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라, 봄이여!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올 봄은 참 더디게 온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의 영문 제목처럼 <April Snow>가 내릴 정도니 달력도 무색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성급한 꽃잎은 벌써 흩날리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학생들의 연구실 방문이 잦다. 스스럼없이 연구실을 찾아오는 제자들이 그렇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번 방문은 조금 무겁고 진지하다. 찾아오는 4학년들 의 손에 자기소개서가 창백하게 들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자기소개서에서 요구하는 질문의 성격과 요구가 다르다보니 자기들이 써놓은 내용은 선생들에게 점검 받고 싶은 모양이다. 외국어 공인점수는 이제 별다른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하는지 어학연수는 필수이고, 국내는 물론 해외봉사 실적까지 은연중에 요구하는 실정이다 보니 학생들은 늘 갖춘 조건보다 갖추어야 할 조건에 늘 쫓기게 된다. 학생이 들고 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뒤에 잔뜩 붙어 있는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것들을 읽어보다가 그의 쫓기듯 달려왔을 대학시절이 문득 안타까워졌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학교에서 과제와 팀 프로젝트로 밤샘을 하면서 집안 사정으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던 그 학생의 일상을 비교적 소상하게 안다고 했는데, 외국어 점수와 각종 자격증은 물론 국내외 봉사활동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는 그의 자기소개서에는 정작 보여야할 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도 둘째도 중간고사란다. 첫째는 학원 보강으로 늦은 시간 학원이란다. 연구실에서 들어가면서 데리러 갔더니 아직 수업중이라고 학원 앞에서 기다렸다. 백화점이 있고 주변에 상가와 의심스러운 술집들이 밀집된 지역에 아이의 학원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나와 같은 처지로 보이는 부모들이 차 안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11시가 다 되어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내려왔다. 아직 중학교 2학년인 아이의 핼쑥한 볼이 안쓰러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 속에서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대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그 경쟁을 내려놓으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면서 내내 복잡했던 것은 늦은 시간 학원 앞 도로만이 아니었다.

끝없는 스펙 경쟁에 내몰리는 대학생이나 실체를 알 수 없는 경쟁 안에서 갈수록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아이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자기가 없는 자기 소개서와 내적 성장 없는 학습으로 우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제자와 아이에게 그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과 부모의 조언보다는 아이폰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어플리케이션이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된 지금 이곳에서 우린 과연 삶의 봄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봄은 생명이다. 생명은 살아있다는 의미고,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변화가 생명의 중심인 것은 지금 이곳의 무엇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다. 그저 지금보다는 내일이 더욱 풍요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좀더 알 찬 삶을 살아내려는 옹골찬 의지가 변화다. 진정한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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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배려의 아름다움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무상급식 문제로 정치권이 뜨겁다. 전면적 무상급식이냐 선별적 무상급식이냐를 놓고 지방선거와 연계하여 정치권은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이해할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설득과정이 아니라 쌍방 모두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선동이라는 의구를 떨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필자는 무엇이 옳다고 판단하거나 주장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솔직하지 못한 논란 속에서 말은 못하지만 심하게 상처받고 있을 아이들에 대한 염려는 떨치기 어렵다.

1970년대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때에는 학기초면 선배들의 교과서를 물려받을 학생들 신청을 받곤 하였다. 교과서 대금이 없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배려였는데 선뜻 손을 드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그 수요를 조사하면서 모두들 눈을 감으라고 하시던 장면이다. 손을 드는 아이가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조심하시던 선생님의 뜻을 깨닫게 된 것은 아마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서였을 것이다.

