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집필기준과 소문의 벽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거짓말은 세 사람을 죽인다. 거짓말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그 거짓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순간, 대부분의 오해를 풀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거짓말이 죽인 세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거짓말보다 무서운 것인 소문이다. 소문은 진실과 거짓의 모호한 경계 위에 서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보로 말하고 듣는 사람 모두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문의 대상이 되는 정보나 사람은 해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며, 설사 주어진다고 해도 일단 소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진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는데, 소문은 대부분 사람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2011년 한국 사회는 유난히 소문이 많다. 182억을 들여서 투표함도 개봉하지 못했던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의 부조리와 부끄러움으로 기억될 흑색선전의 서울시장 선거, 실체를 알 수 없는 한미 FTA 문제 등과 같은 최근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소문의 벽을 생각한다. 그동안 소문이 이토록 힘 센 적은 없었다. 이것은 그만큼 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거나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진실을 전달해야할 언론마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진실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진실을 요구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 그리고 진실을 향한 사회 전체의 깨어있는 의식만이 진실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지난 8일 발표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논란이 뜨겁다. 친일파 청산, 5·16 군사쿠데타,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제주 4·3 사건 등의 역사가 대강화(大綱化) 원칙으로 집필기준에는 빠졌지만 교과서 기술에는 들어갈 것이란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며, ‘독재정권이 아니라 독재화여야 한단다. 아픈 역사일수록 그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가려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그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논란은 단지 용어 몇 개를 수정하고, 몇몇 사건을 누락시킨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용어의 수정이나 사건의 누락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의식의 문제이며, 역사에 대한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소문으로부터 소환해야할 시점에 역사를 또 다른 소문의 미망 속으로 퇴보시켜버리는 이번 집필기준은 어떤 사건을 빼고 넣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나는 꼼수다>가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기존의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문의 전달이 아니라 소문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찾아낸 진실을 알리려는 두려움 없는 자세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는 우리들의 냉철한 지지가 간절한 시점이다. 역사교과서는 그 출발이기에 더 엄정하고 객관적이며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역사로부터 진실을 기대할 수 없다면, 현실은 결코 소문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한대신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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