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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개척은 없다

83일 오클라호마시티세인트루이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오늘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이동하는 날이다. 오클라호마시티는 강렬했다. 한증막 같은 더위와 청소해주지 않는 숙소, 그리고 폭탄테러로 가시지 않는 슬픔이 그러했다. 그래도 한 번 둘러본 도시라고 떠나는 길이 눈에 익었다. 이름으로만 알던 도시의 맨 얼굴을 보고 나면, 그때부터 그 도시는 이야기가 되고 기억이 되어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살아 숨 쉬는 기억이라야 비로소 여행이 된다. 김춘수는 이름을 불러 몸짓을 의미로 만들었지만, 여행자는 이름에 체험을 붙여 기억으로 남긴다. 늘 기억은 살아 있는 것이어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오늘도 사만다는 심통이 났는지 우리를 엉뚱한 길로 데리고 갔다. 길은 정직해서 정확히 잘못 든 거리만큼 더 달리게 한다.

오늘은 549마일(878)을 달렸는데, 더 달린 시간만큼 차 안의 이야기도 풍성했다. 아이팟에서 동방신기와 JYJ의 음악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SMJYJ의 분쟁에 대하여 아내와 유진이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데, 구체적인 정보며 논리가 흥미로웠다. 팬 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팬덤 현상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콜로키엄(colloquium)을 함께하는 이승아 선생을 통해서 익히 들은 바 있었지만, 아내와 유진이의 정보량과 관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놀라고 있으려니 이야기의 중심 화제는 JYJ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달라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들로 바뀌었다. 아이들에 체계화된 사회적 보호, 철저하게 가족중심의 생활,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철저한 존중, 느리고 융통성 없는 업무처리, 합리적인 시간 문화, 여가의 존중 등이 주로 이야기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에 와서 낯선 문화와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인해서 주로 내가 겪었던 일들로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이야기는 미국이 벌여온 전쟁 이야기로 바뀌었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각주:1]이라는 팽창주의 논리에 따라 인디언들은 물론 멕시칸들까지 내쫓은 전쟁들과 미국이 다양한 명분으로 전 세계에서 치르고 있는 전쟁의 성격 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아이들도 제법 진지하게 들으며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냥 어린 줄로만 알았던 아이들이 제 생각과 의견을 내는 것을 보니 대견했다. 아이들은 부모가 믿는 만큼 큰다던데, 부모로서 나의 믿음은 늘 아이들 보다 앞서 있거나 뒤에 있었나보다. 부끄러운 착오였다.

오클라호마 주에서 미주리 주로 넘어서면서 길은 제법 험해졌다. 그래서인지 미주리 주 인근에서는 Route66을 한 때 피의 66’(Bloody 66)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유를 하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 I-44를 내려서 본 풍경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퇴락해 있었다. 재개발을 앞둔 연립주택처럼 똑같이 생긴 작은 집들과 정원 없는 마당에 서 있는 덩치 큰 낡은 차들, 여기저기 언제 멈추었는지도 모를 트레일러의 반쯤 열린 문이 초라해 보였다. 요즘 무겁게 가라 앉아 있는 미국 경기 때문인지, 번화한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곳의 위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상태는 제법 심각해보였다.

I-44의 쓰레기 투기 경고문.

I-44I-40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곳곳에 교통법규를 어기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는 협박성 경고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차에서 창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면 ‘1,000달러 그리고/또는 1년 구속이라는 경고 문구의 단호함과 그리고/또는의 애매함은 웃지 못 할 강력한 위협이 되었다. 미국에서 스티커를 발부 받아 본 사람은 이런 표지판이 주는 강한 압박감을 안다. 미국은 마치 벌금으로 다스리는 나라 같다. 이곳에서 오래 생활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속도로를 관리할 주 정부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고,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쓰레기를 정기적으로 청소하기가 어려워서 벌금으로 쓰레기를 줄이려한다는 것이다. 주차 위반으로 견인되고, 속도위반으로 스티커를 끊어 도합 420달러의 벌금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런 표지판은 이유 없이 두려웠다. 보통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속도로에서 창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안다. 창밖으로 쓰레기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표지판은 위협적인 것이었다. 위협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은연중에 과속을 하게 될까봐 크루즈로 설정을 하고, 조심조심 정속으로 달렸다. 물론 창은 열지도 않았다.세인트루이스는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 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기 때문인지 더위는 조금 물러서 있었다.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가르는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동부에서 서부로 갔기 때문에 ‘The Gateway City’라고 불리었다.

