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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실의 닻 혹은 덫

제프 르미어, 수중 용접공미메시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가지고 있는 것은 잃은 것의 맞짝이고, 기억하는 것은 잊은 것의 맞짝이다. 잃은 것은 찾으려 하고 잊은 것은 기억하려 애를 쓰지만,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잃은 것을 찾으려하고 잊은 것을 기억해내려 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과 기억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의미가 있는 행위다. 잃은 것과 잊은 것을 찾고 상기한다한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제프 르미어의 수중 용접공은 정체모를 환상이 소환하는 잃어버린/잊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잃어버린/잊어버린 것이 소환한 것은 단지 아버지나 회중시계에 대한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것들에 집착함으로써 외면하려 했던 지금 이곳의 삶이다. 시추선에서 수중 용접공으로 일하는 잭 조지프는 오롯이 혼자일 수밖에 없는 해저에서 정체모를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해저에 있는 잭에게는 너무도 절박하고 생생했던 순간 지상에서는 사고로 인지된다. 정체모를 소리가 소환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의 죽음과 사라진 회중시계에 관한 것이었다.

바다 속 보물을 찾으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이라며 현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수중 탐사에만 몰두 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만삭인 아내를 홀로 두고 맹목적으로 일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집착하는 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보물과 일에 대한 몰두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이곳의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에 가깝다.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부담감, 그것은 단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책임감에 관한 것이다. 가장이든 아버지든 간에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했던 욕망을 괄호 속에 묶고 한층 성숙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의 성숙도나 책임감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아버지나 곧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잭의 현실에서 조금 비껴난 행동들은 일종의 방어기제와 같다.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됨으로서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삶을 지탱해주고 준거가 되어야 한다는 묵직한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망이 스스로 합리화시킬 수 있는 명분을 보물탐사와 수중용접에서 찾은 것이다. 잭이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갑자기 해저에서 아버지의 기억을 소환한 까닭이다.

잭은 수중의 절대 고독 속에서 일종의 환청과 환각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과 그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잭은 아버지의 죽음과 회중시계의 연관 고리를 찾고, 아버지 죽음의 또 다른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울러 그것은 잭이 몰두하던 해저, 잠수, , 과거 등으로부터 지금 이곳의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다. 바로 그 순간이 텍스트 전체에 걸쳐 아버지와 변주된 데칼코마니처럼 유사성을 보이던 잭이 아버지와 완전히 분리되는 순간이며 동시에 아버지와 함께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분리를 통해 성장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분리는 지금 이곳의 삶에 대한 직시이며, 보다 성숙한 자아로서 현실 수납을 의미한다.

수중 용접공에서는 집/시추선, 육지/수중, 현재/과거의 분리가 선명하다. 전자가 현실의 질서라면 후자는 아버지의 질서로 대변되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며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둔 잭 자신만의 세계이다. 아버지는 보물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현실과 거리를 두었지만 잭은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잭의 그런 모습은 현실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와 잭이 찾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외면하려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만 잭의 경우는 그러한 외면의 동기 저변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이 죄책감이 있었다는 것은 작품 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아버지는 끝까지 보물찾기를 이야기하지만 그가 우선 찾아야 했던 것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보물인 아들 잭이 좋아하는 회중시계였다는 사실이 절묘한 메타포를 만들어낸다. 아버지의 보물찾기가 침몰한 스페인함선의 금화들이 아니라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단순화한다면 지극히 소박한 서사에 머물 뿐이겠지만, 그것을 아들 잭의 출산 즈음에 환상으로 연결함으로써 서사의 울림을 다양화한다. 자칫 잘못 읽으면 이 작품은 집/시추선, 육지/수중, 현재/과거의 이분적인 구도에서 전자만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버지와 아들 잭의 데칼코마니 구도와 잭이 체험하는 환상의 내용을 연결해보면 양자가 비로소 잭의 온전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치 닻(anchor)이 배가 떠내려가지 않고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덫(snare)이 되기도 한다는 삶의 이율배반(antinomy)을 이해할 때, 그 이해 위에서 스스로 성인으로서 온전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수중 용접공을 읽으며 강도하의 큐브릭과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 떠올랐다. 강도하의 큐브릭에서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미우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자기방어기제를 잭의 회중시계에 대한 기억에서 떠올렸다면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과잉일까?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에서처럼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찾는 과정은 마치 미스터리를 풀 듯 텍스트의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극적재미를 배가시킨다.

