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과 해야 만할 일 사이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은 늘 꼭 ‘해야 하는 일’에 밀리고 만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이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냐고까지 물으면, 그것의 우선순위는 더 뒤로 밀리고 만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은 그저 하고 싶은 일로만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나 해야만 할 일의 이유가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주변 환경과 관계된 일이다보면, 하고 싶은 일은 말 그대로 하고 싶은 일일 뿐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밤낮 없이 뛰면서 스스로 열심히 산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서는 물론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말이 잘 살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매순간 숨이 턱에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또 달릴 뿐이었다. 돌아보면,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지, 왜 그토록 일에만 매달려야하는지, 가족들과 잘 살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심지어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늘 잘 사는 것은 현재를 희생해서 막연한 내일을 기약하는 기만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기에 급급했다.
늘 해야만 할 일은 하고 싶은 일보다 많았고 갈급했다. 가족들은 늘 양해의 대상이었다. 아침에 연구실에 출근하면 밤 10시가 넘어서 연구실을 나서는 일상이었다. 토요일에도 강의 때문에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요일에도 논문과 원고 핑계로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방학이 되면 방학이기 때문에 해야만 할 일들이 기다렸다. 하루하루가 빈틈없이 돌아가고, 그렇게 한 주가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갔다. 하지만 그냥 해만 간 것은 아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아빠의 시간과 상관없이 부지런히 컸고, 그 뒷바라지는 오롯이 아내 혼자의 몫이었다. 게다가 몇 해 전부터인가 몸은 내게 지속적으로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대상포진, 결석, 고지혈증 등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경고하는 몸을 약으로 다스려왔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만 할 일에 가려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희미해질 무렵 연구년이 찾아왔다.
연구년이라고 해야만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과감하게 모든 것을 접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 너무도 많았다. 첫째가 중학교 3학년에,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아이들 학교문제로 연구년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내게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문화콘텐츠 환경을 밖에서 살펴보아야할 시간이 아주 절실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인 LA와 인접한 얼바인(Irvine)에 있는 UCI(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로 갈 수 있었다.
출발 전날 보고서 때문에 밤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 내리던 눈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만 어지럽게 흩날렸다. 일 년 동안 해야만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은 화수분처럼 솟아오르는데 과연 그 둘을 모두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을 구하고, 아이들 학교를 배정받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간단한 가구를 구하고, 미국 운전면허를 따는 등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나는 UCI에서 마련해준 연구실에 규칙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집필 중인 책의 원고를 써야했고, 연구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으며, 그동안 관심 있던 분야의 자료들을 찾아서 정리해야만 했다. 해야만 할 일의 관성이 어느새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은 생활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내의 말처럼 그럴 거면 뭐 하러 미국까지 왔단 말인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연구년을 지내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지금 이곳에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미국에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은 큰 것이 아니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함께하고, 주말이면 아내와 같이 장을 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고 반납하고, 규칙적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하고, 시간 날 때마다 근처에서 가볼만한 곳을 가족들과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모두들 즐거워했다. 그러는 사이 날씨 변화가 거의 없는 얼바인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저니로그 > 미국횡단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0-2 목차 (0) | 2018.07.11 |
---|---|
Ⅰ. 길에서 길을 묻다. (0) | 2018.07.11 |
Ⅱ. 길을 떠나려는 사람은, 첫 번째 여행: 광란의 매혹 혹은 매혹의 광란 (0) | 2018.07.11 |
Ⅱ. 길을 떠나려는 사람은, 두 번째 여행: 낯선 곳에서 배우는 삶의 속도 (0) | 2018.07.11 |
Ⅱ. 길을 떠나려는 사람은, 세 번째 여행: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서 강성한 것들 (0) | 2018.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