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독한 도시의 유령
8월 11일 보스턴→뉴욕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드디어 뉴욕에 도착했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쌓아가고 있던 보스턴을 떠나면서 아쉬웠던 것은 그 시간의 질서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맡겨보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 것도 들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서 돌아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도시에서 볼 것에 쫓겨 다니다 떠나는 아쉬움은 생각보다 컸다. 그만큼 보스턴은 매력적인 도시였다.
뉴욕에서는 숙소보다 라과디아 공항(La Guardia Airport)에 먼저 들러야 했다. 숙소로 정한 민박집에 주차 시설이 없고, 뉴욕의 교통지옥 속에서 운전을 하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렌터카를 반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필라델피아로 떠날 때 다시 새로운 차를 렌트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렌터카 회사에서 알려준 주소를 사만다에게 알려줘도 사만다가 정확하게 위치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라과디아 공항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근처에 가서 다시 찾아볼 생각이었다. 라과디아 공항으로 가는 화이트스톤 브리지(Whitestone Bridge)에 올라서면서부터 사만다가 당황하기 시작해서, 할 수 없이 표지판만 보고 공항 내에 렌터카 회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렌터카 회사를 찾아서 차를 반납했다. 렌터카 회사 직원은 차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마지막으로 기름을 체크했다. 기름을 가득 채워서 반납해야 했는데 공항 주변에 주유소가 없어서 그냥 왔다가 추가요금 42.97달러를 더 냈다. 주유소의 기름 값보다 2배 이상 비싼 금액이었다.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되도록 공항 가까이 가서 주유를 하겠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공항주변으로 오니 주유소도 없고, 차를 돌리기도 어려운 길이어서 그냥 반납한 탓이다. 안타깝지만 또 하나 배웠다. 문제는 배움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반납하고 렌터카 회사 직원이 건네준 영수증을 보니 얼바인에서 뉴욕까지 3,948마일(6,353㎞)을 달렸다. 처음에 구글 지도를 보며 워싱턴까지 예상했던 거리를 뉴욕까지 오는데 모두 써버린 것이다. 더 달린 만큼 많이 보았을 것이니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그렇게 낯설던 자동차가 이제는 내차처럼 익숙해졌는데 막상 반납을 하려고 하니 같이 고생한 정 때문인지 아쉽기만 했다. 차에 싣고 있던 짐을 모두 내리고 보니 난민이 따로 없었다. 볼품없는 트렁크와 여행 동안 어설프게 줄어든 짐 그리고 기념품 등으로 늘어난 가방을 아이들까지 동원되어 나누어 들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뉴욕 숙소를 예약하는데 공항에서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부탁을 해두었다. 도착 1 시간 전에 연락을 달라고 해서 연락을 하니 시간을 맞추어 공항으로 온단다. 픽업 하러 오기로 했던 분은 렌트카 회사가 있는 곳을 몰라서 몇 차례 전화를 하더니 30분쯤 늦게 도착을 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국 분이셨는데, 공항에서 맨해튼 숙소까지 오는 동안 자신의 이민사(移民史)를 들려주셨다. 재미는 있었는데 중간중간 지나치게 욕을 많이 해서 아이들 보기가 민망했다.
맨해튼의 교통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뉴욕에서 민박은 대부분 다른 사람 건물의 방을 빌려서 하는데, 불법이란다. 그러니 집에 드나들 때 관광객처럼 하지 말고 당당하게 다니란다. 불법인데 어떻게 당당하란 말인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줄 돈 다 주고도 불법이라니 황당했다. 뉴욕의 호텔 가격이 워낙 비싸고, 민박도 한 번 체험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선택한 것인데 처음부터 꼬였다. 픽업도 민박집에서 서비스로 해주는 줄 알고 있었는데, 자신은 민박집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45달러를 내란다.
