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연대를 건너려는 당찬 시도
《1970년대 문학연구》 (소명출판사, 2000)
박기수(문학평론가,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금 이곳’의 좌표에 따라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그것은 현재의 관점에 따라 과거사의 실체가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사에 주목하는 이유와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학사도 역사의 이러한 진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문학사 연구는 시작은 있으되 끝이 없는 연구이며, 과거에 눈을 돌려 오늘을 보고자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문학연구, 특히 문학사 연구의 행보는 매우 더디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연구의 대부분이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결과 연구 주제나 연구 방법에 있어서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위의 관점에서 이것을 판단해본다면, 결국 오늘의 문학이 과거 문학사를 다시 평가할만한 나름의 안목이나 전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염두에 둘 때, 민족문학사연구소 현대문학분과의 《1970년대 문학연구》는 매우 소중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각기 다른 학교의 연구자들이 모여서 일정 기간 학습과 세미나를 거쳐 20여 편의 견실한 연구 논문을 수확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뜻 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을 보다 생산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이 책이 1) ‘1970년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문학사’라는 점, 2) 공동연구의 성과물이라는 점, 3) 비교적 소장 연구자들의 연구물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2000년 오늘, 우리에게 1970년대는 아직 살아 숨쉬는 연대이다. 역사의 시간은 그저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에 의해 변화할 때, 비로소 흐른다고 했던가? 역사는 단지 시간이 흘러갔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마디마디’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1970년대는 아직 살아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것은 단지 유신의 주체였던 세력들이 아직 정치권에 지도적인 위치에 남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수라는 이름으로 휘두르고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것은 1970년대적 모순이 극복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오히려 심화․은폐됨으로써 저항과 견제의 어떠한 시도도 꿈꿀 수 없는 보다 열악하고 야만적인 정세를 맞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1970년대는 어떠한 연대였나? 정치적으로는 유신 독재의 전횡과 그에 대한 민중들의 주체적 자각과 저항, 미국의 제3세계 전략의 하나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군부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이루어졌던 시기였고, 경제적으로는 성장위주의 산업화로 인한 비인간적 수탈과 억압체계의 확대와 자본주의의 정착과 그 역기능이 동시에 등장하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부의 양극화 현상과 계급 모순의 심화, 농촌 붕괴로 인한 급속한 공동체적 전통의 붕괴, 개발 우선 정책으로 인한 환경 파괴라는 자본주의의 역기능이 유신체제라는 상부구조와 유기적으로 결탁하고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이와 같은 노골적인 억압과 수탈 그리고 기만의 시기에 문학은 다소 방법의 차이는 있었지만 적극적인 현실 대응에 임했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딱히 제기할 반론이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지만, 그만큼 상투적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이것이 문학사로서 《1970년대 문학연구》에 대해 제기하고 싶은 문제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연구자들은 “70년대 한국문학은 정체성을 잃은 혼돈의 한국문학이 자기 갱신을 이루어 가는 데 있어 가장 좋은 교과서(p.4)”이기 때문에 “민족 문학적 관점에서 70년대 한국문학의 전체 상을 재구성하려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1970년대의 문학을 민족 문학적 관점에서 재구함으로써 정체성을 잃은 한국문학의 자기갱신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다. 여기저기 발표했던 논문들이 일정 부피가 되면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출간하는 것에 익숙한 이 땅의 연구자들에게, 분명 이와 같은 시도는 신선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문학사로서 좀더 생산적인 작업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민족 문학적 관점이 2000년 오늘의 한국문학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둘째, 민족 문학적 관점에서 70년대 문학을 재구하여 오늘의 문학을 갱신하겠다는 의지가 자칫 본질주의적인 접근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셋째, 1970년대 문학에 대한 연구가 오늘의 문학에 과연 생산적으로 반영되었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위에서 첫째로 제기한 문제는 ‘민족문학이 과연 2000년 오늘 한국문학에 의미가 있을까’ 없을까 하는 연구 관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 연구가 보다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민족 문학적 관점과 2000년 한국문학과의 상관성을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양자의 상관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면, 이 연구들은 개별 연구 그 이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연구자들이 말하는 생산적인 문학사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같은 작업이 문학을 본질주의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본질주의적 접근이란 복잡한 전체의 여러 속성 가운데 가상의 내적 진리나 본질에 준거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다양성과 가변성을 생명력으로 하는 문학을 단일하고 통일적인 가상의 내적 진리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적이며, 그것을 작품성의 척도로 제시함으로써 결정론적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의 연구자들이 주장한 ‘70년대 문학이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오늘의 문학에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70년대 문학이 ‘근대의 밝음과 어두움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문학’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1) 2000년 오늘의 문학이 정말 정체성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인지, 2) 70년대 문학이 근대의 밝음과 어두움에 과연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문학인지, 3) 그러한 주장의 근거인 민족문학론이 문학이라는 측면과 현재성의 측면에서 과연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먼저 주어야한다. 1)의 2)의 문제는 3)으로 수렴할 수 있다. 따라서 1)과 2)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3)이 문제가 선결되어야한다. 즉, 민족문학론이 과연 한국 문학의 정오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
70년대의 민족문학은 이 저항, 특히 민중의 저항에 주목했다. 그럼으로써 70년대 민족문학은 분단 자본주의에 맞선 저항의 전위가 되었다. (……) 그것은 70년대 민족문학이 반체제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흐름을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70년대 민족문학의 이러한 급진성은 80년대의 민족문학과 비교하더라도 그렇다. 필자는 90년대에 들어와 민족문학이 침체에 빠진 내적 요인 가운데 결정적인 것이 지나친 급진성이 아니라 오히려 급진성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민족문학은 노동해방문학이나 민족해방문학으로 가면서 스탈린주의에 침윤되었고, 스탈린주의는 민족문학에서 유토피아적 충동을 거세시켰다.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는 가장 자기 완결적인, 그래서 자기 갱신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담론이다. (……) 그처럼 자기 완결적인 폐쇄적 틀 속에서 유토피아적 충동이 발붙일 수 있겠는가.(p.18)
여기서 드러난 바와 같이, 그것은 민족문학의 전개과정에서 80년대 민족문학의 스탈린주의로의 경사, 90년대 이후 현재적 적합성의 상실 등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문학이 꿈꾸는 ‘영원한 유토피아적 충동’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80년대 이후 상실된 ‘급진성’의 회복이 절실하다며, 그것의 좋은 예를 70년대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하정일의 주장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민족문학론의 활로 모색이라는 측면에서는 의의를 지닐지 모르겠으나, 본질주의적이라는 한계를 극복한 것은 아니다.
