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떠나려는 사람의 준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박 3일부터 시작했던 미국에서의 여행이 7박 8일까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여행은 늘 내 일 때문에 3박 4일이면 족했고, 그나마도 가족들은 집을 떠나면 아프거나 화장실 등의 문제로 곤란을 겪곤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미국이 아니던가? 7박 8일 여행을 마치고 가족들은 모두 제 각기 제법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사실 미국 횡단 여행은 내가 한국에서부터 생각해온 것이었다. 평소에 중앙아시아 횡단을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항상 시간과 자금 그리고 가족의 동의가 문제였다. 중앙아시아 횡단을 이야기하면 아내는 늘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고, 그나마 타협한 것이 가려면 혼자가라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미국횡단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워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차 안에서 슬쩍 가족들에게 방학 중에 미국 횡단을 하면 어떨까라고 운을 떼었더니, 아내의 저항이 예상보다 적었다. 아이들은 좋다고 했으니 됐고, 아내만 설득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캐멀에서 얼바인으로 돌아오며 7-8시간 정도의 운전은 견딜만하다고 이야기하며 다시 횡단 여행의 군불을 지폈다. 아내도 낯선 곳에서 몇 번의 여행으로 그것이 걱정하는 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계획을 좀 더 구체화시킨 것은 옐로우스톤 여행 계획을 짜던 6월초였다. 얼바인에서 옐로우스톤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솔트레이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렌터카로 도는데, 예약은 이미 늦어서 항공료가 지나치게 비싸고, 솔트레이크까지의 자동차로 달리면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여행 기간을 2-3일 정도 더 잡고 자동차로 떠날 것을 계획하고, 이번 여행을 하면서 과연 횡단여행이 가능할 것인지 가늠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작 횡단여행이 결정된 것은 옐로우스톤 여행을 다녀와서가 아니라 떠나기 전이었다. 아이들 방학 중 스케줄을 점검하고는 떠날 날과 돌아올 날을 가늠해보고, 가야할 곳을 지도에 표시하며 소요 시간 등을 구글로 확인하고, 예산을 짜다보니, 어느새 횡단여행 계획이 되었고,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횡단여행 진행도
횡단여행 계획을 짜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횡단 루트를 정하는 일이었다. Route66을 따라서 얼바인→세도나→앨버커키→산타페→오클라호마시티→세인트루이스→시카고까지 간 후에 시카고에서 클리블랜드→나이아가라→보스턴→뉴욕→필라델피아→워싱턴까지 가기로 횡단 루트를 결정했다. Route66은 철저히 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고, 동부 쪽 루트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중심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막상 계획을 세우면서 지도에 경로를 표시하다보니 남부지역까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존 스타인벡도 주문제작한 캠핑카인 로시난테를 몰고 남부를 포함해서 4개월간 동안 돌지 않았던가? 1 하지만 방학과 함께 둘째의 독서 캠프가 시작되고, 방학 후반기에는 첫째의 마칭밴드 캠프가 시작되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낼 수가 없을뿐더러 여행경비도 문제였다. 그렇다면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이동을 하면서 많은 곳들을 보거나 아니면 중요 도시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보는 방식 중 한 가지를 택해야만 했지만, 우리는 두 방식의 절충안을 선택했다. Route66을 따라가는 길은 가급적 많은 도시를 둘러보고, 동부에서는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은 상대적으로 꼼꼼하게 보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의 방학 중 스케줄로 주어진 시간은 21일이니 그것을 전제로, 거리와 소요 시간을 측정하고 그곳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면서 일정을 짰다. 그러다보니 자동차로는 돌아올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어서 워싱턴에서는 비행기로 돌아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자동차로 21일 간 달린 거리를 비행기로 5시간 30분 만에 돌아오는 다소 허무할 수도 있는 계획이었다. 숙소를 알아보다보니 뉴욕에서는 주차가 힘들고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도착하는 날 차를 반납하고, 떠나는 날 다시 차를 렌트하기로 결정하니, 장기 렌트의 혜택을 포기하더라도 주차비, 렌트비, 연료비를 고려하면 약 200달러 정도 예산을 절약할 수 있었다. 물론 안전하면서도 저렴한 차를 렌트하기 위해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약과 취소를 네 번쯤 반복한 결과였다. 2
