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 자유와 광기의 즐거움

지미 볼리외, 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미메시스, 2013.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야마모토 나오키의 내일 다시 전화할게와 지미 볼리외의 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를 함께 읽은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르기에는 두 작품 모두 도발의 강도나 환기의 궁극이 매력적이다. 야마모토 나오키가 일상 안에서 꿈꾸는 혹은 조금 비껴서면 가능할지로 모를 섹스로 각자의 성적 판타지를 소환하고 있다면, 지미 볼리외는 자유와 광기의 당당한 질주와 동력을 즐겁게 그리고 있다. 전자는 현실의 구속 안에서 각자가 비밀스럽게 꿈꾸는 소심한 판타지로 그 안에서 향유자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은밀한 즐거움이 있다. 후자는 각자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자유와 광기의 질주를 보여준다.

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290쪽의 부피가 최소한의 서사 라인만을 갖추고 각각의 캐릭터는 자신의 욕망과 행복에 충실한 자유를 연출한다. 이 작품의 서사라인을 따라가면, 의도된 졸작 <정의로운 배반>(지독한 패러독스의 영화제목이 아닌가?)의 수익으로 구입한 코트 노르의 호텔에서 루이, 코린, 뮈리엘, 레옹스가 벌이는 광기어린 휴식을 만날 수 있고, 코린을 잊지 못하는 아니, 아니를 열망하는 가리에피, 가리에피의 넘어설 수 없는 친구 시몬 등의 이야기가 그 사이사이를 자의적으로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서사적 지향을 가지고 구조를 중심으로 깊이와 울림을 만들어내려는 일반적인 서사물과는 달리 이 작품은 각 캐릭터의 욕망과 그것이 그려내는 자유를 연출할 뿐이다.

더 이상 낯설거나 부끄럽지도 않은 맨몸과 순간순간 자극적인 검은색 음모, 색과 구도 그리고 연출이 보여주는 비언어적 도발, 대상과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섹스의 자연스러움, 거침없는 대사와 장면연출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에로틱하기보다는 자유롭다. 그것은 단지 텍스트 전체적으로 펜, 색연필, 매직 등 자유롭게 사용되었다거나 칸의 구속과 순서적 읽기에서 벗어났다거나 2장의 모두부터 보여주는 소설과 만화가 적절한 긴장을 이루고 있다거나 하는 만화연출적인 차원의 문제만 아니다. 루이와 코린이 중심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각자의 욕망과 행동에서 거침이 없고 자유로우며, 그들 각자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완전히 놓지 않는 절묘한 긴장선 위에서 질주하고 있는 까닭이다. 루이는 호텔을 구입하기 위하여 세상을 향한 야유와 같은 의도된 졸작 <정의로운 배반>을 만들지만 그것은 결국 세상을 견디기 위한 위대한 변절이었고, 루이와의 결혼을 꿈꾸지만 세상의 원칙으로부터의 자유와 정주를 동시에 꿈꾸는 코린이 보여주는 긴장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지극히 연극적인 공간에서 작위적인 듯 보이지만 거침없는 자유와 광기를 그려내는 이 작품 속 모든 캐릭터들은 무엇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다워지기 위한, 그래서 더욱 행복하고 즐거워지려는 진솔한 자유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과격하고 포르노그래피한 장면연출은 숨겨진 은밀한 욕망이나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분하게 그 지독한 장면들을 내면화하는 자유를 보여준다.

이 작품이 장별로 독립적으로 읽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울러 290쪽의 어느 부분을 펴고 보아도 도발적이지 않은 시도가 없고, 그 숱한 도발이 환기하는 광기와 자유의 경쾌함을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텍스트 전체가 아주 느슨하지만 매우 독립적인 형태의 자유와 광기의 즐거움을 기획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지점이다. 텍스트는 궁극의 지향을 향해 나아가는 이정(里程)의 기록이 아니라 순간순간 체험의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텍스트를 읽는 이유는 완결된 서사가 보여주는 마지막 지평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체험의 즐거움을 위해서이다. 즐길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은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를 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시작이 아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가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문득 낯선 장면에서 당신이 즐거울 수 있다면 돌아봐야할 것이다. 당신을 구속하고 있는 지금 이곳의 맨살을…….

<만화규장각>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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