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레델피아'에 해당되는 글 1건

Freedom is not Free

815일 필라델피아워싱턴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필라델피아는 우리에게 비로 기억되고 싶은가보다. 숙소를 나서는 동안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많은 양의 비는 아니었지만 워싱턴 근처까지 오락가락하며 우리 뒤를 따라왔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서 아내와 아이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어제 비를 맞아서 피곤한 것인지, 워싱턴 일정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지난 3주 동안 미뤄놓은 일들을 몰아서 해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몰라도 모두들 조용했다.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노곤했다. 포만감 때문인지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졸렸다. 할 수 없이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가지고 차에 올랐는데도 졸음은 좀처럼 달아나지 않았다. 결국 휴게소에서 30분쯤 눈을 붙이고 떠나야 했다. 여행이 진행될수록 의식과 행동은 낯선 시공간에 기민하게 적응해갔지만 몸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나보다.

워싱턴에서의 숙소는 메릴랜드 쪽에 잡았기 때문에 워싱턴으로 먼저 가서 시내를 둘러보고 나중에 숙소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워싱턴 근처에 왔을 때 비는 그쳤다. 워싱턴에서 맨 처음 찾은 곳은 미국 국회의사당(United State Capitol)이었다. 남북전쟁의 영웅이며 18대 대통령을 지낸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의 동상 부근 주차장에 여유가 있어서 차를 댔다.

남북전쟁 당시 병사들

율리시즈 그랜트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 동상 좌우로 남북전쟁 당시 병사들을 기리는 조형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청동의 힘도 당당하게 말 위에 앉아 있는 그랜트 장군의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남북전쟁 당시 비극의 현장에 있던 병사들의 모습이 보다 생생하게 서 있었다. 그 생생함은 박물관에서 만나는 박제의 복원된 힘줄이 보여주는 가소로움이 아니라 비극의 현장을 소환하는 힘, 바로 그것이었다. 한참을 병사들을 바라보다 그랜트 장군을 본다. 알코올 중독으로 군에서 제대하고 두 번의 사업 실패로 그토록 자신이 버리고 싶어 하던 가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던 그랜트에게 남북전쟁은 하나의 기회였단다. 그는 군대로 복귀하여 눈부신 전과를 올리고 마침내 로버트 리 남군사령관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남북전쟁의 영웅이 되었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사람이다. 알코올중독자로 군에서 쫓겨나고 두 번의 사업 실패를 연속할 때 누가 그를 영웅으로 보았겠는가? 알코올중독자에게서 북군 사령관의 가능성을 찾아낸 링컨의 밝은 눈도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지도자란 흐림 없는 눈[각주:1]으로 그런 인재를 찾아내고 사심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동상 앞쪽으로 캐피톨 리플렉팅 풀(Capitol Reflecting Pool)이 있었고, 그 앞으로 멀리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이 보였다. 지도에 따르면 그 너머로 다시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이 있고 그 너머에 링컨기념관이 있고, 그 뒤로 포토맥 강이 흐르고 있다. 소위 내셔널 몰(The National Mall)이라는 거대한 잔디 광장을 사이에 두고 동쪽 끝에는 국회의사당, 중간에는 워싱턴 기념탑, 서쪽 끝에는 링컨기념관이 마주 보고 있었다. 국회의사당과 링컨기념관 사이가 직선거리로 3쯤 되는데, 그 중간에 국립미술관, 국립 자연사 박물관, 미국 역사박물관, 라틴아메리카 근대미술관, 베트남 참전 용사비, 한국전쟁 참전 용사 추모공원, 항공우주박물관, 허시혼 미술관, 스미소니언 본부 등이 모여 있는 구조였다.

미국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에서 바라본 내셔널 몰과 워싱턴 기념탑

여행안내 책자에 국회의사당은 캐피틀 힐(Capital Hill)에 세워졌다는데 근처에 언덕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와서 직접 보니 정말 언덕은 없고 국회의사당이 자그마한 언덕 크기로 서 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여유롭고 한가한 주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의회가 열리는 기간이 아니면 개방을 하고 무료 투어가 진행된다는데, 거기에 참가하려면 아침 9시부터 나누어주는 티켓을 교부받아야 한단다. 이미 시간이 늦어서 투어는 불가능했고, 국회의사당 주변을 둘러보았다. 국회의사당 뒤로 최고재판소, 국회도서관, 셰익스피어 도서관 등이 있다는데, 직접 가보지 못했다. 테러에 대한 공포로 국민들은 떨게 만들어 놓은 나라의 국회의사당 주변의 경계는 의외로 단출했다. 무장한 경관 한 명이 의사당 계단 부근 그늘에 무료한 듯 기대어 있었고, 순찰차들만 한가롭게 오가고 있었다.

