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헤어롤 혹은 거리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하철을 탈 때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사이를 오간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딱히 눈을 둘 곳도 귀를 기울일 곳도 없는 까닭이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관심이나 접촉이 두려워서다. 혹여 라도 뜻하지 않은 접촉으로 오해를 부를까 손도 팔짱을 끼어 단속을 한다. 그날도 그랬다. 지하철을 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낯설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딸아이 나이 또래의 여대생이었는데 앞머리에 핑크색 헤어롤을 감고 있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앞머리에 핑크색 헤어롤을 매달고 있는 모습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따금 우리과 학생들도 강의시간에 헤어롤을 감고 들어오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처음 본 모습이었다.
헤어롤을 감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고, 그 헤어스타일은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더욱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일 텐데,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공공장소에서 보여주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녀에게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의 밖에 존재하는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무관한 존재 혹은 아직 관계를 맺기 전인 존재들 사이에서 허락된 익명의 자유로움. 그 익명의 자유가 숨겨준 것이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자신이 익명화시켜버린 지하철 안의 사람들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 정도의 거리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닐까.
1초에 41,000개의 게시물이 업로드 되고 1분마다 180만개의 좋아요가 눌러진다는 페이스북은 어떠한가? 나 역시 페이스북에 일기처럼 글을 자주 올린다. 보여줄 만한 사진만 골라서 올리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만 다듬어 들려주는 페이스북은 누구에게나 절묘한 거리를 유지시켜 준다. 페이스북이 확보해주는 거리는 스스로를 드러냄으로써 충족시키는 자기 증거욕과 동시에 온전히 노출하지는 않음으로써 은폐하는 익명의 자유 사이에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혹은 보여주지 못하는 페이스북식 말 걸기는 진정한 이야기에 이르지 못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좋아요와 댓글을 달면서 즐기는 페이스북이 진정한 이야기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쉬운 일이다.
이야기는 세상을 향한 즐거운 말 걸기여야 한다. 삶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한 것들을 타자와 나누고자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과정, 타자에게 말을 걸고 소통함으로써 관계를 맺으려는 과정이 이야기여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던가. 때문에 이야기에는 타자가 전제되어야 하며, 그들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시도와 고민이 수반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지 이야기를 통해 타자를 이해할 수 있고, 타자를 이해한 만큼 삶은 깊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기 않겠는가.
헤어롤을 어디서 하고 있든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괄호 속에 묶어버리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을 괄호 속에 묶는다면 그렇게 묶고 있는 자신도 다른 이의 시선에서 배제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만족적인 드러내기를 하거나 적당한 익명성 뒤에 숨는 것 역시 큰 허물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오인하고 타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페이스북에서 정말 보고 싶은 것이 화려한 먹방 사진이 아니라 그것을 찍고 있는 사람의 진면목이듯이 다른 이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7.08.18.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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