뉴욕 숙소 침실, 침실과 붙어있는 기계식 주차장, 휴대용 가스 버너와 휴지
미드타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서 보니 생각보다 엉망이었다. 내 돈을 주고 불법이라는 민박에 머무는 것도 언짢은 일인데 숙소는 낡고 지저분했다. 인터넷에서 가격대비 시설이 양호하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었는데 이 모양이었다. 사진으로 보니 깨끗하고, 취사가 가능하다고 하니 아이들에게 밥을 해서 먹일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이용 후기를 읽어보니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낡고 지저분했다. 가스레인지도 없고 휴대용 가스버너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예약을 6월 중순에 했으니 두 달 전에 기억이고, 사진과 다소 다를 수 있겠다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한 구석을 보니 직전에 머물렀던 손님들의 트렁크가 놓여 있었다. 뉴욕을 마저 둘러보고 떠나느라 추가 요금을 내고 짐을 맡겨 두었단다. 5시쯤 찾으러 올 거란다. 자기가 기다리고 있다가 짐을 내줄 거라며 양해를 구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낯선 땅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그 정도 편의도 못 봐 줄 이유가 없었다. 우리도 뮤지컬 입장권을 구하고 장도 좀 보아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나와야 할 시간이었다. 더구나 안내를 해주고 있는 사람은 집주인도 아니었고, 아르바이트 학생처럼 보이니 그에게 항의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뉴욕에서의 처음을 따지고 다투면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타임스퀘어의 모습
일단 숙소 밖으로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에서 사만다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길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우리가 있는 곳의 위치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작은 지도에서 우리가 있는 곳을 찾은 후에 타임 스퀘어(Times Square)를 찾아보고 지도를 따라서 걸었다. 가로축과 세로축을 맞추어 우리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목적지에 이르는 가장 빠른 코스를 찾아서 걸어갔다. 뉴욕의 악명을 여기저기서 너무도 많이 듣고 온 탓에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직 해가 남아 있었고, 비교적 큰 길들인데다가 우리는 모두 네 명이니 다소 안심이 되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네 명은 순식간에 한 명의 보호자와 세 명의 보호받아야할 사람으로 바뀌겠지만, 어쨌든 함께가 아니던가?
타임스퀘어는 아이들이 <무한도전>에서 보고, 꼭 가고 싶다던 곳이었다. 꽉 막힌 차들 옆으로 걸어보니, 맨해튼에서는 걷는 것이 제일 빠르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1904년 뉴욕타임스 본사가 42번가로 오면서 타임스퀘어로 불리기 시작했고, 한때는 성인영화관과 성인용품점 등이 즐비했던 범죄의 소굴이었으나, 1990년대부터 재개발에 들어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현재를 볼 수 있다는 타임스퀘어에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광판들이 어지럽게 점멸하고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타임 스퀘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에버21이 제공하는 대형전광판 이벤트와 전광판에 비친 우리 가족. 포에버21 전광판 속 아이돌 스타가 우리 사진을 찍어주지 않으니 아빠가 찍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타임스퀘어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포에버21이 제공하는 대형전광판 이벤트였다. 포에버21은 이민 온 한국인이 만든 의류회사인데, 미국 내 88위의 부자가 될 정도로 성공한 이민자의 기업이란다. 그것은 대형 전광판 안에 등장하는 아이돌 스타가 전광판을 바라보며 즐기는 행인들 중에서 가장 튀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는 인터랙션 이벤트였다. 아주 짧은 주기로 남녀 스타가 번갈아 나오면서 행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찍힌 사진이 대형 전광판에 바로 공개가 되기 때문에 행인들이 무척 즐겁게 참여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찍히려니 어지간히 튀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아무래도 어림도 없는 쪽에 가까웠다. 아무리 과한 몸짓을 해도 다른 사람들만 찍혔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재미있어 했고, 그냥 두면 밤새도록 그러고 있을 모양이었다. 가서 빨리 뮤지컬 입장권을 구해야했기 때문에, 내 카메라로 전광판에 비친 우리 모습을 찍었다. 아이들은 아쉬워했지만 어쨌든 찍은 것은 찍은 것이다.
