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ody'가 차라리 폭력인 까닭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다시 원더걸스다. 'Tell me'에서 시작된 원더걸스 열풍은 'Nobody'까지 지칠 줄 모른다. 원더걸스는 소녀시대만큼 예쁘다거나 깜찍하지도 않고 씨야나 브라운아이드걸스처럼 가창력으로 승부를 거는 가수도 아니다. 어리다고는 하나 보아를 생각하면 그리 어린 것도 아니다. 더구나 댄스가수라고는 하지만 그녀들의 춤은 비나 박진영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왜 원더걸스에 열광하는 걸까?

원더걸스 열풍의 원인이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콘텐츠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내적 요인으로는 익숙한 복고풍 리듬,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을 강조한 원색 중심의 스타일, 멤버 간의 조화보다는 개성적인 불일치, 쉽고 편안하게 반복할 수 있는 노래가 새롭지만 지극히 편안한 B급 감성에서 찾을 수 있다. 외적 요인으로는 'Tell me' UCC와 박진영의 안무 영상 그리고 발굴부터 데뷔까지의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의 지속적인 제공 등이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Tell me' UCC는 존 피스크가 이야기했던 텍스트적 생산성의 실례로서, 향유가 가장 활성화된 상태다. 아주 극적인 순간에 미국에서 보냈다는 박진영의 안무 영상은 치밀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지만 매우 개연성 있고 후광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며칠 전, 이왕표와 밥셉이 보여주었던 맥락 없는 타격과 어색한 긴장의 기자회견을 상기해보면, 박진영의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인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20-30%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무한도전>의 프로그램 포맷은 포맷의 없음이다. 특정한 틀이나 형식을 지향하기 보다는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나 방식을 발굴해서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즐기는 지극히 단순한 포맷이다. <무한도전>의 이러한 전략은 무식, 무능력, 유치함으로 각기 특화시켜 설정한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재미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한 이기심과 유치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긴장을 이루거나 삶의 의미나 성찰의 깊이를 확보하는 서사의 역할은 <무한도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도전>과 같은 소위 한국식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 포맷은 동일한 시간대에 스핀오프(spin-off)<12>,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지금 이곳 예능 콘텐츠의 지배적인 형식이 되었다.

그렇다고 작위적인 중간 이하의 캐릭터 설정, A/B급의 의도적 대비, 사소하고 무용한 것들에 목숨 거는 상황, 어설픈 계몽, 생경한 조어와 말 줄이기, 유치한 장난, 어이없는 무식 등을 이 글에서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폭력, 섹스, 유치, 천박 등 주류문화에서 억압된 근원적 욕망을 B급 문화를 통해 배설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성향이야 새로울 것도 없고, 그것이 위협적이라고 하기에는 과장된 호들갑에 가깝다. 강박 없는 즐거움은 문화의 생산 동력이며, 즐거움의 유혹은 딱딱하고 무거운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오히려 신선한 긴장이 될 것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A급이 거세된 B급만의 획일성은 A급의 문화 권력만큼이나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비보이들의 배틀에서 보듯이, A급 문화의 가치 중심의 서열주의가 아닌 다름을 전제로 한 진솔한 대중 장악의 퍼포먼스B급 문화의 미덕이라는 점에서 다름을 전제로 한 다양성은 필수적이다. 물론 그 다양성은 A급 문화가 될 수도 있고 B급 문화 안의 그것일 수도 있다.

원더걸스의 'Nobody'는 강력한 매혹이다. 다만, 그것은 브라운아이드걸스, 부가킹즈, 빅뱅 은 물론 장윤정, 송대관, 조용필과 같은 다양성을 배경으로 할 때에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Nobody'만을 부르며 손뼉을 치는 모습은 그래서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곧 폐지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소중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대신문 2008.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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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대견한 탈퇴

 

박기수(한양대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원더걸스의 선미가 탈퇴를 했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공식발표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텔미노바디로 국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고 미국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를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원더걸스에서 굳이 탈퇴를 선언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보아의 아이돌 한류 이후 전방위적인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최근의 가요계이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물론 브라운아이드걸스, 포미닛, 2NE1, 애프터스쿨, 카라, 티아라, 동방신기, 빅뱅, 슈퍼주니어, SS501, 샤이니, 2AM, 2PM, FT 아일랜드 등 새로운 콘셉트와 아이템으로 매혹하는 아이돌의 등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물론 조기에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하여 스타로 육성하겠다는 것도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향유 주체와 비슷한 연령의 아이돌을 통하여 스타와의 동일시를 강화하고 몰입과 소통을 극대화하겠다는 매우 유효한 전략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최근 아이돌은 단지 젊은 층의 지지뿐만 아니라 아저씨 부대와 아줌마 부대의 열광을 이끌고 있다. 로리타 신드롬과 상관하여 음란한 판타지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엔터테인먼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만큼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획의 성과라고도 평할 수 있겠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어리다는 데 있다. 사회적, 문화적 체험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 상태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며 무차별적인 대중의 열광과 비난을 감내해야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얼마 전 2AM의 조권은 자신처럼 긴 연습생 시절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단지 연습 기간이 길었다는 하소연이 아니라 연습기간 내내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청소년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말이다. 또래들과 함께 즐기며 체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끝이 보이지 않는 연습 기간으로 보내야 하고, 데뷔 이후에는 그동안의 투자를 보상받기 위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하기 때문에 다시 또래들의 체험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악순환 속을 거듭해야만 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나 활동이 아니라 기획사의 콘셉트에 따라 만들어진 캐릭터와 아이템으로 활동해야하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와 환호가 높을수록 그들의 우울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돌은 이 시대의 극단화된 욕망이다. 향유자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을 아이돌에게 투사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끼고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조기교육, 노예계약, 또래로부터 유리된 생활, 몸짱 등 아이돌과 관련된 코드들은 모두 우리시대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미의 탈퇴는 반갑고 대견하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스스로 판단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려는 노력! 지금 이곳의 우리가 갖지 못한 고민과 결단의 모습을 선미에게서 보아서 일까? 난 선미의 탈퇴가 반갑고 대견하다.

2010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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