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매트릭스, 세컨드 라이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퍼스트 라이프(First Life)가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핍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퍼스트 라이프와 흡사하지만 현실원칙에서는 자유롭다는 점에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현실과 흡사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고, 현실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창조의 공간이 세컨드 라이프다.
실제와 유사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현실원칙에서는 벗어난 이 개방형 가상세계의 매력은 향유자 스스로 참여해서 즐길 것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관계하지만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사랑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려는 일방적 욕망의 콘텐츠들이 차고 넘치는 지금 이곳에서 세컨드 라이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랑스럽게 나를 위해 반응해주기만을 기대할 뿐 돌봐주거나 챙겨줄 의무는 없는 로봇 개, 내가 원하는대로 꾸며주고 감정을 배설하기는 하지만 상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은 일방적 사랑의 대상인 관절인형,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스스로 꾸밀 수 있지만 언제든 스스로를 닫아걸 수 있는 싸이월드, 스스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거나 볼만한 것을 만들어 올리는 UCC 등에 익숙한 우리에게 린든 랩이 제공하는 세컨드 라이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웹2.0의 서비스 전략과 일치한다. 세컨드 라이프는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생산자의 시나리오에 따라서 제한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제공되고 이미 만들어진 것은 제한적으로 수용하면서 향유자의 참여와 공유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신과 세계를 열어간다는 두드러진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세계에서 주도적으로 참여와 수행을 지속하는 향유자, 그들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리마커블(remarkable)’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벌이는 지극히 자유로운 카니발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세컨드 라이프가 즐거운 것은 즐거움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향유자 스스로 그곳에서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그래픽 제작 프로그램 등만 제공하여 UCC를 활성화시킨다. UCC의 즐거움은 자유로움에 있는데, 이것은 승패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동시에 향유자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성취의 자유이다. 기대와 성취의 과정은 향유자 간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다양한 즐거움을 자유롭게 추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매한 아이템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생산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는 네트워킹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다.
최근 세컨드 라이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세컨드 라이프가 국내에서도 그 열풍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컨드 라이프가 우리의 퍼스트 라이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에 대한 것이다.
국내에서 세컨드 라이프가 활성화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비관적이다. 그 근거로 온라인게임에 익숙해 구낸 향유자들에게 세컨드라이프의 가상현실은 새롭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는 점, 국내 향유자들의 경우 싸이월드나 MMORPG 등 더 재미있는 대체재들이 많다는 점, 시작하기 전까지 배우고 조작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 목적이나 임무가 없기 때문에 창조적으로 즐길 수 있는 향유자가 아니라면 뚜렷한 즐거움을 찾기 어렵다는 점, 번역기가 제공되지만 언어적인 장벽 등을 제기한다. 이러한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장세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한국 지사(물론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지만)가 설치되고, 새로운 놀이와 비즈니스의 공간으로서 새로운 것의 전위에 서기 좋아하는 우리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세컨드 라이프의 국내 성공 여부에 대한 막연한 비관이나 낙관이 아니라 낙관적 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일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매달 50만명씩 향유자의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인 무엇인지, 토지 분양과 관리비 외에 국내적 특성을 반영한 수익모델은 어떤 것이 가능할지, 사이버아이덴티티의 퍼스트 라이프에 대한 긍정적 견인 방안 등에 대한 생산적 탐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퍼스트 라이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고민해야할 과제이지 세컨드 라이프를 칭송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판단의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이버 세계가 부상하면서 제기되었던 비관과 낙관의 다양한 견해들을 가장 새롭고 구체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세컨드 라이프를 통하여 진지하게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아이덴티티의 문제, 퍼스트 라이프와의 법적, 윤리적 상관성의 문제, 대중추수주의에 따른 문화적 타락과 전환의 문제, 현실 세계의 황폐화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할 문제이지 판단의 근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제공하는 자유는 퍼스트 라이프를 전제로 하는 상대적 자유기 때문에, 현실의 탈락보다는 현실과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창출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세컨드 라이프로 인하여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보다 선도적인 자세로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만 한다. 세컨드 라이프가 게임이냐 아니냐를 논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창출하는 리마커블한 요소가 무엇인가에 주목하는 전략적 탐색, 사이버 아이덴티티를 통해서 견제하는 현실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 문화적 타락을 견제할 수 있는 치유 방안 등에 대한 실천적인 탐구 등이 그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와 퍼스트 라이프의 공분모는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날마다 진화하며, 진화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충한다. 정체성의 확충은 진화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내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 존재하는 세컨드 라이프에서 내가 누리고 추구하는 것들은 지금 이곳에서 우리 자신이 갈구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컨드 라이프는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고, 그 즐거움의 원천이 자유로움이라면, 그것을 통해 구체화된 ‘나 아닌 나’의 자유를 통하여 ‘나인 나’를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찰하는 ‘나인 나’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 ‘나’는 끊임없이 참여하고 공유하고 개방하는 과정을 주체적으로 즐길 줄 하는 ‘나’여야만 할 것이다.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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