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하스와 웰빙 사이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삶은 몇 가지 단서를 데리고 다닌다. 그 중에서 가장 절박한 것은 ‘더불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아주 소박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우리는 쉽게 살아가기 위해 수행해야하는 번거로운 숱한 일들과 함께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심리적․정서적 공황상태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 함께’해야 할 대상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자연이나 세계로 확대되거나 또는 과거의 조상들로부터 미래의 후손들까지로 확대된다면 그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로하스의 사전적인 의미는 ‘건강과 지속 성장성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이다.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로하스는 건강과 환경이 결합된 생활을 지향함으로써 자신의 건강은 물론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웰빙을 추구하는 삶의 형태를 뜻한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로하스족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정보에 밝고 독자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로하스족은 친환경적이고 합리적인 소비패턴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개인적 차원의 참살이’를 지향했던 웰빙과는 달리 ‘사회적 차원의 참살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손쉬움과 안락함을 추구하기 자연을 거스르고 이웃을 배려하지 않은 결과, 지금 이곳에는 자연과 이웃으로부터의 숱한 위협이 상존하게 하였다. 이러한 위협들은 대체로 총체적인 것이어서 그 원인을 어느 것 하나에서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유를 들자면, 살면서 우리를 쉽고 안락하게 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것이며, 내가 배려하지 않았던 이웃들이 그들이다. 하여 해답은 자명하다. 그것이 자연이든 이웃이든 더불어 함께 할 수 있어야지만, 진정한 참살이는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로하스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로하스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같은 이유로 자명하다. 로하스의 전제는 ‘더불어 함께’여야만 하며, 그 결과가 ‘개인의 참살이’는 물론 ‘사회적 참살이’여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몰려오는 로하스 열풍은 이전의 웰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웰빙이 있는 자들의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개인적 차원의 참살이였다는 점에서 비판 받았다면, 웰빙에 환경적인 관심만을 더한 것이 ‘지금 이곳’의 보하스 열풍이라고 거칠게 단순화시켜도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친환경적인 생활용품을 사용하고 유기농 먹거리만 먹으며 생태관광을 즐기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은 이기적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일회용품 줄이기,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천기저귀 쓰기, 대안생리대 쓰기 등과 같은 사회적 차원의 실천이라면 소박하다.
문제는 ‘어떻게 지속 가능한 차원에서 더불어 함께할 것이냐’이다. 그것은 무엇을 쓰고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누구와 어떻게 함께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노력은 공시적으로는 너와 나의 이웃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통시적으로는 우리 후손들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굳이 그 중에서 우선할 것을 고르라면 우리는 주저 없이 우리 주변의 이웃에 대한 배려를 선택해야만 한다. 오늘의 우리가 더불어 함께 하지 못하면서 내일의 후손들에 대한 책임 운운하는 것은 저급한 기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하지 못하는 보하스는 꿈일 뿐이다. 네가 행복하지 않고서는 나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단순한 이치에서 우리의 고민은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이 선행되지 못한 지금 이곳의 로하스는 웰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면 웰빙은 절대 웰빙이 될 수 없으며, 보하스는 보하스가 될 수 없기에 꿈이다. 꿈에는 늘 내가 없다.
《한화․한화인》200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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