미국 국회 의사당은 웅장한 규모나 건물의 미학보다 그 앞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더욱 빛났다. 보이는 곳에서는 적어도 삼엄한 경계 따위는 없었다. 사진들을 찍고 무장한 경관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면서 아주 천천히 즐기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도 사진을 찍고 아이들에게 미국의 상하양원제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화장실을 찾았다. 횡단여행에서 가장 곤란한 것은 화장실을 찾는 것이다. 가장 쉽게 이용하는 것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거기 있는 편의점 안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인데, 근처에 주유소가 있을 리 만무했다. 마침 순찰차 주변에 경관들이 있기에 물었더니 근처 워싱턴 식물원(U. S Botanic Garden)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단다. 식물원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규모가 컸다. 1840년대 열대식물을 채집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워싱턴 식물원은 약 12,000 여종의 식물이 있다고 한다. 사실 팸플릿에 12,000여종이라고 하니까 아는 것이지 우리 같은 사람 눈에는 꽃이나 모양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몇몇 식물을 제외하고는 잘 구별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은 라운지를 지나서 식물원 깊은 곳에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 본 화장실 중에 가장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중앙에 라운지를 중심으로 사막식물, 약용식물, 하와이의 식물, 아이들의 정원, 원시 정원, 난초들 등이 테마별로 전시되고 있었는데, 식물원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무척 여유롭게 둘러보고 나올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 북쪽 주차장

국회의사당 북쪽 주차장옆 길거리의 동전주차기

차를 다시 빼서 국립 자연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쪽으로 가보니 길가에 주차를 할 수 있었는데 빈 자리가 없었다. 주변에서 주차할 장소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다시 국회의사당 쪽으로 와서 캐피톨 리플렉팅 풀 북쪽에 주차를 했다. 국회의사당 앞 캐피톨 리플렉팅 풀의 남쪽과 북쪽으로 주차 공간들이 있었는데, 처음에 주차한 곳은 남쪽이었고, 이번에 주차한 곳은 북쪽 주차장이었다. 길 건너편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곳은 주차할 장소가 없는데, 그나마 이쪽은 주차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주차하고 국립 자연사 박물관을 보러 갔다.[각주:2]

국립자연사박물관 전경

뉴욕에서 미국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을 보면서 다소 실망했었다. 워싱턴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은 규모 면에서는 뉴욕에 비해서 떨어지지만 전시 방식이나 동선 전략 등은 오히려 돋보이는 곳이었다. 많이 보여주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 사례였다. 특히 유사 테마의 연계가 돋보였는데, 가령 포유류, 조류, 어류, 공룡, 인류까지 모두 뼈(bone)로 연결하는 것은 같음다름의 연속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곳곳에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감으로써 관람의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자연 속의 동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도 무척 인상적인 것이었는데,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이 동물들에게서 표현되는 장면을 극적으로 포착한 사진들이었다. 저 순간을 찍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하고 기다렸을지 생각해보면, 사진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지독한 인내임에 틀림이 없다.

이곳에는 도자기 등 200여점이 전시된 한국관이 있었는데 전시된 물품이나 전략 면에서 많이 아쉬운 전시였다. 이번 여행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면 항상 중국과 일본 전시물은 규모 면에서나 전시된 작품 면에서도 일정 규모와 수준 이상이었다. 반면 한국관은 그렇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던 터에 이곳은 그나마 제대로 된 한국관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왔었는데, 규모만 조금 커졌을 뿐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다. 도통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처럼 콘셉트가 없었다. 30평 정도의 크기에 200여점의 전시물 규모라면 보다 미시적으로 전략화된 콘셉트가 필요했다. 한국 문화를 맨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곳에 지금 전시된 것 같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모호하고 난해하다. 한글과 세종대왕 사진만을 걸어놓고, ‘한글은 한국문화의 자랑이라는 설명이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관람객의 입장과 수준에 맞는 전시물의 구성과 설명이 많이 아쉬운 전시였다.