언젠가 선배에게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박사과정 공부를 할 수 있었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별다른 직업 없이 공부를 하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던 시절, 그 길을 몇 년 먼저 간 선배에게 물은 것이다. 그 선배는 날마다가 기적이었다고 씁쓸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었다. 박사를 마칠 무렵 나는 이미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시간강사 수입으로는 하루하루가 참 벅찼던 시절, 어느 날인가 은사님께서 차를 가지고 댁으로 오라고 하셨다. 은사님은 당신을 어느 곳까지 태워다달라고 하셨다. 평소 제자들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의아한 일이었다. 그런데 은사님은 가시다말고 대형마트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가트를 두 개 끌고 오라고 하시고는 분유와 기저귀를 두 가트에 가득 담아주셨다. 넉넉하지는 않았도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물이 핑 돌정도로 감사로 벅차오르던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불안하고 힘겨운 시간을 위로해주시기 위해 일부러 부르시고서는, 제자가 부담을 느낄까봐 당신을 어딘가로 태워다달라고 말씀하시던 은사님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은퇴하시고 나서도 그 해에 가장 연구업적이 뛰어나 제자에게 적지 않은 돈과 족자를 내리시고는 송구스러워할 제자에게 글을 주었으니 글값으로 과일을 사오라고 하시던 선생님. 당신이 200만원을 상금으로 내리시고 그깟 과일값이 없어서 그리 하셨겠는가?

일본에서는 유치원비를 담당 관청으로 내게 한다고 한다. 저소득층의 유치원비를 나라에서 지급하는데, 유치원에서 유치원비를 직접 거두면 누가 저소득층인지 알게 될 터이고, 그것이 혹시라도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금융 위기 이후로 좀처럼 경제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무상급식이 문제 인 것은 무상급식의 대상이 될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배려를 누가 뭐라겠는가? 다만, 그 배려의 과정이 좀 더 은근하고 조심스럽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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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대견한 탈퇴

 

박기수(한양대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원더걸스의 선미가 탈퇴를 했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공식발표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텔미노바디로 국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고 미국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를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원더걸스에서 굳이 탈퇴를 선언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보아의 아이돌 한류 이후 전방위적인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최근의 가요계이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물론 브라운아이드걸스, 포미닛, 2NE1, 애프터스쿨, 카라, 티아라, 동방신기, 빅뱅, 슈퍼주니어, SS501, 샤이니, 2AM, 2PM, FT 아일랜드 등 새로운 콘셉트와 아이템으로 매혹하는 아이돌의 등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물론 조기에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하여 스타로 육성하겠다는 것도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향유 주체와 비슷한 연령의 아이돌을 통하여 스타와의 동일시를 강화하고 몰입과 소통을 극대화하겠다는 매우 유효한 전략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최근 아이돌은 단지 젊은 층의 지지뿐만 아니라 아저씨 부대와 아줌마 부대의 열광을 이끌고 있다. 로리타 신드롬과 상관하여 음란한 판타지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엔터테인먼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만큼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획의 성과라고도 평할 수 있겠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어리다는 데 있다. 사회적, 문화적 체험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 상태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며 무차별적인 대중의 열광과 비난을 감내해야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얼마 전 2AM의 조권은 자신처럼 긴 연습생 시절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단지 연습 기간이 길었다는 하소연이 아니라 연습기간 내내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청소년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말이다. 또래들과 함께 즐기며 체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끝이 보이지 않는 연습 기간으로 보내야 하고, 데뷔 이후에는 그동안의 투자를 보상받기 위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하기 때문에 다시 또래들의 체험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악순환 속을 거듭해야만 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나 활동이 아니라 기획사의 콘셉트에 따라 만들어진 캐릭터와 아이템으로 활동해야하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와 환호가 높을수록 그들의 우울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돌은 이 시대의 극단화된 욕망이다. 향유자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을 아이돌에게 투사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끼고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다. 조기교육, 노예계약, 또래로부터 유리된 생활, 몸짱 등 아이돌과 관련된 코드들은 모두 우리시대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미의 탈퇴는 반갑고 대견하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스스로 판단함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려는 노력! 지금 이곳의 우리가 갖지 못한 고민과 결단의 모습을 선미에게서 보아서 일까? 난 선미의 탈퇴가 반갑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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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이 부르는 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동계올림픽이 뜨겁다.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을 보며 우리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턱없이 부족한 동계스포츠 인프라나 열세인 체력 등으로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보다는 금메달을 딴 모태범과 이상화의 당당함과 즐거움을 보라. 쇼트트랙에서 탈락했던 이승훈이 올림픽 출전의 꿈을 버리지 않고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출전하여 따낸 은메달은 얼마나 극적인가? 동료의 실수로 날아간 아들의 메달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흔연히 달려가 실수한 선수를 위로해주던 성시백 어머니의 포옹은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20여년의 대표선수 생활을 하면서 비록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으나 메달을 딴 모든 후배들에서 나오던 이규혁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동계올림픽이 기대되는 것은 그곳에서 희망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2-3위로 달리다가 결승선을 앞두고 충돌하여 실격 처리된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신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고, 또 다른 실격을 기대했다는 안톤 오노의 몰염치와 경망스러움을 더 이상 비난하고 싶지 않다. 스포츠 정신을 모르고 결과로서의 승패만을 얻으려는 그런 선수에게서는 희망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는 재주보다 밀치는 손재주가 더 낫다는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에게 픽사 애니메이션 <>를 보여주고 싶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154Cm 45Kg의 작은 몸으로 덩치 큰 서구 선수들 앞을 달리던 이은별 선수의 당찬 열정이나 비록 선수복을 경기 전날 수선해 입을 정도로 열악한 지원 속에서도 결선까지 진출했던 스키 점프 선수들의 당당한 도전 그 자체가 희망이 아니던가? 메달도 메달이지만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자신들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줄 아는 그 젊음의 당찬 미소와 유쾌함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 결선에 오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온 이름도 낯선 종목의 선수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매스컴의 각광을 받거나 노력의 결과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시상대에 오를 가능성을 그리 높지 않지만 하루하루 부끄럽지 않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희망일 수 있는 이유도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를 발견하듯 그들도 우리의 모습에서 희망을 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는 까닭이다.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동계올림픽의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최상이 아닌 최선을 보여주는 그들과 최선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이 엄혹한 계절을 위로하며 우리의 봄을 부르는 사람들이다. 아니 우린 서로 그렇게 위로하고 응원하며 우리의 봄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봄이 오고 있다.

