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놀로지, 즐겁지 않은 것은 독이다.

 

 

박기수(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학과 커뮤니티에 누군가 게임을 올려놓았다. 테트리스와 유사한 <떼굴떼굴>이라는 게임인데, 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게임에 학과 학생들이 푹 빠져버렸다. 학사 관련 공지나 과 행사 등을 알리거나 행사사진 정도만 올리던 커뮤니티가 갑자기 북적거렸다. 인터넷을 굳이 뒤지지 않더라도 이 정도 게임이야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인데 이토록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곳이 학과 커뮤니티였기 때문이다. 클릭만하면 할 수 있도록 게임 아이콘을 학과 커뮤니티 대문에 달아두었는데 그곳에 1등의 이름이 게재되었다. 다른 게임 사이트에서의 랭킹이야 거의 익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이곳은 우리과 학생들끼리의 경쟁이니 손쉽게 순위가 바뀌고 그것이 즉시즉시 공지가 되는 현장성을 확보하고 있는 탓이었다. 더구나 게임이 간단하다보니 접근이 용이하고 조금만 집중하면 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매력까지 있으니 어떻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 (Universal Studios Japan)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attraction)<스파이더맨>이다. 대부분의 어트랙션이 50분 이상 기다려야하는데 <스파이더맨> 어트랙션은 90분 이상의 기다림을 요구한다. 10시에 개장을 하면 입구부터 <스파이더맨> 어트랙션까지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참 볼만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관람객들은 기다리는 일이 지루하다 못해 극도로 화가 날 지경이 되면 신문사처럼 꾸며진 지하창고와 사무실을 거쳐 어트랙션 앞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일단 어트랙션에 타고나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완성도 높은 4D 영상뿐만 아니라 그것을 관람하는 동안에 온몸의 감각을 깨워놓는 강력한 음향과 어트랙션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가히 압도적인 것이었다.

퍼놀로지(funology)’는 첨단 기술(technology)을 기반으로 즐거움(fun)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은 퍼놀로지가 이제 주도적인 트렌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떼굴떼굴>과 같은 소박한 형태의 인터넷 게임에서부터 <스파이더맨> 어트랙션과 같은 첨단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퍼놀로지의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화면을 가로로 볼 수 있게 한 애니콜 V500, MP3와 연동되어 운동량을 알려주는 나이키 신발, 졸음 방지 센서 이어폰, 둘둘 말아서 휴대할 수 있으며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는 롤 피아노, LCD 모니터를 장착한 러닝머신 등과 같이 첨단 기술을 통해 즐거움을 강화한 퍼놀로지 상품들뿐만 아니라 이노디자인의 랍스터 버너,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3단계 원형 배낭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즐거움을 배가시킨 상품들이 퍼놀로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유희가 인간의 본성(homo ludens이라고 할 때, 즐거움의 추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위한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했던 중세에는 즐거움은 경계하고 금기시할 요소로 억압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상기해보라. <희극론>을 숨기기 위하여 책에 독을 발라 놓고 이것을 읽는 사람들을 살해하던 사제의 엄숙주의의 근원이 바로 즐거움은 불경의 근원이라는 믿음이다. 이와 같은 즐거움에 대한 경계는 근대 산업사회에서도 계속되는데 유용성과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경향은 후기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변화한다. 향유자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향유 여부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면서부터 즐거움은 모든 문화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즐거움은 더 이상 금기시해야할 요소가 아니다. 일하기 위해서 즐겁게 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 일한다는 의식이 지배적인 것만 보아도 이러한 변화는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물론 후기산업사회의 도래로 인한 사회의 고도화와 물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황폐화로 인하여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절박함도 그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추세가 트렌드로 급부상한 것이 퍼놀로지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서서 보다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소비가 경제활동의 일환이라면 즐거움의 추구는 문화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와 문화 사이에 퍼놀로지가 있다. 특히 지식기반경제의 첨병으로 각광받고 있는 문화콘텐츠의 경우, 바로 이와 같은 퍼놀로지의 문화적 양상이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즐거움을 기반으로 하는 무형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재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콘텐츠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면 우리가 퍼놀로지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판단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미니홈피에는 즐겁지 않은 것은 독이다라고 적혀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즐거운 일만해도 모자라는 인생 마음껏 즐기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원래 의도는 주도적으로 생활하고 스스로 해야할 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도하자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것도 독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두자. 마치 <떼굴떼굴>을 하며 얻은 즐거움이나 <스파이더맨> 어트랙션을 타고나서 느끼는 재미를 쉽게 긍정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삼은 <북치는 소년>에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했지만, <떼굴떼굴>이나 <스파이더맨> 어트랙션은 그 열광적인 지지에 화답해줄 내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내용을 갖지 못한 즐거움은 공허하다. 공허한 즐거움은 쉽게 질리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퍼놀로지의 다양한 미덕이 미덕으로 남기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경계허물기를 통하여 문화적 요소들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만 한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과 다양한 퍼놀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절실하다. 다시 한 번 말해두자, “즐겁지 않은 것은 독이다!”

2008년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삼국지, 지금 이곳에서 쓰고 있는 고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삼국지는 살아있는 텍스트다. 대부분의 고전은 누대에 걸쳐 읽히면서 새로운 의미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하지만 그것은 읽기와 관련된 것이지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왜 유독 삼국지만은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있는 것일까?


삼국지는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24240()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를 바탕으로 한다. 물론 나관중의 이 작품도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의 삼국지주(三國志註)에 수록된 야사와 잡기를 근거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중심으로 쓴 작품이다. 오늘날 전하는 삼국지는 청나라 때 모종강이 읽기 쉽게 다시 쓴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관중의 삼국지라고 부른다. 이러한 창작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국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당대의 민중들이 요구하는 영웅들을 부각시키고 대중적인 요소들을 탄력적으로 삽입시킴으로써 끊임없이 다시 쓰고 읽히는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결국 삼국지를 읽으면 그것이 읽히는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민중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삼국지에는 그 시대의 열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삼국지가 영원한 고전으로 다시 창작되는 이유인 것이다.

