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영화가 가슴으로 읽히는 이유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시간이 남아서 하는 일보다 시간을 내어서 하는 일이 재미있다. 숨넘어갈 듯 분주할 때면 그런 시간이 더욱 간절해지고는 하는데, 지난 주말이 그랬다. 해야 할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는 분노와 화해를 이야기한다. 영화 속 세 개의 빌보드는 딸아이의 억울한 죽음에 무관심한 세상을 향해 진실 규명의 요구이며, 범인을 꼭 잡겠다는 의지이고, 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의 표현이다. 세 개의 빌보드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거침없고 당당한 엄마 밀드레드의 분노였다. 지켜주지 못했으면 그 죽음의 억울함만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텐데, 진실을 밝혀주어야 할 경찰이 손 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밀드레드는 분노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이어간다. 암 투병 중 자살하는 경찰서장 윌러비, 방화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제임스, 파면된 이후에도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경찰관 딕슨. 이들은 모두 흠결과 모순 안에 존재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밀드레드를 도와 진실을 밝혀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당위적인 화해나 구원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왜 화해에 이르지 못하는지, 화해에 이르기에는 우리가 얼마나 각기 다른 존재인지, 그럼에도 화해에 이르기 위해 어떻게 노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스콧 쿠퍼 감독의 <몬태나>는 폭력과 증오의 역사를 지나온 사람들의 화해와 구원을 이야기한다. 전역을 앞둔 전쟁영웅 블로커 대위, 죽음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추장 옐로우 호크 일가, 코만치 족에게 가족 모두를 잃은 퀘이드 부인, 인디언 가족을 잔혹하게 살해한 윌스 병장. 이들은 증오와 폭력이 반복하면서 그려낸 피해와 가해의 무간지옥과 그곳으로부터의 구원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는 무엇이 정의인지를 말하지 않고 어떻게 서로 용서하며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정의는 언제든 갖가지 이해관계나 다양한 맥락에 의해 변질되고 왜곡될 수 있지만 용서와 화해는 더불어 살 수 있는 변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코만치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퀘이드 부인이 백인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인디안 소년을 데리고 시카고로 떠나는 것도, 그 기차에 인디언 학살로 인해 전쟁 여웅이 된 블로커 대위가 전역한 모습으로 오르는 것도 그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거친 말 대잔치라도 벌이는 듯, 거칠고 센 말들이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요즘이다. 거칠고 센 말들은 잠시 이목을 끌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소통하거나 설득시킬 수는 없는 언어다. 더구나 거칠고 센말은 그 강도로 인해 왜곡되고 다양한 매체에 흔적을 남김으로써 말한 사람과 듣는 사람을 배반하고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다. 더구나 SNS를 통해 공론의 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개별화된 정보가 터무니없는 신뢰를 갖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공유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거칠고 센 말들은 가공할만한 폭력으로 확대재생산 되지 않는가. 이청준은 떠도는 말들-언어사회학 서설Ⅰ》에서 인간이 말을 배반함으로써 말들은 제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왜곡되어 길을 잃고 떠돌고 있다고 비판했다. 작가가 두렵게 예견했던 일이 약 40년이 흘러 지금 이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인간이 말을 배반하고 결국 말은 인간을 배반하게 됨으로써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불통의 폭력이 되고 있는 현실, 그것이 앞으로 어떤 괴물이 될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

2018년 지금 이곳에서 <쓰리 빌보드><몬태나>가 가슴으로 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족을 잃은 밀드레드와 퀘이드 부인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용서를 보았다. 원수지간이던 블로커 대위와 옐로우 호크가 어떻게 이해하고 화해하는지도 보았다. 구시대의 언어로 윽박지르는 빅마우스가 선두에 서던 시대는 갔다. 자극적인 말로 거칠게 공포와 분노를 부르는 것은 설득이 아니라 협박이다. 협박의 언어는 지지를 얻을 수도 지속될 수도 없다. 좀 더 진정성 있는 이해의 언어 세련된 설득의 언어가 필요한 시대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부를 뿐이라는 대사가 절절한 이유다.

 

2018.05.18. 매일경제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당신의 헤어롤 혹은 거리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하철을 탈 때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사이를 오간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딱히 눈을 둘 곳도 귀를 기울일 곳도 없는 까닭이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관심이나 접촉이 두려워서다. 혹여 라도 뜻하지 않은 접촉으로 오해를 부를까 손도 팔짱을 끼어 단속을 한다. 그날도 그랬다. 지하철을 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낯설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딸아이 나이 또래의 여대생이었는데 앞머리에 핑크색 헤어롤을 감고 있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앞머리에 핑크색 헤어롤을 매달고 있는 모습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따금 우리과 학생들도 강의시간에 헤어롤을 감고 들어오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처음 본 모습이었다.


