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도착했다.도착할 때만해도 날은 더할 수 없이 좋았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빗방울이 날렸다. 비를 맞으며 타오위안 인근을 돌아보고, 10시 넘어 숙소인 진리대학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타오위안 도착 직전의 풍경, 멀리 해변가에 풍력 발전설비가 이채롭다. 내가 좋아하는 대만의 높이가 보이는 풍경이다. 


며칠 푹푹찌던 한국의 날씨때문이었는지 내리는 비가 온몸이 젖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신발은 물론 온봄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일까. 그동안 대만에 와서 타이난, 타이중, 그리고 대부분은 타이페이였는데 오늘은 타오위안을 볼 기회가 있어 좋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따시에 있는 장개석 기념당과 자비의 호수를 보고, 따시 라오제(Daxi Old Street)를 걸어서 둘러 보았다. 덧없는 것이 권력인지 세월인지 몰라도 두 곳 모두 시간의 메타포였다.

제 각각의 속도를 생각하게 하는 달팽이, 기운내자.

장개석 기념당, 의외로 소박하다고 생각했으나 옆 잔디밭에 놓인 200여개의 동상과 그것이 세워지게된 동기만으로도 그의 캐릭터가 선명해졌다.

고향을 그리며 고향과 가장 비슷한 풍경이 있던 따시 자비호 부근을 자주 찾았다는 장개석, 결국 그와 그의 아들 주검이 방부 처리되어 머문 곳이 지금의 <장개석 기념당>이다. 중국 대륙을 호령하다 작은 섬 타이페이로 쫓겨와 평생 귀향하지 못했으니 그 울분과 그림움은 오죽했을까? 그곳을 둘러보고 출구로 나오는데 꽤 큰 달팽이가 힘겹게 비를 맞으로 앞으로 가고 있었다. 첫째가 키우던 달팽이 핑핑이가 생각났다. 쫘악 펼치면 어른 손바닥 만큼 제몸을 늘이던 녀석은 결국 제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몇해전 죽었다. <장개석 기념당>을 나오다보면 족히 200여개는 넘을 듯한 장개석 동상들이 곳곳에 이야기처럼 모여있었다. 누가 왜 어떻게 이 동상이 여기있을까 하는 의문은 출구 다와서 추측할 수 있었다.

따시 라오제(大溪老街 Dasi Old Streets)는 흥미로운 텍스트다. 간판이나 현판만 모아서 비교해 보면 그들이 가진 소망과 지향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바로크 양식과 한자 혹은 한자어 현판의 부조화, 재미있는 공간텍스트다.

따시 라오제 다운 거리, 이채로운 것을 관호에 묶으면 과한 설정은 숙명이다. 하얗게 태울 때까지 대기 대기 대기


따시 라오제(Daxi Old Street)는 단수이 라오제를 연상시켰지만, 100여년 전의 번성했던 시절의 바로크양식의 흔적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걷다보니 거리의 끝에서 시작되는 큰 나무들의 거리가 더 할 수 없이 부러웠다. 자연스럽게 거리 전체를 그늘지게하고 있는 시간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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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되다/세련되지 못하다.


'세련되다'라는 말보다는 '세련되지 못하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세련되다는 말에는 능숙하게, 잘 다듬어진, 품위 있게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세련되지 못한 일들은 대부분 서툴거나, 거칠거나, 품위를 모르기 때문이다. 서툴고 거칠고 품위를 모르는 일의 대부분은 그것들이 낯설거나, 낯선 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무성의하기 때문이다. 세련되지 못한 것은 주변을 어색하게 만들거나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에는 세계와 관계하지 못하는 것을 자기만의 세계라고 우기는 경우가 많은데, 타자와 관계되지 않고 설 수 있는 것이 없듯이,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미덕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소통하지 못해서, 소통이 서툴러서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의사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세련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성의한 것이다. 개인이나 기관이나 국가나, 조금 더 세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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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어느 하루


어제는 수원KT WIZ구장으로 야구를 보러갔다. 학교에서 내내 회의를 하다가 시간 맞추어 급하게 집에 가서 아내와 첫째를 태우고 수원구장에 가는데 가는 길에 비가 계속 내렸다. 네이버 날씨에도 강수확률 60%였지만, 비오면 수원에서 저녁을 먹고 오리라 생각하며 꿋꿋하게 달려갔다. 둘째는 학기말 시험이라 미안한 일이지만 아내와 첫째랑만 같이 갔다. 지인분이 표를 구해주셔서 고맙게 다녀왔다. 지난달까지만해도 KT1루 코치였던 초등학교 동창 훈재가 2군 코치로 내려가는 바람에 볼 수 없던 것이 아쉬웠지만 직관은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다.

