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 그 정체와 지속

․ 《<九人會> 소설의 문학사적 연구, (국학자료원, 1998)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구인회>는 그 중요성에 비해 본격적인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그 동안 <구인회> 자체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했던 이유는 일반적으로 1) <구인회>가 유력한 멤버들로 구성된 집단이기는 하나 그들의 활동이 개별적이고 분산적이었다는 점, 2) 이들 작품이 보여주는 특징이 상이하다는 점, 3) 각각의 특성이 다른 시인작가들을 하나의 성향으로 묶어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구인회>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작가론에서의 부분적인 언급이나, 몇몇 문학사에서의 표면적인 언급을 제외하고는 근년까지 김시태, 김윤식, 최혜실, 서준섭 등의 논의가 있을 뿐이다. 최근 들어 소장 연구자들의 모임인 상허문학회에서 발표한 근대문학과 구인회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연구서의 경우, 16개월간 공동연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개별 논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15명의 필자 개개인의 입점의 차이로 인해 일관되고 종합적인 고찰로서는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구인회>의 연구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이중재의 <九人會> 소설의 문학사적 연구는 매우 소중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이 연구에서 그가 강조하는 목적은 <구인회>와 구성원들간의 본격적인 연관고리를 종합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이다. 기존 연구들에서는 <구인회>만을 연구 대상으로 하거나, 구성원들의 작가론 혹은 작품론이 연구의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연구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인회>의 성격과 연관시켜 구성원들의 문학적 성과를 점검하려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김한식에 의해 먼저 시도된 바 있다. <구인회> 소설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별 작가들의 문학적 특질을 규명하기 전에 먼저 <구인회>로 묶일 수 있는 문학적 성격을 먼저 추출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한식은 이태준, 박태원, 이상, 김유정 등이 밝히고 있는 소설관을 재구하고 이를 통해 소설 작품을 점검하고 있다. 그가 텍스트로 삼고 있는 것은 이태준의 <달밤>, <孫巨富>,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상의 <날개>, <지주회시>.

그러나 1) <구인회>의 단체적 성격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고, 2) 작품 분석 자체가 다섯 작품에 국한됨으로써 그것들의 대표성은 물론 나머지 수다한 작품들에 대한 검증을 과제로 남기고 있다는 미진함을 남긴다.

이중재는 이 연구에서 김한식과 유사한 연구목적을 견지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그는 먼저 <구인회>의 문학적 성격을 순수문학이라는 기존의 상투적인 범주화를 거부하고, ‘모더니즘의 일단으로 구체화하여 평가한다. 또 그는 연구대상을 1) 이태준, 박태원, 이상의 2)광복 이전의 3) 단편소설로 한정하고 있다.

이태준, 박태원, 이상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그들이 소설창작이라는 측면에서 <구인회>의 핵심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이효석, 김유정 등 강권에 못 이겨 가입한 형식적인 멤버들을 제외하고, 이종명, 조용만, 이무영 등은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목할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하는 것은 광복 이후 이태준, 박태원의 문학적 노선이 크게 바뀌고, <구인회> 소설의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단편 소설로 한정하는 것은 그것들이 이 연구의 취지에 부합되는 까닭이라고 했다. , <구인회>로 묶일 수 있는 문학적 성격이 소설 속에서 얼마나 구현되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비교적 그 구조화의 성격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중단편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한정하는 것에는 다소 이견이 나타날 수 있다. 이태준이나 박태원의 광복 이후의 행적을 <구인회> 활동기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역으로 <구인회>활동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의 행적을 저자와 같이 단선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의 설득력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즉 광복 이후 이들의 변모는 문학관의 변화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견지해오던 현실인식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한정하기 위해서는 광복 이후의 활동에 대한 보다 분명한 성격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 이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느냐 하면, <구인회>의 성격 규명에 있어서 키워드인 모더니즘의 성격과 맞물린 것이기 때문이다. 30년대 우리 모더니즘의 경우 세계사적 보편성의 차원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음은 기존의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다. 30년대 모더니즘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20년대부터 광복이후의 양상까지 두루 살피지 않고서는 그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연구의 말미에 제시되고 있는 <구인회>의 문학사적 의의가 모더니즘과 맞물린 것이라고 했을 때,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국한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저자는 <구인회>의 결성 배경으로 정치적 요인, 발생론적 요인, 사회적 요인, 문단 내적인 요인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정치적 요인으로는 3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 하에서 탈이데올로기적인 순수문학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들고,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성장한 도시세대 시인, 작가들의 등장을 발생론적 요인으로 제시했다. <구인회> 동인들은 도시화 과정 속에서 자라나 일본 등에 유학했으며, 일본의 의사(擬似) 근대화 정책에 따른 식민지 체제가 확립되는 30년대 이르러 문학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을 갖는 요인이다. 또 사회적 요인으로는 30년대 들어서 모국어에 대한 의식의 고조로 한글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 그 결과 지식층의 현저한 증가와 문학 의식의 성숙으로 인해 작가나 독자 모두 보다 세련된 문학을 추구했다는 점, 그래서 통속적인 작품과 본격적인 작품의 양분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문단 내적인 요인으로는, 20년대 프로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이 한계를 보이자 새로운 출구가 필요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저자는 동인 형성과정에 관한 논의에서 김윤식이 주장한 <구인회>의 정치성은 출발 당시에만 해당될 뿐 <구인회>가 완전히 결성된 후에는 이러한 정치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 근거로 <구인회>의 주도권이 발기인인 이종명, 김유영에서 이태준, 정지용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과 카프측에 대해 철저하게 무반응, 무관심을 보인 그들의 활동을 들고 있다. 매우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반박이다.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정설인양 군림해오는 국문학계의 많은 오류들이 이렇게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연구들을 통해 새롭게 정립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이렇게 시원한 느낌은!