만화는 가장 대중적인 텍스트이다. 만화는 카툰화법(cartooning)을 주로 사용하며, 글과 그림의 이코노텍스트(econotext)로서 이미지의 연속성(narrative)을 필요조건으로 갖는 장르이다. ()의 객관적 재현보다는 주관적 왜곡을 통해서 전달의 효과를 높이는 카툰화법과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이코노텍스트적인 특성은 대중들의 접근을 용이하였다. 거기에 이야기 하는 인간(Homo Narran)’의 특성을 부각시킨 이미지의 연속성에 의한 서사(narrative)의 확보는 만화가 가장 대중적인 장르가 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최근 만화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폭발적이다. 그것은 크게 두 방향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하나는 먼 나라 이웃나라,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마법 천자문류의 학습만화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화의 스토리텔링의 원천소스로서 만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그 원작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20권까지 15백만 부 이상의 경이적인 판매량을 보인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14권까지 7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보인 마법 천자문의 예를 살펴보자. 이 두 작품은 모두 학습만화의 컨셉을 유지하면서 스토리텔링의 원천소스는 고전에서 가져왔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 그 자체를 학습만화의 형태로 바꾼 것이며, 마법 천자문은 중국고전 서유기의 스토리라인 위에서 천자문을 학습하는 방식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성공은 학습만화라는 틈새 콘텐츠에 주목하고, 이윤기를 중심으로 불고 있던 신화 열풍을 중심 트렌드로 파악하여 그것을 콘텐츠 개발에 적극 반영한 결과였다. 신화를 원천콘텐츠로 하고 있는 이 경우는 학습만화를 통해 대중성을 검증하고, 이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올림푸스 가디언>으로 발전적 변환을 시도함으로써 국내에서 장르 간 시너지 효과(cross over effects)를 성공적으로 극대화한 대표적인 콘텐츠가 되었다. 마법 천자문의 경우도 한자교육의 수요를 파악하고 보다 효과적인 학습형태로서 학습만화를 주목하였으며, 특히 드래곤 볼등으로 전환(adaptation)에 성공한 바 있는 서유기의 스토리라인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극적 흥미를 극대화한 결과였다. 더구나 이 두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만화를 원천콘텐츠로하여 애니메이션(올림푸스 가디언, 태극 천자문)과 각종 뮤지컬 및 체험전 등으로 거점콘텐츠화함으로써 모범적인 One Source Multi Use의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천콘텐츠는 독립된 콘텐츠로서 대중성을 검증 받아 이미 브랜드 가치를 확보한 콘텐츠를 말하는데, 장르 간 Multi Use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콘텐츠 내부에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원천 콘텐츠로서 활용되는 만화, 소설, 신화 등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대중성 검증이 가능해야하기 때문에, 그 자체 콘텐츠로서의 완성도를 확보하고 있어야만 한다. 반면, 거점콘텐츠는 원천콘텐츠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호응을 기대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전환한 것을 말한다. 즉 매체와 장르의 확대를 통하여 Target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대중적인 호응은 필수적이다. 대중적인 호응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접근이 손쉬운 매체와 장르를 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많은 변환비용(Conversion Cost)을 요구하고 동시에 그만큼의 risk도 증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거점 콘텐츠의 경우 Target의 규모와 범위, 수평적/수직적 Multi Use의 활성화 기대 정도, 콘텐츠 자체의 대중성 확보 방안 등이 성패를 좌우하는 중심 요소이다. 거점콘텐츠는 기획단계에서 메인수익 window 선정, 수평적 Multi Use의 노출 시기와 빈도, 수직적 Multi Use의 다양성, 콘텐츠 브랜드 관리 방안 등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요구되는 것이다. 원천콘텐츠를 거점콘텐츠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환의 목적에 부응하는 전략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만화는 원천콘텐츠로서 미덕을 골고루 갖춘 장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스토리텔링의 대중성을 검증할 수 있고, 그림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게임, 캐릭터 등으로의 장르 간 전환이 용이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콘텐츠가 만화를 원천콘텐츠로 하여 출발하는 안정된 One Source Multi Use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만화를 원천콘텐츠로 하여 <미녀는 괴로워>, <식객>, <타짜>, <>, <풀 하우스> 등의 성공적인 전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와 같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 얼마나 문화적 가치 창출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 시장의 규모나 그 파괴력을 고려하고, 특히 문화콘텐츠가 문화적 역량을 콘텐츠화함으로써 재화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문화적 가치의 창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천웨이동(陳維東)삼국지출간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천웨이동을 처음 만나 것은 문화콘텐츠와 문화전통 등을 주제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서였다. 무림의 고수와 같은 인상의 그는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만화에 대한 열정이 지금도 또렷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의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열정과 신념은 좌중을 이미 압도하고 있었는데, 특히 중국 고전을 작품 당 80권 정도로 창작하고 있다는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중국고전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갖지 않고서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작업이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자금 등의 단단한 토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우연한 기회로 천진에 있는 그의 회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의 말이 계획이 아니라 진행형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중국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의 회사는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는데 특히 전통문양의 창문과 다실(茶室)은 그의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을 한눈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미 그는 300여권의 만화를 제작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국제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천웨이동은 신중국만화의 창시자이자 이론가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숱하게 지적되어온 일본 만화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중국의 독자적인 내용과 형식을 통해 중국독자에게 다가서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중국만화를 알리겠다는 그의 의지가 신중국만화라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천웨이동의 노력은 일본 만화에 경사되어 있는 한국 독작들에게 있어서도 또 다른 만화의 가능성을 읽게 해 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천웨이동의 만화 삼국지는 우리 어린이들 책장에 꽂혀있는 조악한 그림과 정보의 학습만화와는 분명하게 구별이 되는 작품이다. 중국전통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삼국지의 의미를 서두르지 않고 천착해가는 그의 행보는 분명 주목할만한 것이다. 국내에서 삼국지의 열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박종화, 김구용, 김홍신, 특히 이문열의 삼국지1,400만부가 판매된 바 있다. 또한 역사만화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바벨 2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橫山光輝)삼국지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고우영의 삼국지는 살인적인 연재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엄혹했던 시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비판하며 삼국지를 읽어낸 수작이다. 블랙유머로 시대와 소통을 시도했고 용기있게 비판하면서도 극적 긴장을 놓치지 않았던 작품이 그것이다. 이처럼 뛰어난 많은 소설과 탁월했던 만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웨이동의 삼국지가 기대되는 것은 신중국만화의 작품에 대한 낯선 흥미와 그동안 중국 고전을 극화해온 작가의 내공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중국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삼국지를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동양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갖지 못하고 어떻게 이 시대를 삼국지와 만나게 할 수 있겠는가?

첸웨이동의 삼국지은 독특하게 장 구성을 했다. 중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만화로 극화하고, 그 뒤에 해당 장의 줄거리를 붙이고 이를 통해 생각해볼 것들을 삼국지 기사의 형식으로 첨부한 후, 해당 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사성어를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의 인물열전은 옛 사서(史書) 편제를 따르면서도 인물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동시에 진행하는 독특한 부분이다. 장대한 스케일의 스토리를 모두 만화로 극화하지 않고 과감한 생략과 절제를 통하여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천웨이둥의 혜안이 빛나는 부분이다.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한 면당 칸의 개수에 무척 낯설어 했을 것이다. 일본 만화나 국내 만화와는 다르게 한 면당 칸의 개수를 과감하게 줄임으로써 이야기 진행 속도를 빠르게 하면서 동시에 상대적으로 크게 확보된 칸을 통해 캐릭터의 심리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량에 의해 수입이 결정되는 기형적인 구조로 인하여 무절제하게 남발되었던 일본식 그림과 칸들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림은 크지만 섬세하고 캐릭터 하나하나의 심리와 성격을 드러내는데 중심을 두고 있는 까닭에 정밀한 구도와 계산된 구성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는 정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느낌은 배경 톤이나 동작선의 남발보다는 인물 그 자체의 표정과 동작을 통하여 움직임을 표현하고 가볍지 않은 동작으로 표현하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만화를 진행하면서도 중간에 연표나 각종 병장기에 대한 소개 등을 삽입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극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다.

만화는 가장 대중적이지만 하위문화로 취급되어 왔다.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질타를 당하는 자극적인 내용, 저급한 그림 수준, 유통되는 미디어의 하위성 등이 그 평가의 근거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구박받으면서도 아직까지 꿋꿋하게 아니 더 파괴력을 갖으며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지닌 생명력이며 동시에 경쟁력일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캐릭터 등의 분야에서 그것들의 근간이 되어줄 스토리텔링의 보고로서 만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천웨이동의 삼국지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문화적 역량과 문화 전통이 지금 이곳에서 빚어내는 문화적 향취를 만화라는 가장 대중적이고 경쟁력 있는 장르를 통하여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전쟁 시대를 사는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가 쓰는 또 하나의 삼국지를 읽는다. 아니 쓰고 있다.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이 반드시 삼국지가 아니어도 좋다. 천웨이동의 이 작품과 같이 깊이와 향기를 지닌 또 다른 우리의 고전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작품을 읽는 여러분이 바로 그렇게 써야만할 또 한 사람의 천웨이동이다.

