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이 언제나 옳은 이유

731일 산타페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오늘은 이동하지 않고 산타페에 하루 더 머물렀다. 산타페에 대한 정보는 이미 떠나기 전부터 차고 넘쳤다. 어젯밤에 오늘 움직일 동선을 구글 지도로 확인을 해두었기 때문에 그대로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다만, 사만다가 심통을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긴 심통을 부린다면 예상했던 길 밖의 길을 만날 테니 그것도 크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산타페 Comfort Inn 간판. 실내풀장과 맛있고 따듯한 아침 그리고 와이파이 무료 제공. 다만 질은 보장하지 못한다.

숙소(Comport Inn)에서는 아침을 제공해줬다. 인터넷 예약 사이트에는 블랙퍼스트 뷔페(Breakfast Buffet)라고 적혀 있었고, 입구의 간판에 커다랗게 ‘Delicious Hot Breakfast’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콘티넨탈 블랙퍼스트(Continental Breakfast)로 제공한다던 몬트레이의 숙소에서는 코스트코에서 파는 머핀을 4등분한 것이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비닐봉지에 담긴 빵을 커피가 전부였다. 콘티넨탈 블랙퍼스트가 원래 점심때까지 허기를 달래기 위한 간단한 빵과 음료라지만, 코스트코 머핀 4등분이나 비닐봉지 빵은 조금 심했다. 덕분에 이제는 숙소를 예약하기 전에 반드시 블랙퍼스트 뷔페나 아메리칸 블랙퍼스트(American Breakfast)[각주:1]라고 표시 된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옐로우스톤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제공해주었다. 숙소에서는 별도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사의 양과 질 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웠다. 계산대에서 식사티켓을 냈더니, 식사는 무료인데 1인당 46센트의 세금과 팁 2달러는 내야 한다고 했다. 12달러 정도의 식사는 무료로 제공받고 세금과 팁은 부담해야 한다는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사실 진짜 웃지 못 할 상황은 주문과정에서 있었다. “How would you like your eggs?”라고 묻는 웨이트리스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Well done!”이라고 답한 것이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있었으련만 그 웨이트리스는 정확한 답이 나올 때까지 같은 질문만 계속했다. 마치 정답을 맞힐 때까지 절대 주문을 끝낼 수 없다는 듯이. 결국 거꾸로 물어서 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언제 미국 식당에서 계란 요리를 먹어봤어야지 'Sunny side up!', 'Over easy!', ‘Over hard!’란 말을 알 것 아닌가? 어쨌든 덕분에 하나 배우기는 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산타페 숙소의 블랙퍼스트 뷔페는 자못 진지했다. 토스트, 베이글, 와플, 삶은 계란, 해시 브라운 포테이토(hash brown potatoes), 에그 스크럼블, 두 종류의 주스, 두 종류의 커피, 네 가지 시리얼, 바나나, 사과, 오렌지, 요구르트에 대기하는 직원까지 있었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아침식사다운 식사라서 먹으면서 힘이 났다. 그런데 6시부터 9시까지로 식사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8시 무렵 사람들이 몰려서 식당에 자리가 부족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들 음식접시를 들고 나와서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도 먹고, 주차장에 나가서 먹으면서도 웃고 떠들며 아침을 즐긴다는 점이다. 마치 우리에게 어디서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아침을 먹는데 입이 짧은 효진이가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내와 내가 이것저것 가져다주면서 그것이 얼마나 몸에 좋고 맛있는 것인지를 설명하며 먹이려 해도 제 입에 맞지 않으면 먹으려 들지 않았다. 음식은 체험인데, 체험을 해야 좀 더 다양한 것을 먹어볼 수 있는데, 효진이의 입맛은 아주 소극적이다. 제가 좋아하는 것만 먹는 것도 걱정이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음식체험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음식의 즐거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할까봐 걱정이었다. 효진이는 어려서 심하게 편식을 하던 나를 닮은 모양이었다. 편식 때문에 할머니와 어머니 속을 많이도 썩여드렸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효진에게서 돌려받고 있는 것이다.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 전경(), 인디언 예술문화 박물관 전경(),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 입구()