저자는 <구인회>의 활동상황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하나는 개인활동에 치중한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배문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통해 세대의식을 표방한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는 <구인회>가 집단적인 활동보다 개인적인 활동에 치우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구인회>동인들이 4대 신문의 학예면은 물론 몇 가지 문학 잡지 --정지용의 <카토릭 청년>, 이무영의 <조선문학> <문학 타임즈>, 조선중앙일보 자매지(이태준)의 자매지 <중앙>, 조선일보(김기림)의 자매지 <조광>, 동아일보(이무영)의 자매지 <신동아> --의 지면들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는 점, 조직과 집단 활동을 중시한 카프와는 달리 문학의 정치적인 목적성을 배제한 문학만을 추구한 <구인회>의 근본적인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자연히 집단적 활동보다는 개별적 활동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인회>동인들은 모든 개개인이 탁월한 문학적 감수성과 개성을 지니고 있는 작가시인들이었으므로 수준 높은 작품들을 왕성하게 발표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무영, 이종명, 박태원, 조용만, 김기림 등이 각각 이광수, 현진건, 김동인, 염상섭, 주용한 등의 선배문인들에게 자극적인 내용의 공개장을 발표해서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점을 들어 <구인회>의 세대의식에 주목한다. 이것은 몇 가지 주목을 요한다. 1) 비판이 어조와 논점에 있어서 편차는 있지만, 모두 기성문인들의 창작의 침체와 부진함, 통속화의 경향, 창작태도의 안이함 등을 비판하는 한편 그들의 뼈아픈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것은 비판의 과정을 통해 그들 스스로 세대의식을 자연스럽게 표방하게 되는 것이다. 2) 이처럼 선배문인들의 창작의 침체와 부진을 질타하던 자신들도 그들이 요구했던 만큼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써내지 못했다는 자기모순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들의 비판은 새로운 문학을 추구한다는 자긍심과 자부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3) 비판이 대상으로 선정된 작가들이 모두 민족주의 문학을 표방하거나 그 언저리에서 창작의 동기를 찾던 작가들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것은 민족주의 진영의 작가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자신들이 바로 민족주의 문학의 비판적 계승자임을 자인한 것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구인회>에 대해 카프측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못한 이유를 두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구인회>가 등장할 시기에 카프의 세력이 현저히 약화되어 이미 와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카프측의 비판에 대해서 <구인회>측에서 철저하게 방관자적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저자는 좋은 작품을 써서 오직 작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구인회>동인들의 결의에 따라 카프측의 비판에 대해 시종일관 무반응,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 그 자체는 <구인회>의 문학적 이념이나 특성을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구인회>가 한국문단에 이바지한 공적은 <구인회> 자체의 단체적 활동이나 그 역할 때문이 아니라, <구인회>가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소신껏 발휘할 수 있도록 그 구심체 역할을 담당했다는 데에서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구인회>의 문학적 성과는 30년대 후반 이른바 김동리, 최명익, 허준 등 신세대 작가들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나아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결론을 대신하여 <구인회>의 문학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구인회> 작가들은 무엇을이야기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이야기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대의 공리주의적인 목적문학의 한계에 대한 반발이라는 문학 내적 요인과 편내용주의적인 프로문학의 퇴조라는 문학외적 요인이 결과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문학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 자율적인 존재라는 문학에 대한 이들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자각에서 찾아야한다. 이는 그들이 미적 자의식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와 같은 형식에 대한 관심은 문학의 일차 재료인 언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둘째 모더니즘문학의 선봉장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이태준, 박태원, 이상 등의 <구인회>작가들은 작품뿐 아니라 평론, 기타 잡문 등을 통해서 언어문법기법에 이르는 모더니즘 이론을 적극 수용소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셋째, <구인회>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역사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미를 탐구하기보다는 역사사회로부터 유리된 개인의 삶의 모습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작품을 통해 지식인의 실직과 궁핍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있으면서도 당대 식민지 상황이나 사회구조적인 모순은 배제시킨 채, 작중 인물의 복잡 미묘한 내면 심리의 분석과 존재론적인 본질이 추구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보인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러한 특성이 <구인회>작가들의 소극적인 세계인식의 결과기도 하지만,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역사인식에서 비롯되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관심 자체가 차단되고 봉쇄되던 당대의 현실상황을 고려해 보면, 작품 속에 구현된 <구인회> 작가들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세계관을 단순히 현실 도피적이라고 폄하하기 어렵다고 했다. 즉 당대 식민지 상황에 대한 <구인회>작가들의 하나의 대처방식으로 수긍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끝내 수긍하기 어려운 것은 이것이 세계 대응방식으로 이해될 경우, 그 미학적 토대에 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생략된 채 이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현실추수의 일상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해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세계인식과 대응에 유효한가이다.