-2008년 천웨이둥, 삼국지》 발간평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문화콘텐츠의 정체와 가능성 그리고 광주

 

 

박기수(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문화콘텐츠의 정의는 생성적이다. 뉴미디어와 다양한 콘텐츠의 결합으로 인하여 문화콘텐츠의 영역은 개방적 폭식성(暴食性)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규범론적인 정의든 범주론적인 정의든 간에 끊임없는 수정을 요구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콘텐츠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잠정적인 형태의 정의라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합의된 정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는 문화콘텐츠를는 문화, 예술, 학술적 내용의 창작 또는 제작물 뿐 아니라, 창작물을 이용하여 재생산된 모든 가공물, 그리고 창작물의 수집, 가공을 통해서 상품화된 결과물들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정의한다. 여기에 심상민교수는은 원작자가 누구인지, 어떤 가공 프로세스를 거쳐 만들어졌는지가 명확해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콘텐츠 재화(contents good)'적 인식을 강조한다. 그는 또 창작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 예술작품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을 문화산업이라고 한다면, 놀이와 감상의 성격을 강화한 것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고 하고, 그 가운데 상업화의 가능성이 높고’ ‘매체 연계성이 높은분야를 문화콘텐츠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비교적 신뢰할만한 것이라고 할 때, 문화콘텐츠는 문화콘텐츠의 합성어로서, 문화적 특성과 콘텐츠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는 매우 포괄적이며 인간의 삶과 밀접한 상관을 지니고 있는 탓에 실체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조형적 개념에 가깝다. 콘텐츠비즈니스연구소에 따르면 콘텐츠문자영상소리 등의 정보를 제작하고 가공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정보 상품이다. 이와 같이 상이한 성격의 두 개념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문화콘텐츠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부면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작권의 소재가 분명한 정보 상품이라거나 문화의 재화적 가치를 극대화한 것이라거나 그 정의가 무엇이든 간에 문화콘텐츠를 통합적인 실체로서 파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가령 문화콘텐츠 경영 전략이라거나 문화콘텐츠 기획혹은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등의 말들은 명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매우 성기고 심지어 허구적인 개념들이다. 왜냐하면 문화콘텐츠라는 말이 매우 다양한 장르와 수다한 매체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그것들을 생산을 전제로 실천적 차원에서 파악해보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욱 유용하기 때문이다. 즉 각기 다른 것들을 포괄적으로 묶어놓고 그것을 통합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매우 공소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물론 우리가 소위 문화콘텐츠라고 부르는 분야를 미국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영국에서는 창조산업 등으로 부르며 통합적으로 논의한 연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배적인 특정 장르를 중심으로 한 논의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개별적인 영역, 즉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캐릭터 등으로 불리고 있는 문화콘텐츠를 굳이 새로운 조어(造語)까지 하면서 정부가 주도했던 것은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새로운 정책적 비전 제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콘텐츠라는 용어는 실체적 개념이라기보다는 구성적인 정책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사회적 흐름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기보다는 매우 돌발적인 것이었고,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이 앞에서 선도하는 형국이었고, 문화적 역량이 결집된 결과 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에 편향된 기대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정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노력에 비하여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개개의 것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개념과 범주로 묶으려는 무리한 시도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문화콘텐츠에 대한 국내에서의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세계적으로 두루 통용되는 보편적인 용어는 아니다. 사실 문화콘텐츠는 그 각각의 실체는 확인할 수 있지만 조형적이며 생성적인 현재 진행형 정의와 범주의 자기증식으로 인하여 개념적으로는 매우 모호한 상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문화콘텐츠를 둘러싼 담론들은 보다 생산적이고 실천적인 양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구체화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화콘텐츠를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파악하고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보다 효과적인 기획-생산-유통의 합리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 모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화콘텐츠가 대학 교육을 통해 학문적 탐구와 체계적인 교육이 본격화되고 있는 결과이다. 지속적인 사회적 수요와 학문적 체계화의 노력 그리고 산학이 연계한 다양한 실천적 시도들은 문화콘텐츠의 모호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문화콘텐츠의 구성과 실체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해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그것에 관한 비관적 우려조차도 낙관적 미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함과 의지의 다른 표현일정도로 강박에 가깝다. 이제 문제는 문화콘텐츠에 대한 보다 실천적인 논의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며, 그 결과가 얼마나 생산적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화콘텐츠는 문화콘텐츠의 합성어로서, 문화적 특성과 콘텐츠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양자는 동시에 구현되어야 하는 특성을 지닌다. 즉 문화가 콘텐츠에 종속되거나 콘텐츠가 문화에 종속되는 식의 종속관계가 아닌 문화와 콘텐츠가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문화콘텐츠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기대에 편중됨으로써 오히려 부가가치 창출에 실패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왔다. 문화콘텐츠가 지닌 문화의 자본화 가능성은 경제적 가치만을 지향함으로써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느냐에 좌우되는 까닭이다. 경제적 가치에 편향되어 문화를 도구화하거나 효율성을 앞세워 창의성을 매몰시키는 일은 문화적 가치에 압도되어 경제적 가치를 배려하지 않는 일만큼이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문화콘텐츠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엔진의 모색은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두 번째 특성은 문화콘텐츠 분야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장르의 다양성과 매체의 다양성 그리고 대상의 다양성을 문화콘텐츠라는 말은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가 광범위하다는 말은 그만큼 상호 연동이 용이하고, 상생적 결합에 의한 생산성이 높다는 말이며, 바로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지식기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음반, 캐릭터, 게임, 드라마, 공연, 뮤지컬 등의 장르와 웹, 모바일, TV, DVD, CD, DMB 등과 같은 매체 그리고 기획, 시나리오, 창작기술, 비즈니스마케팅 등의 분야를 고려할 때, 문화콘텐츠가 포괄해야 하는 영역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알 수 있다. 문제는 문화콘텐츠 분야가 광범위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모든 분야가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공통의 지향을 마련하여 협업 시스템을 지향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문화콘텐츠는 One Source Multi Use를 통해 부가가치 생산을 극대화한다. One Source Multi Use(이하 OSMU)란 하나의 원천콘텐츠를 중심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OSMU는 수직적 Multi Use와 수평적 Multi Use로 나눌 수 있다. 수직적 Multi Use는 장르 간 계열화(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음반, 게임 등)를 시도하기 때문에 장르 변화비용(Conversion Cost)이 높고 따라서 risk도 크지만 신규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익의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방식이다. 반면 수평적 Multi Use는 시간의 계열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 즉 동일한 콘텐츠를 매체별로 노출시키는 시기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수직적 Multi Use에 비해 변환 비용이 적게 들어 risk도 줄일 수 있지만 신규시장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기대 수익이 작은 수익 창출 방식이다. 이와 같은 수평적 Multi Use를 일반적으로 Window Effects라고도 하는데 시간적지리적 노출의 차별화를 통하여 배급효과를 높이고, 개별 Window 간의 충돌을 전략적으로 피하면서 기대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콘텐츠의 수익 창출 기간을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넷째, 문화콘텐츠의 양적/질적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구축해야한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는 무형의 가치를 기반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양질의 콘텐츠를 누가 선점할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결국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여 기민하게 대응하거나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도록 양질의 콘텐츠를 선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대규모 자본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 국내 시장규모로는 그러한 공급 유도가 쉽지 않은 까닭에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기획, 투자, 창작, 마케팅이 전개되어야만 한다.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콘텐츠 제작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상관관계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문화콘텐츠의 변별적 특성을 전략적으로 충분히 고려하여 기획하고 생산한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문화콘텐츠이다. 그것이 드라마든 영화든 캐릭터든 애니메이션이든 간에 성공한 문화콘텐츠의 경제적 수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우리의 관심은 그것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총제적인 탐구에 있어야 한다. 선행콘텐츠에 대한 분석은 소문만 무성한 부가 수익에 대한 선망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인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한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문화콘텐츠에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성공적인 문화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노력과 함께 또 하나 필요한 것이 문화콘텐츠의 허브다. 문화콘텐츠 허브는 기획과 개발의 중심 역할을 하며서 시장 전체를 선도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인데, 이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집적된 공간이 필수적이다. 일정 규모의 지자체가 허브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정체성을 견지할 수 있고, 물적 지원과 인적 인프라를 수렴해낼 수 있는 의지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문화콘텐츠의 토대가 되는 문화적 역량이 풍성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이고, 동시에 문화콘텐츠의 생산 허브로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광주가 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화콘텐츠 업계의 90%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 지역과의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 지역 내 문화콘텐츠업계의 부족, 문화콘텐츠에 대한 두렷한 변별 의식 부족 등은 앞으로 광주가 극복해야할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중에서 문화콘텐츠 허브로서의 희망을 보는 것은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과 과주시의 적극적인 노력 그리고 광부문화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전개하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 희망하고 있는 것처럼, 광주가 문화콘텐츠를 성장엔진으로 하여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서울과의 뚜렷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광주시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직 광주가 문화콘텐츠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들을 수렴하고 하나로 꿰어낼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이 부재한 탓이다. 필자는 몇 해전부터 그것이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화콘텐츠의 다양한 영역과 분야 그리고 미디어들의 소통회로가 스토리텔링이라는 점, 스토리텔링의 기반이 되는 문학적 역량이 상당한 광주의 가능성을 상기할 때, 스토리텔링에 대한 주목은 정당하다. 그래서 2007년부터 광주시의 지원을 받아 광주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스토리텔링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하여 역량 있는 스토리텔러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대내적으로는 스토리텔링과 상관한 광주의 문화 역량을 모으고, 광주 지역 소재 대학들의 유관학과와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산학협력을 기반으로 연구-교육-생산의 체계를 구축하며, 멘토링 시스템을 통한 실천적인 노력을 경주한다면, 오늘 우리의 기대는 이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더구나 문화콘텐츠의 가장 큰 특성중의 하나인 선점효과와 승자독식 구조를 이해한다면 왜 광주가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서울과의 차별성을 견지해야하는지 쉽게 답이 나올 수 있다. 앞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성장엔진을 고민해야하는 지금 이곳에서 문화콘텐츠에 대한 주목이 유효했듯이 광주가 스토리텔링을 통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탁월한 선점이 될 것이다. 광주가 스토리텔링을 선점하고 특화시킴으로써 문화콘텐츠의 허브로서 광주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새로운 탄생이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Nobody'가 차라리 폭력인 까닭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다시 원더걸스다. 'Tell me'에서 시작된 원더걸스 열풍은 'Nobody'까지 지칠 줄 모른다. 원더걸스는 소녀시대만큼 예쁘다거나 깜찍하지도 않고 씨야나 브라운아이드걸스처럼 가창력으로 승부를 거는 가수도 아니다. 어리다고는 하나 보아를 생각하면 그리 어린 것도 아니다. 더구나 댄스가수라고는 하지만 그녀들의 춤은 비나 박진영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왜 원더걸스에 열광하는 걸까?