연구년 때 에너하임 구장에서 추신수 경기를 함게 본 적은 있지만, 첫째는 야구를 전혀 모른다. 그저 새로운 경험이라니 신나서 따라와 간식을 먹다가 경기 막바지 구자욱 잘 생겼다고 끝내 버스까지 따라가는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아내는 야구 좋아하는 남자랑 살아서 그런지 제법 야구를 알아 첫째에게 설명을 해준다. 우리 옆좌석에 앉은 5-6세쯤 보이는 아이는 KT응원가를 모두 따라불렀지만 정작 경기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 귀여웠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비대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목이 쉴정도로 아무생각 없이(심지어 승패와도 무관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방학에는 좀더 자주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할텐데... 둘째가 고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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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진화의 좌표 혹은 이정

이인화, 스토리텔링 진화론해냄, 2014.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스토리텔링은 이제 더 이상 낯설거나 새로운 말이 아니다. 돌아보면 스토리텔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지난 10여 년간, 그것에 대한 관심과 창작 그리고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스토리텔링의 개념이나 정체에 대한 수긍할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토리텔링은 그것이 통용되는 문화권, 적용 분야 및 해당 장르, 구현 미디어 환경, 최종 콘텐츠의 형태 등에 따라서 상이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개념에 대한 합의나 실체에 대한 규정은 언제나 연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은 나날이 강조되고, 그 활용 영역은 자가 증식하듯 더욱 확장되고 있으며 구체화된 전략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분야의 생산적 결합과 창조적 확장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스토리텔링에 대한 소박한 이해로 인한 아전인수식 응용이 소문만 무성하게 만들고 스토리텔링 본래의 효과와 가치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그만큼의 혼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스토리텔링에 대한 풍성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중심 동력이기도 했다. 디지털 문화 환경의 도래와 문화콘텐츠의 급부상에 따라 스토리텔링은 산업적, 전략적, 실용적, 매체 친화적, 과정중심적인 특성을 드러냈으며, 이러한 특성에 부합할 수 있는 차별적인 접근과 전략을 요구하여왔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요구가 반드시 생산적인 성취나 논의의 진일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스토리텔링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당위적인 요구에 머물거나, 기존의 문학 텍스트 중심의 서사론을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스토리텔링에 대한 독립적 인식이 확보되지 못했고, 군집명사인 문화콘텐츠를 집합명사로 오인함으로써 대부분 문화콘텐츠와 함께 사용하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변별적 인식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스토리텔링의 정체와 활용 그리고 효용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을 유발시켜왔다.

논란과 혼란은 모색과 선별을 낳는다. 스토리텔링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동안 논의가 비록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전개된 것도 뚜렷한 합의를 이룬 것도 아니었지만,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서 확보된 몇몇 연구자들의 진일보한 성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성취는 단지 이론 중심의 논문 몇 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텔링이 대부분 문화콘텐츠를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그 성취는 구체적인 전략으로 검증되었거나 가시화된 콘텐츠로 구현됨으로써 그 유효성을 스스로 증명한 것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출간된 이인화의 스토리텔링 진화론은 뚜렷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스토리텔링의 시대를 선도했던 저자는 연구와 창작 그리고 개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활동을 통하여 스토리텔링을 탐구하고 실천해왔다. 스토리텔링 진화론은 그동안 저자가 탐구하고 창작하고 구현해온 스토리텔링의 현재적 좌표이며 부단한 전개 과정의 현재적 이정(里程)이다.