헤어롤을 감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고, 그 헤어스타일은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더욱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일 텐데,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공공장소에서 보여주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녀에게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의 밖에 존재하는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무관한 존재 혹은 아직 관계를 맺기 전인 존재들 사이에서 허락된 익명의 자유로움. 그 익명의 자유가 숨겨준 것이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자신이 익명화시켜버린 지하철 안의 사람들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 정도의 거리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닐까.

1초에 41,000개의 게시물이 업로드 되고 1분마다 180만개의 좋아요가 눌러진다는 페이스북은 어떠한가? 나 역시 페이스북에 일기처럼 글을 자주 올린다. 보여줄 만한 사진만 골라서 올리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만 다듬어 들려주는 페이스북은 누구에게나 절묘한 거리를 유지시켜 준다. 페이스북이 확보해주는 거리는 스스로를 드러냄으로써 충족시키는 자기 증거욕과 동시에 온전히 노출하지는 않음으로써 은폐하는 익명의 자유 사이에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혹은 보여주지 못하는 페이스북식 말 걸기는 진정한 이야기에 이르지 못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좋아요와 댓글을 달면서 즐기는 페이스북이 진정한 이야기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쉬운 일이다.

이야기는 세상을 향한 즐거운 말 걸기여야 한다. 삶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한 것들을 타자와 나누고자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과정, 타자에게 말을 걸고 소통함으로써 관계를 맺으려는 과정이 이야기여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던가. 때문에 이야기에는 타자가 전제되어야 하며, 그들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시도와 고민이 수반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지 이야기를 통해 타자를 이해할 수 있고, 타자를 이해한 만큼 삶은 깊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기 않겠는가.

헤어롤을 어디서 하고 있든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괄호 속에 묶어버리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을 괄호 속에 묶는다면 그렇게 묶고 있는 자신도 다른 이의 시선에서 배제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만족적인 드러내기를 하거나 적당한 익명성 뒤에 숨는 것 역시 큰 허물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오인하고 타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페이스북에서 정말 보고 싶은 것이 화려한 먹방 사진이 아니라 그것을 찍고 있는 사람의 진면목이듯이 다른 이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7.08.18. 매일경제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폭식의 허기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월이 시작되고 독감이 지독한 목통증까지 데리고 왔다. 며칠 잘 먹고 쉬면 털고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한 주가 지나고 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문제는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전혀 식욕이 없으니 기운을 차릴 도리가 없었다. 열이 떨어지지 않고 엉덩이쪽이 부어서 병원에 가보니 엉덩이에 염증이 생겨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얼결에 수술을 받고 다시 연구실에 나갈 때까지 또 한참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영화 <리틀포레스트> 중에서

앓다가 수술 받고 통원치료 하느라 집에 있다 보니 그날이 그날 같았다. 더구나 엉덩이 수술로 앉지를 못하고 주로 침대에 누워 있자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침대에 깔아둔 전기장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오한이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보일러 온도만으로는 부족해 전기장판에 불을 넣으면 금방 따듯해졌다. 금방 따듯해지는 만큼 또 금방 뜨거워져서 꺼야하니 번거로웠다. 그러다보니 뜨듯한 열기로 온몸을 지지거나, 은근한 온기를 지속해주었던 어린 시절 아랫목이 그리웠다. 그 시절 아랫목에는 늦게 귀가하는 식구의 밥이 주발에 담겨 항상 담요로 덮여 있었다. 밥도 못 먹고 다니냐는 싫지 않은 핀잔과 함께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주발 뚝딱할 수 있었던 것은 식구들의 따듯한 기다림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든든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겨울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쌀 두 가마니와 연탄 천 장 그리고 김장 한 접을 하고는 안도하곤 하셨다. 없는 살림에 여덟 식구(게다가 우리 오남매의 먹성은 또 얼마나 좋았던가)의 겨울을 늘 걱정하셨는데, 쌀과 김치 그리고 연탄을 장만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셨단다. 아내와 아이들이 생기면서 식구들이 배곯지 않고 따듯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려운 일인지 조금씩 깨닫는다. 그 시절 어머니의 겨울맞이가 자주 생각나는 것도, 아랫목 한 주발의 밥이 자꾸 그리운 것도 사는 일의 고단함과 허기 때문은 아닐까.

