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폭력의 비정함과 살아내는 자의 쓸쓸함
다윈 쿡,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시리즈》, 시공사, 2014.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1. 하드보일드, 무자비한 세계를 건너는 냉혈한
하드보일드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세계에 대한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풍경을 냉혹하게 그려간다. 끝나지 않는 악몽처럼 변질된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윤리와 도덕은 배제한 채 무정부주의적인 자세로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을 신뢰하며 질주하는 안티 히어로의 폭력적인 액션으로 가득한 장르가 하드보일드가 아니던가? 이상과 미덕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고, 존경과 권위는 이미 그 중심을 잃은 자본주의의 냉혹한 메커니즘 안에서 차가운 규칙만 만들어내는 비열한 거리를 단호한 폭력으로 폭주하는 안티히어로의 매력은 매혹과 공포 사이에 있다. 너무도 크고 견고해서 감히 덤비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거대 도시 가운데를 거침없이 달리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안티히어로의 매혹이 압도적일수록 그와 적으로 만났을 때의 벗어날 수 없는 공포는 더욱 지독하기 때문이다.
하드보일드는 소설의 영역에서 추리소설의 대체재(substitute goods)로 등장하였다.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절정을 구가하던 영국의 고전적인 추리소설은 셜록 홈즈처럼 책상에 앉아서 혹은 실험실에서 논리를 만들고 현장에서 검증하며 범인을 잡았다. 김용언에 따르면 “19세기 탐정들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영향 아래 선형적인 진보와 개혁, 안정된 발전을 추구하고, ‘하나의’ 범죄가 발생시켰던 균열을 솜씨 좋게 봉합하면서 범죄자의 체포라는 안전한 해결로 마무리 지었다. 범죄자는 사적인 욕망 때문에 사회의 근간이 되는 질서를 뒤흔든 ‘나쁜 피’이며, 그들 사회에서 추방함으로써(체포 혹은 자살유도) 다시금 안정은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 1올 수 있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나 희망이 사라지고,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홀로코스트와 핵폭탄의 가공할 학살의 트라우마(Trauma)를 갖게 된 인류에게 이성과 논리로만 무장한 천재들의 말의 향연은 더 이상 재미나 현재성을 주지 못했다. 더구나 계급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선에 갇혀 우아한 매너리즘을 반복하던 고전적인 추리소설로는 더욱 심각해진 현실의 민낯과 속내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양 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와 풍요로움을 약속했던 자본주의는 더 큰 괴물이 되어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거나 일부에게만 축복을 내려주었고, 안정과 평화는 그 어떤 것에서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끔찍한 현실 속에서 윤리와 도덕 그리고 공동체에를 토대로 한 삶의 질서는 향수의 대상일 뿐 더 이상 현실이 아니었다. 누구도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옥 같은 현실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세계, 자기 몫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등장한 하드보일드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 캐릭터는 현장으로 뛰어든 탐정이거나 그들을 조롱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매력적인 범죄자였다. 범죄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라는데, 범죄자가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매혹적인 액션을 전개해가는 하드보일드 소설, 하드보일드 그래픽노블이 읽히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가 아닐까? 싸워야할 적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가 부조리하면 할수록, 그래서 싸워야할 이유가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싸우고 있는 자신이 무력하거나 그러한 저항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절망의 시대에 하드보일드는 반짝반짝 빛나곤 한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엄혹했던 1980년대 우리를 매혹시켰던 무협의 세계 역시 그렇지 않았던가? ‘지금 이곳’을 살아내야만 하는 우리에게 하드보일드 그래픽노블이 새삼 통쾌하게 읽히는 이유다.
다윈 쿡의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와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은 미국 범죄소설을 대표하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가 리처드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쓴 파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이 책의 국내 출간은 그 엄혹했던 시절의 원인을 제공했던 독재자의 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지금 이곳’에서 냉혹한 복수를 이야기하고, 거대 조직에 내상(內傷)을 입히며 그 보스를 제거한다는 점이다.
리처드 스타크의 매력적인 캐릭터 파커는 다윈 쿡뿐만 아니라 브라이언 핼겔랜드 감독의 영화 <페이백>(1999)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연속적인 장르 전환(adaptation)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리처드 스타크의 원작은 파커의 주목할 만한 캐릭터성으로 한층 풍부해진 이야기성을 가지고 있다. 빼어난 원작의 후광효과(halo effect)뿐만 아니라 다윈 쿡의 인상적인 그래픽노블에서의 성취는 독립적이고 고유한 미학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성과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파커라는 압도적인 캐릭터가 있다. 파커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 월드(trans media story world)를 구축하려는 듯, 리처드 스타크를 비롯한 여타 장르의 많은 작가나 감독들이 자기 나름대로 파커의 이야기를 생산해온 것만 보더라도 파커의 이야기성은 충분히 증명이 된다.