배불리 먹고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담아서 사만다의 지시에 따라 박물관으로 갔다. 산타페 외곽으로 벗어나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간 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운타운과 가까운 거리였다. 어도비 양식으로 멋스럽게 만들어진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Museum of International Folk Art)과 인디언 예술문화 박물관(Museum of Indian Arts & Culture)은 같은 공간에 다른 건물로 붙어 있었다. 박물관 건물은 어도비 양식의 탁월한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Portable Altars를 가지고 다니는 볼리비아인()Portable Altars의 모습()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 입장권은 인디언 예술문화 박물관을 포함해서 어른만 15달러(하나만 본다면 9달러)이고 16세 미만은 무료였다. 박물관이 가치 있는 문화유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거나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세워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사설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공자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어린 학생들에게 입장료를 또 받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자주 박물관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산타페를 비롯한 미국의 몇몇 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박물관 무료입장은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민속공예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100개 이상 국가의 디오라마(diorama)[각주:2]와 민속예술품을 135,000점 이상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에서는 안데스 민속예술(Folk Art of the Andes)’생존의 예술(The Arts Of Survival)’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안데스 민속예술전시는 가톨릭과 결합된 민속예술이 대부분이었다. 안데스 문명은 남미의 3대 문명이라고 하는 잉카문명, 아스텍문명, 마야문명 중의 하나인 잉카문명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의 페루, 볼리비아 등의 기반이 되었다. 안데스 문명은 16세기 스페인의 침공으로 아주 철저히 붕괴되고 말살된다. 그러한 문명의 붕괴와 말살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Hughes Galeano)불의 기억에서 말하고 있듯이 기억의 강탈을 낳는다.

 

스페인 군대와 원주민(), 토착신앙과 결합한 예수상(), 해방신학과 결합된 가톨릭().

식민지 건설이라는 세속적인 목적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는 종교적 사명이 결합된 스페인의 폭력적인 문명 말살정책은 철저하게 원주민들의 기억을 유린했다. 그 이후 300년의 통치 기간 동안 가톨릭은 잉카문명의 토착신앙과 결합되어, 민속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신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삶을 유린했던 지배자로부터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투쟁함으로써 정치적 독립은 얻을 수 있었지만, ‘기억의 강탈로 인하여 끝내 언어와 종교는 돌려놓지 못했다. 더구나 독립 이후에도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짐으로써 그들의 종교에 대한 의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안데스 민속예술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신크레티즘(syncretism)[각주:3]과 관련된 성물들이었고, 그것의 변형된 문화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정복자의 종교가 수탈과 강압의 역사를 강요하고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지워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현실의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내면화한 것이다.

따라서 안데스인들의 가톨릭의 내면화 과정에 대한 비판은 유보되어야 한다. 그러한 비판 이전에 그들이 견디고 건너야 했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공동체적 이해와 성찰을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 가치중립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종교를 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왜곡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들의 현실에서는 최적화된 방식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좀 더 냉철하게 판단하고 고민해야 할 것은 그들이 그러한 종교에 의지해서 견뎌야 했던, 아니 견디고 있는 침략과 수탈, 부조리와 불평등의 현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이 수반되지 않는 비판과 성찰은 잉카문명과 종교에 대한 소재주의나 이국취미(exoticism)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왜곡이거나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다.

 

The Arts Of Survival 기부 홍보 전단(), Support 홍보 팔찌(), Vision of January 12th, 2011()

생존의 예술(The Arts Of Survival)’은 재난지대에서 민속예술로 표현된 작품들을 전시한 것이었다. 인도네시아(화산폭발), 파키스탄(홍수), 아이티(지진), 멕시코만(허리케인)의 재난의 참상을 소개하고, 그것을 민속예술로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재난지역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었다. 재난과 시련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표현된 전시물들은 소박하지만 절박하고, 절박하지만 과장하지 않는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형태의 작품들은 재난을 과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민속예술의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다. 아이티의 지진과 관련된 작품으로 ‘Vision of January 12th, 2011’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이것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마스크 문화와 상관된 것이었다. ‘안데스 민속예술전시에서 만났던 샤먼들의 마스크나 신들의 마스크와 기본적인 정조를 같이하고 있었다. , , 대지, 바람의 재난으로 나누어 재난이 어느 특정 지역만의 불행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것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도 인상적인 시도였다.

안데스 보부상()Noisemaker(). 팔 수 있는 것을 지닐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다니며 팔았을 보부상의 모습과 자신들의 생활환경의 특성을 반영한 악기를 개발한 그들의 모습에서 안데스의 얼굴을 본다.

