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남자, 상수항과 변수항 사이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최근 ‘B형 남자라는 노래와 영화 때문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기에는 그것의 범위가 깊이가 그리 간단치 만은 않음을 알 수 있다. 최근 100대 기업 CEO38.7%B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B형은 개성이 뚜렷하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에 BCEO가 많은 것은 우리경제가 기존의 경영형태에서 변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는 증거라는 식의 근거 없는 확대 해석으로 우리의 인식 압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농협중앙회 한밭사업단이 공제보험 담당 직원을 모집하면서 지원자의 혈액형을 O형과 B형으로 제한했다는 기사는 혈액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재미를 넘어 맹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맹신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폭력은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데 기민하고, 그 가름은 언제나 근거나 논리를 넘어선 것들로서 견고하기까지 하다. A형은 성실하고 책임감은 강한데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B형은 개성적이고 진취적이지만 자유분방하기 때문에 바람둥이가 많고, O형은 활달한 성격에 사교적이지만 즉흥적이고, AB형은 괴팍하다는 식의 가름은 재미로 본다고 쳐도, 그것으로 업무 능력이나 궁합 등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다분히 폭력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혈액형은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자기 것이 된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혈액형은 성격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질병과 밀접한 상관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혈액형에 의존하는 것일까?

혈액형은 상수항이다. 상수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기 싶다. 내 혈액형이 이래서 내 성격이 이런 걸 어떻게 하겠냐는 생각, 그의 혈액형이 이렇기 때문에 나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생각 등에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전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을 때마다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로서 기능하게 된다. 또 다른 원인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기 성찰의 부재에 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간에 서로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파악하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에도 서툴고 서툰 만큼 자신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에 대한 성찰과 파악을 대신해줄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정체성은 타자(他者)로부터 온다고 했다. 주체를 부정한 이 말은 주체가 타자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혈액형을 통해서 성격을 가늠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상수항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그러므로 준비해야할 변수항을 찾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삶이 명사적 의미보다는 살아가겠다는 의지적이고 동사적인 의미가 더 강해야 한다. 그러한 의지를 통한 개선의 가능성, 변화의 가능성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에서는 通變之謂事(달라져 감을 온전히 알아냄을 일이라고 한다)”고 했다. 낼숨()과 들숨()의 쉼 없는 반복을 통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다. 변화가 삶의 기본 원리이기에 주역에서 성현들은 그 변화의 도를 파악하고 깨닫는 것이 일이라고 칭하여 중히 여긴 것이다. 변할 수 없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파악하는 일은 기만일 뿐이다. 그래서 상수항인 혈액형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만들어 내야할 성격을 파악하려는 지금 이곳의 시도들은 성찰 없는 시대의 우울한 초상일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 그래도 굳이 혈액형으로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러므로 준비해야할 변수항이거나 변화하기 위해 준비해야할 의지여야만 한다고. 혈액이 내 안에 있듯, 성격도 내가 만들어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화한화인2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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