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풍경과 시간, 그 거리에 관하여
- 마누엘레 피오르, 《초속 5000 킬로미터》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초속 5m>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말하지만 심층에서 만나는 것은 시간과 속도가 빚어내는 거리(distance)다. 존재 간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 그 존재론적 고독을 초등학생부터 성인이 된 현재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그 거리는 존재의 상이한 속도와 돌이킬 수 없는 존재론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마누엘레 피오르의《초속 5000 킬로미터》는 떠남과 돌아옴의 어긋한 시간, 방황과 자유의 아이러니한 긴장, 정주와 유목의 거부할 수 없는 진동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생애 주기로 본다면 <초속 5m>의 뒷부분처럼 보이면서 좀 더 현실적이고 세속화된 풍경을 보여준다. 《초속 5000 킬로미터》는 삶이 지니고 있는 선택과 회한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유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무엇보다 인간의 가장 뚜렷한 징표인 모순을 부정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삶의 여정을 긍정하는 쓸쓸하지만 따듯한 작가의 시선이 압권이다. 늘 같은 풍경과 같은 시간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떠남과 유목을 꿈꾸지만 동시에 돌아옴과 정주를 욕망하는 이율배반의 삶을 루치아와 피에르를 맞짝으로 설정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러한 이율배반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 어디 공간과 시간뿐이랴, 결국 사람의 관계도 그러한 아이러니 안에서 기쁨과 슬픔, 떠남과 돌아옴, 현존과 부재, 현재와 추억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을. 그러한 지리멸렬함 속에서 삶은 지속되고 번복될 수 없음을 쓸쓸하게 수납하는 것이 아니까?
《초속 5000 킬로미터》의 매력은 스토리만큼이나 매력적인 유니크한 작화와 연출에 있다. 아련한 추억 같기도 하고, 자신 없는 선택처럼 흐릿함 같기도 하고, 너와 나의 엇갈린 회한 같기도 한 번짐과 불분명한 경계가 몽환적인 수채화로 구현되고 있다. 과감한 점프컷(jump cut)의 활용하여 시간과 장면을 뭉텅 비워둠으로써 예상 가능한 서사를 직접 표현하는 대신 향유자의 추체험을 소환하여 스스로 그 간극을 빼곡하게 채우게 한다.
루치아의 편지를 독백처럼 기술하면서 편지의 내용과는 무관한 애니메이션과 스벤과의 키스 과정을 교차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시퀀스(pp.48-49), 이집트의 열차 안에서 피에르가 오한을 느끼면서 보게 되는 루치아의 육감적 환영(pp.64-69)과 루치아와 니꼴라의 밀회에 대한 질투어린 상상이 겹치는 시퀀스(pp.71-76), 떠나지 못하고 이제는 떠날 수 없어진 시어머니에게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루치아의 시퀀스(pp.92-96), 중년이 되어 재회한 피에르와 루치아가 보여주는 떠난 자와 돌아온 자 그들 사이에서 떠나지도 못했던 자의 말하지 못했던 관계(pp.123-125)와 그들이 보여주는 성공하지 못한 중년의 쓸쓸한 섹스 시퀀스(pp.128-131)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성긴 듯 촘촘하게 드러나는 서사의 밀도를 매력적으로 구현한다.
밝은 노랑(bright yellow)과 강렬한 노랑(vivid yellow)과 밝은 연두(bright yellowish green)가 중심색이었던 젊은 시절의 첫 만남에서부터 연보라(soft purple)와 밝은 보라(bright purple)로 바뀌면서 화려하지만 불안과 고독으로 전개하는 서사 전개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는 다시 노랑과 연두에 내주는 작가의 시선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욕망들의 지리멸렬한 삶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순간들, 아름답게 질투했던 그 순간들, 언제나 소환에 응해주는 그 시절의 추억 속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이고 싶은 작가의 따듯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초속 5000 킬로미터》를 향유하는 사람은 아마도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에서 느꼈던 질투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질투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가진 삶에 대한 애정과 성찰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초속 5000 킬로미터》는 기분 좋은 그러나 오랫동안 기억해야할 질투의 다른 이름이다.
<만화규장각> 201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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