셋째는 이 책의 연구들에서 과연 오늘의 문학에 생산적으로 반영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1부 총론의 논문을 제외하고는 그와 같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논문을 발견하기 어렵다. 명시적인 항목으로 설정되지는 못하더라도 오늘의 문학에 어떻게 생산적인 반영을 이룰 수 있는지 문제 제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이 책의 머리말에서 밝힌 생산적인 반영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밝힌 바처럼 문학사는 ‘과거에 눈을 돌려 오늘을 보고자 하는 노력’이기 때문에 그것은 진행형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영원한 진행형으로서 생명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현재적 가치와 적합성에 의한 좌표 설정과 의견 제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형적인 형태였지만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유신 체제의 폭압적인 상화 속에서 민중들의 주체로서의 자각을 이루었던 70년대 문학의 의의를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고, 그것이 2000년 오늘이 문학에 생산적 방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획은 이 책의 미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그것이 본질주의적 접근이었다는 점, 그것이 작품 연구 등을 통해서 규명되는 데에는 미흡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은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전에도 공동 연구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일정 기간에 동안의 학습과 세미나를 걸쳐 그것을 일정한 기획 의도 아래 출간한 연구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연구자들의 개인적인 작업 성향, 각기 다른 학풍 속에서 공부해왔다는 점, 그리고 공통된 테마를 선정하기 어렵다는 점들이 원인이었다. 따라서 이 연구서는 값진 성과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을 좀더 애정을 갖고 읽다보면, 좀더 짜임새 있는 기획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가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적어도 각 부의 서두에는 각론의 기준이 제시되어야 했다. 즉, 총론의 5개의 논문은 어떤 기준에 의해 배분되었는지, 주제론의 10개의 논문은 총체적인 조망을 위해 어떤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지, 작가론에서 언급된 8명의 작가들은 어떤 기준에 의해 채택된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필요했다. 또 연구 성과를 하나의 연구서로 묶는 것을 전제로 했다면, 각각 논문에서 중첩되고 있는 시대 상황에 대한 대동 소이한 언급과 중첩되는 작품 설명 따위는 배제했어야 했다. 좀더 욕심을 내보자면, 각 논문간의 유기적인 연관이 매우 미흡했다는 점이다.
이제 디지털이라는 말이 접두사처럼 쓰이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시대의 중심 화두인 디지털의 키워드 중의 하나가 NET가 아닌가? 이 말은 ‘남과 다르게’ 그러나 ‘남과 함께’라는 공동 작업(co-work)을 강조하는 말이다. 공동 작업의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남는 것은 이제 그것을 어떻게 짜임새 있게 엮어내는 것이 아닐까?
공동작업에 대한 아쉬움은 그만큼의 기대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각기 다른 연구자이 이 정도의 성과를 내었으니 다음 연구서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같은 기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소장연구자들의 성과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소장 연구자들의 도전적이고 새로운 방법론의 접근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기대는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장 연구자들의 연구물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주목할만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 기존의 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연구가 1970년대에 대한 초기연구에 속한다는 점에서 자칫 기존의 논의를 고착시켜버릴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가령, 1970년대 모더니즘 시의 겨우, 그 텍스트를 기존의 문학과 지성사의 텍스트로 한정지음으로써, 《문학과 지성》이나 《창작과 비평》의 문화 자장 밖에 머물렀던 유수의 시인들의 작품이 배제시켜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연 70년대 한국 시단의 모더니즘 시는 문학과 지성사의 텍스트를 넘어서고 있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다. 김현의 평론이 많은 시인들을 발굴해낸 것도 사실이고, 《문학과 지성》이 70년대 한국문학의 한 축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에 시선에서 배제됨으로써 마치 한국문학사의 미아처럼 취급되는 숱한 시인과 작가 군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또한 작가론의 경우, 황석영, 조세희, 이청준, 최인호, 김지하, 신경림, 황동규, 정현종만을 다룸으로써 스스로 참신한 시각을 봉쇄시켜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이 작가들에 대한 기존의 숱한 평론과 연구들과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연구를 여기서 굳이 되풀이 할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훌륜한 작품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아직 조명 받지 못한 작가나 시인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이 참신하지 않는가? 물론 예의 작가나 시인들이 7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장 연구자들이 기존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안일한 연구 태도는 분명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만 한다. 현금의 문화권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왜 그 모태가 되고 잇는 70년대의 문화권력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한지 아쉽기만 하다.
이제 마무리하자. 2000년 오늘, 이 책의 문제제기는 매우 시의 적절한 것이며 유효한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와 같은 작업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도 가져볼만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제제기가 구체적인 연구성과로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그 또한 하나의 소문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공동연구의 장점을 보다 짜임새 있는 기획으로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소장연구자들의 보다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의 연구가 절실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 《한국문학평론》 200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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