아내의 계획에 따르면 오늘밤이 아니면 뮤지컬 공연을 볼 시간이 마땅하질 않단다. 사실 미리 숙소 측에 공연 예약은 가능한지를 문의했었는데, 도착해서 표를 구해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하여 그냥 온 것인데, 예정보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급해진 것이다. 타임스퀘어로 먼저 갔다. 타임스퀘어에 있는 안내센터를 먼저 찾아갔다. 공연 관련 정보와 예매가 가능했는데, 유진이가 보고 싶어 하는 <오페라의 유령>은 가장 좋은 위치인 137달러 좌석만 남아 있었다. 유진이는 이 작품을 꼭 보고 싶어 했다. 안내센터 직원에게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공연장은 이미 매진된 상태라고 확인을 해주면서, 혹시 길거리에서 입장권을 파는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밖으로 나와 메리어트 호텔 앞에 있던 입장권 판매원에게 물어보니 61달러와 115달러 좌석이 있단다. 그런데 61달러 좌석의 경우에는 입장권이 없을 수 있다는 말에 115달러짜리 오케스트라 뒷좌석을 구입하였다. 안내센터에서 말했던 137달러 좌석을 이곳에서는 115달러에 판매하고 있던 것이다. 공식적인 입장권 판매 장소였던 안내센터보다 메리어트호텔에 소속된 입장권 판매원의 판매가가 어떻게 더 낮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입장권 판매원까지 써가면서 더 저렴하게 파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 이야기로는 메리어트호텔에서 투숙객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했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극장 측과 연간 계약을 맺어서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입장권을 구매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유진이가 보고 싶어 하는 공연을 조금 저렴한 가격에 가장 좋은 좌석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들이 극장에 가서 입장권을 구매해 놓을 터이니 7시에 다시 와서 입장권을 받아가란다. 남는 1시간 정도의 시간 안에 한인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타임스퀘어에서 한인마트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조금씩 지쳐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걸어서 그곳에 가보니 얼바인에서 일반적으로 H마트라고 부르는 ‘한아름’이었다. 김치, 쌀, 삼겹살, 스팸, 계란 등의 식료품을 구입하고 보니 얼바인보다 가격이 거의 두 배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구입한 식료품을 들고 거의 뛰다시피 해서 숙소에 가져다 놓고, 허겁지겁 메리어트 호텔로 달려갔다.
입장권판매원이 손으로 써 준 메모의 따듯함에 감동하다.
호텔에서 입장권을 받아 나오면서 입장권을 확인하는데 봉투 안에 작은 메모가 들어 있었다. 입장권판매소 직원이 입장권과 함께 넣어준 직접 손으로 쓴 카드였다. 알 수 없는 감동이 전해졌다. 아마 다시 브로드웨이를 찾는다면 가격과 상관없이 나는 분명히 이곳에 와서 다시 입장권을 구입할 것이다. 그건 작은 메모 이상의 신뢰였다.
입장권판매소 직원의 작은 호의에 문득 따듯해졌다. 이번 여행에서 뉴욕은 내게 내내 불안한 장소였다. 뉴스나 영화를 통해서 이미지화된 뉴욕은 말 그대로 고담시(Gotham City)였다. 탐욕과 부패와 범죄로 타락한 도시를 상징하는 <배트맨>의 고담시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했던 탓인지 뉴욕은 불안하고 어두운 이미지였다. 그런데 입장권판매소 직원의 작은 메모가 그 어둡고 불안한 이미지를 씻어낸 것이다.
공연 시작까지는 4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숙소 때문에 기분 나빠지고, 일정보다 늦어지면서 종종대느라 피곤했는데, 메모 덕분에 모두들 유쾌해진 모습이었다. 공연이 10시가 넘어서 끝나니 공연 시작 전에 무엇을 간단하게라도 먹어둬야 했다. 마침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는 매저스틱 극장(Majestic Theatre) 바로 옆에 주니어스(Junior's)가 있었다. 주니어스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 케이크 집이라는데, 뉴욕에서 꼭 먹어볼 것 중에 하나로 아내가 벼르고 있던 것이었으니 더욱 좋았다. 게다가 늘 가장 먼저 배고프고 입이 까다로운 효진이가 정말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가 아닌가.
주니어스 치즈케이크와 흡입신공의 아이들
음식점 가서 가장 바보스러운 질문은 가장 맛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문을 받던 직원은 웃으면서 플레인 치즈케이크(Plain Cheesecake)가 제일 맛있단다. 그래서 그것 몇 조각을 샀다. 매장에는 자리가 없어서 가지고 나와서 길거리에서 들고 먹었다. 한 판으로 사면 30달러였는데, 조각으로 사면 6.5달러란다. 다들 좋아하는 것을 한 판 사주고 싶었지만, 그것을 들고 공연을 보러가는 것은 조금 난감한 일이어서 몇 조각을 산 것이다. 사주고보니 정말 맛있게들 먹는다. 가족들이 잘 먹는 것도 복이라고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는데, 여행을 다니다보니 그 의미를 알겠다. 가끔은 그 복이 지나치게 넘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나로 인한 것이었다.