스토리텔링 진화론은 표면적으로는 책의 선전 문구처럼 서사 창작의 핵심원리에서 도구까지를 탐구함으로써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도구인 스토리 헬퍼(Story Helper)’를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심층에는 스토리텔링의 정체와 디지털스토리텔링의 지금까지의 성취를 수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계를 확장하려는 저자의 포부가 드러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포부를 현대과학이 알아낸 서사 창작의 비밀을 살펴봄으로써 작가들에게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려는 시도라고 원론적으로 표현하거나, “창작을 현대 과학의 논리로 재해석함으로써 이제까지 주관적 확신 또는 경험칙에 머물렀던 서사 창작의 원리를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원론적이고 포괄적인 그의 표현에는 서사창작의 원리를 규명함으로써 신비화된 창작의 메커니즘을 객관화하겠다는 의도와 디지털 문화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영토를 탐구하고 구현하려는 의지를 은밀하지만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진화론의 미덕은 서사와의 연관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의 정체를 규명하고, 디지털스토리텔링으로의 다양한 전개과정을 차분하게 정리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도구인 스토리 헬퍼의 구현 원리[각주:1], 기술, 가치 등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유기적인 연쇄를 통하여 이 세 부분의 상호 관련성을 드러내고 논리적으로 수렴한 것은 무척 돋보이는 지점이다. , 스토리텔링의 범람 속에서 누구도 섣불리 시도하지 못했던 스토리텔링의 기원, 통시적 전개과정, 디지털스토리텔링과의 관계 등을 저자는 일관된 논리 구조 위에서 간명하게 정리하고, 그 과정의 수렴을 통하여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도구인 스토리 헬퍼 출현의 당위성과 그것이 채택하고 방법론의 논리적 정합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밀리언셀러의 작가이자 디지털스토리텔링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자이며 개발자이기도한 저자가 이론과 실천의 균형 잡힌 시각 안에서 이것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다.

스토리텔링 진화론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스토리텔링의 원리는 서사의 속성, 수용, 표상, 모티프 등과 같은 이야기의 핵심 원리를 친절하게 소개하며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2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는 문제 기반 스토리텔링, 스토리 문법 학파 등 디지털스토리텔링의 주요 이론들과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디지털 창작도구의 통시적 발전 과정을 평가한다. 테일스핀민스트럴요셉드라마티카 프로로 전개되는 디지털 창작 도구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였다. 더불어 스토리의 본래적 가치에 주목하고, 사건의 인과관계로만 담아낼 수 없는 인간과 삶 그리고 세계의 심연을 규명하려는 노력과 통찰을 어떻게 창작 도구 안으로 수렴할 것인가의 고민이 담겨있다. 3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도구2부의 탐구를 바탕으로 개발된 스토리 헬퍼의 성과와 기술의 우수성, 드라마티카 프로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하여 탈고전 서사학의 지평 속에서 스토리 헬퍼의 의의를 논의한다.

