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근성, 관심과 열정의 다른 이름

 

박기수(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우리 사회의 문제로 냄비근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각종 정관계 비리나 사회 부조리 심지어 축구의 승패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어떠한 이견도 용납하지 않고 몰아대며 들끓어대는 여론이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현상을 냄비의 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는 속성에 비유해 꼬집는 말이다. 들어보면 틀리지 않은 말 같다. 분명 우리 사회는 냄비처럼 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특성으로 은근과 끈기냄비근성이라는 상반된 속성의 말을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종의 패러독스로서 전자나 후자 어느 것도 주도적인 속성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반적으로 전자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고 후자를 경계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할 때, 우리 사회가 은근과 끈기를 지향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냄비란 기형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효율성의 이름으로 도입된 조리 기구일 뿐이다. 근성이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그것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굳이 그러한 근성이 있다면 냄비 근성보다는 오히려 가마솥 근성이라고 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백보 양보해서 냄비근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이 과연 버려야할 부끄러운 우리의 근성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또는 다양한 것에 대한 지속적인 열정과 관심의 발로로 볼 수는 없는가? 쉽게 끓기 위해서는 끓기 위한 준비가 되어야하는데 그것은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의 다른 이름이다. 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는데 끓어오를 수 없는 까닭이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한국에 대하여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학생운동이라고 한다.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을 접어버린 일본의 대학사회와 비교해 볼 때,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뜨거운 한국의 대학가는 살아 있고, 대학의 청년정신이 살아있는 한 한국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과 열정이 어디 대학가뿐이겠는가? 아울러 쉽게 식는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관심과 참여가 일회적이고 산발적이어서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될 때인데, 과연 우리의 모습이 그러한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끝임 없이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에 우리가 빠짐없이 관심과 집중을 보이기 때문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그것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과 선택과 집중을 필요로 하는 것일 때에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관심은 냄비근성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참여와 열정의 에너지를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어떻게 긍정적 에너지로 바꿀 것인가로 수렴되어야만 한다. 아무 이유 없이 냄비만 달구었다 식혔다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냄비를 달구기 전에 무엇을 위해 냄비를 달구어야 하는지, 냄비는 어떻게 달구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 것인지, 냄비를 식히는 시기와 방법을 조절할 수는 없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냄비에 끓일 때 맛있는 음식과 솥에 끓일 때 맛있는 음식 정도는 구별하는 지혜도 더불어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냄비가 아니라 컵라면 용기처럼 즉시 끓일 수 있는 것들이 선호되기도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것은 끓이고 식는 속도에 의한 가치의 우열 판단이 아니라 그 각각의 다양성을 인정해야한다는 점이며,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냄비근성이라는 말에 움츠리지 말자. 그렇게 빨리 끓을 수 있는 것은 얇게 만들 수 있는 준비가 있었고 스스로 뜨겁게 달굴 수 있는 관심과 열정이 있어서가 아닌가? 모든 음식이 은근하게 끓고 천천히 식어야지만 맛있는 것은 아니다. 냄비는 냄비로서 족하다. 땜장이 아저씨가 솜씨 좋게 때워 놓은 낡은 양은냄비에 푸짐하게 끓여 먹는 라면을 나는 좋아한다. 인스턴트 라면은 가장 빠른 속도로 스스로를 달굴 수 있고 식힐 수 있는 냄비가 제격이다. 그것은 곰탕을 끓이기 위해서는 가마솥이 제격인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은 집에 가서 커다란 냄비에 라면을 잔뜩 끓여 냄비 채 놓고 식구들과 나누어 먹어야겠다.

한화한화인, 2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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