박물관에서 그림 그리던 청년

관람을 마치고 나오다가 2층 난간에 기대에 노트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청년을 보았다. 목에는 카메라를 걸고 노트에 그림 그리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이 신선해서 옆에서 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흔연히 그러란다. 박물관을 즐기는 나름의 여유가 부러웠다. 박물관 밖에서 박물관을 그리고 있는 두어 명의 사람들을 더 보았는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박물관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신선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2>(Night At The Museum 2: Battle Of The Smithsonian, 2009)의 배경으로 요즘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배경이 가장 구체적인 물건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박물관이라는 아이러니가 재미있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은 확실히 뉴욕의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비하여 몰입도가 좋은 것은 분명했다. 전시 콘셉트나 동선 통제 등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탓이겠지만,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 걸으며 느껴지는 주변의 분위기도 상당히 작용했으리라. 내셔널 몰 주변을 따라 늘어선 미술관, 박물관과 끝없이 이어진 잔디밭 안에서 눕거나 앉아서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관람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 자연사 박물관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눈앞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건너왔을 시간이 좀처럼 가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몸 안에 그 시간들을 오롯이 기록하고 있을 전시물들은 깊고 서늘해 보일 뿐이었다. 적막한 시간을 홀로 견디다 누군가 눈 밝은 이의 섬세한 손길로 살아나 이곳에 모여 있는 그것들 앞에 우리가 건너고 있는 일상의 시간은 고작 한 줌일 뿐이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 관람을 마치자 6시가 다 되어 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6시면 예외 없이 문을 닫기 때문에 다른 곳을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내셔널 몰에는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근처에 있다는 백악관(White House)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전에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박물관 앞 잔디밭 쪽으로 작은 가판대에서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팔았다. 그것으로 저녁을 대신하기로 했는데, 그곳도 문 닫을 시간인지 직원들이 마감 분위기였다.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쌌고 음식의 질도 엉망이었다.

사만다가 몇 번을 헤매는 바람에 우리는 프리덤 플라자(Freedom Plaza) 주변에 주차를 하고 걸어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 여유만 있다면 걷는 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다. 차로 갈 때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둘러보고 싶은 것을 모두 둘러보면서 걸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워싱턴은 계획된 도시답게 번잡스럽지 않고 가지런했다.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았고, 화려했지만 격조가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물들을 원형으로 하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당당하고 굳건해보였다. 강건한 석재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건물은 지나온 시간의 변화를 조금도 느낄 수 없어서 오히려 차가워 보였다.

백악관은 200년 간 미국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어 왔다는데, 겉보기에는 생각보다 규모도 작고 경계가 삼엄하지 않았다. 지붕 위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사방을 살피는 저격수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주변 경계가 허술해 보이니 아내가 오히려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백악관을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는데 알아보니 6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단다. 백악관 정면에 철책 앞까지는 접근이 가능했는데 그 앞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조금 있었고, 그 앞으로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는 시위 텐트가 보였다. 그 텐트는 작고 남루했는데 주변에 구호만 적혀 있을 뿐이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몇 년째 그러고 있고 당국에서도 내버려두는 모양이었다. 백악관 앞에서 저렇게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그대로 두고 있는 당국이나 둘 다 참 대단하다고 아내와 이야기를 하며, 길 건너 라파예트 스퀘어 쪽으로 건너갔다. 백악관 앞쪽에서 차량을 통제했기 때문에 도로 위에는 차가 없어서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삼각대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백악관 지붕위의 스나이퍼

라파예트 동상

미국 역대 대통령 피규어. 워싱턴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소품

라파예트 스퀘어(Lafayette Square)는 백악관 정면 길 건너에 있는 광장이다. 이곳에는 미국 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각주:3]의 동상과 독립전쟁 당시 활약한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fayette)[각주:4]과 장군들의 동상이 서 있다. 앤드류 잭슨이나 라파예트 후작이나 모두 전쟁영웅이었고 당시로서는 다소 진보적인 민주주의를 꿈꾸었던 인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시대를 극복하지 못하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21세기 백악관의 정책을 보면서 이 두 인물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라파에트 스퀘어에는 한가롭게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서 독서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권위나 특별함 대신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드려야지 가능할 풍경이었다.