이 작품은 작화 면에서 상당히 과감한 시도를 한다. 텍스트 전체를 하나의 작화스타일로 유지하기보다는 장면과 상황에 적합한 자유로운 작화스타일을 선택하고 있다. 이것은 장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서사 전체의 흐름을 작가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며 시도다. 거기에 대사의 많고/적음이나 완급에 맞추어 작화스타일을 선택하고 있는 점도 무척 매력적이다. 이러한 작화스타일은 텍스트 전체를 잭과 동반자적 시점으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긴장의 유지뿐만 아니라 서사에 대한 몰입에 크게 기여한다.


아버지나 아버지와 관련된 기억들이나 그것을 찾아가는 잭의 모습이 수직 구도로 구현되고 있다면 현실이나 일상은 수평구도를 선호하고 있는 것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특히 현재의 삶, 자신을 기다리는 일상을 스스로 발견하는 장면(196-197)의 연출은 백미다. 시추선을 향해 나아가는 잭을 중앙에 배치하고 Z축을 중심으로 설정하고 동시에 자신의 아이와 함께하게 될 장면을 X축으로 설정함으로써 잭의 깨달음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은 현재의 혼란스러운 잭 자신을 Y축으로 중심에 두고 과거의 아버지와 자신을 X축으로 연결하여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장면(112-113)에서 시도하여 학습하게 함으로써 그 효과를 배가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화해하고(207)를 그를 수면위로 끌고 올라오는 장면(212)은 또 얼마나 환상적인 연출인가? 회중시계와 아버지 죽음을 연결시켜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분리시킴으로써 지금 잭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만들고, 회중시계를 매개로 분리되었던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화해하게 함으로써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돌아와야 하는지를 열려주는 효과적인 연출이기 때문이다.

발문에서 데이먼 린들로프가 환상특급 운운한 것은 오히려 텍스트 리터러시에 장애가 된다. 환상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환상특급이 주는 분위기나 효과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잭의 내면심리에 집중하여 읽어가는 것이 보다 현명한 일이 될 것이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시기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아버지의 기억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는 다소 안정적인 서사구조와 보수적인 주제의식을 지향하고 있는 까닭이다.

수중 용접공을 읽는 내내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등장하는 기저귀의 메타포가 떠올랐다. 사랑은 빨래하는 어머니가 아가의 허리춤에 매어둔 기저귀처럼 보호하는 것인지 구속하는 것인지, 그것이 닻인지 덫인지? “……이 모든 게 내 잘못이었던 거야.”(188)라고 깨닫는 장면의 배경이 러스티 앵커인 것을 근거로 수중 용접공이 닻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 해석의 과잉일까? 사랑은 역시 어렵다.

<만화규장각> 2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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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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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도라에몽, 멈추지 않는 진격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서부소년 차돌이>, <마린보이>, <달려라 승리호>, <마징가 Z>, <플란다스의 개> …….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세대가 추억하는 애니메이션들이다. 이것들이 일본 작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 느꼈던 배신감은 또 얼마나 컸었던가? 그 이후 세대 역시 작품만 바뀌었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러한 체험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고 한국 애니메이션 매출도 4억 달러 세계 4위 규모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11%(22억 달러)를 점유하며 미국(66억 달러)과 함께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시장을 압도하면서 우리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첫 번째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고유의 안정적인 생태계 구조에서 발원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적은 비용으로 대중성 검증이 가능한 만화, 소설 같은 원천콘텐츠를 바탕으로 제작된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조차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을 만들 때, 원작이 없다고 투자를 거부당하자 만화 원작을 <아니메주>에 스스로 연재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을 정도다.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는 애니메이션은 대중성이 검증된 원천콘텐츠를 확보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실패의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일본의 경우 그것을 관례화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출판사, 완구회사, 방송국, 광고회사 등 애니메이션과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는 주체들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참여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을 고집한다. 제작위원회가 구성되면 애니메이션이 방송될 시간의 광고를 구입하여 원작 만화, 완구 등 관련 상품을 광고하여 수익을 거두고, 방송 이후에는 창구화를 통하여 부가 수익을 창출한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전개되면 TV용 애니메이션을 시리즈로 계속 만들고,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제작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이미 충분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성공거두고, 이를 기반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시즌별로 제작함으로써 프랜차이즈화 하여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창구화(windowing), 장르 전환(adaptation), 상품화(merchandising), 브랜드화(branding) 등을 통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One Source Multi Use 전략과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를 통하여 일본 애니메이션은 실패의 위험을 줄이고 참여 주체들 간의 협업 비즈니스 시스템 구축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고유의 생태계를 최적화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차별화된 스토리텔링 전략이다. <명탐정 코난>, <도라에몽>, <신세기 에반게리온>, <진격의 거인> 등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앞에서 언급한 안정적인 생태계의 결과물이다. 그 중심에는 스토리텔링 전략이다. One Source Multi Use를 성공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원천콘텐츠와의 연관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는 향유요소를 확보해야만 하고, 미시콘텐츠를 활성화하여 상품화가 가능해야 하며, 핵심 스토리(core story)나 공통의 서사 세계(narrative universe)를 기반으로 하는 서사 확장이 가능해야하는데 그것의 기반이자 중추가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독자층이나 소재적인 측면에서 미국 애니메이션의 틈새를 공략해서 성공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은 다분히 미국중심적인 시각의 평가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국 애니메이션과 대타성(對他性)을 견지하며 출발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틈새시장 전략이라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시장 환경, 자본, 제작 수준, 문화 등을 고려한 최적화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최적화 과정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스토리텔링 전략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활용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뱅크시스템, 집단주인공 시스템, 변신 모티브 등은 보더리스(borderless) 전략에 의해 작가군으로 영입된 추리작가들이 다양한 소재의 다층적인 스토리와 결합하여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축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선행콘텐츠를 꼼꼼하게 분석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대중적인 충성도 높은 스토리를 애니메이션 안으로 수렴함으로써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었다. 최근 쿨재팬(Cool Japan)의 첨병으로서 각광받고 있는 <요괴워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요괴워치>1) 요괴라는 전통문화를 토대로 선행콘텐츠의 철저한 분석하여 2) 마네키네코와 헬로 키티를 결합시킨 지바냥 캐릭터를 만들고, 3)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구도와 <도라에몽>의 세계관을 텍스트 안으로 수렴하면서도 4) 요괴와의 대결이나 제압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차별화 전략을 동시에 보여준다.

