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과 인터넷서점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식탁에 앉아서 가계부를 정리하던 아내가 궁시렁거립니다. 아내는 곧 제 서재로 들어와 지난달 제가 산 책의 내역을 들이밀고 그 금액을 확인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책을 조금만 사라고 부탁을 하거나 가계부를 가져가라고 협박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공부하는 사람에게 사고 싶은 책을 사지 말라는 것은 전투병에게 실탄을 아끼라는 것과 같다고 우기거나 아내의 분위기를 봐서 이내 꼬리를 내리고 다음달에는 책을 사지 않겠다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모르겠습니까, 결혼 후 월말마다 반복되어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싸움의 결말을. 사실, 주말마다 각 신문에서 알려주는 책 정보나 이메일로 날아드는 인터넷 서점의 신간 안내는 유난히 책 욕심이 많은 저에게는 참기 힘든 유혹입니다. 그것들을 메모해두었다가 가능하면 제가 강의 없는 날에 집에 도착하도록 아내 몰래 주문을 합니다. 따라서 배달되온 책의 포장박스만 아내 눈에 띄지 않게 하면 완전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발각되고 저는 아내에게 비굴한 미소를 지어야합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는 제게 누이들과 당신의 구두를 닦게 하고 용돈 500원을 주셨습니다. 그 돈은 토요일 오후 축구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분식집에서 300원짜리 라면을 사 먹거나, 모아두었다가 시장 입구에 있었던 헌책방에서 삼중당 문고나 500원 내외하던 헌 책들을 구입하는 데 쓰곤 했습니다. 시장 입구 노점상들이 즐비한 가운데 환한 형광등 불빛으로 빛나던 그 헌책방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점 앞에 쌓아두었던 헌책들과 그 사이사이에 싸한 냄새와 함께 따듯하게 타오르던 카바이드 불빛, 천장까지 닿아있던 책꽂이와 빼곡히 들어차있던 책들, 그리고 거기서 풍겨나온던 얕은 곰팡이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고 싶은 책들은 늘 주머니의 돈보다 많았습니다. 책을 읽어보고, 주인아저씨에게 그것의 가격을 몇 번씩 되물으며 아쉬운 마음으로 주머니의 돈을 가늠하곤 했던 까까머리 소년은 사진 속의 그것처럼 나이를 먹지 않았나 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두고 주문 여부를 놓고 몇 번씩 고민하다가 덜컥 일을 저질러버리니 말입니다.

가방에 교과서 외의 책을 넣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으쓱했던 그 시절, 이어령의 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은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완과 급을 조절하는 문자의 호흡과 유려한 레토릭,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박학, 어디서도 읽어보지 못했던 독특한 관점을 새록새록 발견할 수 있었던 책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시기어린 질투는 저자가 강의하던 이화여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어이없는 열망을 낳기도 했으니, 지금으로서는 참 웃지 못 할 일입니다.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들은 오남매를 모두 일일이 돌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여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책을 보며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이미 한국문학전집을 다 읽고, 중학교 시절에는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적 호기심이 강했던 그 시절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육체의 악령같은 책들은 얼마나 가슴 뛰는 체험이었는지. 이처럼 척박했고 때론 천박했던 제 독서 이력은 대학에 들어와 이청준의 소설을 만나면서부터 달라졌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내내 제 화두였습니다. 이청준의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서 느끼던 즐거움과 막막함. 그 즐거움은 김현의 평론을 통해 몇 배 더해졌고, 막막함은 결국 제게 이론 공부를 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그나마 평단의 말석에라도 머물게 되었나봅니다.

이사할 때마다 책 때문에 이삿짐 센터에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하지만, 지금도 사야할 책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분주하다는 핑계로 서점에 가는 수고 대신 인터넷을 통해 책을 삽니다. 책장들 사이에서 꼼꼼하게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몇 번씩 망설이다 구입하기 보다는 인터넷에서 책에 관한 정보, 적립 포인트, 할인율 등을 확인하고 책을 구입합니다. 목돈이 생기면 사고 싶던 책들을 잔뜩 사서 두 손 가득 들고 힘들게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느끼던 정신적 포만감보다는 얼마나 빠르게 배달될 수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인터넷 서점의 경제성과 편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카바이트 불빛과 형광등이 어우러진 얕은 곰팡이 냄새나는 헌책방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무엇을 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책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겠지요.

여덟 살배기 첫째가 책 몇 권을 들고 제 서재로 들어옵니다. 뒤이어 책을 거꾸로 들고 네 살배기 둘째가 들어옵니다. 둘째는 아직 글을 읽지 못하지만 제 나름대로 책을 봅니다. 아마 녀석들에게 책은 아직 읽는 것만으로 즐거운것들이겠지요. 둘째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며, 저는 아마 제게 필요한 책들을 언제 주문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애경 사보> 2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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