브로드웨이 극장가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타임스퀘어에서는 화려한 불빛이 어둠보다 먼저 소란을 떨었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어둠이 먼저 물들어왔다. 매저스틱 극장 앞은 마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에 나오는 1930년대 뉴욕 뒷골목의 분위기를 재연한 것 같았다. 나는 1930년대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지금보다 조금 덜 빠르고 조금 더 인간적이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탓인지, 어린 시절 ‘명화극장’을 통해 본 영화들의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무척 매력적인 시대였다. 1
아직 어둠이 온전히 제압하지 못한 매저스틱 극장 앞에는 차들은 느리게 정지했고, 기마경찰과 삼륜의 경찰차가 정물처럼 서 있었다. 기마경찰은 관광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해주거나 사람들에게 미소를 던져주는 정도의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브로드웨이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
브로드웨이의 기마경찰
극장마다 천천히 불이 들어오고, 그 앞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리처럼 폴로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관광객에서부터 보타이(bow tie)에 정장을 한 사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 각기 달랐지만 모두들 밝고 환한 표정만은 같았다. 치즈 케이크로 충분히 행복해진 아이들도 공연을 볼 생각에 들뜬 표정이었다. 약간은 들뜨고 약간은 흥분된 기분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이렇게 천천히 시간이 흘러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저스틱 극장 전경
<오페라의 유령> 중간 휴식시간 극장 내부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보러갔을 때에는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면서 많이 답답했었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카지노와 연결되어 있었고, 카지노의 탁한 공기와 소란스러움이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로드웨이에서는 극장마다 줄을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는데 기다리면서 나름 즐기는 모습들이 오히려 여유롭고 한가해 보였다. 기다리는 것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공연장 주변 분위기에 따라서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각자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고, 우리도 어느새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나무며 즐기고 있었다.
극장으로 들어가서 보니 낡은 극장은 오히려 푸근한 느낌을 주었다. 매저스틱 극장은 생각보다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전용관이 주는 다양한 무대 장치는 돋보였다. 아내는 인기 있는 작품인데도 입장권 가격이 한국보다 싸다고 했다. 아마 전용관에서 상설공연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리라. 전용관과 상설공연은 관객뿐만 아니라 공연을 하는 측에서도 보다 안정적인 준비와 투자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의 배우들에게 지출되는 비용이나 무대장치들은 몇 번 공연을 하나 똑같이 들어가는데, 전용관에서 상설공연을 하는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은 감소하지만, 한국처럼 공연장 부족으로 단기간 공연에 그치면 공연장을 옮길 때마다 비용이 발생하고, 새로운 공연을 위한 배우들의 준비에 또 추가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뮤지컬 공연 관람료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구조에서는 우리만의 창작 뮤지컬이 나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원작료를 주고 외국 작품을 사와야 하니 입장권 가격은 또 오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뮤지컬의 대중적인 지지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못해서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현실이 이곳에 와서 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막이 오르길 기다리는데 여기저기서 우리말이 들렸다. 이곳에서는 조건반사처럼 우리말이 들리면 뒤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뒷좌석도 한국인 부부였다. 극장은 만원이었다. 전용관답게 공연은 극장 전체를 무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무대 아래와 뒤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의 변형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같은 레퍼토리를 몇 번씩 볼 수 있는 것이 이러한 공연의 매력이 아닐까? 동일한 작품을 배우나 연출자 그리고 극장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해내는 그 변화를 읽는 것이 공연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공연 중간 휴식시간에 화장실에 가다보니 의외로 턱시도를 입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에는 입기 힘든 드레스를 입고 온 여성들은 물론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격식에 맞춘 옷차림을 한 남성들도 많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동부 쪽 무더위가 대단하다는 뉴스에 짧은 옷만 준비해서 떠난 탓에 폴로티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나와는 너무 대조되었다. 사실 공연문화라는 것이 단지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공연을 보러가는 과정과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참여 방식까지 포함된 것인데, 우리는 너무 여행의 효율성만 생각했었나보다. 좋은 공연을 보러가면서 조금 멋스럽게 꾸미고 가는 것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입을까를 고민하고, 그러한 복식에 맞는 행동을 하면서 즐기는 것도 공연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 아이들의 몰입은 참 대단했다. 몰입이 대단했던 만큼 그 여운도 오래가는 듯 공연을 보고 나오자마자 뉴욕을 떠나기 전에 또 한 작품을 보면 안 되냐고 묻는다. 아이에게 여행 경비가 빠듯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서 난감해하는데, 눈치 빠른 아내가 안 된단다. 공연을 하나 더 보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쭉 설명하자 아이들도 납득을 한다. 늘 그렇듯 오늘도 아내는 현명하다.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되도록 밝고 큰 길을 찾았다. 10시 넘어서는 걸어 다니지 말라던 여러 사람들의 조언이 생각나서 43번가 쪽으로 가서 숙소로 돌아왔다. 43번가 쪽에는 뉴욕 타임즈 본사와 대형 호텔, 슈퍼마켓, 음식점 등이 이어져 있었는데, 군데군데 성인용품 판매점 등이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걷기가 민망했다. 도대체 치안이 불안한 도시가 어떻게 세계 제1의 도시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불안을 씻어줄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으니 세계 제1의 도시겠지만, 생각해보면 자유와 안전을 상쇄해줄 가치라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가장 안전하게 인간다움을 키워줄 수 있는 공간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던가?
