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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을 참 잘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 있고 또렷하게 제 생각을 말하고 다른 이의 동의를 얻어내는 그 과정이 뛰어난 다른 무엇을 갖지 못한 제게는 내세울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말이 어려워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잘 모르는 이들을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잘 아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알기 때문에 말 같은 말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나봅니다.

요즘 어록(語錄)이 차고 넘칩니다. 말의 기록인 어록이 넘쳐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말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되고 있다는 말이겠죠. 김제동, 노회찬, 차명석, 한기주, 이신영, 이주일 등등 인터넷에는 날마다 어록의 신화가 이어집니다. 화려한 레토릭, 과도한 진솔함, 저돌과 우회를 두 손에 들고 치는 강렬함, 삼류 철학자의 금언과 같은 단호함,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진실됨까지 모든 어록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말의 가치요 무게입니다.

말의 가치는 그것이 지금 이곳의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렸습니다. 노회찬의 말들처럼 현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든, 한기주의 그것처럼 현실과 거리를 두고 낭만적 환상을 만들어내든, 혹은 이주일의 말들처럼 자신이 삶아온 세월을 거르고 걸러 쏟아놓는 말이든 간에 그것은 지금 이곳의 우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수현의 경쾌한 은빛 언어의 화려한 수사와 속도보다는 홍상수의 쓴 소주 같은 비굴한 일상의 말들을 더 좋아합니다. 같은 이유로 <야심만만>에서 기획 상품처럼 쏟아내는 김제동의 개그보다는 <이소라의 음악도시>에 나와 고민 상담을 해주는 그의 거친 일상어들을 더 좋아합니다. 그럴듯함으로 가장하고, 지닌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교조적인 모습이 아니라 과장과 진솔 사이를 오고가며 빠른 속도로 스스로 균형을 만들어가는 그의 대구사투리를 좋아하는 것이죠.

말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이 말하는 이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않고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는 어처구니없는 대중스타들도 있지만, 우리와 함께 시간을 나누며 늙어갈 스타들은 말을 함으로써 더욱 빛나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그것은 물론 화려한 수사나 훈련된 화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며, 생활의 넓이와 세월의 깊이를 온전히 담아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말의 주인은 내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지금 이곳의 어록에는 내가 없습니다. 다양한 채널과 많은 발언 기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어록을 원하며, 그것은 대부분 다른 이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심과 지향을 상실한 혼돈스런 시대를 내가 아닌 누군가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말을 길잡이로 삼아 건너고 싶은 욕구들의 표현이 어록의 홍수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요? 󰡔노인과 바다󰡕에서 헤밍웨이가 했던 말처럼, 문제는 다른 이의 말이 도움을 될지언정 구원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이 스스로의 구원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록을 만들어야 합니다. 머리 위에 전등을 붙이고 걷는 광부와 같이 스스로 삶을 데리고 걷는다는 심정으로 멀리 자신을 인도할 자신의 어록들 말입니다.

자신의 어록이 온라인에 있느냐 오프라인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블로그가 되었든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되었든 아니면 아날로그 스타일의 노트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그 어록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중심이 되고 자기 삶을 견인할 수 있는 지향으로서의 어록을 만들고, 자기 자신이 방문자가 되어 리플을 달아보면 어떨까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소 환자스럽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낯선 우리와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낯선 나와의 조우만큼 스스로를 갱신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저는 말의 주술성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청준의 단편 <예언자>의 주인공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말에는 주술적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어록을 만들어가며 말을 통해 자신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가파르게 몰아보고 때론 곡진하게 위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린 오늘부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샤먼입니다. 전 저의 말을 믿기로 합니다.

 2004년 《오픈아이》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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