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스토리텔링으로 서다

 

박기수(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전 세계적으로 10년간 32천만부 이상을 판매한 <해리포터>시리즈가 완결되었다. 해리포터라는 이 작은 꼬마가 소설과 같이 성장하며 일구어낸 신화들, , 초당 23권의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보였다거나, 완결판의 보완을 위하여 블룸스베리출판사는 190억원을 들여 보완체제를 개편했다거나, 이 책을 출간한 국내 출판사가 향후 50년간 책을 찍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렇다고 게임에 빠져 있던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라고 부모들이 구입한 덕이라는 등의 구태의연하고 당위적인 주장도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살펴보고 그것의 미덕과 한계를 점검해보려 한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문화콘텐츠에서는 실패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중성과 시장성이 검증된 텍스트와 windowing이나 One Source Multi Use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텍스트를 원천콘텐츠로 선호한다. 원천콘텐츠는 대중성뿐만 아니라 향유를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거점콘텐츠로의 전환(adaptation)이 용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해리포터>시리즈는 원천콘텐츠로서 다양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책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퀴디치, 호그와트 교복, 마술봉, 마술 빗자루 등 향유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미시콘텐츠들이 거시콘텐츠의 내러티브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잘 구조화됨으로써 텍스트의 완성도를 제고하는 동시에 부가상품화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미시콘텐츠의 활성화는 해당 콘텐츠의 수익 증가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거시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효한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흥미로운 것은 기본 생활은 영국식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극적 사건 전개에 필요한 악당이나 괴물들은 서구의 신화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특수성과 보편성을 절묘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 하는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문화할인율을 고려한 다양한 배려는 기획 단계부터 시도된다는 측면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는 양질의 벤치마킹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존 피스크가 말한 대중문화콘텐츠의 3가지 차원의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이 시리즈는 보편적 신화의 특수한 재맥락화를 통한 기호학적 생산성과 향유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언술행위의 생산성을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텍스트적 생산을 통하여 그것을 지속강화하는 전형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거칠게 단순화한다면 <해리포터> 시리즈는 익숙하고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서구의 신화와 전설 등을 참신한 캐릭터의 복수담과 미스터리담,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성장담으로 전환시킨 이야기이다. 익숙함과 참신함의 8:2로 배분하는 할리우드식 문화콘텐츠 대중화 전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섬세하게 말하자면 이 시리즈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위와 같은 다양한 미덕을 하나의 텍스트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수한 스토리텔링을 생산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오늘도 끊임없이 스토리텔링을 고민하고 있다는 영국 내 2만 개에 달하는 스토리텔링 클럽에 있다. 다양한 문화적 역량을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자기방식으로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수시로 찾는다는 스토리텔링 클럽! 문화콘텐츠의 금과옥조처럼 이야기하는 개인의 창의력이란 바로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과 양질의 향유공동체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이 시리즈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완결되었지만 이것을 원천콘텐츠로 하는 거점콘텐츠화 사업은 앞으로 몇 년간 우리를 또 흥분시키며, 그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려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이국의 낯선 이름들 대신 <미르가온>처럼 낯익은 우리 꼬마들이 펼치는 마법과 모험의 판타지를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7년 <한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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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즐거움, 일드와 미드 그리고 한드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텔레비전이 다리를 갖고 있던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기위해 저녁마다 동냥 시청을 다니곤 했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없는 살림에 덜컥 텔레비전을 사오셨고, 덕분에 매일 저녁 <여로>를 집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때부터는 동냥시청을 가기 위해 이른 저녁을 먹거나 밤늦게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어졌지만, 텔레비전만 본다고 아버지가 외출하실 때에는 텔레비전 장식장을 잠가놓곤 하셨다. <임진왜란>, <암행어사>, <서부소년 차돌이> 등등 텔레비전은 쉬지 않고 매력적인 즐거움을 쏟아놓곤 했다. 이제는 텔레비전이 다리를 잃고 벽에 걸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텔레비전, 특히 드라마의 흡입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양과 질 면에서 국내에서 제작되는 드라마의 수준이 높아졌고, 무엇보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와 같은 새로운 드라마콘텐츠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무한 공급되기 때문이다.


