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대견한 탈퇴
박기수(한양대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원더걸스의 선미가 탈퇴를 했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공식발표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텔미’와 ‘노바디’로 국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고 미국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를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원더걸스에서 굳이 탈퇴를 선언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보아의 아이돌 한류 이후 전방위적인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최근의 가요계이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물론 브라운아이드걸스, 포미닛, 2NE1, 애프터스쿨, 카라, 티아라, 동방신기, 빅뱅, 슈퍼주니어, SS501, 샤이니, 2AM, 2PM, FT 아일랜드 등 새로운 콘셉트와 아이템으로 매혹하는 아이돌의 등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물론 조기에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하여 스타로 육성하겠다는 것도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향유 주체와 비슷한 연령의 아이돌을 통하여 스타와의 동일시를 강화하고 몰입과 소통을 극대화하겠다는 매우 유효한 전략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최근 아이돌은 단지 젊은 층의 지지뿐만 아니라 아저씨 부대와 아줌마 부대의 열광을 이끌고 있다. 로리타 신드롬과 상관하여 음란한 판타지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엔터테인먼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만큼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획의 성과라고도 평할 수 있겠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어리다는 데 있다. 사회적, 문화적 체험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 상태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며 무차별적인 대중의 열광과 비난을 감내해야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얼마 전 2AM의 조권은 자신처럼 긴 연습생 시절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단지 연습 기간이 길었다는 하소연이 아니라 연습기간 내내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청소년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말이다. 또래들과 함께 즐기며 체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끝이 보이지 않는 연습 기간으로 보내야 하고, 데뷔 이후에는 그동안의 투자를 보상받기 위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하기 때문에 다시 또래들의 체험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악순환 속을 거듭해야만 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나 활동이 아니라 기획사의 콘셉트에 따라 만들어진 캐릭터와 아이템으로 활동해야하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와 환호가 높을수록 그들의 우울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돌은 이 시대의 극단화된 욕망이다. 향유자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을 아이돌에게 투사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끼고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조기교육, 노예계약, 또래로부터 유리된 생활, 몸짱 등 아이돌과 관련된 코드들은 모두 우리시대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미의 탈퇴는 반갑고 대견하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스스로 판단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려는 노력! 지금 이곳의 우리가 갖지 못한 고민과 결단의 모습을 선미에게서 보아서 일까? 난 선미의 탈퇴가 반갑고 대견하다.
2010년 《한전》
'칼럼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와라, 봄이여!-2010 (0) | 2018.07.13 |
---|---|
보이지 않는 배려의 아름다움-2010년 《한전》 (0) | 2018.07.13 |
동계올림픽이 부르는 봄-2010년 《한전》 (0) | 2018.07.13 |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2010년 (0) | 2018.07.13 |
스토리텔링을 넘어선 스토리텔링의 매혹-2009년 《방송작가》 (0) | 2018.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