원더걸스 열풍의 원인이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콘텐츠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내적 요인으로는 익숙한 복고풍 리듬,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을 강조한 원색 중심의 스타일, 멤버 간의 조화보다는 개성적인 불일치, 쉽고 편안하게 반복할 수 있는 노래가 새롭지만 지극히 편안한 B급 감성에서 찾을 수 있다. 외적 요인으로는 'Tell me' UCC와 박진영의 안무 영상 그리고 발굴부터 데뷔까지의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의 지속적인 제공 등이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Tell me' UCC는 존 피스크가 이야기했던 텍스트적 생산성의 실례로서, 향유가 가장 활성화된 상태다. 아주 극적인 순간에 미국에서 보냈다는 박진영의 안무 영상은 치밀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지만 매우 개연성 있고 후광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며칠 전, 이왕표와 밥셉이 보여주었던 맥락 없는 타격과 어색한 긴장의 기자회견을 상기해보면, 박진영의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인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20-30%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무한도전>의 프로그램 포맷은 포맷의 없음이다. 특정한 틀이나 형식을 지향하기 보다는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나 방식을 발굴해서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즐기는 지극히 단순한 포맷이다. <무한도전>의 이러한 전략은 무식, 무능력, 유치함으로 각기 특화시켜 설정한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재미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한 이기심과 유치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긴장을 이루거나 삶의 의미나 성찰의 깊이를 확보하는 서사의 역할은 <무한도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도전>과 같은 소위 한국식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 포맷은 동일한 시간대에 스핀오프(spin-off)<12>,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지금 이곳 예능 콘텐츠의 지배적인 형식이 되었다.

그렇다고 작위적인 중간 이하의 캐릭터 설정, A/B급의 의도적 대비, 사소하고 무용한 것들에 목숨 거는 상황, 어설픈 계몽, 생경한 조어와 말 줄이기, 유치한 장난, 어이없는 무식 등을 이 글에서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폭력, 섹스, 유치, 천박 등 주류문화에서 억압된 근원적 욕망을 B급 문화를 통해 배설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성향이야 새로울 것도 없고, 그것이 위협적이라고 하기에는 과장된 호들갑에 가깝다. 강박 없는 즐거움은 문화의 생산 동력이며, 즐거움의 유혹은 딱딱하고 무거운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오히려 신선한 긴장이 될 것이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A급이 거세된 B급만의 획일성은 A급의 문화 권력만큼이나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비보이들의 배틀에서 보듯이, A급 문화의 가치 중심의 서열주의가 아닌 다름을 전제로 한 진솔한 대중 장악의 퍼포먼스B급 문화의 미덕이라는 점에서 다름을 전제로 한 다양성은 필수적이다. 물론 그 다양성은 A급 문화가 될 수도 있고 B급 문화 안의 그것일 수도 있다.

원더걸스의 'Nobody'는 강력한 매혹이다. 다만, 그것은 브라운아이드걸스, 부가킹즈, 빅뱅 은 물론 장윤정, 송대관, 조용필과 같은 다양성을 배경으로 할 때에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Nobody'만을 부르며 손뼉을 치는 모습은 그래서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곧 폐지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소중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대신문 2008.11. 24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B급 문화, 즐거움의 전략화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B급 문화는 부족한 조건에서 넘치는 자극을 생산한다. 다시 말해 B급 문화는 적은 예산, 인지도 낮은 주인공, 낮은 기술 수준, 저급한 감정과 어설픔이라는 부족한 조건을 기반으로 욕설과 폭력의 노골적인 남발과 섹스의 적나라한 묘사라는 넘치는 자극을 생산한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감각의 분출과 자극의 과잉은 A급 문화의 견고한 깊이와 의미의 강박으로부터 탈주를 부추기고, 화석화된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조롱한다. B급 문화는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까닭에 문화 권력의 제도적 억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 자유가 즐거움을 창출하고 즐거움은 경쾌한 놀이로 구체화되는데, 이러한 놀이의 즐거움이 B급 문화의 창조적 동력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B급 문화라는 말은 개념화된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식적인 용어로 개념화 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B급의 거친 생명력을 잃은 A급 문화이기 때문이다. 개념을 정립하기 위한 일관된 특성이나 뚜렷한 목적을 갖추지 못한 저렴한 욕망의 노골적인 문화적 분출 양상 정도로 B급 문화의 정의에 합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B급 문화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Tell me'에서 시작된 원더걸스 열풍은 'Nobody'까지 거침없이 이어지고, <무한도전><12><패밀리가 떴다>라는 클론을 만들고, <무릎팍 도사><라디오 스타>와 독한 방송 경쟁을 하면서 시청률을 선도하는 지금 이곳에서 어쩌면 B급 문화는 더 이상 B급 문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비디오 가게를 음험한 공간으로 만들었던 붉은 딱지의 에로비디오나 고속도로 위에서 졸음을 쫓던 카 라이브뮤직처럼 A급 문화의 틈새를 공략하던 B급 문화가 아니라, B급 문화의 특성을 차별화 전략으로 활용한 B급 문화의 공세적 제도권 진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탓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B급 문화의 다양한 양상들이 A급 문화 영역의 주도적 전략으로 채택되고 이것이 확대 재생산 됨으로써 문화의 중심적인 징후로 급하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 20-30%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무한도전>의 프로그램 포맷은 포맷 없음이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 포맷의 역설은 <무한도전>을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화시키는 가장 두드러진 변별점이다. 그것은 특정한 틀이나 형식을 지향하기 보다는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나 방식을 발굴해서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즐기는 지극히 단순한 포맷이다.