2010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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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박기수(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봄이 더디더니 가을도 굼뜨긴 매한가지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의 영문 제목처럼 <April Snow>가 내리던 봄이더니 추석이 코앞인데 아직 여름일뿐이다. .

지난주부터 학생들의 연구실 방문이 잦다. 스스럼없이 연구실을 찾아오는 제자들이 그렇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요즘 방문은 조금 무겁고 진지하다. 찾아오는 4학년들 의 손에 자기소개서가 창백하게 들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자기소개서에서 요구하는 질문의 성격과 요구가 다르다보니 자기들이 써놓은 내용은 선생들에게 점검 받고 싶은 모양이다. 외국어 공인점수는 이제 별다른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하는지 어학연수는 필수이고, 국내는 물론 해외봉사 실적까지 은연중에 요구하는 실정이다 보니 학생들은 늘 갖춘 조건보다 갖추어야 할 조건에 늘 쫓기게 된다. 학생이 들고 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뒤에 잔뜩 붙어 있는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것들을 읽어보다가 그의 쫓기듯 달려왔을 대학시절이 문득 안타까워졌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학교에서 과제와 팀 프로젝트로 밤샘을 하면서 집안 사정으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던 그 학생들의 일상을 비교적 소상하게 안다고 했는데, 외국어 점수와 각종 자격증은 물론 국내외 봉사활동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는 그의 자기소개서에는 정작 보여야할 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고생들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학원에서 쏟아지고 부보들은 그들을 허겁지겁 차에 태우기 바쁘다. 학원 끝날 시간이면 부모들은 길가에 차를 대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자정이 다되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좀처럼 내일을 보기 어렵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 속에서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대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그 경쟁을 내려놓으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무모한 일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일을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끝없는 스펙 경쟁에 내몰리는 대학생이나 실체를 알 수 없는 경쟁 안에서 갈수록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아이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자기가 없는 자기 소개서와 내적 성장 없는 학습으로 우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그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과 부모의 조언보다는 아이폰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어플리케이션이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된 지금 이곳에서 우린 과연 진정한 삶의 자세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교육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행복에 다가설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편일률적인 언론사의 대학 평가 기준에 우리가 얼마나 부합하며 몇 위가 되는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 지향과 좌표를 설정해야만 한다. 입학생 대비 재학생 비율이 평가 기준이 될 것이 아니라 그 학교 졸업생의 윤리의식이나 봉사정신 등이 평가의 기준이 되면 안되는 것일까? 우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언론사의 비교육적이며 폭력적인 평가기준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평가기준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더 나아가 세계 대학을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자기소개서 한 장에서 그 학생만의 차별성이 보이고 밤늦은 시간 학원이 아니라 각자의 자기 만들기에 좀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교육에서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은 생명이다. 생명은 살아있다는 의미고,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변화가 생명의 중심인 것은 지금 이곳의 무엇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다. 그저 지금보다는 내일이 더욱 풍요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좀더 알 찬 삶을 살아내려는 옹골찬 의지가 변화다. 진정한 교육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한대신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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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을 넘어선 스토리텔링의 매혹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시대다.