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할 길이 있는 당신은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횡단여행 경유지마다 가져온 냉장고 자석. 귀국 후에 보니 냉장고표면이 플라스틱이어서 붙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짐
먼 길을 오랫동안 다녀왔다. 막연한 기대와 성취 사이를 오가며 되풀이해서 가슴으로 꿈꾸던 길이었다. 정작 떠날 때에는 그 모든 것을 집에 두고 떠났다. 가능한 조건보다는 불가능한 여건이 더 많았던 길이었기에 그저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신기하고 고맙게도 그 낯설고 험한 길을 떠나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조차 없었다. 그저 가족이 함께 먼 길을 떠난다는 가벼운 흥분만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무모했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바라기는 걸어서 횡단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아내와 딸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서 애초에 불가능한 희망이었다. 시애틀에서 얼바인까지 자전거로 여행을 하겠다는 제시카의 말에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도 우리의 몫은 아니었다. 기차나 비행기로는 구석구석 보고 싶은 것을 다 볼 수 없을뿐더러 시간에 구애가 너무 컸다. 장시간 운전의 피로만 넘어설 수 있다면 자동차는 기동력과 독립성 면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만 자동차의 속도는 우리들 욕심과 항상 비례하는 것이어서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여행이 아닌 이동이 될 수 있기에 경계가 필요했다.
여행자에게 허투루 지나칠 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길이 데려다 준 곳곳마다 눈을 주고 마음을 빼앗겨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계획에 없던 것에 넋을 놓다가 계획했던 것을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길 위에 꼭 보아야할 것은 어디 있으며 우연히 만나는 것은 또 어디 있으랴. 만나야할 것은 만나야할 곳에서는 만나는 것이고, 단지 그 모든 것들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 설렐 뿐이었다.
횡단 여행 내내 아이들이 아내와 나와 같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쓸쓸했고, 기뻤다. 분만실에서 갓 나온 첫째와 둘째의 모습을 보며 울컥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데, 아이들은 제 몫의 시간을 잘 데리고 아빠의 예상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고, 낯설고 깜찍한 표정을 짓고, 충만한 기쁨으로 나이테를 하나둘 품어왔건만, 내게 아이들은 아직 보호해야할 어린 새순들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시간을 정지시켜놓고 바라보기만 하던 내게 횡단 여행은 아이들의 제 나이를 돌려주었다. 그렇게 제 나이의 아이들을 보는 일은 대견하고 기쁜 일이었지만 유진과 효진의 어린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쓸쓸한 일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그 나이 때 내 모습을 자꾸 떠올렸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힘들 때마다 지금 내 나이 때를 건너시던 아버지 모습을 상기하며 위안을 삼는 것과도 닮은 듯 어긋난 맥락이리라.
자동차는 지극히 독립적인 공간이어서 오롯이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되고, 위안이 되어주었다. 폭염은 우리 차를 따라오지 못했고, 사막의 열기도 차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이따금 스텝의 회오리바람이 옆에서 위협했지만 두렵기보다는 신기할 뿐이었다. 차창에 부딪혀 횡사한 작은 날벌레를 주기적으로 닦아내야 했지만 그것도 앞으로 달리던 차의 시야를 가리지는 못했다. 며칠을 달려도 지평선은 또 다른 지평선을 보여줄 뿐 그 너머를 보여주지 않았다. 척박한 대지 위로 불모의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그 때에도 예외 없이 하늘은 압도적인 코발트빛이거나 스카이블루였다. 그런 풍경을 보며 몇 시간씩 달리다보면 어느새 길 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소리조차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사라지면 오롯이 차 안의 가족들만 남았다.
떠나는 곳과 돌아오는 곳이 같지 않은 출발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낭만적 유목을 꿈꾸지 못하는 이유다. 일상의 평온과 성실을 사랑하는 소시민으로서 여행의 달콤한 일탈을 희망할 뿐이지, 일상을 폐기하는 일탈은 감히 꿈꾸지 못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희망하지 않는다.
여행을 정리하며 돌아보니 우리의 횡단여행은 우리다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것은 애초에 후지와라 신야(藤原新也)처럼 철학적 방랑이거나, 한비야처럼 자기 확신의 자유이거나, 김훈처럼 풍경을 압도하는 은륜(銀輪)의 언어이거나, 이병률처럼 따듯하고 명징한 감성이거나, 성석제처럼 유쾌한 의뭉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시간 안에 보고 싶은 것들을 명분이나 목표에 구속되지 않고 돌아본 소박한 길이었다. 언제나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이 부족한 우리 가족에게는 가는 곳마다 새롭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오히려 모든 길이 고단한 기쁨이 되었다.
길이 매력적인 것은 그곳에 우연과 돌발이 있기 때문이다. 계획할 수는 있으나 확신할 수는 없는 어긋남의 연속, 그 어긋남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길의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는 돌발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을 때 여행은 자유가 된다. 그러한 이유로 우연과 돌발을 잠재운 길은 결코 여행이 될 수 없다. 하여 여행은 길을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데려가야 하는 것이다. 길이 데려가는 길 위에서 새로움과 변화의 자신을 만나는 일, 그것이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은 유연하고 부드럽고 넉넉하다. 여행은 분리나 경계의 단단함보다는 포괄과 탈경계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꿈꾸기 때문이다.
떠나야할 길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단한 일상에서 기진한 모습으로 황폐해진 나를 꾸역꾸역 버티게 했던 것이 무엇인지 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깨닫는다. 다시 길 위에서 짐을 꾸리게 될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나는 행복할 것이다. 이름도 지도 위의 위치도 낯선 그곳에서 만나는 로컬 맥주의 시원한 목 넘김처럼 행복할 것이다.
21일간의 길에 대한 꼼꼼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낯선 황홀과 설렘은 조금도 표현하거나 기록하지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빈약한 언어와 거칠고 성긴 감성 그리고 일천하기 그지없는 현실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모자란 것이 며칠 사이에 채워질 성질의 것이 아니고 보면, 부족한대로 드러내는 것이 진솔한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무릅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21일 동안의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새로운 신열을 앓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이며 동시에 그 길을 걷고 있을 그 때의 나에 대한 기대이다. 이 신열로 또 얼마간 난 은밀하지만 달뜬 행복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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