목숨은 기어코 아름다운 것이어서 그것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남루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살아있음을 표현한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표현을 통하여 그 상황을 견디고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야 할 곳은 온전히 부서져 버리고, 주검은 일상으로 널려있는 재난의 현장에서 그 슬픔과 절망을 표현함으로써 넘어서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는 결연하고 숙연한 것이었다. 온몸 가득 상품을 매달고 안데스의 곳곳을 누볐을 보부상에게서 피로와 힘겨움 대신 유쾌하고 환한 웃음을 보고자했던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은 노력이었으리라.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의 압권은 세계 각국의 민속문화를 구현한 디오라마(diorama) 전시였다. 각국의 생활문화를 정교하게 축소하여 재현한 디오라마에는 만든 이의 소박한 유머가 곳곳에 녹아 있었다. 지배계층의 화려한 고급예술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만나는 생활문화를 진솔하게 재현함으로써 보면서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 전시된 디오라마는 배경을 정교하게 축소해놓고 그 안에 각기 다른 다수의 인물들을 꼼꼼하게 제 각각의 표정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나무, 점토 등 주변의 재료를 활용하여 제작한 디오라마는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삶의 풍부한 표정들을 진솔하게 담아낸 것들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figure)를 수집하는 내게 이곳의 디오라마는 신선했고, 그만큼 매혹적이었다. 한 작품 안에 수십 명의 인물들이 각기 다른 복색과 표정으로 배경과 어우러진 모습은 플라스틱 피규어로는 구현할 수 없는 유일함과 진솔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우장(), 시장(), 제단()을 표현한 디오라마. 생활공간의 구현과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표정이 백미인 작품들

디오라마가 구현해 놓은 세계 각국의 문화는 전시장을 이어가며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전시장 벽면은 물론 중앙 홀에도 앞뒤에서 관람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 있었다. 대부분의 디오라마는 스페인 문화와 원주민 문화가 어우러진 뉴멕시코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그 외에 유럽, 중국,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문화가 배경이 된 디오라마도 있었지만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다양한 국가와 숱한 인종, 그만큼의 다문화가 뒤섞인 미국에서 한국 것을 찾는 것이 편협한 국수주의적 관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좀 더 객관적으로 본다면, 세계 속에서 우리문화의 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문화의 수준이나 질적 가치와는 무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국내 언론에서는 K-POP을 중심으로 한 한류로 미국 전체가 떠들썩한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아직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 음악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즐길만한 음악이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라거나 정부가 나서서 국가브랜드를 홍보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물론 정부가 거시적 관점에서 국가브랜드를 체계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사회문화경제적으로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좀 더 주체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거나 그들의 평가에 우리를 꿰어 맞추려는 안타까운 인정투쟁의 몸부림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각주:4]

만물을 창조하는 여성의 현빈(玄牝, ), 풍요를 기원하며 제작된 교미하는 소(이상은 인디언 예술문화 박물관 소장, ), 인디언 수난사를 그린 그림(Cody Historical Museum 소장, ) 

인디언 예술문화 박물관은 국제 민속예술 박물관과 정원을 공유하고 있었다. 인디언 예술문화 박물관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박물관이다. 그런데 인디언의 예술과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원시적 거주지나 도자기 정도만을 소개하고 있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출산과 양육 등과 상관된 여성적 이미지[각주:5]의 것들이었다. 그들의 예술과 문화가 성립될 수 있었던 생활문화나 그것이 누구에 의해, 왜 파괴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무엇인지 등의 맥락이 온전히 누락되어 있었다. 현실과 역사의 맥락이 누락된 유물은 그저 소박한 토기와 조악한 세트에 불과해 보였다. 옐로우스톤 여행에서 들렸던 코디 역사박물관’(Cody Historical Museum)에서 인디언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그들의 수난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Here, Now and Always’라는 전시테마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였다.

