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삶의 기쁨이야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어제는 둘째 생일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많았고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그저 아침 따뜻한 미역국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했던 어린시절의 생일을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참 쑥 쑥스러운 짓을 하네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에 때마다 선물하는 것이 몹시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아침부터 맞춘 떡을 찾아다가 첫째 친구 엄마들과 나누는 모양이었습니다. 둘째 생일이라고 첫째가 친구들에게 알려서 뭐 그래그래 되었답니다. 백설기 한 조각 뜯어 먹고 나왔다가 점심 무렵에 들어가서 떡을 들고 본가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절에 가시고 아버지 혼자 계신데 떡을 드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삼성플라자 플레이 타임에 갔습니다. 아이들을 놀라고 들여놓고 아내와 몇 년 만에 팔짱도 기고, 커피도 마시고, 아이 쇼핑도 했습니다. 두 시간쯤 후에 아이들을 찾아서 피자헛에 가서 피자를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보아둔 둘째 강아지 인형을 산다고 2001아울렛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고맙답니다. 글쎄, 아이들과 그저 하루 함께 했다는 것이 고맙다는 뜻 같은데, 그 말에 오히려 제가 미안했습니다. 얼마나 가족들과 하는 시간이 없었으면 아내는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요. 집에 있어도 서재에서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늘 일 때문에 분주하니 저도 모르게 그랬나봅니다.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하고 씻겨주었더니 이내 잠이든 모양입니다.
며칠 전, 오전 강의를 나서는데 아내가 밖에 비가오니 첫째 우산을 가져다주고 나가라고 해서 아이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도 가깝고 강의하러 가는 길이라서 우산을 들고 아이 교실 옆에서 공부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밖에 아이의 신주머니를 찾아서 우산을 넣어두고 왔는데, 저녁에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가 무척 좋아했습니다. 녀석의 기쁨이 저를 가르칩니다. 제게 부족한 사랑과 사랑하는 법을.
사는 일이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나이를 세는 일만큼이나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은 양가적 감정인데, 배워야할 것만큼 아직 제가 어설프다는 뜻이고, 또 모르는 그 만큼 새롭게 저를 채워줄 것이 많으니 기쁜 것이겠죠.
둘째는 이제 네 살이 되었습니다. 36개월을 꽉 채우고 녀석은 참 신기하게 조금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목요일에 아내와 아니는 유치원 등록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용변을 혼자서 가리려고 하고 반찬도 이것저것 먹으려 하고, 제 어미가 무엇을 시키면 “예, 엄마-”라고 제 언니도 쑥스러워서 잘 하지 않는 말을 자주합니다.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제가 쓰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가 전혀 다른 순간에 한방씩 날리기도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노트북에 담아두고 자주 꺼내 봅니다. 사진을 보아야 커가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참 부쩍부쩍 큽니다. <조블랙의 사랑>에서 아버지의 말처럼, 저도 녀석들에게 너희는 내 삶의 기쁨이었다고 말하길 소망합니다. 물론 녀석들은 지금도 제게는 삶의 기쁨입니다.(20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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