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부르는 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동계올림픽이 뜨겁다.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을 보며 우리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턱없이 부족한 동계스포츠 인프라나 열세인 체력 등으로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보다는 금메달을 딴 모태범과 이상화의 당당함과 즐거움을 보라. 쇼트트랙에서 탈락했던 이승훈이 올림픽 출전의 꿈을 버리지 않고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출전하여 따낸 은메달은 얼마나 극적인가? 동료의 실수로 날아간 아들의 메달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흔연히 달려가 실수한 선수를 위로해주던 성시백 어머니의 포옹은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20여년의 대표선수 생활을 하면서 비록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으나 메달을 딴 모든 후배들에서 나오던 이규혁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동계올림픽이 기대되는 것은 그곳에서 희망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2-3위로 달리다가 결승선을 앞두고 충돌하여 실격 처리된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신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고, 또 다른 실격을 기대했다는 안톤 오노의 몰염치와 경망스러움을 더 이상 비난하고 싶지 않다. 스포츠 정신을 모르고 결과로서의 승패만을 얻으려는 그런 선수에게서는 희망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는 재주보다 밀치는 손재주가 더 낫다는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에게 픽사 애니메이션 <카>를 보여주고 싶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154Cm 45Kg의 작은 몸으로 덩치 큰 서구 선수들 앞을 달리던 이은별 선수의 당찬 열정이나 비록 선수복을 경기 전날 수선해 입을 정도로 열악한 지원 속에서도 결선까지 진출했던 스키 점프 선수들의 당당한 도전 그 자체가 희망이 아니던가? 메달도 메달이지만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자신들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줄 아는 그 젊음의 당찬 미소와 유쾌함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 결선에 오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온 이름도 낯선 종목의 선수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매스컴의 각광을 받거나 노력의 결과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시상대에 오를 가능성을 그리 높지 않지만 하루하루 부끄럽지 않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희망일 수 있는 이유도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를 발견하듯 그들도 우리의 모습에서 희망을 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는 까닭이다.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동계올림픽의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최상이 아닌 최선을 보여주는 그들과 최선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이 엄혹한 계절을 위로하며 우리의 봄을 부르는 사람들이다. 아니 우린 서로 그렇게 위로하고 응원하며 우리의 봄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봄이 오고 있다.
2010년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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