파커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안티히어로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세계에 대한 절망적 인식에서 출발한 단순한 악당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나름의 방식으로 대면하고 있는 캐릭터다. 세계에 대한 환멸적 인식을 파커는 특유의 압도적인 폭력과 감정을 거세한 냉혹함으로 행동한다. 그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에 이를 때까지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진솔한 방식의 폭력으로 되갚아준다. 그 과정에서 파커는 부패와 범죄, 폭력의 내용과 과정을 정교하게 구현함으로써 향유자에게 대리보상의 통쾌함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렇듯 파커가 응전하고 있는 세계는 범죄세계이며, 그와의 개인적인 원한과 이해관계로 인하여 잔혹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범죄는 항상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혼란을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기호화하고는 스펙터클 뒤로 숨고는 한다. 하드보일드 그래픽노블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스펙터클 뒤로 숨어있는 사회적․정치적 혼란의 메타포를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그 메타포를 그래픽노블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작가 고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다윈 쿡은 성공적이다. 더할 수 없는 하드보일드의 거칠고 냉혹한 감성을 굵고 거친 선과 연출로 표현함으로써 원작과는 또 다른 미학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커는 대부분 대사를 철저하게 절제하며 칸 안의 연출이나 칸과 칸 사이의 속도로 차별화된 미학을 만들고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커의 남성적인 대사나 그와 어우러지는 장면 연출 그리고 전개 속도의 조화를 구성하는 ‘드러내지 않으며 표현하려는’작가 고유의 전략으로 압도적이다.
2.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는 파커시리즈의 시작으로 냉혹한 복수담이다. 탁월한 능력의 무법자 파커는 치밀하게 계획하고 절제하며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발각되거나 구속되지 않는다. 우연히 말 레스닉이 제안한 불법무기거래 현장을 터는 데 성공하고 돈을 나누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다. 파커의 몫까지 탐내는 말의 계략으로 파커의 아내 린은 파커를 배신하고 그에게 총격을 가한다. 나머지 일당도 모두 제거한 말은 린을 뉴욕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한다. 하지만 파커를 죽인 죄책감에 불면에 시달리며 말에게 린이 마음을 열지 않자 그녀를 두고 말은 떠난다. 말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린을 찾은 파커, 린은 거절하는 파커의 태도와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살을 택한다. 생활비 배달을 온 악당을 추궁하고 그의 연결고리를 찾아 마침내 말의 위치를 알아낸 파커는 그를 죽이고,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조직 아웃핏을 찾아간다. 중간보스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돈을 찾아 나오지만 조직 아웃핏으로부터 쫓기게 된 파커는 성형을 하고 잠적할 것이라며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총 4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① 파커의 등장, 말과 얽힌 복수의 내력담(來歷談)→ ② 돌아온 파커를 눈치 챈 말의 대처, 말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그날 사건의 전모 → ③ 파커가 말을 찾는 과정의 이야기 → ④ 말을 죽이고 조직 아웃핏을 자극하여 돈을 찾아 도주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작품의 4장의 구조는 내력담, 재구성담, 추적담, 도주담이라는 익숙한 모티브의 재구성임을 알 수 있다.
익숙한 모티브를 활용하여 거침없는 복수에 성공하는 비교적 간단한 서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없는 삶의 리듬과 전모를 알 수 없는 거대 조직 그리고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폭주하는 거대 도시 안에서 타자에 대한 관용 없는 대응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는 냉혈한 캐릭터 파커의 거침없는 행동이 만들어내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익명의 공간에서 타인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 무지와 악덕 그리고 불쾌한 악몽 같은 현실에서 스스로 안위를 확보하려는 극도의 이기심으로 가득한 세계. 그 세계의 긴장의 안에서 자신만의 순결한 목표(적어도 파커 자신에게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추구하는 무법자의 자유와 해방의 몸짓은 매혹적이다. 과도한 남성성, 자기중심적인 거친 말투,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한 어김없는 몰입, 흐트러짐 없는 계획과 성공, 차갑게 절제된 욕망과 거세된 감성, 자기 삶의 주체로 부상하려는 여성계층에 대한 일방적인 태도, 윤리나 법에 구애받지 않는 무법의 사고방식, 일방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폭력 등이 파커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은 하드보일드 장르의 주요 향유자였던 백인노동계층 남성들의 로망을 오롯이 수렴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통하여 파커의 깊은 내면의 본모습 찾아간다거나 선택의 기로에서 주저하는 모습이나 갈등을 통한 성장이나 성찰을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무법의 냉혈한은 범죄가 놓인 컨텍스트(context)와 대화하지 않기에 해결하는 즐거움은 있어도 그로인한 가치의 성취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성취 이후의 공허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곳을 떠남으로써 해결하려들뿐 자기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공허를 떨쳐내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세계에 있다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하드보일드 장르의 비정함은 단지 폭력적인 주제를 냉정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파커의 이러한 태도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절망 그리고 세계에 대한 환멸에 맞닿아있다. 