<무한도전>의 이러한 차별화 전략은 무식, 무능력, 유치함으로 각기 특화된 캐릭터들의 무한 이기심이나 무모한 도전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남으로써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이 과정에서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평균 이하의 열등한 캐릭터를 독립적으로 설정하고, 재미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무한 이기심과 유치함이 이 포맷의 특성이다. 메뚜기, 하찮은 형, 정중앙, 돌아이, 꼬마, 잔진(이상 무한도전), 은초딩, 허당승기, 강파치노(이상 12), 덤앤더머, 꽈당, 김계모, 천데렐라, 큰형님, 달콤 살벌 예진 아씨(패밀리가 떴다) 등과 같이 각각 설정한 캐릭터에 맞는 별명을 짓고, 그 캐릭터를 식사 해결과 같은 원초적인 임무나 지하철과의 경주와 같은 무모한 도전, 목욕탕 물 퍼내기와 같은 쓸모없는 대결이나 막무가내 영어와 같이 무식한 미션 수행을 통해 구현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캐릭터는 자신의 설정에 맞는 무한 이기심을 발휘하고, 이로 인한 작은 소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평균 이하의 캐릭터로 고정 출연진을 구성하고, 국내외 A급 스타를 등장시켜 그의 장기를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으로써 극단적인 비교를 꾀하고, 이를 통해 캐릭터를 희화화시키는 전략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독립된 부분 요소로서 캐릭터나 상황 설정이라는 최소한의 전제만 합의하고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현장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기 때문에, 각 요소들이 거시 서사에 종속되어 기능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서사 전략은 기대할 수 없다. 작위적인 중간 이하의 캐릭터 설정과 지속적인 구현, A/B급의 극단적 대비와 B급 문화의 전면화, 어설픈 계몽과 함께 사소하고 무용한 것들에 목숨을 거는 상황, 자신들만의 생경한 조어와 말 줄이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치한 장난의 맥락 없음, 어처구니없는 무식과 그것의 희화화 과정을 통한 웃기기는 열등한 것들의 과도한 드러냄이라는 측면에서 B급 문화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B급 문화가 지금 이곳의 예능 프로그램을 압도하며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B급 문화의 양적인 주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A급의 가치, 깊이, 성찰, 중심, 진지, 권위, 공적 영역 등을 견제하거나 전복시키기 위한 문화 정치적 맥락에서 B급 문화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B급 문화의 주도 현상은 B급 문화의 내재화이며, 문화 권력에 기반한 서열화를 포기한 B급 문화의 주류화로 볼 수 있다. B급 문화의 주류화를 선도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체화문화콘텐츠의 급부상이다. 1990년대 이론으로 앞서가던 포스트모던은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비로소 다양한 구체적인 현상으로 드러나는데, B급의 주류화도 그 하나로 볼 수 있다. 중심/주변으로 대변되는 이분법적 서열체계를 거부하고 중심의 지배적 권위를 회의하며 소외된 주변부 것들의 다양성에 주목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이 B급 문화의 부상 배경과 일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디지털 문화 환경을 바탕으로 급부상한 뉴미디어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였고,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콘텐츠의 경쟁적 차별화 전략을 강화시켰다.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인 요소들이 요구되었고, 현실원칙을 넘어서는 강박 없는 즐거움이 보편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문화의 놀이적 기능이 강화된 점도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현실의 이해(利害)와 무관하고, 허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즐기는 자를 매료시키고, 현실을 가장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관계를 드러내며, 창조성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놀이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무한도전>을 비롯한 B급 문화의 일반적 특성과 다르지 않다.

특정 문화의 급부상은 마니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열성팬의 등장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금 이곳의 B급 문화는 오히려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소수의 취향공동체를 중심으로 생산/향유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콘텐츠가 소비될만한 일정 규모의 뚜렷한 시장과 이러한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발표 매체(platform)를 기반으로 하는 거점콘텐츠를 중심으로 형성된 다수 대중의 보편적 취향을 토대로 한다. 깊이의 강박에서 자유로운 쾌락을 지향하는 B급 문화 장르(무협, 판타지, SF, 추리소설 등)의 보편화와 유치, 천박 등 A급 문화에서 억압된 욕망을 강박 없는 놀이와 즐거움의 강렬한 유혹으로 자극하고 있는 B급 문화는 이제 보편적 취향이 되어버렸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 말은 주류문화에서 억압된 근원적 욕망을 B급 문화를 통해 배설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성향에 대해 그것이 위협적이라고 과장된 호들갑을 떨자는 것이 아니다. 강박 없는 즐거움은 문화의 생산 동력이며, 즐거움의 유혹은 딱딱하고 무거운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오히려 신선한 긴장이 되면 됐지 결코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A급이 거세된 B급만의 획일성은 A급의 문화 권력만큼이나 위험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말 문제는 B급 문화의 정체나 차별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낙관적 기대를 갖거나 우울한 전망을 하는 것이다. B급 문화의 주류화가 진행 중이라면, 기대와 한계에 대한 실천적인 탐구가 가장 우선적이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 B급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의미와 성찰이라는 문화 본연의 몫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즐거움을 전략화하여 모든 것에 선행시킴으로써 문화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경박이나 경쾌라는 말대신 가볍다는 가치중립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의 특징이 가치의 개입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복고풍 리듬,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을 강조한 원색 중심의 스타일, 멤버 간의 조화보다는 개성적인 불일치, 쉽고 편안하게 반복할 수 있는 노래가 새롭지만 지극히 편안한 B급 감성의 원더걸스에게 저속하다거나 키치적인 요소가 느껴진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오히려 원더걸스, 싸이, DJ D.O.C와 같이 B급 취향을 앞세운 캐릭터나 <무한도전>, <12>, <패밀리가 떴다>, <무릎팍 도사>, <라디오스타>, <명랑히어로>, <해피투게더>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디워>, <다찌마와리>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B급 취향이 주류문화의 보편적 코드로 등장하고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원색중심의 촌스러운 복장과 점집을 형상화한 세트장, 맥락 없는 웃음을 만드는 올밴이나 상대의 치부를 들추며 즐기는 건방진 도사 그리고 인터뷰 대상을 면전에서 까발리는 <무릎팍도사>를 보자. A급 스타를 B급으로 설정된 고정 캐릭터들이 소위 까대는 이 프로그램의 경쟁력은 적나라한 까발림편집자의 자막 개입에 있다. 향유자는 까발림과 편집자의 자막 개입 과정에서 MC와 편집자와 향유자의 선택적 동일시를 이룬다. 출연한 스타의 사생활이나 내력에 대한 까발림 과정에서 향유자는 MC와 동반자적 시점을 유지하며, 메인MC와 보조MC의 상호 견제 그리고 편집자의 자막을 통한 개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향유자의 몰입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전략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A급 스타와 B급 캐릭터의 경계가 사라지고, A급 스타에 대한 노골적인 야유와 조롱, 스타의 변명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무거운 과거나 치명적인 스캔들은 경쾌한 즐거움으로 휘발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출연하는 A급 스타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합법적인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확보된 변명이나 발언의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일본 귀화 문제로 비난받던 추성훈이 한 곡의 노래와 변명으로 가장 사랑받는 한국 격투기 선수로 등극한 기형적인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B급 공간, 캐릭터, 이야기, 취향 등이 충만한 가운데 A급 스타의 변명은 ‘B급 수준에서 용인되고 B급 문화 특유의 강한 전염성을 통해 그를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닌 가장 한국적인 격투기 선수로 각인 시킨 것이다. B급이 지닌 이와 같은 감성적인 설득력과 강력한 전염성은 전략화된 즐거움을 앞세워 맹목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소자본으로 제작되는 B급 문화는 주류문화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더구나 적은 자본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좀더 적나라하고 솔직한 표현을 과도하게 구사하며, 주류문화 바깥이기 때문에 A급 문화의 검열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따라서 B급 문화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의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맹목과 저속화의 걱정은 더욱 커진다. 그것이 지금 이곳처럼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내재화된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원천콘텐츠로서의 만화의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고, 수익의 직접적인 결과에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문화콘텐츠 영역에서 B급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급 문화에서 비관보다는 낙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의 건강한 창조성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특히 지금 이곳의 B급 문화가 A급 문화의 엄숙주의나 권위주의를 조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요소로 적극 활용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낙관은 설득력을 얻는다. 싸이의 천박한 몸짓과 노골적인 가사의 낯설음은 주류문화의 엄숙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직/간접적인 풍자만큼이나 전략화된 즐거움을 생산한다. 원더걸스의 댄스는 선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염성 강한 경쾌한 즐거움을 창출한다. 주말 황금시간대를 장악한 <무한도전>와 유사한 포맷의 <12><패밀리가 떴다>가 선사하는 즐거움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것이 B급 감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B급 감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맥락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즐거움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곳의 B급 문화가 A급 문화와의 경계를 허물면서도 나름의 견제와 긴장을 즐겁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다름’()을 바탕으로 한 창조성에 기인한다.

