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과 이수영, 그리고 성매매 특별법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가수 이수영이 돌아왔습니다. 관심을 노래를 압도할만한 화려한 댄스나 미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녀가 6집 <THE COLORS OF MY LIFE >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6집이지만 이미 9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 그녀의 노래나 음반의 질에 대해서는 평가할만한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저를 포함한 제 또래의 많은 이들 뿐만 아니라 제 아래로 위로, 즉, 음반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이들이 그녀의 노래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호흡보다 과하게 빠른 댄스 음악, 성찰이 아닌 분출로 일관하는 랩음악, 자폐적인 사랑을 넘어서지 못하는 발라드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이수영의 음악은 즐거운 충격이었습니다. 가냘프고 애절하면서도 강한 호소력은 소녀 가장, 부분적인 청각 상실, 효리의 친구 등의 소문과 어우러져 이수영만의 아우라를 만들어 낸 것이겠죠.
가수 이수영이 돌아왔습니다. <편지>, 어니언스, 원조 꽃미남, <하얀 면사포>, <숙녀> 등으로 이어지는 이수영에 대한 자유연상은 접어두고서라도, 새로운 앨범을 조심스럽게 내보이며 그가 보여준 미소는 지난시절을 훌쩍 뛰어 넘고 있었습니다. 소박한 통기타 반주와 멋쩍은 듯 보여주는 작은 웃음 그리고 진솔한 노랫말 등은 지난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놓을 수 없는 스타의 아우라였습니다. 어니언스하면 양파링을 떠올리고, 미사리에 모여 있는 라이브 카페는 그저 바람난 중년들의 모임 장소쯤으로 치부하는 젊은이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요.
2004년 9월 23일은 기억할만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 매매 특별법’이 실행된 날이니까요. 쉽게 23일이 기억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는 것은 그만큼 성매매 산업의 규모와 뿌리가 만만한 것이 아니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턱없이 너그럽기 때문입니다. 하여 제발 그날이 기억할만한 날이 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말보다 왜 우리는 성매매에 대해서 너그러운가 하는 것입니다. 백보 양보해서 젊은 사람들이야 철이 없어서, 젊은 몸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런다고 치부해도, 그만한 딸을 둔 사람들까지 왜 그렇게 성매매에 대해서는 너그러운가 하는 것이지요. 성급한 일반화의 혐의를 무릅쓰고, 그것은 중년의 문화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부모와 자식 간에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 나이 들어서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손아래 사람들이 보아도 유쾌할 수 있는 문화, 무엇보다 세대나 친소관계를 넘어설 수 있고 쉽게 하나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 그것의 부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입니다. 하여 문화의 부재는 삶의 파행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 그 가운데 ‘지금 이곳’이 있습니다.
며칠 전 제자가 아주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게 샤갈 전시회 초대권을 내밀었습니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어… 시간이 없는데…” 하다가 그냥 고맙게 받았습니다. 언젠들 우리 삶에서 시간이 남을 때가 있을까,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시간을 일부러 ‘남겨서’라도 찾아보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히 주장하자면, 댄스 음악과 비주얼한 가수들만 판친다고 탓하지 말고, 젊은이들의 음악도 들어도 보고, 아니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도 적극적으로 구입함으로 해서 자신들만의 문화시장을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집창촌이나 룸싸롱에서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스스로 당당함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아들 생일날 아들이 좋아하는 노래나 랩을 보여주는 아버지, 아버지 생신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아버지 젊은 시절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대는 아들의 모습…. 이것이 쑥스럽고 작위적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들과 어버지 세대의 문화가 모두 풍성하고 자유롭게 소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게 이수영은 <하얀 면사포>와 <휠릴리> 사이에 있습니다.
이번 가을, 소리바다에서 다운받지 말고, 벅스뮤직에서 내려 듣지 말고, 이수영의 앨범을 구입해서 차에 걸어야겠습니다. 작은 레코드점에 찾아가서 아주 천천히 앨범을 뒤적이며, 주인이 녹여놓은 커피향의 호사도 누리며 이수영의 앨범을 사야겠습니다. 혹여 더 먼 감성이 살아나서 어니언스 이수영의 앨범을 사게 되더라도, 그만으로 넉넉해질 것 같습니다. 유난히도 강의가 많은 이번 학기, 여기저기로 차를 몰면서 그녀의 노래 안에서라고 가슴 뛰던 시절의 기억들을 만나보아야겠습니다.
2004년 《오픈아이》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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