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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은 황우석이 아니다

 

 

박기수(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황우석은 이제 황우석이 아니다. 줄기세포 선도연구자로서의 황우석은 이미 개인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배아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거친 레토릭이 가능하다면, 이미 황우석은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담론으로 등장한 것이다.

우린 먼저 황우석 교수의 업적을 세계 최고나 생명공학의 선도 기술이라는 식의 발표에 눈이 멀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파악이나 성격에 대한 고민 없이 막연한 기대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고 진지하게 성찰해야한다. 사실 우리는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의 차이를 구분하거나 그 연구의 내용을 조금 더 알려는 노력보다 그 연구의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당장 모든 난치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인지, 심지어 황우석 교수가 노벨상을 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따위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가?

분명한 것은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는 그 가시적 성과나 향후 그것을 활용한 기대만큼이나 생명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논의의 활성화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깊이를 확보해야하는 시점에 다다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루에 41백 명, 1년에 150만 명의 낙태가 행해지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배아줄기 세포를 가지고 생명이냐 아니냐고 논쟁하는 것은 서글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의 낙태문제에 대하여 그동안 종교계가 보여 왔던 원칙적이지만 소극적인 대응에 비하여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단호한 태도에 당혹스런 의아함을 감추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그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서글픈 아이러니나 당혹스런 의아함 따위야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적으로 배양된 줄기세포가 자궁에 착상돼 인간이 될 확률은 없어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인간복제는 구분돼야 한다는 황우석 교수의 주장이나 사람의 생명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는 순간부터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체인 배아를 복제하여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단언하는 종교계의 주장은 어느 것 하나 틀린 것이 없다. 환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기 때문에 생명윤리와 상관없는 성체줄기세포 방식을 선택해야한다는 주장이나, 성체줄기세포 방식은 수명도 짧고 분화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치료에 한계가 있으므로 배아줄기세포 방식을 택해야한다는 주장도 모두 납득할만한 것들이다.

어설프게 황희 정승의 흉내를 내자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주장들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제부터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단호한 주장만 있고 상대 논리가 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닫아버린 논쟁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는 열린 태도를 기반으로 엄정한 논리와 논거를 통한 설득의 노력이 지금은 필요한 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우석 교수와 종교계 인사가 만났듯이 과학과 종교, 과학과 윤리는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서 만나고 토론해야한다. 과학이든 종교든 윤리든 간에 모두 인간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만나야할 이유임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르지 않다면 만나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만나서 격론을 벌여야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소망한다, 이번 논쟁이 보다 격렬하게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그것의 격렬할수록 생명 윤리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깊이 있는 천착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이 오래 지속될수록 논쟁의 내용은 인간다움에 무게를 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생명 윤리가 그 존엄성과 상관된 것이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는 신의 몫이자 우리 인류 공동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생존을 넘어서 인간다운 품위와 자존을 만들어가는 노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망한다,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와 같이 우리의 존귀함을 깨닫고 지켜갈 수 있는 의식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시작될 수 있기를. 아울러 황우석이 황우석만이 아닌 것처럼, 생명은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인간다움은 실체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것을 찾고 가꾸고 지켜가려는 노력이라는 것은 이번 논쟁이 결과하기를.

한화한화인2005.6

이 글이 쓰여지고 불과 몇달 뒤에 황우석 사태가 벌어진다. 생명윤리 이전에 연구윤리에 대한 검증이 우선이었다. 급한 신화화를 검증하고 되묻는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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