다름은 우열이 아닌 차이를 의미한다. A급 문화가 우열을 기반으로 하는 서열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면, B급 문화는 다름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만들어내는 즐거운 창조에 중심을 두고 있다. 차브(chav)로 대표되는 문화현상 즉, 하류계급의 문화적 취향의 포괄, 촌스러움의 상품화, 사업적 경쟁력 확보는 마이너의 쿨한 포즈를 흉내내는 메이저의 문화로 평가되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현상이다. 바로 이러한 다양성은 문화 권력과 무관한 역동적인 문화생산의 중심 동인이 된다. 다만 지금 이곳의 B급 문화 대부분이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과 상관되어 있고 강력한 유통조직과 밀접한 연관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름에 기반한 창조가 문화 창조의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주목하는 다름은 오히려 문화콘텐츠의 기획 단계부터 충분히 고려된 즐거운 차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전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UCC를 예를 들어보자. UCC의 경쟁력은 차별적 우위와 즐거움이다. 이것은 다름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것은 A급 문화의 가치 중심의 경쟁과는 구별되는 B급 문화의 다름을 뽐내고, 검증하고, 대중을 장악하는 자발적인 창조행위로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말하는 다름은 1) 대중을 전제로 한(향유자 중심), 2) 눈앞의 직접적인 검증(문화 권력으로부터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3) 절대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attention gather(문화적 가치의 변화)의 특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특성은 기존의 문화 권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과거, 역사, 전문가 검증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적 원시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문화적인 야생이 살아나면서 창조성이 강화되는 측면과 함께 성기고 거친 양상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이곳의 B급 문화에 대한 평가는 아직 섣부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대의 문제의식 없이는 역사의 온전한 평가도 없다는 점이다. 목적 없음, 구체적으로 개념화된 특성 없음, 싸구려 욕망의 진솔한 드러내기, 부족한 인력, 자본, 시장을 토대로 한 과도한 즐거움 추구, 의미나 성찰이 부재하는 놀이 등 지극히 개방적인 형태로 B급 문화의 특성은 진행 중이다. 이 말은 B급 문화가 지닌 현재적 경쟁력과 진화의 지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B급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역시 함께 진화해야한다. 디지털 중심의 새로운 문화환경과 문화콘텐츠의 급부상 그리고 개인적인 문화 생산 도구의 보급 등을 고려할 때, B급 문화의 내재화와 보편화는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가속화는 B급 문화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다양한 고민과 연구를 요구할 것이다. 특히 전략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문화콘텐츠 분야의 관심은 더욱 그렇다. 이제는 부르디외식 구별짓기의 관점이나 문화 연구자들의 키치적 관점으로는 B급 문화를 재단할 수 없다. B급 문화는 즐거움, 다름(), 문화적 다양성과 역동성, 콘텐츠화 전략 등의 관점에서 시간과 깊이를 확보하고 논의해야할 새로운 경계다. 이것이 논의의 주체 역시, 'Nobody but you'임이 분명한 이유다.

2008년 11월 <쿨트라>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해리포터, 스토리텔링으로 서다

 

박기수(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전 세계적으로 10년간 32천만부 이상을 판매한 <해리포터>시리즈가 완결되었다. 해리포터라는 이 작은 꼬마가 소설과 같이 성장하며 일구어낸 신화들, , 초당 23권의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보였다거나, 완결판의 보완을 위하여 블룸스베리출판사는 190억원을 들여 보완체제를 개편했다거나, 이 책을 출간한 국내 출판사가 향후 50년간 책을 찍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렇다고 게임에 빠져 있던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라고 부모들이 구입한 덕이라는 등의 구태의연하고 당위적인 주장도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살펴보고 그것의 미덕과 한계를 점검해보려 한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문화콘텐츠에서는 실패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중성과 시장성이 검증된 텍스트와 windowing이나 One Source Multi Use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텍스트를 원천콘텐츠로 선호한다. 원천콘텐츠는 대중성뿐만 아니라 향유를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거점콘텐츠로의 전환(adaptation)이 용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해리포터>시리즈는 원천콘텐츠로서 다양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책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퀴디치, 호그와트 교복, 마술봉, 마술 빗자루 등 향유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미시콘텐츠들이 거시콘텐츠의 내러티브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잘 구조화됨으로써 텍스트의 완성도를 제고하는 동시에 부가상품화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미시콘텐츠의 활성화는 해당 콘텐츠의 수익 증가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거시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효한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흥미로운 것은 기본 생활은 영국식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극적 사건 전개에 필요한 악당이나 괴물들은 서구의 신화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특수성과 보편성을 절묘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 하는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문화할인율을 고려한 다양한 배려는 기획 단계부터 시도된다는 측면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는 양질의 벤치마킹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존 피스크가 말한 대중문화콘텐츠의 3가지 차원의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이 시리즈는 보편적 신화의 특수한 재맥락화를 통한 기호학적 생산성과 향유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언술행위의 생산성을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텍스트적 생산을 통하여 그것을 지속강화하는 전형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거칠게 단순화한다면 <해리포터> 시리즈는 익숙하고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서구의 신화와 전설 등을 참신한 캐릭터의 복수담과 미스터리담,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성장담으로 전환시킨 이야기이다. 익숙함과 참신함의 8:2로 배분하는 할리우드식 문화콘텐츠 대중화 전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섬세하게 말하자면 이 시리즈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위와 같은 다양한 미덕을 하나의 텍스트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수한 스토리텔링을 생산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오늘도 끊임없이 스토리텔링을 고민하고 있다는 영국 내 2만 개에 달하는 스토리텔링 클럽에 있다. 다양한 문화적 역량을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자기방식으로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수시로 찾는다는 스토리텔링 클럽! 문화콘텐츠의 금과옥조처럼 이야기하는 개인의 창의력이란 바로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과 양질의 향유공동체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이 시리즈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완결되었지만 이것을 원천콘텐츠로 하는 거점콘텐츠화 사업은 앞으로 몇 년간 우리를 또 흥분시키며, 그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려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이국의 낯선 이름들 대신 <미르가온>처럼 낯익은 우리 꼬마들이 펼치는 마법과 모험의 판타지를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7년 <한대신문>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치명적 즐거움, 일드와 미드 그리고 한드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텔레비전이 다리를 갖고 있던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기위해 저녁마다 동냥 시청을 다니곤 했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없는 살림에 덜컥 텔레비전을 사오셨고, 덕분에 매일 저녁 <여로>를 집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때부터는 동냥시청을 가기 위해 이른 저녁을 먹거나 밤늦게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텔레비전만 본다고 아버지가 외출하실 때에는 텔레비전 장식장을 잠가놓곤 하셨다. <임진왜란>, <암행어사>, <서부소년 차돌이> 등등 텔레비전은 쉬지 않고 매력적인 즐거움을 쏟아놓곤 했다. 이제는 텔레비전이 다리를 잃고 벽에 걸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텔레비전, 특히 드라마의 흡입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양과 질 면에서 국내에서 제작되는 드라마의 수준이 높아졌고, 무엇보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와 같은 새로운 드라마콘텐츠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무한 공급되기 때문이다.