저자는 좋은 스토리의 기준으로 1) /공간적으로 멀거나 비일상성으로부터 유발되는 흥미로운 이야기, 즉 스토리의 원방성, 2) 듣는 이에게 기억되고자하는 스토리의 기억유도성, 3) 오랜 시간 전달 내용의 생명력과 유용성을 유지하는 장기지속성, 4) 체험한 사람의 흔적을 전달하는 스토리의 화자성을 지적하고,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이 네 가지 속성이 모두 구현되는 형식으로 진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서사 창작을 창작자에게서 수용자를 향해 메시지가 전달되는 소통의 축과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인터페이스로 미학적 구조가 구현되는 재현의 축이 교직(交織)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전자는 명료한 의미전달을 추구하며, 후자는 예술적인 독창성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완전한 서사란 하나의 이야기가 완전한 소통과 완전한 재현을 달성하는 상태라고 말하며, ‘서사창작의 4영역[각주:2]을 설정하고, 1사분면이 높은 수준의 미학적 재현과 사상적 소통을 이룩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서사 창작은 1사분면에 위치할 수 있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목적으로 하지 매체와 장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소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와 같은 담화들은 고객들의 인정과 수익을 욕망한다. 그러나 담화의 원천이 되는 스토리는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영역에 속해 있다. 스토리는 말하기telling, 보여주기shoeing, 작용하기interacting라는 서사 재현의 3대 양식을 실험하면서 궁극의 1사분면에 끊임없이 도전한다.(원문자 인용자, 이하 동일)”[각주:3]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재현과 소통의 축을 교직시킨 매트릭스는 서사 창작의 논리를 구현하는 탁견이다. 특히 1사분면을 높은 수준의 미학적 재현과 사상적 소통의 상태로 설정하고 부단히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다만,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 전략과 리터러시에 중점을 두는 필자의 연구관점에서 본다면, 에서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서사 창작이 매체와 장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과연 매체와 장르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스토리가 존재할 수 있는지는 언뜻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또한 물론 이것도 철저하게 문화콘텐츠를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의 효용과 전략에 중점을 두는 필자의 관점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에서 문화콘텐츠의 대표적인 담화가 고객의 인정과 수익을 욕망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스토리와 담화가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구현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토리와 담화가 실제 이렇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각주:4]. 린다 허천이 이야기한 서사 재현의 3대 양식은 지극히 전략적인 선택지라는 점에서 매체와 장르문법 등과 연동되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의문들은 저자와 필자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 분야와 연구가 지향하는 궁극의 차이가 빚어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 이 책의 논의가 모순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차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토론과 모색의 과정으로 스토리텔링 분야의 연구 폭을 확장하고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스토리텔링 진화론은 기존 서사학의 성과를 섬세하게 정리하고, 유용한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결합시켜 스토리 헬퍼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영화의 3816시퀀스 11씬으로 나눈 영화의 계층구조, 다섯 개의 서사명제와 시퀀스, 스토리밸류(Story Value)의 높은 위반성을 기준으로 한 205가지 모티프 분류는 스토리 헬퍼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이론적 바탕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스토리텔링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중요한 준거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러한 준거는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교육과정에서 스토리텔링 분석론이나 창작론에 언제든 활용 가능한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진화론1-3부가 각각 독립적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구성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3부로 수렴되는 구조다. 라이트 브라더스(Write Brothers)가 개발한 드라마티카 프로(Dramatica Pro)의 기반 원리를 설명했던 멜라니 앤 필립(Melanie Anne Phillips)과 크리스 헌틀리(Chris Huntley)Dramatica-A New Theory of Story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스토리 헬퍼와 스토리텔링 진화론의 관계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이 Dramatica-A New Theory of Story그 이상의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것은 드라마티카 프로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진화론이 기존의 서사 이론과 디지털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서사학 계보를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고 있으며, 더구나 그것을 기존의 서사학 관련 연구 토대가 약한 지금 이곳에서 이뤄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실재데이터데이터베이스알고리즘콘텐츠인터페이스로 이어지는 재현 축을, 개발자가 어떤 구조의 메시지를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소통의 축과 교차시키면서 5가지 기술영역들이 나타난다. 이는 저작, 축출, 시각화, 배급, 사용자의 생성스토리의 영역으로, 스토리 헬퍼는 이 가운데 저작과 추출의 두 기술 영역을 아우르는 소프트웨어. 추출기술은 기획기술은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적쩔한 글쓰기 소재를 추출해서 작가의 창작활동을 도와주는 기술로 캐릭터, 에피소드, 소재 등의 데이터베이스와 스토리장르별 탬플릿을 제공하여 플롯의 구성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도록 지원한다고 한다. 저작기술은 기획한 구상을 스토리로 집필하는 단계를 지원하는 기술로서 스토리형태 및 온톨로지를 정해주고 스토리개요의 관리를 지원하며 집필에 참고할 수 있는 스토리 모티프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러한 스토리 헬퍼는 테일스핀민스트럴요셉드라마티카 프로로 전개되는 디지털 창작 도구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한 결과 위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스토리텔링 진화론에서 드러난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도구의 공과나 이것들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탈고전 서사학의 성과가 탁월한 연구자이자 개발자인 저자에 의해 성실하게 정리되고 진일보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책에서 2장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그동안 디지털스토리텔링과 관련하여 파편적으로 읽으면서 제대로 체계화되지 못한 구석들이 있었는데, 2장을 읽으면서 그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서부터 최신 디지털스토리텔링 이론에 이르는 다양한 서사 이론들의 계보와 디지털 문화 환경을 선도하는 다양한 기술들을 교직하며 설명하는 지점에서는 오랜 수련을 거친 고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솜씨였다. 특히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면서도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하여 다소 난해한 개념과 이론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설명해주는 부분은 고수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더 리더>에서 여주인공 한나가 글을 깨우치는 텍스트였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같은 고전 문학 작품에서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 <추격자>, <배트맨> 등의 영화와 <섹스 앤 더 시티>, <홈랜드> 등의 드라마, <리니지> 등의 게임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며 다양한 리터러시(literacy)를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저자가 2장만 따로 독립시켜 다양한 서사 이론들의 계보를 조금 더 보강하고, 텍스트를 확충하여 리터러시해서 단행본으로 출간해주길 바란다. ‘지금 이곳에 소문만 무성한 스토리텔링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된 스토리텔링 연구의 정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요한 것은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며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하기서사가 아니라 서사 창작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서사는 공생의 도구라고 전제한 후, 서사 창작의 보편성과 개방성을 강조함으로써 서사 창작이 개인적 차원의 탁월성이나 생득적 재능을 지닌 선택받은 소수만의 활동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유쾌한 삶의 활동으로서 보편성과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호모루덴스로서의 인간을 장조하고 창작은 가장 고차원적인 놀이의 형식이라고 전제한 후 적극적인 향유와 개조가 자유로운 디지털 문화환경의 특성을 부각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스토리텔링은 일종의 놀이이며 그것을 좀더 적극적인 형태로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도구를 제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누구나 작가가 되어 스토리를 창작할 수 있으며 그가 창작하는 스토리는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저자의 주장과는 다소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갈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의 드러나지 않은 질서를 탐구하고, 타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기반으로 욕망을 구현하는 허구적 행위라면, 그것은 지금 이곳이 아닌 것을 꿈꾸는 고도의 지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고도의 지적인 행위가 단지 이야기 구성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것은 지금 이곳이 아닌 것을 꿈꾸는 과정에서 지향해야할 가치나 그것을 구성해내는 구조, 구조를 구성하는 체계의 선별과 선별된 내용의 연쇄를 추동하는 욕망 등의 구조가 고도의 지적인 능력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인간은 작가라는 저자의 주장은 디지털 문화 환경의 특성을 십분 이해한다해도 스토리 헬퍼와 연관된 다소 당위적인 요구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작가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스토리 헬퍼와 상관된 스토리텔링 역시 문화콘텐츠의 중심 구성 요소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할 때, 그 논의는 문화콘텐츠 구현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 효용과 가치가 창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논의는 고차원적인 놀이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콘텐츠 생산자로서 전문가에게 맞춰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이 문제는 스토리텔링의 효용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저자와 차가운 맥주를 나눠 마시며 뜨겁게 토론해봐야 할 부분일 뿐이다.

