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따듯한 이유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금 이곳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시대다. 각종 매스미디어는 물론 1인 미디어, SNS 등을 통하여 엄청난 양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향한 목마름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고 구현하는 이율배반적인 시대, 그 안에 우리가 있다. 드라마만 보아도 <태양의 후예>, <시그널>, <W>, <도깨비> 등 무엇 하나 놓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우리는 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르지 않았던가? 게다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서 나름의 이야기를 구현하거나 향유하면서도 매순간 또 다른 이야기에 기웃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단지 이야기(story)를 하는(tell) 것을 넘어 향유자 스스로 공감하고 소통함으로써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과정(ing)을 의미한다. 지금 이곳의 스토리텔링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향유자가 얼마나 ‘가치’있는 ‘즐거움’을‘체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가치 있는 이야기를 소통하고 공감함으로써 즐거운 체험으로 승화시키는 과정, 그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이야기가 있는 사회, 이야기가 풍성한 시대는 행복하다. 이야기가 있다는 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준거를 만들고, 준거를 기준으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정보만으로는 삶의 총체를 파악할 수 없는 까닭에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상징적 내포와 서사적 원리 그리고 감성적․직관적 사유의 보고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스토리텔링은 이성과 논리에 의한 차가운 배제의 질서가 아니라 감성과 직관을 바탕으로 한 따듯한 포괄의 지혜를 지향한다.
존스 홉킨스 병원의 공동 설립자였던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의 ‘우유 한 잔의 기적’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배가 고파서 물을 얻어 마시러 온 하워드 켈리에게 우유 한 잔의 따듯함을 베풀고, ‘좋은 일을 할 때는 대가를 바라지 말고 하라’는 인생의 깨달음까지 준 소녀가 십여 년 뒤에 수술을 받고 치료비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자‘그날 한 잔의 우유로 모든 치료비는 지불되었다는 편지와 함께 은혜를 갚았다는 실화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좋은 일을 할 때는 대가를 바라지 말고 하라는 분명한 가치와 이야기를 듣는 동안 느껴지는 따듯한 체험 그리고 감동의 즐거움까지.
가치 있는 즐거운 체험은 전염성이 강하고, 누적되면 그 효과는 더욱 폭발적이다. 비슷한 일화를 소재로 만든 태국 통신사 True Move H의 광고는 하워드 켈리의 일화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이유다. 더구나‘좋은 일을 할 때는 대가를 바라지 말고 하라’는 앞의 이야기가 지닌 가치는 ‘베푸는 것이 최고의 소통’이라는 유사한 가치로 한층 강화된다. 두 이야기 모두, 1) 실화를 바탕으로 공감 가능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 2) 이야기 전반부에서 핵심 가치를 실천하고, 후반부에서는 멋지게 은혜를 갚음으로써 완결성을 높임으로써 전달력과 흡착력이 높은 스토리텔링을 완성한다. 더구나 3) 하워드 켈리의 일화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존스 홉킨스병원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태국 의사의 일화는 태국 통신사 True Move H가 지향하는 최고의 소통이라는 가치를 성공적으로 성격화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업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뚜렷하게 부각시킨 세계적인 기업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혼란스러웠던 2016년 우리 사회를 보면서, 빈약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이 말은 이야기할만한 화제가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이야기의 즐거운 체험이 빈약했다는 의미다. 가치 있는 이야기의 즐거운 체험의 전제는 소통과 공감을 위한 노력에서 비롯되며, 소통과 공감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예의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의 빈약한 이야기는 아프고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연휴동안 아내와 <도깨비>를 보면서 따듯했다. 사랑하기에 배려하고, 배려하기에 사랑하는 <도깨비>의 연인들, 좀처럼 갈피조차 잡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한 각자의 전생 이야기, 이승과 저승, 인간과 귀신의 영역을 넘나드는 소통과 공감의 노력, 그래서인지 900년 이상 살아온 도깨비와 이제 스무 살이 되어 첫 소주를 마신 은탁이의 러브스토리는 허황되기보다는 차라리 간절했다.
2017.01.20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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