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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토럴 시대의 스토리텔링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스토리텔링은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창출하는 능동적인 소통이다. 가치나 즐거움을 지나치게 교조적인 의미나 윤리적인 의미로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가치, 즐거움, 능동적 소통은 스토리텔링의 특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다. 축자적인 의미에서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다양한 방식(tell)을 통하여 향유를 강화하는(ing)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좀더 심도 있게 읽어보면, 스토리텔링은 향유자의 적극적인 참여 과정을 통해서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창출할 수 있는 일체의 소통 과정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스토리텔링은 그것이 통용되는 문화권, 적용 분야 및 해당 장르, 구현 미디어 환경, 최종 콘텐츠의 형태 등에 따라 상이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개념에 대한 합의나 실체에 대한 규정은 지극히 개방적인 형태로 설정되어 있다.


존 라세터가 강조한 바와 같이, 현재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압도한 픽사 애니메이션의 핵심은 스토리다. 사실 이 말은 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스토리는 단지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구현 방식 그리고 향유자와의 소통이 어우러지는 일체의 과정, 즉 스토리텔링이다.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즐거움은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어린 시절 장난감, 주제가(You've got a friend in me), 성장과 이별의 두려움과 같은 보편적 정서의 유대 요소들과 패러디, 대구와 강화를 통한 안정적 서사 구조 구축, 속편으로 수렴하는 프리퀼(prequel)의 적층적 활용, 집단적인 중심 캐릭터 설정과 편마다 새로운 캐릭터의 보강을 통한 서사의 심화, 애니메이션의 본질인 투명한 액션의 효과적 구현 등을 통해 성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스토리텔링의 문제는 스토리와 구현방식 그리고 향유가 어우러지는 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 가치 있는 즐거움을 창출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느냐에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구현 미디어 환경, 최종 콘텐츠의 형태 등은 스토리텔링 전략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곳을 압도하고 있는 디지털 문화환경은 정보의 복합성, 쌍방향성, 네트워크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말은 무엇보다 향유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존 닐슨은 디지털 문화환경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형질의 스토리텔러를 디지털 호모나랜스(Digital Homo Narrans)’라고 부른 바 있다. 그들은 디지털 문화 조건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만의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을 전개한다. 디지털 호모 나랜스는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포털, 동호회 등에서 문자·그림·사진·영상 등을 주도적으로 활용하여 스스로 이야기를 생산-공유-전파하는 주체적인 스토리텔러다. 적극적인 생산자이자 향유자인 그들에게 더 이상 생산과 향유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단지 소통할 뿐이다. 그러한 소통은 가치 있는 즐거움 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초당 3,500장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페이스북과 분당 72시간의 영상을 업로드하는 유투브는 이미 격렬하게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의 장이 되었다. 누가 지시하거나 어떤 물질적인 보상을 전제하지 않는데도 각종 디바이스를 가지고 다양한 플랫폼에 접근하여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스토리텔링의 양상은 이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유전형질을 지녔다. 그 형질의 특성을 읽고 싶다면 당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열어보라. 향유자의 체험에 기반한 자발적 생산과 창작 그리고 무한 공유의 스토리텔링이 다양한 층위에서 격렬하게 증식하고, 공유로서 더욱 강력한 맥락을 생산하고, 그만큼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열고 있지 않은가?

헨리 젠킨스도 󰡔컨버전스 컬처󰡕에서 지금 이곳의 향유에 주목하고 주체적인 체험의 생산성과 향유의 자발성 그리고 공유의 즐거움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그가 제안한 장르 간, 플랫폼 간, 저자와 독자 간, 생산과 소비 간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은 디지털 문화 환경 속에서 스토리텔링의 핵심을 지적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생산자에 의해 이미 완성된 스토리텔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향유자에 의한 참여중심, 과정중심, 향유중심의 스토리텔링이다.

그래서 타이 몬터규는 스토리텔링을 넘어선 스토리두잉(story-doing)을 주창한다. 실천으로서의 스토리를 강조하는 스토리두잉에서 핵심은 향유자가 어떻게 그 스토리에 참여-반응-생산-공유하는 실천을 활성화할 수 있느냐이다.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스토리를 실천하고 자기화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동안 향유과정의 이면에 잠재된 형태였지만 이제는 실천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필수적이고 노골적인 형태로 기획된다. 스토리두잉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데, 신발 한 켤레를 사면 한 켤레를 어려운 이에게 기증한다는 기부 실천행위를 브랜드 전략으로 활용한 탐스, 자신이 만든 디지털콘텐츠를 등록하고 한번 다운로드 받을 때마다 1.25달러씩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식량으로 기부하는 ‘1.25 미라클마켓’,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남미의 어느 가난한 농부에게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한다는 공정무역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향유자가 어떤 형태로든 스토리에 참여해야함으로써 구현할 수 있는 스토리두잉의 전제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요소였던 가치 있는 즐거움이다. 최근 유명 인사나 스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아이스버킷 챌린지(Icebucket challenge)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기부문화를 환기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유명 인사나 스타가 참여하고, 그것이 딱딱한 기부행사가 아니라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퍼포먼스로 즐겁게 진행하고, 참여자가 세 명의 다음 사람을 지정하는 기록을 웹에서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기부라는 가치 있는 행위를 간명하게 제시하고 즐거운 퍼포먼스로 3배씩 확산해나가는 스토리텔링 전략은 그 효과면에서도 탁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곳은 디지토럴의 시대(Digitoral Era). 죠나 삭스가 창안한 디지토럴은 아이디어의 창조와 전파에 향유자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적합한 아이디어만 살아남던 구전전통이 디지털 문화환경과 창조적으로 결합한 양상을 말한다. 구전전통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곧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스토리텔링은 고정되지 않고 향유의 횟수만큼 격렬한 활성화가 이뤄지며, 그 활성화의 정도가 스토리텔링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한 구전전통의 현재적 구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문화 환경 덕분이다.

세계의 콘텐츠 시장을 주도한 디즈니 회장인 로버트 아이거는 디지토럴 시대 스토리텔링이 맞춤화된 경험고치 벗어던지기라는 형태로 구현될 것임을 예언한 바 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및 빅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화된 경험을 활성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경험이 공유의 기술을 통해 고치 벗어던지기를 통해 무한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공감 가능한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 <레미제라블>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좋은 예이다. 공감 가능한 보편성을 확보한 스토리를 최신의 최고 기술로 구현하고, 향유자의 수준과 취향에 소구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텍스트에 수렴하고, 거기에 뮤지컬 넘버들을 삽입함으로써 텍스트 전체가 아니라 뮤지컬 넘버별로 공유 확산할 수 있는 전략을 전면화하였다. 그 결과, 당신은 지금도 <레미제라블><겨울왕국>의 뮤지컬넘버들을 흥얼거리지 않는가?

IT 강국 한국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이야기 하지말자. 디지털 문화 환경을 어떻게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기획할 것인가, 향유자별 맞춤화된 경험과 그 경험의 무한 공유를 지속-확산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 전략은 무엇인가, 정서적 보편성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과정을 통해 구현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자. 다시 문제는 체험, 참여, 공유의 가치 있는 즐거움이다.

<방송작가> 2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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