비행기의 경우, 미국의 큰 도시는 비행장이 여러 개일 수 있기 때문에 구글에서 비행장의 위치를 확인 한 후, 여행 사이트에서 가격을 비교한 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선택을 했다. 워싱턴(Ronald Reagan Washington National Airport)에서 얼바인(John Wayne Airport)까지로 경로를 확정하고, 덴버공항에서 환승하는 조건의 저가항공인 프론티어 항공(Frontier Airline)을 선택했다. 저가항공의 경우 빨리 예약할수록 착한 가격에 좋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고, 우리가 이용해야 하는 시기가 제일 성수기여서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만 했다. 문제는 저가 항공의 경우, 따로 부치는 짐에는 하나당 20달러의 추가 요금이 붙기 때문에, 큰 캐리어 2개에 모든 짐을 싣고, 노트북, 카메라 가방, 아이들 개인 가방, 아내의 가방 3은 각자 기내에 가지고 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덕분에 자동차 여행에 필수품인 아이스박스나 기타 여행 중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기들을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여행 경로를 정하고 나서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아야할지를 여행안내 책자, 아이들의 의견, 인터넷 여행 후기, 여행 사이트 등을 통해서 며칠에 걸쳐 파악하고 정리해 두었다. 동부의 주요도시는 여행 책자를 비롯해서 각종 사이트 등에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었고, 효과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 팁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Route66 코스는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무엇을 보아야할지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찾아야만 했다. 덕분에 미리 해당 도시의 역사, 지리,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횡단 내내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되었다.
여행 경로와 무엇을 볼 것인지를 결정하고 나서 숙소를 예약했다. 일정에 따라서 1박 할 곳과 2박 할 곳, 3박 이상 할 곳 등을 결정하고, 보아야할 곳과의 거리 등을 고려해서 숙소를 정했지만, 그보다 먼저 고려한 것은 가격 대비 숙소의 쾌적함이었다. 몇 번의 여행을 통해서 자동차가 있으니 어느 정도의 거리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소위 관광지의 형편없는 숙소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최고급 호텔을 잡기에는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짧은 여행도 아니고 20박 21일 동안 돌아다녀야 하고, 동부 주요 도시의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할 때, 아낄 수 있는 것은 Route66코스의 숙소 비용뿐이었다. 그래서 가급적 아침을 제공하고 가격이 저렴한 인(Inn) 4과 아침은 제공하지 않지만 저렴하고 쾌적한 공항 근처의 호텔을 주로 잡게 되었다. 숙소에서 아침을 제공해주면 비용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미국은 한국처럼 어딜 가나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아침을 먹기 위해서 식당을 찾는 일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몇 번의 여행으로 다양한 숙소를 예약하다 보니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도 공항 근처의 호텔들은 어디나 가격도 저렴하고 쾌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여행 사이트의 정보를 모아보니 유명 관광지나 주요 도시의 숙박비가 살인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인근에 대체할만한 지역과 숙소가 소개되어 있어서, 그것을 적극 활용했다. 어차피 걸어 다닐 거리는 아니고 자동차로 움직여야 한다면, 10분 이동하나 20분 이동하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캠핑카나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것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어린 딸 둘과 아내에게 야영을 하며 미국 횡단을 하자고 할 용기도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안전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장기간 진행되는 여행인데다가 여자가 셋이다 보니 무엇보다 빨래와 샤워가 중요한 문제였기에 인터넷에 제공된 사진을 통해 샤워시설이나 방의 분위기, 침대, 숙소의 규모, 사용 후기 등을 꼼꼼하게 따져서 결정했다. 횡단 도중에 수시로 정보를 확인하고 이메일 등을 체크하기 위해서 인터넷이 무료로 제공되는지도 확인해야만 했다. 