거실에서는 아내는 그리섬과 함께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범죄의 진실을 쫓고 있다. 모니터 속 일촌들의 미니홈피에는 기무라 다쿠야나 웬트워스 밀러가 친근한 미소를 짓고, 큰 아이는 주말 저녁 디즈니 채널의 시트콤 <Hannah Montana>를 보기 위해 맛있는 외식이나 심지어 <무한 도전>마저도 과감하게 포기하곤 한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러한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의 압박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사실 1970-80년대 <전투>, <코작>, <초원의 집>, <월튼네 사람들>, <Rich man and Poor man> 등등 기억 저편에 아직도 또렷한 그것들도 미국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가 지금 이곳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그것이 생산 역량이나 생산 단가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그것은 드라마의 질과 향유자의 취향 그리고 생산 시스템과 유통 구조 등이 유기적으로 얽힌 매우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영화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콘텐츠로 꼽히지만, 영화와는 달리 별도의 금전적 지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대중적 접근이 용이하고, 영향력 있는 콘텐츠다. 단막극을 제외하고 가장 짧은 형태인 미니시리즈의 경우 일반적으로 최소 16회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노출과 학습효과를 창출함으로써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다양한 창구(window)를 활용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은 물론 문화적 향기(cultural odor)의 생산을 통하여 인한 국가 이미지 제고 등의 부가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점도 드라마의 미덕을 꼽힌다. 이와 같은 이유로 드라마는 향유 대상과 시장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전제로 치밀한 기획과 스토리텔링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수적인 장르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에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의 국적 때문이 아니다. 다국적 자본이 수시로 국경을 넘는 지금의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국적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어떻게 문화적 할인율(cultural discount)을 극복하고 우리 드라마 시장에서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느냐가 문제다. 풍부한 스토리와 다양한 텔링 방식 확보, 장르별 전환(adaptation) 시스템을 통한 스토리텔링의 대중성 검증, 스토리텔링과 스타 비히클(Star Vehicle)의 유기적 결합, 폭 넓고 체계적인 유통망의 전략적 확보와 활용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이다. , 몰라서라기보다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국내의 시장의 환경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사전 제작은커녕 촬영 당일 쪽대본에 의지하여 방송 시간 직전에 편집을 마치는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 드라마의 현실은 차라리 선전에 가깝다. 신선한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 창출로 인기를 끌면서 작품성에서도 높은 평가 받은 바 있던 <하얀 거탑>의 경우, 마지막 회는 방송시간 10분 전에 편집을 마쳐 넘겼는데 이것마저도 1/2분량에 지나지 않았고, 방영되는 시간 동안 마지막 1/2을 편집하여 방영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자되었던 <태왕사신기>도 같은 이유로 뉴스가 연장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는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치명적이다.

하지만 열악한 자본과 유통망을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류에 대한 과도한 비관적 전망은 근거 없는 기대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가 가진 부분과 갖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비관적 전망을 낙관적 기대로 어떻게 바꾸어갈 것이냐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가령,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일본 자본이나 중국 자본의 수용을 비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일본 자본이 들어오면서 일본에서 인기 있는 특정 배우를 얼마만큼 출연시켜야한다는 식의 개입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그 조건에 맞는 스토리텔링과 전략 수립이 보다 발전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드라마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고, 그 구체적인 시장이 그곳이라면 그곳의 수요에 부응하는 전략 수립은 필수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처럼 시즌제를 도입하여 사전 제작을 완료하고 방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자본의 규모나 특히 가장 열광적인 우리나라 시청자들을 고려한다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사전 제작을 했을 경우 시청자들의 상호소통적 개입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가 재미있다가 아니라 우리를 열광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할인율이라는 결정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드라마가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다양성과 그것을 구현해내는 능력이 아닐까? <해리포터><반지의 제왕>이 아니더라도 <태왕사신기><하얀 거탑> 등의 예만 보아도 우리를 열광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광개토대왕이라는 소재를 드라마화했을 때, 중국 시장에서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판타지적 요소를 강화하고 적대세력으로 내부의 연호개 집안과 화천회라는 가공의 단체를 내세운 <태왕사신기>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매우 유효한 것이었다. 이미 일본에서 두 번이나 드라마화되었던 것을 한국식 정서로 전환을 시도했던 <하얀 거탑>의 경우도 스토리텔링 전략의 승리였다. 열악한 자본과 아직은 부실한 유통 구조를 지닌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섹스 엔더 씨티>, <CSI>, <프리즌 브레이크>, <히어로즈> 등의 미국 드라마와 <코쿠센>, <히어로>, <춤추는 대수사선>, <1리터의 눈물>, <언페어> 등의 일본 드라마에 단순히 열광만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그것들로부터 무엇을 벤치마킹할 것이며, 우리 드라마가 어떻게 차별화될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기다. 좀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에서 그들의 미덕을 찾아보고, 그것들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해야 할 시기다. 읽지 못하면 쓰지 못한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의 열풍은 우리의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을 좀 더 높여준 계기라 믿자. 이제 우리 현실에 맞추어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인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앉아 동냥 시청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 다리 잃은 텔레비전이 이제는 손 안에 들어와 있다. 바라기는 내가 <임진왜란>을 보며 조선의 역사를 배웠고, <월튼네 사람들>을 보며 가족을 배웠듯이 큰 아이가 DMB폰에서 보는 드라마를 통해 따듯함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곡 그래야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우리 드라마였으면 더욱 좋겠다. 문을 쓰기 위해 <태왕사신기>를 분석하며 자꾸 할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가 그리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게다.

 2008년 1월 <신동아>

'TV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텅 빈 웃음의 서사, <개그 콘서트>  (0) 2018.07.14
난 우리들이 두렵다  (0) 2018.07.14
B급 문화, 즐거움의 전략화  (0) 2018.07.14
<아는 형님>, 칭찬해? 칭찬해!  (0) 2018.07.13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이 힘이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트랜스포머>, <스파이더맨 >, <디워>의 공통점은 내용중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시각적인 놀라움과 즐거움이 압도적인 영화라는 점이다. 서사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전통적인 의미의 내러티브에서 탈피하여 비주얼스토리텔링을 향유의 중심에 둔 영화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영화 모두 올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다는 점이다. 특히, <디워>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과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디워>의 내러티브 부재를 지적했던 사람들은 옳았지만 틀렸다. 분명 <디워>의 내러티브 부재를 꼬집었던 그들의 지적은 옳았지만, 그 정당한 지적은 <디워>를 향유한 800만 이상의 관객들의 즐거움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틀렸다. <디워>의 국내 흥행 대박을 비주얼스토리텔링에 대한 향유가 본격화된 징후로 보아야 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역시 비주얼스토리텔링이 압도적인 콘텐츠였지만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것이 내러티브가 부재한 <디워>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리텔링은 비주얼스토리텔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말하기’(tell) 그리고 현장성과 상호작용성(ing)으로 구성된 것이다. ,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문화 환경의 도래와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스토리만큼이나 그것을 말하는 방식과 구현하는 방식이 중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2의 구술성 시대의 도래가 가능해짐으로써 상호작용성에 기반한 향유의 극대화 과정이 더욱 부각된 결과다. 쉽게 말하자면 이제 말하는 내용만큼이나 말하는 방식과 구현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고, 어떻게 향유를 극대화하느냐를 중시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유희성이 전면화되었다는 것이다.

원더걸스의 <텔미> 열풍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외모나 가창력 면에서 압도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원더걸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텔미>라는 노래와 춤이 절묘하게 결합하여 구현된 결과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텔미> UCC 동영상을 보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재생산하고 있는 <텔미> UCC 동영상들은 향유자들이 이 노래에서 즐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변하고 있다. 특히 절묘한 시점에 공개된 원더걸스 프로듀서이기도 한 박진영의 <텔미> 춤의 원본 UCC를 보면, 이 열품이 얼마나 정교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흥미로운 것은 향유자들이 이 각각의 것들을 <텔미>라는 노래와 함게 즐기지만, 노래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노래의 텔링에 해당할 수 있는 곡 해석력이나 가창력 등은 물론 춤이나 구성원들의 연출된 이미지 그리고 심지어 제작과정의 비화까지를 매우 주도적인 자세로 통합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의 근간은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향유자들이 텍스트와 소통하는 기본 회로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One Source Multi Use틀 통한 문화콘텐츠 수익 실현과정에서 중심이 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텍스트의 완성도와 대중적 소구를 결정짓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내러티브 논의와 같이 해석 중심의 의미 탐구가 아니라 생산을 위한 전략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전개되어야만 한다.