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story)가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하고(tell) 즐기게 할 것이냐(ing)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말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를 훼손시켜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내용만큼이나 어떻게 이야기 하고 어떻게 즐기게 할 것이냐도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북극의 눈물>, <한반도의 공룡>, <누들로드>, <차마고도>, <아마존의 눈물> 등등 특별 기획 다큐멘터리는 물론 <다큐멘터리 3>, <인간극장>과 같은 정기적인 다큐멘터리까지 가히 다큐멘터리의 폭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지상파뿐만 아니라 케이블에 위성까지 다수 채널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채널별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저렴한 비용을 투자해서 보다 광범위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경사되고 있는 실정에서 솔직담백한 다큐멘터리의 진지한 행보에 매혹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세계적인 고품격 다큐멘터리를 체험함으로써 리터러시 능력은 물론 기대수준까지 한껏 높아져 있고, 개인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전문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지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무엇보다 지배적인 채널에서 고만고만한 컨셉에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출연자 그리고 공허하기만한 말장난과 불쾌할 정도의 막말이 난무하는 오락 프로그램과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막장 드라마 그리고 10대들의 전유물이 된 가요 프로그램 등으로의 편향이 최근 다큐멘터리 붐으로 이어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다큐멘터리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알고 싶으나 알려주지 않던 진실이나 차가운 이성 중심의 지식이 아니라 감성으로 읽어낼 수 있는 지금 이곳의 진실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다루고 있는 <지식e><다큐프라임>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들은 책으로 다시 출간되어 방송만큼이나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콘텐츠 업계에서 소위 말하는 One Source Multi Use의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구현 가능한 만화나 소설 등의 도서류가 원천콘텐츠로 먼저 출시되어 시장성 검증을 받으면, 그 결과를 보고 매스 미디어와 결합한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같은 거점콘텐츠로 전환하는 것이 One Source Multi Use 중 장르전환의 예인데, 이들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계속 방송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노출이 가능하고, 이미 방송을 통해 관심을 끈 아이템에 대하여 문자를 통한 말하기로 보완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개가 가능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전문가들은 스토리가 내러티브를 낳고, 내러티브가 스토리텔링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스토리는 구술 언어를 중심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일정한 컨텍스트를 확보한 상황에서 전달되는 내용중심의 이야기를 말한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이야기를 기억해보자. 밑도 끝도 없이 옛날 옛날에라는 관용구로 시작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듣던 여러분이 잠들면 언제든 끝낼 수 있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인 스토리의 유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스토리가 문자언어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달로 익명의 다수 대중들을 향하는 도서의 형태로 바뀌면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컨텍스트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인 이야기 방식이 필요했고,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내러티브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익명의 다수 대중을 향해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의 고안과 활용이 필수적이었다. 더구나 문자라는 매우 제한된 표현방식으로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는 더욱 정교하고 전략화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스토리와 내러티브가 디지털 문화환경과 결합함으로써 보다 창조적인 형태의 이야기로 전개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쌍방향성, 네트워크성, 통합성이라는 디지털의 특성을 창조적으로 수납함으로써 새로운 단계의 이야기를 구현할 수 있게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단선적인 발전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야기의 내용이나 기대하는 효과에 따라서 이 세 형태는 전략적으로 선택되어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지식e>가 방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도서로서도 전폭적인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현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정해진 시간에 다양한 감각에 호소할 수 있는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멀티미디어적 구현이 가장 효과적인 말하기 방식이라고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 말하려는 내용과 목적 그리고 기대하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송 시간의 제한은 정보 제공 시간의 제한을 가져온다는 치명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더구나 그것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그 한계는 더욱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e>의 경우에는 멀티미디어적 요소를 지극히 제한적으로 활용하면서 지배소의 선택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정보를 엄격하게 선별하고 이를 완과 급을 조절함으로써 향유자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 과정에서 상술되어야했거나 더 생각해볼 거리를 보완하고 있다. 모든 것을 말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생각해볼 거리에 초점을 맞추어 취사선택하고, 방송을 통해 최적화시킬 수 있는 요소와 책을 통해 최적화시킬 수 있는 요소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방송만 보았거나 책만 보았다는 것이 온전한 체험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독립적인 스토리텔링을 즐긴 것이 된다. 물론 둘 다 보았다면 그 가슴울림은 두 배가 되었겠지만.