기록에 의하면, 유럽인들의 미국 식민지 개척의 전형적인 수순과 같이, 프랑스 가톨릭 사제들이 세인트루이스에 선교 거점을 확보하고, 뒤이어 모피상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1763년 뉴올리언즈에서 북상한 모피상 피에르 라클레드(Pierre Laclede)가 이곳에 상단의 거점을 확보했다. 그해 체결된 파리조약(Treaties of Paris, 1763)[각주:2]으로 미시시피 강 동쪽의 루이지애나를 영국에 넘겨줌으로써 프랑스인들이 대거 세인트루이스 지역으로 건너와 본격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치적 약학에 의해 프랑스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1768년 이후 스페인 정부가 통치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가, 1803년 영국 견제책의 일환으로 미국독립을 지원했던 프랑스는 이 땅을 미국에 매각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이후 세인트루이스의 성격을 대표하는 서부 개척이라는 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세인트루이스는 ‘The Mound City’라고 불릴 정도로 인디언들의 큰 무덤(Mound)이 대규모로 조성 되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원주민들은 이곳에 살고 있었고, 무덤의 규모로 보아 상당한 수준의 문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은 뒤늦게 나타나 자기들의 언어로 이 땅의 이름을 짓고, 제멋대로 자신의 소유임으로 공표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자기들끼리 주고받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의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대상화해야 했다. 그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아야지만 난폭한 침탈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곳의 큰 무덤들을 원주민이 세웠다는 사실마저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왜곡했다. 그 정도 규모의 무덤을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야만인이라고 규정하기도 어려운 까닭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원주민을 부정하고 가상의 마운드 빌더’(Mound Builders)라는 존재를 내세우고, 그들은 유럽에서 온 백인이라고 주장하였다. ‘마운드 빌더가 유럽에서 온 백인이라면 이 땅의 주인은 원주민이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기 위한 억지였다. 이러한 억지 논리는 눈물의 길’(Trail of Tears)로 알려진, 인디언을 자기 땅에서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도 강력한 논리적 근거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세인트루이스는 새로운 영토 확장의 무자비한 욕망과 흥분이 들끓고, 그것의 실천이 출발한 곳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고종석이 자신의 칼럼에서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서부개척의 공격적 상징물이라고 본 것은 탁견이다. 사실 서부 개척이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 수사(rhetoric)인가? ‘서부 개척이라는 말은 서부에 이미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괄호 속에 묶고, 땅만을 그 중심에 둔 표현이다. 이 일방적인 수사에는 원주민의 존재와 문화를 개척해야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행위주체를 백인으로만 고정시키는 시각이 전제 되어 있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서부개척이라는 철저하게 백인 중심적이며 일방적인 표현에 별다른 이의가 없었던 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컸던 탓이다. 개척이라는 말의 진취적 어감과 맞물려 대상화된 원주민에 대한 폭력은 용맹과 낭만으로 미화되었다. 특히 인디언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징표로 자유 활용되던 죽은 자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것도 사실은 백인들에게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각주:3] 이런 사실을 오히려 왜곡하고 백인 주인공을 공격하는 인디언의 야만성을 드러내기 위해 머리 가죽 벗기는 장면을 넣어놓은 얼마나 많은 서부극을 우리는 낭만적으로 보아왔던가? 이와 같은 서부개척의 왜곡된 신화 안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죄의식은 괄호 속에 묶고 카우보이나 기병대 혹은 총잡이의 남성성, 낭만, 자유 등으로 미화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신화화의 결과, 서부개척은 미국인들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미식축구를 통해 아직도 향수되고 있다. 또한 개척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총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착[각주:4]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서부개척의 방향을 역전시켜 서부에서 동부로 가고 있다. 뜻하지는 않았지만, 그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상처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고 있다. 과거는 현재의 미화된 모습으로 좀처럼 덮여지지 않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깊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잊어도 역사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여정에서 만나는 모습들 역시 그 옛날로부터 크게 자유롭지 않았고,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은 인디언에 대한 미국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세계 각지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또 다른 인디언을 만들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지독한 오만이거나 폭력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만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는 점을 또 한 번 절감한다.

여행이 일주일째 접어들자 가족들은 여행에 적응해가고 있다. 오히려 남은 기간을 가늠해보고, 점점 줄어드는 그것을 아쉬워했다. 아내와 나는 짐을 싸고 푸는 일, 그날그날 빨래하고 말리는 일, 낯선 도로에서 운전하는 일에 점점 이력이 나고 있다. 이동하는 날에는 모두들 맥도날드나 버거킹 식사도 적당히 즐기고 있다. 마땅한 곳이 없으면 대부분의 저녁은 숙소에서 햇반과 카레, 컵라면 등으로 해결하고 있다. 덕분에 매운 것을 못 먹던 효진이도 이제 제법 매운 컵라면을 잘 먹는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나만의 컵라면 조리법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아이들은 여행일기와 기록을 매일 정리하고, 아내와 나는 각자 스타일의 정리를 만들고 있다.

