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輪의 길, 산문의 道
김훈 《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 2000)
박기수(문학평론가,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사람이 앞서지 못하는 바퀴와 사람을 앞설 수 없는 바퀴 사이에서 마른 바람을 맞으며 사내가 달린다. 사내는 자신의 자전거를 풍륜(風輪)이라고 부른다. 사내의 풍륜은 세상의 길을 온몸으로 감으며 오르고 감은 길만큼 풀어주며 내려온다. 산이 불러 산까지 데리고 간 길을 내려놓고 어둠을 싣고 데려오고, 어둠을 싣고 가는 날에는 전조등 밝혀 길을 데리고 내려오는 그의 풍륜은 때때로 바다까지 흘러가서 넓고 붉게 물든 노을과 길고 검게 느린 그림자 사이에 서 있곤 한다. 그곳에서 사내는 ‘깊이 밀고 멀리 당기는’ 서해의 관능이나 ‘날카롭고 명징하고 눈부시게’ 일출을 향해 달리는 동해에 이르는 강들의 고단함을 본다. ‘소금이 오는 옥구 염전’에서 사내는 짜고 향기로운 소금을 보고, 제 몸을 태워 날아가는 만경강 하구의 도요새에게서 ‘필멸(必滅)의 장엄함’을 본다.
사내의 풍륜은 ‘본다’. 흐르면서 본다. 산을 보고 들을 보고 바다와 강을 보며 하늘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척박한 풍요를 수납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부지런한 생의 시간들을 본다. 사내가 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들으면 말하게 되고 말하면 논(論)하게 되는 까닭이다. 논하면 시비에 매이고 시비에 매이면 떠난 길이 단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길, 그 이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밖을 봄으로써 안을 비추고, 안을 비춤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어지는 이치를 사내의 풍륜은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사내의 풍륜은 뒤차를 인도하기 위해 후미 등을 켜고 달리는 것이 아니며 앞차와의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 전조등을 켜는 것도 아니다. 사내의 코앞을 동그랗게 비추어 선도(先導)해주는 전조등이 사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라면, 빨갛게 불든 후미 등은 지나온 길의 증거다. 그래서 어둠이 내린 길에서 사내의 풍륜은 ‘의지’와 ‘증거’ 사이를 달린다. 하여 사내의 풍륜이 보는 것은 의지와 증거 사이에 머문다.
달리던 바람이 멎고 풍륜이 자는 밤이면 사내는 원고지에 꾹꾹 눌러 손으로 글을 빚는다. 사내는 풍륜 아래서 풍륜 위의 일들을 기록하고 증언한다. 그래서 사내의 글에서 풍륜이 본 것과 사내가 본 것이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써내려간 것이 거북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나아가는 여수 돌산 향일암에서 서울의 여의도까지 서른 곳이다. 풍륜이 보고 달려온 것들은 사내의 레토릭을 넘지 못하고 사내의 레토릭은 풍륜을 앞서 달리지 않는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 들이나 바다, 그 어느 곳 생의 시간들이 다녀간 자리에는 사연이 길을 만들고 길은 내력을 들려주는데, 그곳은 듣는 이가 없어 적막하다. 적막이 만드는 깊이 마다 시간이 고이고 고인 시간에는 사내가 데려간 속기(俗氣)가 부끄럽게 낯을 씻는다. 씻은 낯을 바람에 말리며 사내의 풍륜은 먼지 낀 세상으로 내려오고, 내려온 거리만큼 다시 안개 낀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어 하는 사내의 병은 불치(不治)다.
아무래도 《자전거 여행》은 경이롭다. 우선 상업자본에 의해 공공연하게 압도되어 있는 중요 일간지에서 이와 같은 미학적이고 그래서 별로 쓸모가 없는(?) 글을 서른 회나 연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욱 필자를 경악케 하는 것은 8개월 만에 이 책이 10쇄를 찍어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해리포터》처럼 환타지의 몰입 기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책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교양으로 위협하지 않는다. 이 책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기대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 김훈은 조앤 K 롤링이거나 유홍준이 아니다. 물론 그는 김진명이거나 신경숙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대중적인 흡입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 책의 곳곳에 스며 있는 시퍼렇게 살아서 뛰어오를 것 같은 문장과 삶의 한복판을 꿰뚫는 것 같은 섬뜩한 레토릭에서 그 까닭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나 수사의 힘만으로 이 낯선 책의 흡입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일간지에 연재되면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었고, 최근 큼직큼직한 양서와 베스트셀러를 외줄을 타 듯 잘 내고 있는 출판사 마케팅의 힘이라기에도 무엇인가 모자란다. 어쩌면 《자전거 여행》의 성공은 산문의 힘, 그 근력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것의 부활이었으면 좋겠다.
산문이 살아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소설이 산문 영역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불행한 일이다. 소설은 산문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그것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또 얼마나 자명한가? 소설의 가공할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세계는 또 얼마나 한정된 것인가? 산문 영역에서 소설의 압도는 다른 형태의 산문들, 즉 곡진한 생활 글이라든가, 날 선 감각의 기행문이라든가, 읽는 이에게 온 마음을 전하는 편지글이라든가, 미더운 주장의 논설이라든가 그 종류는 굳이 한문학의 수다한 종류의 그것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한 다양한 산문들이 살아야 글이 제 몫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 대한 탐구와 모색, 삶의 비의(秘意)를 캐려는 부단한 시도,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성찰, 즉 소위 산문정신의 구현을 소설로 국한하는 것은 아무래도 편협하다. 이러한 편협함은 글을 일부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게 만들고, 그러한 글을 읽는 행위도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지적 허영이나 호사스런 기호(嗜好) 정도로 전락시켜 버렸다. 산문이 읽히지 않는데 그보다 행간이 넓은 시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글의 호위를 받지 못하고 걷는 삶의 길들은 얼마나 무모하고 불운한 것이냐?
다시 《자전거 기행》으로 돌아오자. 이 책이 지닌 몇 가지 중요한 의의는 남성적 글쓰기의 복원, 산문의 현대적 형태 모색, 레토릭을 통한 미적체험의 가능성을 증거하고, 무엇보다 그러한 다양한 시도가 대중성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2001년 동인문학상 작품인 《칼의 노래》에서도 잘 나타난 바와 같이 김훈 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어법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덕은 “살아있는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는 프롤로그의 시작에서부터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며,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라는 프롤로그의 마지막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숨 막히는 긴장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이 책의 곳곳에서 왜 길이 도(道)가 될 수밖에 없는지 시나브로 드러내고 있다. 길은 인간의 것이기에 마을을 떠나 마을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그의 인식은 결국 그가 그 길을 끝없이 달려야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는 실존적 차원의 인식과 의지이며,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는 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길에 대한 신뢰는 유한한 삶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기대하는 것이며, 그러한 기대가 적막한 산야와 처연한 풍광사이로 그의 풍륜을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풍륜이 간다. 이 천박하고 척박한 시대에 붉은 먼지를 일으키며 아직은 안개 낀 들과 강과 바다를 달린다. 은빛 바퀴에서는 그의 수사(修辭)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빛나고, 그 빛은 차가운 금속의 그것이 아니라 풍륜이 보고 달리고 있는 산야와 바다의 것이다. 그래서 풍륜의 바퀴는 반사하지 않고 삼투한다. 금속의 삼투, 삼투의 절묘한 균형, 그 중심에 이 책이 놓인다. 원고지 칸칸이 그가 덖고 있는 글에서 피어나는 향은 물 없이도 그 쌉쌀한 맛을 우려낼 것만 같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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