박물관을 나와서 캐니언 로드(Canyon Road)를 찾아갔다. 캐니언 로드에 들어서면서 나는 내심 주차가 걱정스러웠다. 길의 폭으로 보나 주차금지 표지로 보나 노상 주차가 어려워 보였고, 갤러리는 독립된 주차장을 갖기에는 협소해보였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일요일이라서 이면도로에는 차를 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얼바인에서 견인 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유료주차장을 찾아서 주차를 했다.[각주:6]

캐니언로드 전경

유료임에도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심한 우리는 주차장에 붙은 안내문 따라서 In Art Gallery에 찾아가 5달러를 내고 확인티켓을 받아 대쉬보드에 올려놓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주차비를 내면서 이것저것 묻다보니 어느새 주인은 자신의 갤러리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안내로 In Art Gallery부터 본격적인 갤러리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갤러리 앞마다 놓여 있는 의자들. 앉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풍경이다.

캐니언 로드가 산 미구엘 교회(Chapel of San Miguel)가 있는 드 베이거스(De Vagas)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진 거리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도로만 가본 사람들의 방식이다. 캐니언 로드는 어도비 양식으로 지어진 갤러리들이 길가에 늘어선 풍경 그 자체가 이미 갤러리인 거리다. 아니다, 이것도 지나치게 문자적인 표현이다. 캐니언 로드는 걷기를 권하는, 걸을 수밖에 없는, 걸으며 즐거워지는 길이었다.

캐니언 로드를 만들고 있는 어도비 양식의 갤러리들

 캐니언 로드는 아름다운 속도를 지녔다. 차로는 느낄 수 없는 걷기의 속도를 캐니언 로드가 만들어 내고 있었다. 1차선 이상이 될 것 같지 않은 도로 곁으로 길과 함께 넉넉해졌을 나무들은 그늘을 드리운 채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협소한 도로에는 많은 차들이 오갔지만 모두 걷는 사람의 속도와 방향에 따라 멈추거나 달렸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빼앗겨 사진 촬영을 위해 차도로 내려서면 달려오던 모든 차들이 조용히 멈추어 주었고, 미안하다는 손 인사에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조용한 미소가 평화로웠다.

캐니언 로드는 길이 만든 길이 아니라 갤러리가 만든 길이었다. 어도비 양식의 기본을 유지하면서 작품의 성격에 맞는 개성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갤러리들이 길 자체가 되어, 캐니언 로드를 만들었다. 거의 모든 갤러리들은 커다란 나무나 아름다운 정원과 어우러져 있었고, 입구에는 예외 없이 밖으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쉬라고 내준 것인지,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내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단한 일상에서 어딘가 앉을 곳이 있고, 누군가 앉게 할 수 있는 배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유롭고 푸근한 풍경이었다.

캐니언 로드에서 만나는 우편함들. 열어보면 문득 나를 기다리는 러브레터라도 들었음직한 풍경이다.

갤러리의 입구나 건물을 따라가다 보면 건물마다 얼굴처럼 소박한 우편함 하나씩을 내밀고 있었다. 대부분 공과금이나 카드요금 청구서가 날아올 우편함이겠지만, 마치 누군가의 따듯한 러브레터가 들어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이와이 순지(岩井俊二)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 1995)가 애틋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거나, 중학교 시절 첫사랑을 성인이 되어 그가 죽고 나서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러브레터>의 애틋함은 박인환의 시처럼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때문이 아닐까? 그토록 애틋했던 사랑은 갔지만 옛날은 오롯이 쓸쓸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안타까움, 그것을 기억하는 나는 그 옛날의 내가 아니라는 처연함. 곤 사토시(今敏)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Millennium Actress, 2001)의 쓸쓸함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보던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 우편함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어느 갤러리 입구, Jesus Said Buy Fork Art 라는 문구가 재미있다.

갤러리마다 주인들은 작가와 작품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때론 차가운 음료를 내주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갤러리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진 촬영을 허용했고, 촬영을 원하지 않는 곳에서는 작품을 촬영한 포스트카드를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서 그저 바라만 보는 작품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보고, 사진도 찍고, 때론 묻기도 하는 살아 있는 갤러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니언 로드의 모든 갤러리들은 작품을 팔기 위한 곳이라는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대부분 고급 주택에서 우아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이라면 모두 뉴욕이나 산타페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을 꿈꾼다고 한다. 이 거리를 걸어보니 그들의 소망에 공감할 수 있었다.

산 미구엘 교회.