<지식e>의 스토리텔링은 매혹적이다. 그 압도적 매혹의 가장 중심에는 그것이<지식e>의 컨셉처럼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지식에 대한 목마름, 박제가 되어버린 다른 세계의 지식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아픔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갈망이 <지식e>에는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지혜라고 해도 좋을 내용을 <지식e>가 굳이 지식이라고 하는 이유도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죽어버린 지식들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며 무거운 진혼에 다름 아니다. 지금 이곳의 우리가 그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거나 안다고 믿고 있지만 나서서 드러내기 어려운 우리의 부끄러움을 그것이 가슴으로 되묻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당신들의 천국이 읽히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던 이청준 선생의 선지적 서문이 기억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일게다.

2009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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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집필기준과 소문의 벽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거짓말은 세 사람을 죽인다. 거짓말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그 거짓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순간, 대부분의 오해를 풀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거짓말이 죽인 세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거짓말보다 무서운 것인 소문이다. 소문은 진실과 거짓의 모호한 경계 위에 서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보로 말하고 듣는 사람 모두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문의 대상이 되는 정보나 사람은 해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며, 설사 주어진다고 해도 일단 소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진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는데, 소문은 대부분 사람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2011년 한국 사회는 유난히 소문이 많다. 182억을 들여서 투표함도 개봉하지 못했던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의 부조리와 부끄러움으로 기억될 흑색선전의 서울시장 선거, 실체를 알 수 없는 한미 FTA 문제 등과 같은 최근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소문의 벽을 생각한다. 그동안 소문이 이토록 힘 센 적은 없었다. 이것은 그만큼 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거나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진실을 전달해야할 언론마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진실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진실을 요구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 그리고 진실을 향한 사회 전체의 깨어있는 의식만이 진실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지난 8일 발표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논란이 뜨겁다. 친일파 청산, 5·16 군사쿠데타,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제주 4·3 사건 등의 역사가 대강화(大綱化) 원칙으로 집필기준에는 빠졌지만 교과서 기술에는 들어갈 것이란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며, ‘독재정권이 아니라 독재화여야 한단다. 아픈 역사일수록 그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가려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그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논란은 단지 용어 몇 개를 수정하고, 몇몇 사건을 누락시킨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용어의 수정이나 사건의 누락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의식의 문제이며, 역사에 대한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소문으로부터 소환해야할 시점에 역사를 또 다른 소문의 미망 속으로 퇴보시켜버리는 이번 집필기준은 어떤 사건을 빼고 넣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나는 꼼수다>가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기존의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문의 전달이 아니라 소문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찾아낸 진실을 알리려는 두려움 없는 자세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는 우리들의 냉철한 지지가 간절한 시점이다. 역사교과서는 그 출발이기에 더 엄정하고 객관적이며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역사로부터 진실을 기대할 수 없다면, 현실은 결코 소문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한대신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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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과 등록금