미국의 대부분 숙소는 아주 빠른 와이파이(Wi-Fi)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선전하지만, 한국의 놀라운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 속도는 지독히도 느리고 심지어 일부 숙소는 24시간 기준 기기당 이용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여행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숙소는 환불이 되지 않는, 그래서 저렴한 ‘환불 불가(non refundable)’ 옵션을 선택했다. 예약한 곳이 환불이 되지 않으니 무조건 갈 수밖에 없도록 하여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물론 예약은 가격을 비교해서 가장 저렴한 사이트를 이용했고, 몇몇 곳은 자동차 보험을 들고 있는 AAA(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에서 제공하는 10% 할인을 받기도 하였다. 덕분에 뉴욕을 제외하면 51박에 평균 91달러, 뉴욕을 포함하면 1박에 평균 112달러에 이용할 수 있었다. 세금까지 포함된 이 금액이 아주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비교적 괜찮은 아침식사까지 포함되었고,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비싸다고도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6월 중순 옐로우스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준비였기 때문에 조금 여유롭게 이것저것 고려할 수 있었다. 몇 번의 여행으로 가져가야할 것과 현지에서 조달할 것 등을 나눌 수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주말 세일 등을 통하여 가격을 비교해 가면서 경제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미국에 와서 유난히 밥을 더 찾는 아이들 때문에 햇반과 3분 카레, 컵라면, 김 등은 한인마트 세일 하는 기간에 구입해 두었고, 필요한 생수와 간단한 간식은 코스트코(Costco)에서 준비했다. AAA에 가서 주요 도시의 지도와 안내책자를 받았다. 지도와 안내 책자의 부피는 예상보다 크고 무거웠다. 여행지별로 AAA회원들을 위한 할인매장 등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여행지에 가면 할인되는 곳들은 AAA표시가 붙어 있어서 굳이 가져갈 이유는 없었다. 6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각 도시별 이동 경로를 구글 지도로 시뮬레이션해보고, 우리의 희망 경로와 비교하여 조정하고 나서 출력해두었다. 숙소 예약 확인 메일과 이동 경로를 각각 출력하고 보니 크기가 작은 책만 해졌다. 숙소 예약 확인 메일은 보통의 경우 필요하지 않지만, 혹시라도 잘못된 경우 매우 유용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출력해 둔 것이었다.
뉴스에서는 폭염으로 동부에서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얼바인도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던 7월말, 우리 차창 앞에 붙어서 고집스런 말투로 길을 안내하던 사만다를 떼어서 렌터카에 옮겨달면서 횡단여행은 시작되었다.
- 존 스타인 벡 / 이정우 역, 《찰리와 함께한 여행》 궁리, 2006. [본문으로]
- 미국의 렌터카 회사들은 7일 단위의 렌트에 할인 혜택을 준다. 애초 계획대로 21일 동안 빌렸다면 상당한 할인혜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모션을 위해서 수시로 핫딜 상품이 나오기 때문에 수시로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차를 렌트할 때, 세금이나 보험까지 꼼꼼하게 계산하여 결정해야지만 가장 저렴한 차를 빌릴 수 있다. 메이저 렌터카 회사들의 경우, 대부분 새 차이기 때문에 차의 성능이나 상태가 매우 좋으며,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고장 시 서비스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처음에 연료가 가득했던 차들은 반드시 가득 채워 반납해야 하는데, 공항에서 반납할 경우 대부분 주유소를 찾지 못해서 그대로 반납하게 된다. 그럴 경우 시중 가격보다 두 배쯤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본문으로]
- 횡단 여행에 필요한 일정표, 약, 지도, 간식, 휴지 등이 들어 있어서 아이들은 아내의 가방을 ‘도라에몽 가방’이라고 불렀다. [본문으로]
- 미국에서의 인(Inn)은 말 그대로 경우마다 천차만별이다. 프랜차이즈 인일 경우에도 이름만 같을 뿐, 지역과 위치에 따라서 요금, 시설, 서비스 등은 제각각이다. 요금이 40달러에서부터 200달러 이상까지 제각각이지만, 시설이나 서비스가 반드시 요금에 따라 결정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지역과 위치에 따라 정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본문으로]
- 뉴욕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과도하게 숙소비가 비싸서 민박을 했는데, 민박 역시 호텔에 비해서는 저렴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거의 2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했다. 따라서 평균 숙박비를 산정할 때, 뉴욕이 포함될 경우 다소 금액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 [본문으로]
- 몇몇 곳에서는 할인되는 줄 몰랐는데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여는데, 직원이 거기에 꽂혀있는 AAA카드를 보고 할인을 해주기도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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