캐니언 로드에서 산 미구엘 교회(Chapel of San Miguel)까지는 아주 가까웠다. 교회는 오래된 탓인지 공사가 한창이어서 다소 혼잡스러웠다. 산 미구엘 교회는 1692년에 세워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데, 종교적 충돌로 인하여 원주민에 의해 훼손되었다가 1710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처음 들어온 스페인사람들은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권하지 않았었는데, 산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치는 원주민들의 종교 행위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면서 충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교적 충돌 이전에 스페인인들과 원주민들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종교적 충돌로 인하여 극한 갈등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산 미구엘 교회가 파괴되었던 것이다. 이후 스페인이 폭력적으로 원주민을 제압함으로써 산 미구엘 교회는 재건될 수 있었다. 어도비 양식으로 소박하게 지어진 산 미구엘 교회는 시골 예배당처럼 정겨워 보였지만 그 내력을 살펴보면 원주민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장소였다. 모두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데에 방점을 찍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세월동안 그곳에서 어떤 일이 왜 있어났는지 아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인식이 전제되어야지만 가장 오래되었다는 수사(修辭)의 진정한 의미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집전경(), 산타페 역사재단에서 보존가치를 증명한 명패(), 가장 오래된 집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장난스러운 꼬마()

산 미구엘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The Oldest House)이 있다. 1740-1767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은 밖에서 보기에는 단지 조금 낡은 평범한 집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산타페 역사재단 명의로 이 건물이 보존 가치가 있는 가장 오래된 집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예전에는 출입구로 썼을법한 문이 매워진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니 이 집의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1인당 1달러를 기부해야만 한단다. 이 돈은 올드 성 미카엘 고등학교(Old St. Michaels High School)에 기부된다고 한다. 도네이션을 하고 내부로 들어가 보니 아주 작은 공간에 그 시절의 살림살이가 소박하게 놓여 있었다. 몽골에 갔을 때, 게르(Ger) 안의 살림살이를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사람 사는 데에는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듯 보였다. 정면으로는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우리가 밖을 내다보자 밖에 있던 귀여운 꼬마가 안을 들여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산타페를 잠시 들여다보는 일도 꼬마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어퍼 크러스트 피자집의 피자 사이즈(), 꼭 라지 사이즈를 먹어야 한다고 우겨서 시킨 피자(), 그것이 많은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가족들의 피자 접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장 오래된 집과 거의 붙어있는 어퍼 크러스트 피자(Upper Crust Pizza)집으로 갔다. 산타페의 일반적인 음식점처럼 밖에도 테이블을 내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했는데, 피자 굽는 냄새에 끌려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상류층’(Upper Crust)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소박한 실내의 저렴한 세미 셀프서비스 피자집이었다. 미국에 처음 와서 피자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코스트코에서 만들어주는 피자와 피자헛 피자를 사준 적이 있었는데, 두 번 모두 지독히 짜서 피자는 그 이후로 먹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집 피자는 짜지 않고 넉넉한 양과 다양한 토핑으로 아주 풍부한 맛을 보여주었다. 점심이 늦은 탓에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눈치 빠른 아내가 사무엘 아담스를 한 잔 시켜주었다. 깊은 맛의 맥주 한 잔과 풍부한 피자의 맛이 어우러져 더할 수 없이 행복해지는 오후였다.

피자를 먹고 아주 행복한 기분이 되어 다시 다운타운 쪽으로 갔다. 어제 보지 못한 기적의 계단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들르기 전에 나는 먼저 카메라 상점에 들러서 광각렌즈에 끼워져 있는 편광필터를 빼야만 했다. 아이들이 카메라 상점에서 엽서를 고르고 있는 동안 잘생긴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을 하니 그는 웃으면서 아주 간단하게 편광필터를 빼주었다. 편광필터는 끼는 부분이 얇아서 잘 빠지지 않으니 주의해서 빼야 한다고 빼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그는 일러주었다. 그 직원의 친절한 서비스에 고마워서 그곳에서 예정에 없던 필터 케이스를 하나 구입했다. 결국 기적의 계단은 시간이 지나서 보지 못했다.