연구자로서 누군가의 연구결과나 저서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문제를 도출하고 고민하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을 연구라고 한다면, 그것은 본시 지독히도 외롭고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외로운 길에 앞서서 환히 불 밝혀주는 신뢰할만한 연구자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반갑고 신나는 일이겠는가? 스토리텔링 진화론을 읽는 일은 무척 기쁜 것이었지만 그만큼 더디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언급된 참고문헌 중 놓치고 있는 것들을 찾고, 짧은 것들은 함께 읽어가며 때론 내 연구물들과 비교해 가면서 진행된 까닭이다. 마치 성긴 그물을 촘촘하게 메워가듯이 즐겁게 읽어갔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내공 깊은 이 책을 통해서 행복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인문콘텐츠》 2014. 33호

  1. 스토리 헬퍼(Story Helper)는 2010년부터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스토리텔링 연구소가 3년간 공동 개발한 국내 최초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 지원도구다. 연 인원 100여명의 전공자들이 2만 4,000여 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중 1,406편을 선정하고 여기서 약 11만 6,000여 개의 시퀀스를 추출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소프트웨어가 스토리 헬퍼다. [본문으로]
  2. 이인화, 《스토리텔링 진화론》, 해냄, 2014, 35쪽. [본문으로]
  3. 이인화, 위의 책, 37쪽. [본문으로]
  4. 저자는 같은 책 286쪽에서 “스토리는 언제 어디서나 담론화된 구조물로 존재했다. 스토리와 담화의 구분은 개념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검증되지는 않는다. 절대로 담화가 아닌 순수한 스토리라는 것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바바라 헤른스테인 스미스의 주장을 지지하거나 “스토리는 담화가 수사학적으로 제어하는 서사 정보를 독자가 추론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며 채트먼의 모델을 역전시킨 리처드 월시의 견해에 주목하며, 서사 창작이 반드시 스토리에서 담화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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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그 정체와 지속