따라서 파커의 일상을 지배하는 범죄→돈→휴양→범죄라는 의도된 단순성은 생각 없는 반복의 고리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환멸과 냉소의 포즈다. 그것은 허망함, 절망감, 무력감, 쓸쓸함이 어우러진 결과이며, 그보다 더 허망하고 절망적인 세계와의 의도된 거리두기의 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범죄가 놓인 컨텍스트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이나 개인과의 연관을 심도 있게 천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빠른 속도의 서사 전개,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자기 확신의 캐릭터, 그 캐릭터가 펼치는 비정하지만 파워풀한 액션이 보여주는 냉혹한 스펙터클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성공적인 시리즈물이고 그래픽노블로 전환하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원작의 아우라(Aura)를 그래픽노블로 더욱 멋지게 살려낸 다윈 쿡의 세련된 연출력이다. 파커의 등장 시퀀스는 두고두고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멋진 연출이다. 총 19쪽에 걸쳐 최소한의 대사만을 구사하며 파커라는 캐릭터의 특성과 사건으로 진입해가는 과정을 완급(緩急)과 고저(高低)를 살려가며 그려내고 있는 것은 몇 번을 다시 봐도 멋지다. 파커는 대부분 로우앵글로 잡거나 신체 일부의 클로즈업을 통해 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과 압도감을 표현하고(10-15쪽), 그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표정 변화를 통해 그의 캐릭터를 그려나간다거나(9, 11, 14,15쪽), 속도감 있게 움직이던 그가 가짜 운전면허를 마련하고서는 이제 사회로 돌아올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듯이 거울을 노려보는 장면(20쪽)의 멈춤은 압도적이다. 가짜 운전면허증으로 수표책을 발급받아 양복, 구두, 시계를 마련하고(22-24쪽), 고급 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는 모습(25쪽)의 통쾌함과 홀로 술을 마시고 병을 깨버리는 장면(26-27쪽)의 의문과 불안은 전체 서사의 발단을 빠르게 제시하면서 얻어내는 효과라는 점에서 더욱 빛나는 지점이다. 압축적인 사건 요약이나 심도 있는 심리 묘사를 빠른 서사 전개의 마디마디에 배치함으로써 전체 서사의 완급을 조절하고 흥분한 향유자가 파커의 액션뿐만 아니라 그에게 심리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해준다.(101, 121쪽)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의 매력은 냉혹한 사냥꾼으로서 파커를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필요할 때에만 폭주할 줄 아는, 폭주 이후에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적어도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래서 더욱 공포스러운 매력을 지닌 파커. 이 작품에서 그의 폭주는 복수를 위한 것이다. 배신과 상처로 터진 분노를 절제하며 완수한 복수의 끝은 허망함과 또 다른 범죄의 시작일 뿐이며 벗어날 수 없다는 이 작품의 인식은 극도의 절망과 허무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할 주인공, 그가 파커다.
3.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은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의 다음 이야기다. 원작은 이 두 이야기 사이에 《얼굴 없는 남자》가 있지만 그래픽노블로는 출간되지 않았다. 다윈 쿡의 그래픽노블은 리처드 스타크 원작의 특성인 독립성과 연계성의 이율배반적인 특성을 그대로 살리고 있기 때문에 《얼굴 없는 남자》를 누락해도 이 작품을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에서 성형수술을 하고 잠적하겠다고 했고,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에서 성형 이후의 사건들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 《얼굴 없는 남자》까지 그래픽노블로 전환되었다면 좀더 촘촘하고 밀도 있는 ‘파커의 스토리월드’를 구축했겠지만 빠졌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권이 전체적으로는‘파커의 스토리월드’를 구축하고 있지만 동시에 독립성을 유지하는 프랜차이즈 노블의 특성을 그래픽노블에서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파커가 세상살이의 전모를 꿰뚫고 있는 듯한 자신 있는 태도, 주체적인 처세, 타고난 동물적 감각의 생존 본능, 대범한 대응으로 거대한 조직 아웃핏과 스펙터클한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이 작품도 전작과 같이 총 4장으로 ① 조직 아웃핏의 파커 암살 기도, 스킴과의 내력담 및 스킴 제거 → ② 아웃핏의 지부들을 털면서 두목 브론슨의 위치 파악 → ③ 브론슨의 조직을 터는 여러 사례(잡지 기사, 약화체 요약) → ④ 브론슨을 없애고 이인자와 거래로 뒷탈을 막고 사라지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같은 형식의 반복은 전환과정에서 원작의 서사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며, 더구나 4장의 구조는 기승전결의 보편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복의 식상함만 극복할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한 구조다.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은 빠른 속도의 전개와 통쾌한 액션 그리고 다채로운 사건들의 흥미로운 연쇄가 이어지기 때문에 식상할 염려는 없다.