횡단 여행을 준비하면서 풍경을 찍겠다고 광각렌즈를 구입했다. 지금 쓰고 있는 캐논 40D 바디는 캐논 350D를 쓰던 내게 은사님께서 쓰시던 것을 주신 것이다. 탐론 28-300m 표준줌렌즈로는 풍경을 담는데, 다소 아쉬움이 있어서 아내를 졸라 횡단을 시작하기 전에 광각렌즈인 탐론 11-18m를 구입했다. 마침 아마존에서 편광필터까지 저렴한 패키지로 제공하여 그것을 구입하고, 반가운 마음에 덜컥 끼우고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사진이 자꾸 어둡게 나왔다. 운전을 하면서 빠르게 이동을 하였기 때문에 사진이 어둡게 나오는 것은 숙소에서 노트북으로 보고나서 알게 되었다. 결국 편광필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고 빼려고 했으나 이게 생각보다 잘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 봐둔 카메라 상점으로 와서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사실 편광필터도 필터였지만 조리개 값이나 셔터 스피드를 제대로 조정하지 않았던 데 더 큰 원인이 있었다. 새로운 렌즈와 필터에 마음을 빼앗겨 가장 기본적으로 돌아보아야할 것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생각을 카메라 샵을 나오면서 했다는 것이다. 늘 외양간은 소를 잃고 나서 고치나 보다.

시간을 보니 520분이었다. 산타페 인근에 있다는 피코스 국립역사공원(Pecos National Historical Park)를 둘러볼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에 급하게 그곳으로 달렸다. 사만다가 한번 심통을 부려서 헤매고, 다시 허겁지겁 찾아갔는데 6시다. 혹시나 했는데 퇴근하는 직원들이 오늘은 문을 닫았으니 내일 오란다. 여행자에게 내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역시 과한 욕심이었나 보다. 그렇지만 덕분에 산타페의 석양을 온전히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은 산타페처럼 시원했다.

  1. 일반적으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의 경우에는 계절과일, 주스류, 시리얼, 계란요리, 음료, 케이크류, 빵 종류, 햄, 베이컨, 소시지 등이 나온다. 콘티넨탈 블랙퍼스트라고 적힌 곳은 대부분 독립적인 식당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 빵과 커피 정도를 제공할 뿐이다. [본문으로]
  2. 일정한 배경 위에 축소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근대에 귀족들이 역사적인 전투를 재현하기 위하여 축소모형을 만들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국제 민속 예술 박물관의 디오라마는 규모나 종류는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민속 예술작품으로 탁월하다. [본문으로]
  3. 종교적 융합을 가리키는 말로서, 침략과 정복 혹은 문화가 교류를 통하여 상이한 종교가 상호 융합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토착종교가 있는 곳에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서 상호 융합하는 과정에서 상이한 두 종교는 위계화되거나 결합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안데스 지역의 경우, 잉카문명의 토착신앙을 가톨릭은 부정하면서 종교적 박해를 가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원주민들에게 정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적 요소가 가톨릭과 결합되는 독특한 양상을 드러내기 때문에 신크레티즘으로 보아야 한다. [본문으로]
  4. 가령 대학평가만 하더라도 해외 언론사나 해외 대학에서 하는 평가는 참고 사항일 뿐이지, 우리가 그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 그들의 평가 기준에 맞추어 대학을 재편한다는 것은 얼마나 웃지 못 할 이야기인가? 오히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싶다면 그들과는 차별화된 평가기준으로 우리가 그들을 평가하는 쪽이 승산이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5. 아이를 낳고 있는 여성의 성기를 과장하여 표현한 것은 󰡔도덕경󰡕에서 표현한 현빈(玄牝)과 같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도덕경󰡕에서 만물의 근원으로 꼽는 현빈의 구체화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현빈을 형상화하여 학교의 발전을 기원했던 한양대학교 50주년 조형물에서도 구현된 바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본문으로]
  6. UCI에서는 한 달에 55달러를 내면 학교에 주차를 할 수 있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고 차를 집에 놔두고, 연구실로 나오면 오후에 아이들 픽업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래야 5시까지 온전히 연구실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내가 아프고 나도 몸이 좋지 않아서 차를 학교에 가져간 날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하듯이 UCI 앞 상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차가 없었다. 차를 찾고 있는데 멕시칸으로 보이는 보안요원이 다가와 내 차가 도난을 당했단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 친구 영어가 많이 서툴렀다. 재차 물으니 2시간 이상 주차가 되어 있어서 견인해갔다고 했다. 결국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견인사무소까지 가서 160달러의 벌금을 물고 차를 찾아야 했다. 차를 찾으며 벌금이 너무 비싸다고 하니까 다른 도시에서는 300달러가 넘는단다. 다른 도시 벌금이 300달러가 넘든 3000달러가 넘든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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