지금껏 우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선정성과 폭력성 그리고 왜색에 대한 경계라는 편향된 시각에서 리터러시 해왔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고 왜색 짙은 작품들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다만 그것은 스토리텔링의 극히 일부분이거나 리터러시 결과의 단편이 아닐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좀 더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향유하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들이 지닌 미덕을 벤치마킹하고 서사의 넓이와 깊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애니메이션을 자국의 산업환경에 최적화함으로써 단점을 특색으로 바꾼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분분투도 반드시 주목해야할 지점이다.

문화는 자유로운 사고와 다양성을 토대로 한 대화의 장이다. 문화할인율(cultural discount rate)이 낮은 애니메이션은 이문화(異文化) 간의 접근이 용이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전제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할 수 있고, 텍스트 간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역시 표면적/이면적으로 활성화된 장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라는 평가는 편향된 시각이거나 오해일 가능성이 높다.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의 원제는 <빅 히어로 6>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텍스트 곳곳에 드러나는 일본풍 배경과 소품들, 와사비 같은 별명뿐만 아니라 거대로봇 등의 메카닉 등을 근거로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연관을 주장하기도 한다. 샌프란쇼코(샌프란시스코+도쿄)라는 공간 설정, 일본풍의 배경과 소품들이 서사적 필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블의 원작이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와사비도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 거대로봇의 메카닉은 오히려 창의적인 요소의 비중이 더 크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창의적인 상호 수렴과정을 통해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창의적인 상호 수렴과정에서 그것을 어떻게 텍스트 안에서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활용했느냐, 얼마나 완성도 있게 재창조하고 있느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빅 히어로>의 성취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더 강한 재질, 차별적인 무기, 파괴중심의 제압 등과 같은 기존의 거대로봇 문법과 는 달리 폭신한 재질의 로봇, 고전적인 스타일의 물리적인 로켓주먹, 치유와 위로, 자기희생을 통한 문제 해결 등한 창의적인 재해석은 로봇메카닉물의 새로운 지평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구나 <빅 히어로>는 마블+디즈니+픽사의 어법이 창의적으로 결합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디즈니가 40억 달러에 마블을 인수한 것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뿐만 아니라 그 외의 5000개 캐릭터이며, 그것을 얼마나 탄력적,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맥스의 공감각적 자극과 개그씬은 물론 서사의 주요 마디마다 던지는 성찰적 질문들은 탁월했다. 베이맥스는 서사의 주요 마디마다 왜 싸움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게 진정 테디가 원하는 것일까?’와 같은 자기성찰적인 대사를 던진다. 이 성찰적 대사는 기존의 로봇 메카닉물에서는 볼 수 없는 지점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반복을 통해 히로의 성장이 견인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근력은 보수적인 생태계 구조와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에 있다. 그동안 견지해온 열광과 부정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로는 그들의 힘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자신들의 산업 환경에 최적화하기 위하여 그들이 선택하고 집중했던 전략들은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준거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징가 Z><진격의 거인>으로 바뀌는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고, 비판하고, 벤치마킹했는지 냉철하게 돌아볼 시기임에 분명하다.

2015.2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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