백악관 주변에 있는 선물가게에서는 역대 대통령과 백악관이 상품으로 팔리고 있었다. 대통령 관련 상품은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일부는 역대 대통령의 허위나 위선을 풍자하는 재임 시절의 돌발영상이었다. 아기가 클린턴 양복에 토하는 장면, 아버지 부시가 사랑스럽게 아기를 안았다가 사진 촬영이 끝나자 매몰차게 아이를 밀어내는 모습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대통령과 백악관 관련 상품으로만 기념품 가게 하나를 만들 정도로 상품 종류가 많았다. 미국인들은 대중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이미지를 상품화하고 소비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권위의 옹벽 안에서 지나치게 신비화된 이미지보다는 실수 가능한 인간적인 이미지가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저녁 8시가 다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해가 남아 있었다. 서둘러서 링컨기념관으로 이동했다. 워싱턴 시내 어디서나 보인다는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은 돌아다니면서 보니 정말 어디서나 보였다. 워싱턴 기념탑은 말 그대로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기 위해 37년 만에 완성한 169m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조구조물이다. 워싱턴에서는 이 탑보다 높게 짓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고층빌딩이 보이질 않았다. 워싱턴 기념탑 앞에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이 있어서 조명을 밝힌 모습으로 물 위에 비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리플렉팅 풀이 공사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은 해질 무렵이 아름답다는 말에 느지막이 찾아간 것이다. 택시기사에게 물어서 다행히 주차를 하고, 걸어서 링컨기념관으로 갔다. 세그웨이를 타고 링컨기념관 주변을 돌아보는 투어팀들이 우리 앞으로 지나갔다. 거기에 참가하고 싶어서 물어보니 가격도 비싸고, 효진이는 어려서 안 된단다. 아쉬워하며 링컨기념관 위로 올라갔다. 날이 흐려서 그 유명한 석양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하늘은 코발트빛으로 가득했다. 오늘 돌아본 여러 군데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해질 무렵에 이곳이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었나보다. 링컨 좌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옆에 있던 한국 학생들이 사진을 찍어 달랜다. 사진을 찍어주며 물어보니 방학을 이용해서 어학연수 온 학생들이었다. 어학연수를 나가 있을 우리과 학생들이 문득 보고 싶었다.

링컨기념관 전경

링컨기념관에서 본 공사 중인 리플렉팅 풀

링컨기념관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원형으로 한 건물로 링컨 암살 당시 연방 36개 주를 상징하는 도리아식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링컨 기념관 중앙에 링컨의 거대한 좌상이 있고 그 뒤로 는 아브라함 링컨의 명성은 그에 의해 구원된 미국인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이 신전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각주:5]라고 새겨져 있다. 좌상 양쪽으로 게티즈버그 연설과 취임연설이 조각되어 있었다. 링컨 기념관은 규모에 비해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내뿜은 아우라만은 대단했다. 특히 내셔널 몰의 큰 구조 안에서 국회의사당-워싱턴기념탑-링컨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상징성은 뚜렷했다. 현재의 국회의사당을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이 지켜보고 있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링컨 기념관 남쪽으로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 추모 공원이 있고, 북쪽으로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물 그리고 워싱턴 기념탑 쪽으로 제2차 세계대전 국립기념물(National World War II Memorial)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이 나라 밖에서 치른 대표적인 전쟁들이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 공간의 상징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구석이다.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도 바로 이 링컨기념관에서 행해진 것이다. 이곳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했던 장소라고서 알려주고 있었다. 아브라함 링컨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10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에 대한 단단한 결의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기념관 사이에 있어야 할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이 공사 중이었다는 것이다. 리풀렉팅 풀의 인공수조가 새서 물을 비워내고 다시 수조를 만들고 있단다.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에서 제니가 검프를 부르며 건너오던 그 리플렉팅 풀의 아름다운 영상을 기대했던 우리로서는 실망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워싱턴기념탑과 링컨기념관의 야경이 비춰져야 할 곳에는 흙바닥을 드러낸 황량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공사 중인 리플렉팅 풀은 지금 밖에 볼 수 없는 모습이니 우리가 행운 아닌가? 리플렉팅 풀 주변으로 가보니 물이 새서 다시 풀을 만들고 있고 곧 개관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8시가 넘어서고 주변은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서 한국전쟁 추모 공원(Korean War Veterans)으로 갔다. 여행을 떠나면서 유진이가 워싱턴에서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첫 번째로 꼽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유진이는 미국에 와서 특히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느끼는 듯했다.

한국 전쟁 추모 공원에 있는 19인의 병사들 조형물

어둠은 모든 색과 형태를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소리만은 더욱 또렷하게 돌려주었다. 소리가 고이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수색대처럼 보이는 19명의 병사들이 판초우의를 입고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 앞에 모여 있었다. 19명의 표정과 동작은 모두 제 각각이었지만 공포와 분노와 결의가 느껴지는 조형물이었다. 어둠과 함께 조형물에 모이는 부분조명은 그 절실한 순간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옆의 검은 벽에는 한국전쟁과 상관된 얼굴들을 검은 돌 위에 새겨 놓고 있었는데 오래된 영상을 보는 듯한 아련함이 느껴졌다. 조형물 앞쪽으로는 한국전쟁의 피해 및 희생 규모를 새겨둔 또 다른 조형물이 아프게 서 있었다. 전쟁 중인 병사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조형물을 보고, 얼굴만 새겨 둔 벽을 지나서 객관적인 수치로 전쟁을 보고하고 있는 조형물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참혹한 심정이었다. 그 참혹함은 ‘Freedom is not Free’라는 단호한 문구 앞에서도 결의로 바뀌지 못하고 여전히 참혹할 뿐이었다. 그 참혹함은 19명의 병사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던 생명의 긴장과 공포와 연관된 것이면서 동시에 아직도 그러한 긴장과 공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현실과도 관계된 것이었다. 연구년을 떠나오기 얼마 전 벌어졌던 연평도 포격 사건이 생각났다.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과 공포가 쏟아졌을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곳이라는 사실이 상기됐기 때문이다.