넷째, <구인회>작가들은 모방론적 또는 반영론적 관점에 의거한 소설관을 부정하고 표현론적 관점에 의한 소설관을 견지하고 있다. 즉 표현과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론적 소설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소설이란 인간의 모습을 반영해내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재료를 통해 작가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인회>의 등장으로 소설에 대한 전문적인 예술가 의식 내지는 장인의식의 강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개성과 주관성 발휘를 중시하는 전문가의식장인의식이 <구인회>에 와서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 및 독자들의 문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는 요인을 갖고 있다.

저자는 <구인회>의 문학사적 의의를 1) 시문학파의 모더니즘적 이론과 해외문학파의 전문적인 예술가의식이라는 문학적 태도를 그대로 계승발전시킨 점, 2) 문학본래의 자율성을 중시하여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에 보다 관심을 두었다는 점, 3) 30년대 후반 신세대 작가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묘사와 표현이 중심이 된 이태준의 문장 미학은 김동리황순원에게 이어졌고, 박태원이상의 심리주의적인 소설 기법은 허준최명익에게로 연결되어 <34문학>파와 <단층파>의 출형을 본다는 점을 찾아냈다.

그러면서 저자는 1) 지나치게 형식의 측면에만 관심을 모았다는 것, 2) <구인회>연구가 핵심 세 명에게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 등을 이 연구의 미비점으로 지적한다.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구인회>의 성격을 먼저 규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과의 연관을 찾겠다는 저자의 의도는 매우 선행적인 의의를 갖는다. 안전한 기존의 방법론에서 한발구도 벗어 나려하지 않는 안일한 연구자들을 일깨우기에 충분할 것이다. 다만 다소 아쉬운 것은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연구 대상이 핵심인물 세 명 외의 동인들까지 함께 고찰해야 <구인회>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인회>의 성격 자체가 통일된 강령 하에서 단일한 경향의 창작을 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다양하고 자유스런 분위기가 오히려 작품에 있어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다양한 모습을 온전히 다 고찰했을 때, 저자가 의도했던 연구 성과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형식적인 고찰 외에도 미학적인 고찰이 지나치게 소홀히 다루어졌고, 문학사적으로 모더니즘의 사적인 연관에 대한 규명이 다소 미흡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각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려하고, 철저하게 실증적인 작업이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구인회>와 그 작품간의 연관을 밝히는 선구적인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유용한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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