 

박기수(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오디션의 본질은 정당한 경쟁을 통한 선발에 있다.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정당한 경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망을 반영한 결과이다. 정당한 경쟁이란 다양성과 공정성을 바탕에 두고 있어야 하며, 경쟁을 통한 긍정적인 결과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

성별, 연령, 교육 및 경제적 수준, 문화적 역량 등이 종합된 개인의 취향과 무관하게 무차별적인 공습을 퍼붓고 있는 아이돌 음악의 압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강요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미국과 서유럽을 강타한 K-POP을 예로 들며 산업적 가치의 규모나 한류의 영향력 등을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자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한류가 무슨 소용이며, 문화가 전제되지 않는 문화콘텐츠의 가치가 과연 지속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K-POP의 문제는 그 수준이나 완성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상실에 있으며, 한국 음악 시장을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댄스음악이나 아이돌을 비롯하여 K-POP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강요한 획일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더구나 외모 등의 음악 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도 아예 경쟁의 장에 나서보지도 못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침묵하는 대중이 반응한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수퍼스타K >가 보여준 신선한 충격을 상기해보자. 새로운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참가자들이 보여준 다양성과 공정성에 기반한 뜨거운 열정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김지수, 장재인, 존박, 허각 등이 보여준 자기만의 세계와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은 누가 우승을 했느냐와 무관하게 모두들 즐거운 경쟁의 장으로 끌어당기며, 그것을 즐기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정당한 경쟁의 긍정 바이러스를 만나지 않았던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나는 가수다>가 보여주었던 재도전 논란은 다양성의 확보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룰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경쟁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즐겨야 할 것이다. , 그것이 다양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열린 시각과 경쟁의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룰, 그리고 그 결과가 참가자는 물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을 때에만 경쟁은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을 둘러싼 여당 내의 논란이 화제다. 그것이 그저 국면전환을 위한 구호가 아니길 바란다.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면 지켜야 할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등록금의 문제는 그저 돈을 더 내고 덜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기회에 대한 문제이며, 동시에 교육을 바탕으로 한 공정한 경쟁의 문제이다. 현재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의해서 경쟁의 참여나 순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 대상의 능력과 잠재력에 주목하는 경쟁일 때, 다양성의 확보는 물론 공정성 그리고 그 결과의 긍정성에 우리 모두 수긍하지 않을까? 등록금의 문제는 학생이나 학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논의해야할 문제이며, 그것은 지켜지지 않는 공약이나 국면전환용 구호로서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준엄한 요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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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의지인 까닭

 

박기수(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봄은 개강과 함께 오지 않는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개강과 함께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겨울이 끝난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캠퍼스 곳곳에 따듯한 햇살이 투명하게 부서지고 벚꽃이 쌀 튀밥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도 봄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살아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고 미래를 계획하고 실천한다는 의미다. 당신 스스로 변화의 기운을 가슴에 담을 때, 기운이 의지가 될 때, 의지가 실천에 이를 때, 그 실천이 당신을 좀 더 따듯하게 할 수 있을 때, 문득 봄이 오는 것이다.

엄동의 혹한을 뚫고 찾아온 이 계절에 당신은 어떤 변화를 계획하고 있는가?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공모전을 준비하고 어학점수를 올리는 것도 좋은 계획임에 틀림이 없지만, 남들이 모두 채워가는 이력서의 스펙 한 줄 한 줄이 정말 최선의 변화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한 준비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전혀 남다를 것도 없고 후킹하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스펙은 당신의 취업은 물론 당신의 삶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갖추고 있고 모두가 생각한 것이라면, 굳이 당신까지 그것을 갖추고 그렇게 생각해야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 계절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이냐고, 당신은 그것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느냐고?

