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배려의 아름다움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무상급식 문제로 정치권이 뜨겁다. 전면적 무상급식이냐 선별적 무상급식이냐를 놓고 지방선거와 연계하여 정치권은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이해할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설득과정이 아니라 쌍방 모두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선동이라는 의구를 떨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필자는 무엇이 옳다고 판단하거나 주장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솔직하지 못한 논란 속에서 말은 못하지만 심하게 상처받고 있을 아이들에 대한 염려는 떨치기 어렵다.
1970년대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때에는 학기초면 선배들의 교과서를 물려받을 학생들 신청을 받곤 하였다. 교과서 대금이 없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배려였는데 선뜻 손을 드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그 수요를 조사하면서 모두들 눈을 감으라고 하시던 장면이다. 손을 드는 아이가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조심하시던 선생님의 뜻을 깨닫게 된 것은 아마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서였을 것이다.
언젠가 선배에게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박사과정 공부를 할 수 있었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별다른 직업 없이 공부를 하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던 시절, 그 길을 몇 년 먼저 간 선배에게 물은 것이다. 그 선배는 날마다가 기적이었다고 씁쓸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었다. 박사를 마칠 무렵 나는 이미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시간강사 수입으로는 하루하루가 참 벅찼던 시절, 어느 날인가 은사님께서 차를 가지고 댁으로 오라고 하셨다. 은사님은 당신을 어느 곳까지 태워다달라고 하셨다. 평소 제자들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의아한 일이었다. 그런데 은사님은 가시다말고 대형마트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가트를 두 개 끌고 오라고 하시고는 분유와 기저귀를 두 가트에 가득 담아주셨다. 넉넉하지는 않았도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물이 핑 돌정도로 감사로 벅차오르던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불안하고 힘겨운 시간을 위로해주시기 위해 일부러 부르시고서는, 제자가 부담을 느낄까봐 당신을 어딘가로 태워다달라고 말씀하시던 은사님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은퇴하시고 나서도 그 해에 가장 연구업적이 뛰어나 제자에게 적지 않은 돈과 족자를 내리시고는 송구스러워할 제자에게 글을 주었으니 글값으로 과일을 사오라고 하시던 선생님. 당신이 200만원을 상금으로 내리시고 그깟 과일값이 없어서 그리 하셨겠는가?
일본에서는 유치원비를 담당 관청으로 내게 한다고 한다. 저소득층의 유치원비를 나라에서 지급하는데, 유치원에서 유치원비를 직접 거두면 누가 저소득층인지 알게 될 터이고, 그것이 혹시라도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금융 위기 이후로 좀처럼 경제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무상급식이 문제 인 것은 무상급식의 대상이 될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배려를 누가 뭐라겠는가? 다만, 그 배려의 과정이 좀 더 은근하고 조심스럽기를 바랄 뿐이다.
2010년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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