걸어오면서 보니 늦게까지 영업하는 커피전문점들은 아직 불이 환하다. 세련된 옷차림의 뉴요커들이 앉아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커피전문점 앞 보도에는 쓰레기봉투가 어른 가슴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악취도 악취였지만 깔끔하고 환한 커피전문점과 투명유리로 분리되어 쓰레기봉투를 잔뜩 쌓아두고 있는 거리는 지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쓰레기 수거를 위해 내놓은 것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흉물스럽고 악취가 지나쳤다. 나와 너, 안과 밖을 분명하게 나누는 이 도시의 정서가 차갑고 안쓰러웠다. 뉴욕의 첫 이미지가 이 쓰레기봉투로만 기억되지는 않겠지만 쉽게 잊혀질 것 같지는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아이들이 씻는 동안 아내가 저녁을 준비했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김치도 꺼내어 썰었다. 횡단여행을 떠나면서부터 아이들이 노래하던 삼겹살을 구웠다. 거의 11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에 아이들은 참 야무지게 먹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짠하다. 그동안 밥, 김치, 삼겹살이 많이 그리웠었나보다. 어른들이야 어찌 견딘다고 하겠지만 아이들은 힘들었나 보다. 여행을 떠난 지 보름째이니 그럴 만도 했다. 여행 경비도 경비였지만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 가급적 간편식으로 해결해왔는데,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보니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아내는 오늘 하루 지출한 내역을 정리하며 일기를 적고, 나는 오늘 촬영한 사진을 노트북에 정리했다. 내일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연결하려니 와이파이가 안 된다. 예약할 때 인터넷이 된다고 했는데…뭐가 잘못된 것인지 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늦어서 전화를 거는 것은 실례인 듯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유진이가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다. 욕실이 깨끗하지 않으니 들어가기가 그랬나보다. 말로는 귀찮아서 그런다고 하지만 이런 곳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침실은 침대 두 개가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좁았다. 침구도 그렇게 정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숙소와 유료주차장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24시간 운영되는 이 주차장을 기계식 주차를 하고 있어서 차를 내리고 올릴 때 소음이 고스란히 침실로 전해졌다.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러나 돈은 이미 지불했고, 새로 숙소를 구할 요량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견뎌야한다. 다시 한 번 문이 잘 잠겼나 확인했다. TV 등에 나오는 민박만 보고 내가 너무 경솔하게 결정한 모양이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했기 때문에 이곳 맨해튼 미드타운에 숙소를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조금 저렴한 호텔이라도 찾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아이들은 오늘 여행의 노획물들을 정리하고 잠이 들었다. 아내도 마음이 좋지 않은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오늘 조금 만나본 뉴욕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10시 넘어서 숙소까지 안전하게 돌아왔지만 내게 아직은 뉴욕은 고담시다. 고담시는 배트맨이 지켜주었는데, 이곳은 누가 지켜줄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시민의 안전과 쾌적이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면, 뉴욕은 기본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혹시 내가 뉴욕을 콘텐츠를 통해서 이미지로만 알고 온 것은 아닐까? 아직 세계 제1의 도시라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게는 오히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2002)에 나오는 뉴욕의 이미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궁금하다. 왜 이곳이 세계 제1의 도시라고 불리는지 궁금하다. 내일부터 부지런히 다니면서 찾아보아야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은 유령의 공간이다. 분명하게 존재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유령이다. 어렴풋하게라도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나 뉴스로만 전해온 뉴욕은 이미지였지 구체의 현실이 아니었다. 뉴욕의 맨얼굴을 현실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다.
- 내게 1930년대는 영화 이미지 그 자체다. 기름 바른 짧고 단정한 머리에 중절모, 조금 넉넉한 더블양복과 롱코트, 그 사이로 당당하게 들고 선 기관단총…<대부>, <언터쳐블>, <좋은 친구들>, <퍼브릭 에너미>, <딕 트레이시> 등 할리우드가 생산한 이미지는 그 내용과 무관하게 낭만적으로 각인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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