․ 《<九人會> 소설의 문학사적 연구, (국학자료원, 1998)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구인회>는 그 중요성에 비해 본격적인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그 동안 <구인회> 자체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했던 이유는 일반적으로 1) <구인회>가 유력한 멤버들로 구성된 집단이기는 하나 그들의 활동이 개별적이고 분산적이었다는 점, 2) 이들 작품이 보여주는 특징이 상이하다는 점, 3) 각각의 특성이 다른 시인작가들을 하나의 성향으로 묶어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구인회>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작가론에서의 부분적인 언급이나, 몇몇 문학사에서의 표면적인 언급을 제외하고는 근년까지 김시태, 김윤식, 최혜실, 서준섭 등의 논의가 있을 뿐이다. 최근 들어 소장 연구자들의 모임인 상허문학회에서 발표한 근대문학과 구인회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연구서의 경우, 16개월간 공동연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개별 논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15명의 필자 개개인의 입점의 차이로 인해 일관되고 종합적인 고찰로서는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구인회>의 연구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이중재의 <九人會> 소설의 문학사적 연구는 매우 소중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이 연구에서 그가 강조하는 목적은 <구인회>와 구성원들간의 본격적인 연관고리를 종합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이다. 기존 연구들에서는 <구인회>만을 연구 대상으로 하거나, 구성원들의 작가론 혹은 작품론이 연구의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연구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인회>의 성격과 연관시켜 구성원들의 문학적 성과를 점검하려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김한식에 의해 먼저 시도된 바 있다. <구인회> 소설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별 작가들의 문학적 특질을 규명하기 전에 먼저 <구인회>로 묶일 수 있는 문학적 성격을 먼저 추출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한식은 이태준, 박태원, 이상, 김유정 등이 밝히고 있는 소설관을 재구하고 이를 통해 소설 작품을 점검하고 있다. 그가 텍스트로 삼고 있는 것은 이태준의 <달밤>, <孫巨富>,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상의 <날개>, <지주회시>.

그러나 1) <구인회>의 단체적 성격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고, 2) 작품 분석 자체가 다섯 작품에 국한됨으로써 그것들의 대표성은 물론 나머지 수다한 작품들에 대한 검증을 과제로 남기고 있다는 미진함을 남긴다.

이중재는 이 연구에서 김한식과 유사한 연구목적을 견지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그는 먼저 <구인회>의 문학적 성격을 순수문학이라는 기존의 상투적인 범주화를 거부하고, ‘모더니즘의 일단으로 구체화하여 평가한다. 또 그는 연구대상을 1) 이태준, 박태원, 이상의 2)광복 이전의 3) 단편소설로 한정하고 있다.

이태준, 박태원, 이상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그들이 소설창작이라는 측면에서 <구인회>의 핵심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이효석, 김유정 등 강권에 못 이겨 가입한 형식적인 멤버들을 제외하고, 이종명, 조용만, 이무영 등은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목할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하는 것은 광복 이후 이태준, 박태원의 문학적 노선이 크게 바뀌고, <구인회> 소설의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단편 소설로 한정하는 것은 그것들이 이 연구의 취지에 부합되는 까닭이라고 했다. , <구인회>로 묶일 수 있는 문학적 성격이 소설 속에서 얼마나 구현되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비교적 그 구조화의 성격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중단편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한정하는 것에는 다소 이견이 나타날 수 있다. 이태준이나 박태원의 광복 이후의 행적을 <구인회> 활동기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역으로 <구인회>활동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의 행적을 저자와 같이 단선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의 설득력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즉 광복 이후 이들의 변모는 문학관의 변화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견지해오던 현실인식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한정하기 위해서는 광복 이후의 활동에 대한 보다 분명한 성격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 이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느냐 하면, <구인회>의 성격 규명에 있어서 키워드인 모더니즘의 성격과 맞물린 것이기 때문이다. 30년대 우리 모더니즘의 경우 세계사적 보편성의 차원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음은 기존의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다. 30년대 모더니즘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20년대부터 광복이후의 양상까지 두루 살피지 않고서는 그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연구의 말미에 제시되고 있는 <구인회>의 문학사적 의의가 모더니즘과 맞물린 것이라고 했을 때, 시기를 광복 이전으로 국한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저자는 <구인회>의 결성 배경으로 정치적 요인, 발생론적 요인, 사회적 요인, 문단 내적인 요인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정치적 요인으로는 3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 하에서 탈이데올로기적인 순수문학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들고,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성장한 도시세대 시인, 작가들의 등장을 발생론적 요인으로 제시했다. <구인회> 동인들은 도시화 과정 속에서 자라나 일본 등에 유학했으며, 일본의 의사(擬似) 근대화 정책에 따른 식민지 체제가 확립되는 30년대 이르러 문학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을 갖는 요인이다. 또 사회적 요인으로는 30년대 들어서 모국어에 대한 의식의 고조로 한글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 그 결과 지식층의 현저한 증가와 문학 의식의 성숙으로 인해 작가나 독자 모두 보다 세련된 문학을 추구했다는 점, 그래서 통속적인 작품과 본격적인 작품의 양분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문단 내적인 요인으로는, 20년대 프로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이 한계를 보이자 새로운 출구가 필요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저자는 동인 형성과정에 관한 논의에서 김윤식이 주장한 <구인회>의 정치성은 출발 당시에만 해당될 뿐 <구인회>가 완전히 결성된 후에는 이러한 정치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 근거로 <구인회>의 주도권이 발기인인 이종명, 김유영에서 이태준, 정지용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과 카프측에 대해 철저하게 무반응, 무관심을 보인 그들의 활동을 들고 있다. 매우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반박이다.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정설인양 군림해오는 국문학계의 많은 오류들이 이렇게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연구들을 통해 새롭게 정립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이렇게 시원한 느낌은!