몸이 불편한 상태로 누워서 TV채널을 돌리다보니 온통 먹방이다. 최고만을 먹는다는 미식회에서부터 전국의 유명 맛집의 순위를 정하고 신화화하는 프로그램은 물론 죽은 상권을 살리겠다며 유명 외식업체 사장의 맛 컨설팅 프로그램까지, 심지어 과식과 폭식까지 화제가 되어 얼마나 먹느냐를 즐기는 프로그램까지 먹방은 차고 넘쳤다. 누가 봐도 지나치게 많이 먹는, 먹는 행위 그 자체가 화제가 되는 1인 방송의 진행자들은 시청자들의 자발적 성원으로 억대 연봉 이상의 수입을 거둔다니 놀랍고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살면서 즐길 것이 얼마나 많은데 오로지 먹는 것에만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결핍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다이어트 때문에 자신은 못 먹지만 누군가가 대신해서 먹는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은 가학을 넘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매일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방송을 하면서 마른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으로 보낸다는 유명 BJ의 방송에서 지독한 허기를 느끼는 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었을까?

이가라시 다이스케(五十嵐大介)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가 최근 한국에서도 영화화되며 화제다. 이 작품은 음식 그 자체보다는 자연에서 재료를 얻는 과정,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비중을 두고, 그 안에서 삶을 이야기한다. 음식만화임에도 완성된 음식의 매혹이나 맛에 대한 찬미보다는 재료와 조리 과정에 최대한 많은 시간과 언어를 배려함으로써 충분히 생각하고 즐길 시간을 준다. 이 작품을 읽으며 먹방으로 드러난 폭식과 폭식으로 은폐된 우리의 허기를 생각한다. 우리가 따듯한 포만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랫목 한 주발의 밥으로 기다려줄 따듯함, 그것이 있다는 든든함을 잃고 있어서는 아닐까? 이제 봄이라는데 아직 날은 차다. 오늘밤은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콩비지에 넉넉하게 밥 한 주발 말아 이제 끝물일 총각김치를 얹어 한 사발 깨끗하게 비워내고 싶다

월간 에세이》 2018년 5월호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내가 하지 않으면 즐겁지 않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캠퍼스 곳곳에 각종 행사 포스터가 빼곡하다. 대부분 학과별, 동아리별, 학회별 발표행사다. 한 해 동안 익히고 실천해온 성과를 모아서 그 결실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이니 학생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의미 있고 즐거운 행사가 아닐 수 없다.

팀플이 유난히 많은 우리과 학생들에게 2학기는 무척 분주하고 힘든 학기다. 전공 학습량도 살인적인데다가 자신만의 대외활동이나 아르바이트까지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서로 팀플 시간 맞추느라 무척 애를 쓴다. 결국 팀플은 늘 늦은 시간에 시작하여 새벽까지 이어지게 되고, 그런 팀플이 한 주에 3-4개이니 3-4일은 학교에서 밤샘하기 일쑤다. 그 바쁜 와중에 사진전시회, 영상발표회, 댄스 공연, 뮤지컬 공연 등을 진행하는 것을 놀라울 뿐이다. 누가 시켜서 한다면 할 수 없는 일에 학생들은 열과 성을 다한다.


최근 우리 학교 안에서 유쾌한 소란이 매일 계속된다. 홈커밍데이 행사를 위해서 ‘LOVE’라는 조형물을 설치해두었는데, 학생들이 밤마다 이 조형물의 철자를 조합하여 기상천외한 단어나 조형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철자의 조합을 바꾸거나, 아래위를 뒤집거나, 정면으로 서 있어야할 철자를 측면으로 세워서 매일매일 새로운 단어나 조형을 만들어낸다. 가령, V자는 뒤집고, LO는 측면으로 세우면 한글로 씨티가 된다거나, O만 측면으로 세우면 ‘LIVE’가 된다거나, 철자 순서를 바꾸고 V를 뒤집어서 ‘LEON’을 만드는 식이다. 누가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아침이면 여지없이 SNS를 통해 즐겁게 공유되고 한다. 학교도 학생들의 기발한 발상과 창의적인 시도를 즐겁게 지켜볼 뿐이다. 세계 유명 도시마다 LOVE 조형물은 숱하게 설치되어 있지만, 이렇게 즐겁고 창의적으로 향유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지난 학기에는 우리과 학생들이 학교글꼴을 만들 적이 있다. 학생회관 앞에 책상을 설치하고 오가는 재학생들의 손글씨를 직접 받아, 프로그램을 통해 글꼴로 만들 것이다. 500여명의 학생들의 손글씨는 3000자 가량 모아서 만들어낸 글꼴이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기존 글꼴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문서작성용 글꼴이라기보다는 팬시용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글꼴이었다. 자비를 들여서 그 글꼴로 만들어 온 엽서의 글귀를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그 감동 때문이었으리라. “애도 어른도 아닌 나이 때, 그저 나일 때, 가장 찬란하게 빛나!”,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디지털이든 4차 산업 혁명이든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구호가 무엇이든 간에 그 핵심은 사람값을 지금보다 높이고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노력이 아니겠는가? 미래가 어떨지 섣불리 예견할 수야 없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이야기할 수 있다. ‘참여와 체험을 통한 즐거움의 창출이 그것이다. 누가 하는 것 혹은 보여주는 것을 일방적으로 보고 즐기던 시대는 끝났다. 향유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에 참여하여,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체험하고, 지속적으로 콘텐츠와 대화할 수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즐겼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참여와 체험을 통해 즐기는 과정을 향유다. 향유는 지금 이곳의 문화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이 되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웹툰, <프로듀스 101>, 방탄소년단, 팬덤 등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향유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여 성공한 예라는 것이다.