거실에서는 아내는 그리섬과 함께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범죄의 진실을 쫓고 있다. 모니터 속 일촌들의 미니홈피에는 기무라 다쿠야나 웬트워스 밀러가 친근한 미소를 짓고, 큰 아이는 주말 저녁 디즈니 채널의 시트콤 <Hannah Montana>를 보기 위해 맛있는 외식이나 심지어 <무한 도전>마저도 과감하게 포기하곤 한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러한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의 압박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사실 1970-80년대 <전투>, <코작>, <초원의 집>, <월튼네 사람들>, <Rich man and Poor man> 등등 기억 저편에 아직도 또렷한 그것들도 미국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가 지금 이곳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그것이 생산 역량이나 생산 단가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그것은 드라마의 질과 향유자의 취향 그리고 생산 시스템과 유통 구조 등이 유기적으로 얽힌 매우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영화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콘텐츠로 꼽히지만, 영화와는 달리 별도의 금전적 지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대중적 접근이 용이하고, 영향력 있는 콘텐츠다. 단막극을 제외하고 가장 짧은 형태인 미니시리즈의 경우 일반적으로 최소 16회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노출과 학습효과를 창출함으로써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다양한 창구(window)를 활용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은 물론 문화적 향기(cultural odor)의 생산을 통하여 인한 국가 이미지 제고 등의 부가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점도 드라마의 미덕을 꼽힌다. 이와 같은 이유로 드라마는 향유 대상과 시장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전제로 치밀한 기획과 스토리텔링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수적인 장르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에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의 국적 때문이 아니다. 다국적 자본이 수시로 국경을 넘는 지금의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국적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어떻게 문화적 할인율(cultural discount)을 극복하고 우리 드라마 시장에서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느냐가 문제다. 풍부한 스토리와 다양한 텔링 방식 확보, 장르별 전환(adaptation) 시스템을 통한 스토리텔링의 대중성 검증, 스토리텔링과 스타 비히클(Star Vehicle)의 유기적 결합, 폭 넓고 체계적인 유통망의 전략적 확보와 활용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이다. , 몰라서라기보다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국내의 시장의 환경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사전 제작은커녕 촬영 당일 쪽대본에 의지하여 방송 시간 직전에 편집을 마치는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 드라마의 현실은 차라리 선전에 가깝다. 신선한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 창출로 인기를 끌면서 작품성에서도 높은 평가 받은 바 있던 <하얀 거탑>의 경우, 마지막 회는 방송시간 10분 전에 편집을 마쳐 넘겼는데 이것마저도 1/2분량에 지나지 않았고, 방영되는 시간 동안 마지막 1/2을 편집하여 방영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자되었던 <태왕사신기>도 같은 이유로 뉴스가 연장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는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치명적이다.

하지만 열악한 자본과 유통망을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류에 대한 과도한 비관적 전망은 근거 없는 기대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가 가진 부분과 갖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비관적 전망을 낙관적 기대로 어떻게 바꾸어갈 것이냐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가령,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일본 자본이나 중국 자본의 수용을 비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일본 자본이 들어오면서 일본에서 인기 있는 특정 배우를 얼마만큼 출연시켜야한다는 식의 개입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그 조건에 맞는 스토리텔링과 전략 수립이 보다 발전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드라마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고, 그 구체적인 시장이 그곳이라면 그곳의 수요에 부응하는 전략 수립은 필수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처럼 시즌제를 도입하여 사전 제작을 완료하고 방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자본의 규모나 특히 가장 열광적인 우리나라 시청자들을 고려한다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사전 제작을 했을 경우 시청자들의 상호소통적 개입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가 재미있다가 아니라 우리를 열광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할인율이라는 결정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드라마가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다양성과 그것을 구현해내는 능력이 아닐까? <해리포터><반지의 제왕>이 아니더라도 <태왕사신기><하얀 거탑> 등의 예만 보아도 우리를 열광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광개토대왕이라는 소재를 드라마화했을 때, 중국 시장에서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판타지적 요소를 강화하고 적대세력으로 내부의 연호개 집안과 화천회라는 가공의 단체를 내세운 <태왕사신기>의 스토리텔링 전략은 매우 유효한 것이었다. 이미 일본에서 두 번이나 드라마화되었던 것을 한국식 정서로 전환을 시도했던 <하얀 거탑>의 경우도 스토리텔링 전략의 승리였다. 열악한 자본과 아직은 부실한 유통 구조를 지닌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섹스 엔더 씨티>, <CSI>, <프리즌 브레이크>, <히어로즈> 등의 미국 드라마와 <코쿠센>, <히어로>, <춤추는 대수사선>, <1리터의 눈물>, <언페어> 등의 일본 드라마에 단순히 열광만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그것들로부터 무엇을 벤치마킹할 것이며, 우리 드라마가 어떻게 차별화될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기다. 좀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에서 그들의 미덕을 찾아보고, 그것들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해야 할 시기다. 읽지 못하면 쓰지 못한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의 열풍은 우리의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을 좀 더 높여준 계기라 믿자. 이제 우리 현실에 맞추어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인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앉아 동냥 시청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 다리 잃은 텔레비전이 이제는 손 안에 들어와 있다. 바라기는 내가 <임진왜란>을 보며 조선의 역사를 배웠고, <월튼네 사람들>을 보며 가족을 배웠듯이 큰 아이가 DMB폰에서 보는 드라마를 통해 따듯함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곡 그래야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우리 드라마였으면 더욱 좋겠다. 문을 쓰기 위해 <태왕사신기>를 분석하며 자꾸 할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가 그리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게다.