싸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거대 조직과 두려움 없이 싸워 승리하는 파커의 서사는 거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공포와 적개심만으로 위축되었던 향유자의 욕망을 해소시켜준다. 조직 아웃핏이 보여주는 자본 축적 방식, 갱단을 회사로 칭하며 일상 안에서 합법화를 가장한 범죄조직, 누군가가 아닌 모두의 일상과 연계되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파커의 반영웅적 행위의 통쾌함과 당위성을 강화시켜준다.
특히 아웃핏의 자본축적 방식이나 범죄의 합법화 과정 같은 정보를 잡지기사의 활용(82-90쪽)이나 각 지역을 터는 과정을 약화체 그림을 통하여 요약(91-109쪽)하는 방식은 전체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게 하면서도 호흡이나 긴장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킴으로써 사건의 스펙터클에 현혹되는 것을 방해하며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게 한다. 그 거리는 파커의 행위에 대한 비판적 거리가 아니라 합법을 가장하여 일상 속에 침투해 있는 범죄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파커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거나 그 안에 기생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불신과 절망의 세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할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냉혹한 무관심으로 그 모두를 단지 도구화할 뿐인 파커의 스탠스가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 익숙한 리듬을 깨면서까지 확보한 그 거리는 쓸쓸함과 환멸로 가득한 세계, 회복 가능성보다는 타락 가능성이 더욱 농후한 세계 안에서 당신의 스탠스는 무엇인가라고 무심한 듯 묻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한층 더 노골화되는 반영웅적 캐릭터로서 파커의 냉혹한 폭력이 재미있는 것은 ① 절대 강자가 구현하는 안전하지만 통쾌한 복수, ② 반사회적 범죄의 낱낱을 드러내는 폭로, ③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선 악당의 악당 징벌, ④ 현실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자유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이유가 종합적으로 작용하는데, 향유자는 1인칭 시점을 따라가며 동반자적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심정적인 일체감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한 일체감은 절대 강자의 두려움 없고, 정당하기에 냉정할 수 있는 복수와 자기 방어를 마치 자신이 수행하는 몰입을 얻을 수 있고, 그 몰입도만큼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지독한 구타와 살인의 연속 안에서 파커는 도덕과 정의라는 명분 뒤로 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파커에게 도덕적 우위나 정당성을 주지 않는다. 그저 제 능력껏 살아남아서 이야기하는 자로 남겨둘 뿐이다.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에서 파커는 말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먼저 말을 해치웠을 것이라는 진술을 통해 말과 파커의 정의나 윤리관이 다르지 않음을 드러낸 바 있고, 이것을 다시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에서는 마치 린의 총을 맞는 파커처럼 알마 손에 스킴이 죽임을 당하게 하고 운좋게 살아 돌아오는 동일한 설정을 통해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다. 이 비정한 익명의 도시에서 문제는 살아남아 살아내는 것이지 어떻게 살 것이냐는 네가 판단할 몫일뿐이라고…….
4. 리처드 스타크와 다윈 쿡 사이
리처드 스타크의 빼어난 원작을 그래픽노블로 전환한 다윈 쿡의 작업은 또 다른 파커의 탄생이다.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거친 생생함과 체취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다윈 쿡이 시도한 전환의 수준과 가치를 알아본 리처드 스타크는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파커’라는 원작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다우니 쿡에게 주었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시리즈》가 국내에는 아직 3권밖에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금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거나 같은 작품의 전혀 다른 재미와 풍미를 느끼고 싶다면 리처드 스타크의 원작과 다윈 쿡의 그래픽노블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거기에 존 부어맨 감독의 <포인트 블랭크>나 브라이언 헬겔랜드 감독의 <페이백>(1999),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파커>(2103)까지 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본격화되지 못한 하드보일드 장르의 그래픽노블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최근처럼 원천콘텐츠로서 만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이라면 장르적 유용성의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질주, 노마드의 무한한 지평이 아니던가? 미국에서 하드보일드가 출현하던 시기의 불신, 절망, 환멸이 차고 넘치는 ‘지금 이곳’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욱 매력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당위적으로 요구하는 윤리나 도덕 혹은 정의를 잠시 괄호 속에 묶어놓고 냉혹하고 비정한 이 도시 안에서 어쩌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들의 색다른 스탠스를 만나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더 흥미진지만 하드보일드라는 점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결국 더 센 놈이 살아남는 것인데…….
<만화규장각> 2016.12.13
- 김용언,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강, 2012, p.1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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