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융합의 즐거운 무한증식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방탄소년단,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웹드라마 <두 여자>, <상사3>, <미생>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공통점 구현 미디어, 플랫폼, 장르, 언어, 팬덤 형성 방식, 수익구조 등 그동안 독립적인 콘텐츠의 고유성을 결정 짓던 주요 요소들을 가로지르는 과감한 융합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콘텐츠 융합은 콘텐츠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시도다. 따라서 융합의 시도는 매우 유연하고 개방적인 차원에서 다양하게 모색될 수 있다. 장르, 미디어, 플랫폼, 구현 기술 등 지금까지 콘텐츠의 고유한 정체와 위상을 규정 짓던 요소들의 경계를 허물고, 콘텐츠가 보다 많은 가치를 보다 오랫동안 창출할 수 있도록 개방적 증식을 지향하는 것이다.


콘텐츠 융합은 네트워크성, 상호작용성, 정보의 통합성이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디지털 문화환경이 콘텐츠 생산과 향유에 있어서 완전히 내재화되었다는 점, 이로 인한 다양한 플랫폼이 급부상하면서 차별적인 콘텐츠 구현을 위한 전략적 탐색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 새로운 플랫폼과 유통 채널에 최적화된 수익 모델 탐색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과 같이 다양한 관점과 차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원인의 다양성만큼이나 융합의 양상도 매우 다양하며, 현재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융합이 시도되고 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처럼 기존에 제작사가 확보하고 있는 캐릭터를 활용하여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축이라는 대전제로 수렴하거나, 방탄소년단처럼 ‘Everything is connected!’라 주장하며 소셜 파워(social power)를 기반으로 다른 장르와 영역에서 시도되었던 콘텐츠 노출 및 전개 방식, 스타덤 및 팬덤 전략 등의 유연한 조형을 드러내거나, 웹드라마 기반의 콘텐티브 브랜드를 구현을 시도하거나, <미생>처럼 비동기식 전개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를 구현하는 등의 사례만 보아도 융합의 다양한 양상은 한 마디로 확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와 같이 콘텐츠 융합의 배경이나 양상은 매우 다양하고 다분히 조형적이지만, 융합의 동기는 분명하다. 콘텐츠 융합은 가치 있는 즐거운 체험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를 구축함으로써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 및 충성도를 높이고, 여타 콘텐츠에 비해 차별적 우위를 확보하여 수익을 지속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한 능동적인 노력이다. 따라서 콘텐츠 융합에서는 기존의 각 장르나 영역이 고수해왔던 고유성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를 논리적 배경으로 디지털 문화환경 그리고 콘텐츠 생태계의 역동적 경쟁체제가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창작자, 원작, 독립성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향유자, 스토리월드, 연결성 중심의 융합의 시도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콘텐츠 융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디즈니에 의해 42억 달러에 인수된 마블은 단지 만화회사가 아니다. 마블은 확실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5,000여개의 캐릭터를 보유했고, 그들을 창조적으로 수렴하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arvel Cinematic Universe, MCU)라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축에 성공하였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를 구축하여 향유자가 스스로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콘텐츠 수명의 지속적 연장이 가능해졌고,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 이에 따른 수익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더욱 놀라운 융합의 사례다. 방탄소년단은 직접 음악을 창작함으로써 그들은 음악을 통해 본인들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며, 동시에 그들은 SNS나 다양한 플랫폼으로 통하여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전략을 취했다. 더구나 그들의 음악의 주제는 동시대, 동세대의 고민을 나누는 내용이 중심으로 이룸으로써 팬들은 방탄소년단과 자신들의 고민을 나누고 있다는 강한 심리적 연대를 형성하게 됨으로서 더욱 강력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트위터 최다 활동 남성그룹 부문기네스 세계기록에 오를 정도로 그들은 SNS를 적극 활용하며, 데뷔 전부터 자신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믹스테잎, 영상, 사진 등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가상의 방송국을 개설하여 멤버들이 직접 다양한 포맷의 TV 프로그램에 도전하거나 Mnet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방탄소년단의 아메리칸 허슬 라이프>을 통해 자신들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 것도 그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들은 음악과 SNS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을 가로지르는 전방위적 융합을 시도함으로써 방탄소년단 고유의 스토리월드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최근에 주목해야할 콘텐츠 융합은 웹드라마와 같은 새로운 장르에서의 시도다. 구현 미디어와 플랫폼의 변화에 따라 형질 변환에 성공한 웹드라마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수익구조가 항상 한계로 지적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이러한 한계를 해소하기 위하여 콘텐티드 브랜드전략을 시도하는데, 72TV의 인기 웹드라마 <두 여자>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dxyz 브랜드로의 확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웹드라마의 브랜드 파워를 전면화한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고, 그와 관련된 콘텐츠는 물론 다양한 파생 상품들로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그 외에도 마블처럼 고유의 원천 IP 콘텐츠를 활용한 콘텐츠 프렌차이즈화를 시도한다거나, KBS가 시도했던 <간서치열전>처럼 웹드라마와 TV드라마의 상생적 결합 방식도 시도된 바 있다. 무엇보다 웹드라마의 케주얼한 특성을 극대화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구현 시도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 구축의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향유를 지속, 강화, 확산하기 위하여 복수의 매체와 장르를 가로질러 스토리월드를 확장적으로 구축해나가는 스토리텔링 전략 혹은 그러한 세계를 의미한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전개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축/증식하는 스토리세계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라고 부른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월드는 다수의 매체와 장르 전개 과정을 통하여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현재진행형의 증식성과 개방성을 지향한다. 개별 미디어와 장르를 통해서 자족적인 형태의 콘텐츠로 창작되지만 그것은 보다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세계로서 스토리월드의 구성요소로서 기능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융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적 선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양질의 콘텐츠인데, 그 중심에 가치 있는 즐거운 체험의 지속적 창출, 즉 향유가 있다. 융합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향유의 놀이터를 마련하는 현재적 대압이 융합에 있다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콘텐츠 경북> 201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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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지 않으면 즐겁지 않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캠퍼스 곳곳에 각종 행사 포스터가 빼곡하다. 대부분 학과별, 동아리별, 학회별 발표행사다. 한 해 동안 익히고 실천해온 성과를 모아서 그 결실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이니 학생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의미 있고 즐거운 행사가 아닐 수 없다.