문화콘텐츠가 많은 자본(high-cost)을 요구하는 까닭에 위험이 많은(high-risk) 분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위험을 어떻게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냐에 있는데, 그 중심에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수준은 그리 높아보이질 않는다. 객관적이고 정치한 선행사례 분석을 통하여 보다 양질의 스토리텔링을 생산하려는 노력보다는 한 작가나 기획자의 발상이나 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전근대적인 마인드가 아직도 만연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드처럼 시즌제를 기반으로 6개월 제작 6개월 방영의 주기적 순환을 통하여 제작 일정의 안정적 확보가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스토리텔링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화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의 연구와 생산의 노력이 시급하다. 이러한 모든 노력의 토대가 스토리텔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지속적인 창작을 수행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중심도시 광주에서 스토리텔링 아카데미를 개설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선택과 집중에 의한 과감한 교육모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더구나 광주는 풍부한 예술 역량을 도시 속에 내재화하고 있고, 숱한 이야기꾼들의 아기집 노릇을 해왔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 아카데미에 거는 우리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서, 동시에 문화콘텐츠의 생산 허브로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광주가 지닌 스토리텔링 역량을 결집시키고 구체화해야할 것이다. 정부와 시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직 광주의 문화콘텐츠 생산 역량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들을 수렴하고 하나로 꿰어낼 수 있는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의 다양한 영역과 분야 그리고 미디어들의 소통회로가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스토리텔링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스토리텔링과 상관한 광주의 문화 역량을 모으고, 광주 지역 소재 대학들의 유관학과와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산학협력을 기반으로 연구-교육-생산의 체계를 구축하며, 멘토링 시스템을 통한 실천적인 노력을 경주한다면, 오늘 우리의 기대는 멀지 않은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이다. 광주가 스토리텔링을 선점하고 특화시킬 수 있을 때, 광주를 중심으로 한 문화콘텐츠 성공모델이 등장할 것이고, 그것은 다시 90%이상 서울에 몰려 있는 문화콘텐츠 기업들의 광주행 러시로 이어질 것이다.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할 문화콘텐츠에 대한 기대가 이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7년 <광주MBC>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당신의 매트릭스, 세컨드 라이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퍼스트 라이프(First Life)가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핍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퍼스트 라이프와 흡사하지만 현실원칙에서는 자유롭다는 점에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현실과 흡사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고, 현실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창조의 공간이 세컨드 라이프다.


실제와 유사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현실원칙에서는 벗어난 이 개방형 가상세계의 매력은 향유자 스스로 참여해서 즐길 것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관계하지만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사랑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려는 일방적 욕망의 콘텐츠들이 차고 넘치는 지금 이곳에서 세컨드 라이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랑스럽게 나를 위해 반응해주기만을 기대할 뿐 돌봐주거나 챙겨줄 의무는 없는 로봇 개, 내가 원하는대로 꾸며주고 감정을 배설하기는 하지만 상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은 일방적 사랑의 대상인 관절인형,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스스로 꾸밀 수 있지만 언제든 스스로를 닫아걸 수 있는 싸이월드, 스스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거나 볼만한 것을 만들어 올리는 UCC 등에 익숙한 우리에게 린든 랩이 제공하는 세컨드 라이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웹2.0의 서비스 전략과 일치한다. 세컨드 라이프는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생산자의 시나리오에 따라서 제한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제공되고 이미 만들어진 것은 제한적으로 수용하면서 향유자의 참여와 공유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신과 세계를 열어간다는 두드러진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세계에서 주도적으로 참여와 수행을 지속하는 향유자, 그들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리마커블(remarkable)’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벌이는 지극히 자유로운 카니발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세컨드 라이프가 즐거운 것은 즐거움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향유자 스스로 그곳에서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그래픽 제작 프로그램 등만 제공하여 UCC를 활성화시킨다. UCC의 즐거움은 자유로움에 있는데, 이것은 승패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동시에 향유자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성취의 자유이다. 기대와 성취의 과정은 향유자 간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다양한 즐거움을 자유롭게 추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매한 아이템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생산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는 네트워킹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다.

최근 세컨드 라이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세컨드 라이프가 국내에서도 그 열풍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컨드 라이프가 우리의 퍼스트 라이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에 대한 것이다.

국내에서 세컨드 라이프가 활성화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비관적이다. 그 근거로 온라인게임에 익숙해 구낸 향유자들에게 세컨드라이프의 가상현실은 새롭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는 점, 국내 향유자들의 경우 싸이월드나 MMORPG 등 더 재미있는 대체재들이 많다는 점, 시작하기 전까지 배우고 조작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 목적이나 임무가 없기 때문에 창조적으로 즐길 수 있는 향유자가 아니라면 뚜렷한 즐거움을 찾기 어렵다는 점, 번역기가 제공되지만 언어적인 장벽 등을 제기한다. 이러한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장세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한국 지사(물론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지만)가 설치되고, 새로운 놀이와 비즈니스의 공간으로서 새로운 것의 전위에 서기 좋아하는 우리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세컨드 라이프의 국내 성공 여부에 대한 막연한 비관이나 낙관이 아니라 낙관적 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일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매달 50만명씩 향유자의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인 무엇인지, 토지 분양과 관리비 외에 국내적 특성을 반영한 수익모델은 어떤 것이 가능할지, 사이버아이덴티티의 퍼스트 라이프에 대한 긍정적 견인 방안 등에 대한 생산적 탐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퍼스트 라이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고민해야할 과제이지 세컨드 라이프를 칭송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판단의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이버 세계가 부상하면서 제기되었던 비관과 낙관의 다양한 견해들을 가장 새롭고 구체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세컨드 라이프를 통하여 진지하게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아이덴티티의 문제, 퍼스트 라이프와의 법적, 윤리적 상관성의 문제, 대중추수주의에 따른 문화적 타락과 전환의 문제, 현실 세계의 황폐화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할 문제이지 판단의 근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제공하는 자유는 퍼스트 라이프를 전제로 하는 상대적 자유기 때문에, 현실의 탈락보다는 현실과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창출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세컨드 라이프로 인하여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보다 선도적인 자세로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만 한다. 세컨드 라이프가 게임이냐 아니냐를 논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창출하는 리마커블한 요소가 무엇인가에 주목하는 전략적 탐색, 사이버 아이덴티티를 통해서 견제하는 현실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 문화적 타락을 견제할 수 있는 치유 방안 등에 대한 실천적인 탐구 등이 그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와 퍼스트 라이프의 공분모는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날마다 진화하며, 진화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충한다. 정체성의 확충은 진화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내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 존재하는 세컨드 라이프에서 내가 누리고 추구하는 것들은 지금 이곳에서 우리 자신이 갈구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컨드 라이프는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고, 그 즐거움의 원천이 자유로움이라면, 그것을 통해 구체화된 나 아닌 나의 자유를 통하여 나인 나를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찰하는 나인 나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 는 끊임없이 참여하고 공유하고 개방하는 과정을 주체적으로 즐길 줄 하는 여야만 할 것이다. (2007년 6월)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

달력과 만난 세계사의 즐거움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우리는 역사를 쉽게 잊지만 역사는 우리를 결코 잊지 않는다. 때문에 역사는 흘러 간 과거가 아니라 흐르고 있는 현재이며, 앞으로 흐르게 될 오래된 미래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어제이고 오늘이며 내일인 역사를 배우고 삶 속에서 체화시켜야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금 이곳에서 세계사의 중요성은 재산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재미있게 효과적으로 학습할 것이냐에 있다. 바로 이것이 <달력 속에 살아있는 세계사>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 책의 미덕은 역사책 속에서 풍화될 뿐이던 화석화된 세계사를 달력이라는 생활 소품을 활용하여 일상의 세계로 끌고 나왔다는 점이다. 어렵고 외워야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달력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기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와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책의 입체적인 구성을 통하여 더욱 빛나고 있다. 해당일의 역사적 사건은 물론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관련 사건을 연계시켰고, <역사 속 오늘 어떤 일이?>라는 코너를 통하여 독자 스스로 더욱 찾아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으며, 화려한 도판과 지도 등을 통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하나 이 책의 미덕은 이미 세계적인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는 캐릭터인 뿌까의 엔터테인먼트적 확장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뿌까는 친숙함으로 독자를 소구하면서도 내용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와 동반자적인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캐릭터의 생산적 확장 과정에서 매우 실천적이며 효과적인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2007년 1월)

 

블로그 이미지

홑섬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향유, 팬덤, 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여행, 살아가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