존 스타인벡은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서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사람을 끌어낸다고 하였다. 길 위에서 바람을 맞아본 사람이라면 그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여행이란 애초부터 모두에게 납득 가능한 이유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길을 보며 떠남에 대한 신열을 앓다가 그저 떠나는 것이다. 신열을 앓는 샤먼이 이유를 가질리 만무하다. 이유가 없으니 계획은 있어도 성취는 없다. 떠나기 전에 세우는 계획이라는 것도 그곳의 과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위를 걸어야 하는 각자의 여행에서는 늘 어긋나기 마련이다. 물론 계획을 세울 때의 나도 이미 현재의 내가 아니지 않는가?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여행은 예측불허의 젊음 같다. 기대와 불안이 수시로 몸을 바꾸는 여정 안에서 스스로 몸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여행의 긴장이고 즐거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는 이제 비로소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보이는 풍경에 눈을 빼앗기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이 이끄는 우리들의 풍경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풍경이 그것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들의 합, 그 이상으로 이루어지듯 누가 뭐랄 것 없는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굳이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길 위에서의 각자의 시간을 서로의 시간과 조화시켜가며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 그 자체가 소중했다. 말 하지 않았지만 우리들 모두 각자의 시간 앞에서 점점 진솔해지고 있었다.

I-44주변에는 아이들이 선호하는 버거킹은 없고 맥도날드뿐이다. 미국 문화를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화가 맥도날드 문화라지만, 길 위에 여행자들에게 문화는 대안 없는 음식일 뿐이다. 그동안 맥도날드 성공의 첫 번째 요소라는 표준화는 이제 저렴하고, 성의 없는 음식이라는 의미로 대체되었다. 미국에 와서 감동적인 맥도날드를 만난 적이 없었다. 딱딱하게 냉동된 패티와 자동으로 햄버거를 만들어주는 기계의 절묘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맥도날드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음식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도날드에 대한 속단은 위험하다. 그들이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모세혈관처럼 자리잡게 된 것은 분명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맥도날드는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만은 유지한 채,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와 결합하고 있었다. 세도나의 맥도날드가 그랬고 미주리의 맥도날드도 그랬다. 지역마다 가격이나 피클 맛이 달랐다는 것은 맥너겟이 버거킹보다 비쌌다는 사실만큼이나 놀라운 발견이었다.

길이 소중한 것은 그것이 이르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꼭 내게 기쁨을 주거나 도움을 주는 이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더할 수 없이 좋다. 미주리 주로 넘어와서 2시쯤 점심을 먹기 위해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4인용인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2인용 테이블이 대부분인 매장 안은 붐볐다. 1인용인 탁자에 홀로 앉아서 햄버거를 드시는 연세 지긋한 노인분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주문을 하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처럼 등이 굽은 할머니가 우리 앞에서 주문을 하고 계셨다. 워낙 작은 소리여서 잘 알아듣지 못하자 몇 번씩 같은 과정이 되풀이 되었다. 그러자 뒤에서 한 청년이 나타나서 자기가 직접 주문을 받았다.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가면서, 할머니가 음식을 선택할 때마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찬사까지 보내면서 말이다. 주문을 마친 할머니가 앉지 않고 서서 기다리자 이내 할머니의 음식을 들고 나와서 환한 미소와 함께 배웅까지 했다. 우리 어느 시골 음식점에서 동네 어른을 모시는 이야기가 아니라 표준화와 효율성을 전면에 내세운 미국의 맥도날드에서 벌어진 일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통통한 체형에 촌스러운 금테 안경을 쓴 그 청년은 우리의 주문과정에서도 똑같은 미소와 친절을 보여주었다. 내가 주문받는 직원의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하자 또 어디선가 환한 미소와 함께 나타나서 직접 주문을 받으며, 할머니의 주문에 보냈던 찬사보다 더 강한 찬사를 보내주었다. 효진이의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러 가서, 남은 음식을 싸갈 종이백을 달라는 말을 다른 종업원이 못 알아듣자 번개 같이 뛰어나와 자신이 직접 챙겨주기까지 했다. 나오면서 다 먹은 것들을 휴지통에 넣고 있는데, 조금 양이 많아서 내가 더디자 또 어디선가 나타나서 도와주었다. 마치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의 홍반장 같은 캐릭터를 미주리에서 만난 것이다. 그것은 단지 판매를 위한 친절이 아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미국인들의 자동화된 미소나 입에 발린 친절이 아니라 진짜 순수한 친절이었다.