Freedom is not Free.

최근 몇 년간을 상기해볼 때, ‘Freedom is not Free’는 두려운 단언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벌여온 전쟁은 자유라는 이름의 복수였고, 자유라는 명분의 침략에 가까웠다. 대량살상무기를 파괴하겠다고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의 무력한 죽음을 보아야 했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장의 이면에는 아직이라는 의미가 강력하게 내재해 있다. 아직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명백한 현실을 나는 어처구니없이 한국전쟁 추모공원에서 읽고 있었다.한국전쟁 추모공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어두웠다. 워낙에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내게 빛까지 부족하니 촬영이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내일 다시 와서 추가로 촬영하기로 하고 나오면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흐리고 어두운 상태가 전몰의 비극성과 참혹한 분위기를 극대화시켜주고 있었다. 지우려던 사진을 그대로 두었다. 사진의 선명함 보다 그 비극성과 참혹함을 살리기로 했다.

수도로서 워싱턴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인지 무척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뉴욕과는 품격이 다르고,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와는 그 성격이 달랐다. 내셔널 몰 양쪽으로 모여 있는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의 풍요로움과 그것을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더없이 부러웠지만 그 안쪽 잔디에서 즐기거나 주변을 조깅하는 사람들의 평화와 여유가 더 부러웠다. 오늘 돌아본 것만 가지고 이 도시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자부와 자긍의 면모는 볼 수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깨끗하고 격조 있는 도시에서 미국의 난폭함이나 일방주의가 기획된다는 점이었다.

내셔널 몰 주변

주차가 어려운 워싱턴에서 정답은 자전거

내셔널 몰 잔디밭에서의 휴식

여행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더 보겠다는 욕심 때문인지 워싱턴에서의 일정은 늦게 끝났다. 메릴랜드에 잡아둔 숙소까지는 조금 멀었다. 이제 누구도 사만다가 한 번에 숙소까지 데려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사만다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숙소 주변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결국 표지판을 보고 찾고 있으려니 슬며시 사만다가 숙소 앞에 데려다 주었다. 사만다는 심심한가본데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는 지친다.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깨끗하고 편했다. 유명한 곳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같은 가격에 청결하고 안락한 곳을 얻을 수 있다는 법칙은 오늘도 예외가 없었다. 버려야 얻는다는 변함없는 이치는 이곳에서도 옳았다.

 

  1.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대사의 한 구절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초속 5Cm>에 나오는 ‘올곧은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다. [본문으로]
  2.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주차한 이곳은 허가받은 차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음날 주차 표지판에 적힌 것을 보았는데, 주차할 때만 해도 이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그웨이를 타고 다니며 불법주차 단속을 하던 경관들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용감하게 두 번이나 불법주차를 한 것이다. 정말 모르면 용감하거나 무모해진다. [본문으로]
  3.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최초의 서부출신에 평민 출신 대통령으로 2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실린 인물이다.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영국군을 대파하고, 세미놀 전쟁에서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플로리다를 침공하여 승리하는 등 전쟁 영웅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서부개척정신을 강조하고, 재산유무에 따라 주어지던 참정권을 확대했으며, 일부 특권층의 전횡을 막기 노력했다. ‘눈물의 길’과 1․2차 세미놀 전쟁을 통하여 무자비하게 인디언을 탄압하고 학살하기도 했다. [본문으로]
  4. 라파예트 후작은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여 조지 워싱턴 장군을 도와 요크 전투 등의 승리를 이끌었고, 귀국해서는 루이 16세 정부를 설득하여 프랑스군 파병에 기여했다. 라파예트는 프랑스로 돌아가 종교의 자유와 노예무역폐지를 주장했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초안을 작성하는 등 프랑스혁명 초기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가 사망했을 때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과 존 애덤스와 똑같은 급으로 조의를 표하고 국장으로 치르게 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그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본문으로]
  5.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 [본문으로]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