 2008년 1월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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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이 힘이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트랜스포머>, <스파이더맨 >, <디워>의 공통점은 내용중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시각적인 놀라움과 즐거움이 압도적인 영화라는 점이다. 서사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전통적인 의미의 내러티브에서 탈피하여 비주얼스토리텔링을 향유의 중심에 둔 영화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영화 모두 올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다는 점이다. 특히, <디워>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과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디워>의 내러티브 부재를 지적했던 사람들은 옳았지만 틀렸다. 분명 <디워>의 내러티브 부재를 꼬집었던 그들의 지적은 옳았지만, 그 정당한 지적은 <디워>를 향유한 800만 이상의 관객들의 즐거움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틀렸다. <디워>의 국내 흥행 대박을 비주얼스토리텔링에 대한 향유가 본격화된 징후로 보아야 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역시 비주얼스토리텔링이 압도적인 콘텐츠였지만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것이 내러티브가 부재한 <디워>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리텔링은 비주얼스토리텔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말하기’(tell) 그리고 현장성과 상호작용성(ing)으로 구성된 것이다. ,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문화 환경의 도래와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스토리만큼이나 그것을 말하는 방식과 구현하는 방식이 중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2의 구술성 시대의 도래가 가능해짐으로써 상호작용성에 기반한 향유의 극대화 과정이 더욱 부각된 결과다. 쉽게 말하자면 이제 말하는 내용만큼이나 말하는 방식과 구현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고, 어떻게 향유를 극대화하느냐를 중시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유희성이 전면화되었다는 것이다.

원더걸스의 <텔미> 열풍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외모나 가창력 면에서 압도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원더걸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텔미>라는 노래와 춤이 절묘하게 결합하여 구현된 결과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텔미> UCC 동영상을 보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재생산하고 있는 <텔미> UCC 동영상들은 향유자들이 이 노래에서 즐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변하고 있다. 특히 절묘한 시점에 공개된 원더걸스 프로듀서이기도 한 박진영의 <텔미> 춤의 원본 UCC를 보면, 이 열품이 얼마나 정교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흥미로운 것은 향유자들이 이 각각의 것들을 <텔미>라는 노래와 함게 즐기지만, 노래만을 즐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노래의 텔링에 해당할 수 있는 곡 해석력이나 가창력 등은 물론 춤이나 구성원들의 연출된 이미지 그리고 심지어 제작과정의 비화까지를 매우 주도적인 자세로 통합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의 근간은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향유자들이 텍스트와 소통하는 기본 회로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One Source Multi Use틀 통한 문화콘텐츠 수익 실현과정에서 중심이 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텍스트의 완성도와 대중적 소구를 결정짓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내러티브 논의와 같이 해석 중심의 의미 탐구가 아니라 생산을 위한 전략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전개되어야만 한다.