그의 친절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은 나만은 아니었나보다. 아내와 아이들도 그의 친절에 대해서 차에 오르고 나서도 한참동안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은 단지 기능적인 숙련도나 속도만을 의미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즐기고,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만난 맥도날드의 그 청년은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 모두의 오후가 내내 즐거웠으니 말이다.

효진이의 여행 일기

사진을 정리하며 마신 맥주(). 맥주는 언제나 옳다.

세인트루이스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여행일기와 자료를 정리하는 사이 아내와 빨래를 했다. 딱히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빨래는 계속 나온다. 한 여름의 여정이라 빨래는 피할 수 없었고, 짐을 줄이겠다고 겉옷과 속옷의 개수도 빨래를 전제로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그날 빨래는 그날그날 빨았다. 문제는 빨래를 하는 것보다 빨래를 말리는 일이었다. 아내가 욕실에서 손빨래를 해서 주면 내가 있는 힘껏 빨래를 짜고, 펴서 널었다. 한 도시에서 이틀 정도만 머물러도 숙소에서 말리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채 마르지도 않은 빨래를 걷어서 차 안에 널어야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빨래를 말리는 차가 우리 차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캠핑카나 트레일러 창으로 보이는 그들의 빨래를 보며 우리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번 횡단여행 내내 빨래와 더불어 다녀야 할 듯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내일 가야할 곳을 정리하고 그곳의 주소와 그곳들 사이의 거리를 다시 한 번 체크했다. 떠날 때 가지고 온 생수 한 박스가 바닥이 났다. 날이 더운 탓도 있었지만 컵라면도 물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숙소 근처에 대형 편의점이 있어서 물을 사러 갔는데, 아주 매력적인 가격의 맥주가 보였다. Hamms라는 맥주였는데 3캔에 1.59달러였다. 처음 보는 맥주였는데, 맥주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맥주가 지닌 그 시원한 목 넘김이 필요했다. 사진을 정리하며 두 캔을 마셨더니 마음이 한결 넉넉해졌다.

미국은 맥주가 싸고 많다. 코스트코에서 24병 한 박스가 종류에 따라서 19-22달러 정도 하니 병당 1달러가 안 된다. 처음에는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등을 마시다가 동서가 출장 오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져온 사무엘 아담스에 감동해서 그것을 마시다, 결국 블루문을 마셨다. 냉장고에 차게 해두었다가 아내와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마시는 맥주는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가 출발할 때 집에 있는 블루문 6병을 차에 싣는 것을 깨진다고 내려놓고 나서는 첫날부터 뼈저리게 후회했었다. 그리고 이레 만에 그 차가운 목 넘김을 만난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맥주에 감동했다. 맛보다는 맥주라는 이름, 그 차가운 목 넘김에 흐뭇해졌다. 세인트루이스에서도 맥주는 옳다.

 

  1. ‘명백한 운명’은 1845년 저널리스트였던 존 오설리번(John O'Sullivan)이 처음 주장했고, 제임스 녹스 포크 대통령에 의해 미국 영토 확장의 논리로 재천명되었다. ‘명맥한 운명’이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인종적 우월성을 지닌 앵글로색슨의 확장은 신이 부영한 명백한 운명이라는 영토 확장의 논리다.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오리건의 병합 과정에서 영토 확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로 사용되며, 이후 인종차별 문제까지 확장되어 활용된다. [본문으로]
  2. 숱한 파리 조약이 있지만, 이 파리조약은 1763년 7년 전쟁의 결과로 영국‧프랑스‧스페인이 체결한 조약을 말한다. 이 조약으로 인해 프랑스는 미시시피 강 동쪽의 루이지애나를 영국, 서쪽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게 넘기고 북아메리카에서 영토를 잃는다. 그 대신 스페인은 영국에게 플로리다를 넘긴다. 식민지 전쟁에서 프랑스의 몰락을 가져오는 조약이다. [본문으로]
  3. 1700년대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을 중심으로 한 식민주의자들은 인디언을 몰아내기 위하여 ‘머리가죽 상금’, 즉 원주민의 머리 가죽을 벗겨오는 사람들에게 상금을 지급한다. 1703년에는 개당 12파운드, 1722년에는 개당 100파운드까지 폭등했었고, 벤저민 프랭클린조차 1763년 인디언 머리 가죽 상금안을 승인해달라고 의회에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고 한다.(케네스 데이비스, 앞의 책, p.96) [본문으로]
  4. 미국의 총기문화의 악명은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다. 그 심각성은 이라크전에서 미군 4,500명이 사망한 같은 기간 동안 미국 내에서 총기사고로 희생된 사람 수가 170,000명인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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