영어회화에 능통하고 토익 고득점을 얻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어학연수 간 낯선 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외국인은 안 된다는 현지인 스텝과 부족한 영어로 토론을 벌여 마침내 참여한 도전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에리카캠퍼스 사회체험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문화콘텐츠학과 박예은 학생의 사례) 이 도전이 매력적인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점,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그 어떤 난관도 뚫어내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는 점, 부족한 것은 의지와 열정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도전이 매력적이고,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먼저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끄고, 조용히 눈을 감고 기억의 맨 끝에 있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 때 당신은 어떤 삶을 어떻게 꾸려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는가? 기억의 맨 끝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새내기로 입학하던 첫날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당신이 정말 하고 싶고’,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일은 무엇이었나? ‘하고 싶고’, ‘해야만 할 일을 위해서 당신은 할 수 있는능력을 키우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노력을 해왔고,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조금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물음의 답을 혼자서만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그 다음에 주변에서 답을 구하자. 당신 주위에는 부모님, 선배, 친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과 같은 학생들을 매년 만나는 교수님들이 계시지 않는가? 연구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제 곧 교정 가득 백합과 벚꽃이 흐드러질 것이다. 그 사이사이 새내기들은 풋풋한 패기로 뛰어다니고, 복학생들은 다소 어색한 미소로 강의실에 들어설 것이다. 그래서 봄이다. 봄은 생명이고, 생명은 변화다. 변화는 의지와 실천을 수반해야만 한다. 다만, 지금은 의지와 실천에 앞서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시간이다. 이 봄 당신이 꿈꾸고 있는 봄은 무엇인가?

<한대신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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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것은 갈등이 아니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23, 지금 이곳은 곳곳이 갈등이다.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에서부터 MBCKBS 파업 그리고 캠퍼스 안의 등록금 투쟁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격한 갈등 중이다. 옳고 그름과 그와는 상관없는 이해관계의 실타래가 헝클어진 모습을 보니 이러한 갈등이 좀처럼 풀릴 것 같아 보이지 않으니 더욱 안타까운 오늘이다.

갈등은 그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가치중립적인 징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부단히 움직이며 변화하고, 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런 의미에서 갈등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갈등을 겪고 그 갈등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다한 관점이 모이면서 현재 상태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 사회가 노쇠할수록 갈등은 찾아볼 수 없으며, 변화하지 않는 견고한 현재만이 지속될 뿐이고, 그 지속의 시간만큼 그 사회는 쇠잔해져갈 뿐이다.

우리사회는 지독히 역동적이다. 그만큼 우리들의 변화의 열망이 강하고 좀 더 나은 상태를 향한 개선의 의지가 뚜렷하다는 말이다. 그 역동의 동력은 갈등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관점 그리고 지향이 부딪히면서 현재의 개선과 진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사회가 역동적인만큼 건강하고 발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러한 낙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갈등의 과정에 있다. 우리의 갈등 과정에서는 대립하는 주체들이 충분한 논의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합의점을 찾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내 의견만을 관철시키겠다는 일방적인 의미만으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상호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하지 않는 갈등은 사생결단의 전쟁일 뿐이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변화와 개선의 선의가 될 수는 없다.

강정마을의 발파음을 들으며 생각한다. 5년 이상을 끌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논리는 궁색하다. 해군기지 건설이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합의하고 지지할 수 있을 때까지 더 진지하게 논의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옳다. 한 번 건설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더욱 그렇다. 그동안 성과주의의 맹목과 일방적인 조급증로 돌이킬 수 없게 만든 수다한 사업들을 기억하지 않는가?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갈등이 아니다. 효과와 효용의 이름을 앞세워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함으로써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권력의 일방주의와 그 주변에서 기생하는 폭력적인 논리들이다. 갈등을 해소해나가기 위한 우직한 기다림과 상호 이해의 세련된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힘만으로는 결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대신문> 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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