얼마나 사느냐만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은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즐거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다양하게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삶이 재미없다면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에 참여하여 체험하고 있는지, 그것을 통해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있는지. 당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2017.12.08. 매일경제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기록이 아닌 사람으로 기억될 그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선수, 이승엽이 은퇴를 한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어도 길고 긴 23년이라는 시간을 숨 막히는 승부의 정글 속에서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시간 내내 그는 늘 최고였고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기록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마흔둘의 나이에도 최고의 기량으로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은퇴시기를 미리 정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은퇴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그와 관련된 프로야구 기록과 극적인 순간의 영상 그리고 팬들과의 숱한 미담이 쏟아졌다. 그 모든 기록과 승부와 미담 가운데 인간 이승엽이 보였다. 홈런을 치고도 상대 투수에 대한 예의로 고개를 숙이고 홈으로 들어온다거나, 벤치 클리어링 이후에도 상대 외국인 선수를 다독이는 모습에서 배려하는 최고를 보았고, 언제나 자신이 아닌 코칭스텝이나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에서 겸손의 최고를 보았고, 홈런왕이 되고나서도 끝없이 스윙폼을 바꾸는 모습에서 최선 없는 최고가 없음을 보았다. 잊을 수 없는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그가 보였던 뜨거운 눈물이다. 올림픽 기간 동안의 부진으로 그가 느꼈을 부담감, 자책감, 책임감을 8회 역전 홈런으로 떨쳐내고 흘리던 그 뜨거운 눈물의 진정성에 우리는 같이 울며 공감하며 희망을 꿈꾸지 않았던가.

사실 돌아보면 최고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최고는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자의 것일 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승엽은 우리에게 왜 이토록 특별한 것일까? 은퇴 투어 내내 다른 구단과 선수단에서 그에게 준비해준 은퇴선물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기량이 뛰어난 야구선수, 최고의 기록을 가진 야구선수가 아니라 겸손과 배려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최고가 아닌 최선으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한 야구선수였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물러설 때가 아름답기 어렵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신이 어긋나 있고, 언제나 욕망은 불만족의 현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때를 정하고 단호하게 은퇴를 택하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또 다른 삶에 대한 꿈꾸기를 통해 온전한 자기 삶을 가꾸어내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살아가야할 시간은 늘고 있는데 은퇴 시기는 점점 빨라지는 지금 이곳에서 이제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이승엽처럼 최고는 아니겠지만 자기 나름의 아름다운 은퇴는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마무리로서의 은퇴가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위한 출발로서의 은퇴 말이다. 물론 그것은 은퇴 이후의 경제적인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에 대한 섬세한 준비와 남은 생을 어떻게 가꾸어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통장의 잔고나 부동산 혹은 연금이 그 준비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곳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를 두지 않는 것에서부터 은퇴할 적절한 시기를 가늠하는 것과 은퇴 이후 더 멋진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준비에는 많은 생각과 상의와 가늠이 필요할 것이다. 준비 없이 충실했던 시간이 어디 있던가? 이러한 준비에 앞서 우선 노트 위에 그동안의 삶의 기록들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그동안 무엇을 위해(Why), 무엇을 하며(What), 어떻게 살아왔는지(How) 꼼꼼하게 적어보고 진솔하게 스스로 물어보자. 그래서 행복했는지?

전설은 숫자상의 기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 기록을 세운 사람이다. 기억하고 이야기할만한 가치를 삶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 그를 우리는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른다. 살아있는 전설 그가 있어서 우리는 행복하다.

 

2017.10.13 매일경제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