저자는 <구인회>의 활동상황에 대해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하나는 개인활동에 치중한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배문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통해 세대의식을 표방한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는 <구인회>가 집단적인 활동보다 개인적인 활동에 치우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구인회>동인들이 4대 신문의 학예면은 물론 몇 가지 문학 잡지 --정지용의 <카토릭 청년>, 이무영의 <조선문학> <문학 타임즈>, 조선중앙일보 자매지(이태준)의 자매지 <중앙>, 조선일보(김기림)의 자매지 <조광>, 동아일보(이무영)의 자매지 <신동아> --의 지면들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는 점, 조직과 집단 활동을 중시한 카프와는 달리 문학의 정치적인 목적성을 배제한 문학만을 추구한 <구인회>의 근본적인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자연히 집단적 활동보다는 개별적 활동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인회>동인들은 모든 개개인이 탁월한 문학적 감수성과 개성을 지니고 있는 작가시인들이었으므로 수준 높은 작품들을 왕성하게 발표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무영, 이종명, 박태원, 조용만, 김기림 등이 각각 이광수, 현진건, 김동인, 염상섭, 주용한 등의 선배문인들에게 자극적인 내용의 공개장을 발표해서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점을 들어 <구인회>의 세대의식에 주목한다. 이것은 몇 가지 주목을 요한다. 1) 비판이 어조와 논점에 있어서 편차는 있지만, 모두 기성문인들의 창작의 침체와 부진함, 통속화의 경향, 창작태도의 안이함 등을 비판하는 한편 그들의 뼈아픈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것은 비판의 과정을 통해 그들 스스로 세대의식을 자연스럽게 표방하게 되는 것이다. 2) 이처럼 선배문인들의 창작의 침체와 부진을 질타하던 자신들도 그들이 요구했던 만큼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써내지 못했다는 자기모순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들의 비판은 새로운 문학을 추구한다는 자긍심과 자부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3) 비판이 대상으로 선정된 작가들이 모두 민족주의 문학을 표방하거나 그 언저리에서 창작의 동기를 찾던 작가들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것은 민족주의 진영의 작가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자신들이 바로 민족주의 문학의 비판적 계승자임을 자인한 것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구인회>에 대해 카프측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못한 이유를 두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구인회>가 등장할 시기에 카프의 세력이 현저히 약화되어 이미 와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카프측의 비판에 대해서 <구인회>측에서 철저하게 방관자적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저자는 좋은 작품을 써서 오직 작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구인회>동인들의 결의에 따라 카프측의 비판에 대해 시종일관 무반응,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 그 자체는 <구인회>의 문학적 이념이나 특성을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구인회>가 한국문단에 이바지한 공적은 <구인회> 자체의 단체적 활동이나 그 역할 때문이 아니라, <구인회>가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소신껏 발휘할 수 있도록 그 구심체 역할을 담당했다는 데에서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구인회>의 문학적 성과는 30년대 후반 이른바 김동리, 최명익, 허준 등 신세대 작가들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나아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결론을 대신하여 <구인회>의 문학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구인회> 작가들은 무엇을이야기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이야기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대의 공리주의적인 목적문학의 한계에 대한 반발이라는 문학 내적 요인과 편내용주의적인 프로문학의 퇴조라는 문학외적 요인이 결과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문학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 자율적인 존재라는 문학에 대한 이들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자각에서 찾아야한다. 이는 그들이 미적 자의식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와 같은 형식에 대한 관심은 문학의 일차 재료인 언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둘째 모더니즘문학의 선봉장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이태준, 박태원, 이상 등의 <구인회>작가들은 작품뿐 아니라 평론, 기타 잡문 등을 통해서 언어문법기법에 이르는 모더니즘 이론을 적극 수용소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셋째, <구인회>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역사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미를 탐구하기보다는 역사사회로부터 유리된 개인의 삶의 모습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작품을 통해 지식인의 실직과 궁핍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있으면서도 당대 식민지 상황이나 사회구조적인 모순은 배제시킨 채, 작중 인물의 복잡 미묘한 내면 심리의 분석과 존재론적인 본질이 추구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보인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러한 특성이 <구인회>작가들의 소극적인 세계인식의 결과기도 하지만,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역사인식에서 비롯되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관심 자체가 차단되고 봉쇄되던 당대의 현실상황을 고려해 보면, 작품 속에 구현된 <구인회> 작가들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세계관을 단순히 현실 도피적이라고 폄하하기 어렵다고 했다. 즉 당대 식민지 상황에 대한 <구인회>작가들의 하나의 대처방식으로 수긍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끝내 수긍하기 어려운 것은 이것이 세계 대응방식으로 이해될 경우, 그 미학적 토대에 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생략된 채 이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현실추수의 일상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해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세계인식과 대응에 유효한가이다.