문화콘텐츠가 많은 자본(high-cost)을 요구하는 까닭에 위험이 많은(high-risk) 분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위험을 어떻게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냐에 있는데, 그 중심에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수준은 그리 높아보이질 않는다. 객관적이고 정치한 선행사례 분석을 통하여 보다 양질의 스토리텔링을 생산하려는 노력보다는 한 작가나 기획자의 발상이나 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전근대적인 마인드가 아직도 만연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드처럼 시즌제를 기반으로 6개월 제작 6개월 방영의 주기적 순환을 통하여 제작 일정의 안정적 확보가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스토리텔링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화콘텐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의 연구와 생산의 노력이 시급하다. 이러한 모든 노력의 토대가 스토리텔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지속적인 창작을 수행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중심도시 광주에서 스토리텔링 아카데미를 개설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선택과 집중에 의한 과감한 교육모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더구나 광주는 풍부한 예술 역량을 도시 속에 내재화하고 있고, 숱한 이야기꾼들의 아기집 노릇을 해왔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 아카데미에 거는 우리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서, 동시에 문화콘텐츠의 생산 허브로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광주가 지닌 스토리텔링 역량을 결집시키고 구체화해야할 것이다. 정부와 시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직 광주의 문화콘텐츠 생산 역량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들을 수렴하고 하나로 꿰어낼 수 있는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의 다양한 영역과 분야 그리고 미디어들의 소통회로가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스토리텔링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스토리텔링과 상관한 광주의 문화 역량을 모으고, 광주 지역 소재 대학들의 유관학과와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산학협력을 기반으로 연구-교육-생산의 체계를 구축하며, 멘토링 시스템을 통한 실천적인 노력을 경주한다면, 오늘 우리의 기대는 멀지 않은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이다. 광주가 스토리텔링을 선점하고 특화시킬 수 있을 때, 광주를 중심으로 한 문화콘텐츠 성공모델이 등장할 것이고, 그것은 다시 90%이상 서울에 몰려 있는 문화콘텐츠 기업들의 광주행 러시로 이어질 것이다.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할 문화콘텐츠에 대한 기대가 이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7년 <광주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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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매트릭스, 세컨드 라이프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퍼스트 라이프(First Life)가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핍진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퍼스트 라이프와 흡사하지만 현실원칙에서는 자유롭다는 점에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현실과 흡사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고, 현실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창조의 공간이 세컨드 라이프다.


실제와 유사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현실원칙에서는 벗어난 이 개방형 가상세계의 매력은 향유자 스스로 참여해서 즐길 것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관계하지만 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사랑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려는 일방적 욕망의 콘텐츠들이 차고 넘치는 지금 이곳에서 세컨드 라이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랑스럽게 나를 위해 반응해주기만을 기대할 뿐 돌봐주거나 챙겨줄 의무는 없는 로봇 개, 내가 원하는대로 꾸며주고 감정을 배설하기는 하지만 상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은 일방적 사랑의 대상인 관절인형, 관계를 전제로 하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스스로 꾸밀 수 있지만 언제든 스스로를 닫아걸 수 있는 싸이월드, 스스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거나 볼만한 것을 만들어 올리는 UCC 등에 익숙한 우리에게 린든 랩이 제공하는 세컨드 라이프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는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웹2.0의 서비스 전략과 일치한다. 세컨드 라이프는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생산자의 시나리오에 따라서 제한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제공되고 이미 만들어진 것은 제한적으로 수용하면서 향유자의 참여와 공유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신과 세계를 열어간다는 두드러진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세계에서 주도적으로 참여와 수행을 지속하는 향유자, 그들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리마커블(remarkable)’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벌이는 지극히 자유로운 카니발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세컨드 라이프가 즐거운 것은 즐거움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향유자 스스로 그곳에서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그래픽 제작 프로그램 등만 제공하여 UCC를 활성화시킨다. UCC의 즐거움은 자유로움에 있는데, 이것은 승패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동시에 향유자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성취의 자유이다. 기대와 성취의 과정은 향유자 간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다양한 즐거움을 자유롭게 추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매한 아이템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생산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미덕을 지니고 있는 네트워킹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다.

최근 세컨드 라이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세컨드 라이프가 국내에서도 그 열풍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컨드 라이프가 우리의 퍼스트 라이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에 대한 것이다.

