했던 까까머리 소년은 사진 속의 그것처럼 나이를 먹지 않았나 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두고 주문 여부를 놓고 몇 번씩 고민하다가 덜컥 일을 저질러버리니 말입니다.

가방에 교과서 외의 책을 넣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으쓱했던 그 시절, 이어령의 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은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완과 급을 조절하는 문자의 호흡과 유려한 레토릭,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박학, 어디서도 읽어보지 못했던 독특한 관점을 새록새록 발견할 수 있었던 책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시기어린 질투는 저자가 강의하던 이화여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어이없는 열망을 낳기도 했으니, 지금으로서는 참 웃지 못 할 일입니다.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들은 오남매를 모두 일일이 돌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여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책을 보며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이미 한국문학전집을 다 읽고, 중학교 시절에는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적 호기심이 강했던 그 시절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육체의 악령같은 책들은 얼마나 가슴 뛰는 체험이었는지. 이처럼 척박했고 때론 천박했던 제 독서 이력은 대학에 들어와 이청준의 소설을 만나면서부터 달라졌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내내 제 화두였습니다. 이청준의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서 느끼던 즐거움과 막막함. 그 즐거움은 김현의 평론을 통해 몇 배 더해졌고, 막막함은 결국 제게 이론 공부를 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그나마 평단의 말석에라도 머물게 되었나봅니다.

이사할 때마다 책 때문에 이삿짐 센터에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하지만, 지금도 사야할 책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분주하다는 핑계로 서점에 가는 수고 대신 인터넷을 통해 책을 삽니다. 책장들 사이에서 꼼꼼하게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몇 번씩 망설이다 구입하기 보다는 인터넷에서 책에 관한 정보, 적립 포인트, 할인율 등을 확인하고 책을 구입합니다. 목돈이 생기면 사고 싶던 책들을 잔뜩 사서 두 손 가득 들고 힘들게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느끼던 정신적 포만감보다는 얼마나 빠르게 배달될 수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인터넷 서점의 경제성과 편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카바이트 불빛과 형광등이 어우러진 얕은 곰팡이 냄새나는 헌책방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무엇을 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책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겠지요.

여덟 살배기 첫째가 책 몇 권을 들고 제 서재로 들어옵니다. 뒤이어 책을 거꾸로 들고 네 살배기 둘째가 들어옵니다. 둘째는 아직 글을 읽지 못하지만 제 나름대로 책을 봅니다. 아마 녀석들에게 책은 아직 읽는 것만으로 즐거운것들이겠지요. 둘째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며, 저는 아마 제게 필요한 책들을 언제 주문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애경 사보> 2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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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사내의 커다란 빈 자리


 박기수(한양대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 사내가 죽었다. 아주 작은 키에 작게 웃을 줄 알았던 그가 폐암으로 죽었다. 그의 미소처럼 늘 향기롭게 타오르던 그의 담배연기가 그를 삼켜버렸다. 담배를 재대로 배워보지 못한 나도 그의 출판사에 들르는 날이면 늘 내 몫보다 많은 담배를 축내고 나왔다. 북한산이 환하게 보이던 그의 사무실은 아주 작았지만 창만은 덩치에 비해 큰 편이었다. 마치 연극 전문 출판만을 고집하던 그 출판사의 매출이 보잘 것 없었고, 때문에 그의 생활은 참 궁핍한 것이었지만, 그의 연극에 대한 열정이나 의지가 더할 수 없는 풍요였던 것처럼.

그가 죽었다. 잡지 일로 그와 내가 낯선 고장을 다니러 가던 열차 안, 점심 대신 세 병의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나누던 삶의 이야기들. 생활고로 아내와 3년쯤 헤어져야했던 이야기, 그 헤어졌던 시간의 아쉬움 때문에 밤마다 아내와 담배 한 대를 나누어 피우고, 침대에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눈다며 행복해했던 그가 금요일 오전 10시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의 사무실에서 밤샘 작업을 하던 작년 연말, 그의 아내가 만들어온 김치 만두의 포만감, 그 시린 새벽의 든든한 사랑을 두고 그가 갔다. 기름 값을 아낀다며 LPG차로 바꾼다며 좋아하던 그가, 올 여름 세검정 보신탕 집에서 참이슬을 나누어 마시자던 그가, 따뜻한 커피를 타주고 담배를 권하고 교정을 보는 옆에 슬며시 캔맥주 하나쯤 놓아주던 그를 태운 것은 담배 연기만이 아니었으리라.

마지막으로 그의 사무실에 들렀을 때, 그는 혼자였다. 초여름의 햇빛을 사무실 가장 깊숙한 곳까지 끌어다놓고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의 출판사에는 사장이자 유일한 사원인 그만 남아 있었다. 그는 작게 웃으며 이 일 저 일을 상의했고, 그의 아내와 밤새 울고 웃으며 읽었다던 나의 살아가는 이야기원고를 그가 출판하고 싶어했지만 그에게는 작은 책 하나 만들만큼의 여유도 남아있지 않았다. 야구모자를 즐겨 쓰던 그가 만들어낸 책이 모두 몇 권이었는지, 그 책들의 수준은 어떠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판매되었는지 연극에 문외한인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어했는지, 그 책을 향한 그의 의지가 얼마나 뜨거운 것이었는지 겨우 조금 가늠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모든 것이 위기라는 시대에 생계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일을 오로지 순수한 열정만 가지고 견뎌내는 일이란 결국엔 자신을 조금씩 허물어 가는 일이라고 우울하게 깨닫는다. 그와 처음 만나 비워낸 참이슬과 흑맥주의 아리한 맛이 아직 입에서 쓰다. 그를 보내고, 나의 우울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다. 이제 그가 마지막까지 가슴에 안고 갔던 견고한 의지처럼 나도 다시 한번 마음을 갈무리해야겠다. 오늘은 문득, 창 넓은 그의 사무실에서 그가 녹여준 커피를 마시며 그의 향기로운 담배를 피우고 싶다.<행화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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