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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웃음의 서사, <개그 콘서트>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아하 그렇구나 웃거나 말거-!”

네 살 먹은 둘째가 식탁에 앉아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귀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아내와 함께 웃어라도 주면 제 깜냥에는 잘한다는 것인 줄 알고 몇 번씩 되풀이하곤 합니다. 아내의 이야기로는 첫째와 둘이 앉아서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대사나 몸짓 혹은 말투와 노래를 거의 모두 흉내를 낸답니다. 나가 있어!, 옥동자에요, 원투쓰리포, 띠리띠리 등등. 급기야 오늘은 첫째와 둘째가 앉아서 김지선이 핸드폰을 받으면서 어머 어머라고 외치며 몸을 흔들고 나오는 것을 마주보고 했답니다. 아내는 두 녀석에게 흉내를 내면 <개그콘서트> 안 보여준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개그맨 흉내를 내는 아이들의 버릇을 개그프로를 통해 제어해야하는 이 웃지 못 할 상황에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저는 최근 논문에서 1) 비서사적 요소의 전면화, 2) 자기 완결성의 포기, 3) 계열체적 서사로의 개방으로 드러나는 <개그콘서트>의 서사 파괴현상을 지적했습니다. 즉 전통적인 의미의 서사는 사라지고 개인기를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서사만 남겨 두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비삼남매의 정체성은 서사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세 인물의 개인기를 통해 드러날 뿐입니다. 그렇다고 개인기를 통해 살아있는 캐릭터를 구현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캐릭터 역시 그들의 개인기를 보여주기 위한 전제일 뿐입니다. 옥동자와 노통장의 성대모사, 무림남녀의 무술, 박준형의 무갈기, 댄서킴의 쭉쭉춤, 김지선의 섹시댄스, 김다래의 성대모사 등이 대표적인 개인기입니다. 심지어 미션임파서블에서는 어설픈 개인기를 웃음의 중심 코드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개인기는 반복을 통해 관객 혹은 시청자를 학습시키며, 그 학습의 결과가 각 코너별 넘나들기를 가능하게 하고, 웃음의 전제가 되는 심리적 공유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봉숭아 학당세바스찬이 웃기는 것은 그렇습니다에서 보여주었던 땅그지캐릭터 때문인데, 코너의 독립성과는 상관없이 필요에 따라 세바스찬땅그지캐릭터가 뒤섞이기도 합니다.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서사가 필요한데, 오히려 여기서는 그 독립성을 파괴하고 각 코너별로 넘나들게 함으로써 캐릭터의 허구성과 작위성을 노골화시키는 특성을 드러냅니다. 이를 통해 세바스찬땅그지그리고 유치원생의 캐릭터는 임혁필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수렴/발산을 반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그콘서트>의 모든 코너들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그 코너의 순서나 흐름을 학습하고, 학습한 정도만큼 그 코너의 흐름에 몰입하는 것이죠. 관객들이 반복되는 대사나 개인기를 익히고, 그것을 실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 해당 코너에 대한 충성도는 높아집니다. 이러한 관객들의 개입은 <개그콘서트>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이것은 다시 <개그콘서트>로 피드백 되어 관객들의 향유 내용이 실제 코너에 개입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향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모든 회로를 확보하려는 것이지요.

<개그콘서트>의 웃음은 무겁지 않습니다. 어설픈 계몽이나 현실에 대한 싸늘한 조소 그리고 날카로운 풍자 따위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사적인 의미에서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며, 명사적 의미의 내용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개그콘서트>의 전략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가에 대하여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의 파괴된 서사를 분석해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징후와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가 드러났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 발현되는 문화 공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대적 인식 방법과 향유 형태를 가지고서는 지금 이곳의 문화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텅 빈 웃음, 반복과 학습, 향유와 유대의 메커니즘, 상호텍스트성의 극대화, 아우라의 공유 등 <개그콘서트>의 변별적 자질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인의 추억><지구를 지켜라>가 흥행의 극단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임을 <개그콘서트>의 읽으며 생각합니다.

나가 이-!”

혀 짧은 소리로 봐서 둘째입니다. 아내의 분위기로 보아 아마 둘째는 제 방으로 나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경박하지도 경쾌하지도 않는 그저 가벼운 지금 이곳입니다.

<매디프렌> 2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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