팀플이 유난히 많은 우리과 학생들에게 2학기는 무척 분주하고 힘든 학기다. 전공 학습량도 살인적인데다가 자신만의 대외활동이나 아르바이트까지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서로 팀플 시간 맞추느라 무척 애를 쓴다. 결국 팀플은 늘 늦은 시간에 시작하여 새벽까지 이어지게 되고, 그런 팀플이 한 주에 3-4개이니 3-4일은 학교에서 밤샘하기 일쑤다. 그 바쁜 와중에 사진전시회, 영상발표회, 댄스 공연, 뮤지컬 공연 등을 진행하는 것을 놀라울 뿐이다. 누가 시켜서 한다면 할 수 없는 일에 학생들은 열과 성을 다한다.


최근 우리 학교 안에서 유쾌한 소란이 매일 계속된다. 홈커밍데이 행사를 위해서 ‘LOVE’라는 조형물을 설치해두었는데, 학생들이 밤마다 이 조형물의 철자를 조합하여 기상천외한 단어나 조형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철자의 조합을 바꾸거나, 아래위를 뒤집거나, 정면으로 서 있어야할 철자를 측면으로 세워서 매일매일 새로운 단어나 조형을 만들어낸다. 가령, V자는 뒤집고, LO는 측면으로 세우면 한글로 씨티가 된다거나, O만 측면으로 세우면 ‘LIVE’가 된다거나, 철자 순서를 바꾸고 V를 뒤집어서 ‘LEON’을 만드는 식이다. 누가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아침이면 여지없이 SNS를 통해 즐겁게 공유되고 한다. 학교도 학생들의 기발한 발상과 창의적인 시도를 즐겁게 지켜볼 뿐이다. 세계 유명 도시마다 LOVE 조형물은 숱하게 설치되어 있지만, 이렇게 즐겁고 창의적으로 향유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지난 학기에는 우리과 학생들이 학교글꼴을 만들 적이 있다. 학생회관 앞에 책상을 설치하고 오가는 재학생들의 손글씨를 직접 받아, 프로그램을 통해 글꼴로 만들 것이다. 500여명의 학생들의 손글씨는 3000자 가량 모아서 만들어낸 글꼴이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기존 글꼴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문서작성용 글꼴이라기보다는 팬시용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글꼴이었다. 자비를 들여서 그 글꼴로 만들어 온 엽서의 글귀를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그 감동 때문이었으리라. “애도 어른도 아닌 나이 때, 그저 나일 때, 가장 찬란하게 빛나!”,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디지털이든 4차 산업 혁명이든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구호가 무엇이든 간에 그 핵심은 사람값을 지금보다 높이고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노력이 아니겠는가? 미래가 어떨지 섣불리 예견할 수야 없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이야기할 수 있다. ‘참여와 체험을 통한 즐거움의 창출이 그것이다. 누가 하는 것 혹은 보여주는 것을 일방적으로 보고 즐기던 시대는 끝났다. 향유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에 참여하여,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체험하고, 지속적으로 콘텐츠와 대화할 수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즐겼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참여와 체험을 통해 즐기는 과정을 향유다. 향유는 지금 이곳의 문화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이 되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웹툰, <프로듀스 101>, 방탄소년단, 팬덤 등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향유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여 성공한 예라는 것이다.

얼마나 사느냐만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즐거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다양하게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삶이 재미없다면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에 참여하여 체험하고 있는지, 그것을 통해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있는지. 당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2017.12.08.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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