넷째, <구인회>작가들은 모방론적 또는 반영론적 관점에 의거한 소설관을 부정하고 표현론적 관점에 의한 소설관을 견지하고 있다. 즉 표현과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론적 소설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소설이란 인간의 모습을 반영해내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재료를 통해 작가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인회>의 등장으로 소설에 대한 전문적인 예술가 의식 내지는 장인의식의 강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개성과 주관성 발휘를 중시하는 전문가의식장인의식이 <구인회>에 와서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 및 독자들의 문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는 요인을 갖고 있다.

저자는 <구인회>의 문학사적 의의를 1) 시문학파의 모더니즘적 이론과 해외문학파의 전문적인 예술가의식이라는 문학적 태도를 그대로 계승발전시킨 점, 2) 문학본래의 자율성을 중시하여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에 보다 관심을 두었다는 점, 3) 30년대 후반 신세대 작가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묘사와 표현이 중심이 된 이태준의 문장 미학은 김동리황순원에게 이어졌고, 박태원이상의 심리주의적인 소설 기법은 허준최명익에게로 연결되어 <34문학>파와 <단층파>의 출형을 본다는 점을 찾아냈다.

그러면서 저자는 1) 지나치게 형식의 측면에만 관심을 모았다는 것, 2) <구인회>연구가 핵심 세 명에게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 등을 이 연구의 미비점으로 지적한다.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구인회>의 성격을 먼저 규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과의 연관을 찾겠다는 저자의 의도는 매우 선행적인 의의를 갖는다. 안전한 기존의 방법론에서 한발구도 벗어 나려하지 않는 안일한 연구자들을 일깨우기에 충분할 것이다. 다만 다소 아쉬운 것은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연구 대상이 핵심인물 세 명 외의 동인들까지 함께 고찰해야 <구인회>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인회>의 성격 자체가 통일된 강령 하에서 단일한 경향의 창작을 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다양하고 자유스런 분위기가 오히려 작품에 있어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다양한 모습을 온전히 다 고찰했을 때, 저자가 의도했던 연구 성과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형식적인 고찰 외에도 미학적인 고찰이 지나치게 소홀히 다루어졌고, 문학사적으로 모더니즘의 사적인 연관에 대한 규명이 다소 미흡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각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려하고, 철저하게 실증적인 작업이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구인회>와 그 작품간의 연관을 밝히는 선구적인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유용한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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