국내에서 세컨드 라이프가 활성화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비관적이다. 그 근거로 온라인게임에 익숙해 구낸 향유자들에게 세컨드라이프의 가상현실은 새롭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는 점, 국내 향유자들의 경우 싸이월드나 MMORPG 등 더 재미있는 대체재들이 많다는 점, 시작하기 전까지 배우고 조작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 목적이나 임무가 없기 때문에 창조적으로 즐길 수 있는 향유자가 아니라면 뚜렷한 즐거움을 찾기 어렵다는 점, 번역기가 제공되지만 언어적인 장벽 등을 제기한다. 이러한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장세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한국 지사(물론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지만)가 설치되고, 새로운 놀이와 비즈니스의 공간으로서 새로운 것의 전위에 서기 좋아하는 우리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세컨드 라이프의 국내 성공 여부에 대한 막연한 비관이나 낙관이 아니라 낙관적 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일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매달 50만명씩 향유자의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인 무엇인지, 토지 분양과 관리비 외에 국내적 특성을 반영한 수익모델은 어떤 것이 가능할지, 사이버아이덴티티의 퍼스트 라이프에 대한 긍정적 견인 방안 등에 대한 생산적 탐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퍼스트 라이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고민해야할 과제이지 세컨드 라이프를 칭송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판단의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이버 세계가 부상하면서 제기되었던 비관과 낙관의 다양한 견해들을 가장 새롭고 구체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세컨드 라이프를 통하여 진지하게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아이덴티티의 문제, 퍼스트 라이프와의 법적, 윤리적 상관성의 문제, 대중추수주의에 따른 문화적 타락과 전환의 문제, 현실 세계의 황폐화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할 문제이지 판단의 근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제공하는 자유는 퍼스트 라이프를 전제로 하는 상대적 자유기 때문에, 현실의 탈락보다는 현실과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창출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세컨드 라이프로 인하여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보다 선도적인 자세로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만 한다. 세컨드 라이프가 게임이냐 아니냐를 논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창출하는 리마커블한 요소가 무엇인가에 주목하는 전략적 탐색, 사이버 아이덴티티를 통해서 견제하는 현실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 문화적 타락을 견제할 수 있는 치유 방안 등에 대한 실천적인 탐구 등이 그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와 퍼스트 라이프의 공분모는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날마다 진화하며, 진화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충한다. 정체성의 확충은 진화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내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로서 존재하는 세컨드 라이프에서 내가 누리고 추구하는 것들은 지금 이곳에서 우리 자신이 갈구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컨드 라이프는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이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고, 그 즐거움의 원천이 자유로움이라면, 그것을 통해 구체화된 나 아닌 나의 자유를 통하여 나인 나를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찰하는 나인 나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 는 끊임없이 참여하고 공유하고 개방하는 과정을 주체적으로 즐길 줄 하는 여야만 할 것이다.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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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과 만난 세계사의 즐거움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우리는 역사를 쉽게 잊지만 역사는 우리를 결코 잊지 않는다. 때문에 역사는 흘러 간 과거가 아니라 흐르고 있는 현재이며, 앞으로 흐르게 될 오래된 미래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어제이고 오늘이며 내일인 역사를 배우고 삶 속에서 체화시켜야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금 이곳에서 세계사의 중요성은 재산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재미있게 효과적으로 학습할 것이냐에 있다. 바로 이것이 <달력 속에 살아있는 세계사>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 책의 미덕은 역사책 속에서 풍화될 뿐이던 화석화된 세계사를 달력이라는 생활 소품을 활용하여 일상의 세계로 끌고 나왔다는 점이다. 어렵고 외워야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달력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기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와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책의 입체적인 구성을 통하여 더욱 빛나고 있다. 해당일의 역사적 사건은 물론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관련 사건을 연계시켰고, <역사 속 오늘 어떤 일이?>라는 코너를 통하여 독자 스스로 더욱 찾아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으며, 화려한 도판과 지도 등을 통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하나 이 책의 미덕은 이미 세계적인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는 캐릭터인 뿌까의 엔터테인먼트적 확장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뿌까는 친숙함으로 독자를 소구하면서도 내용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와 동반자적인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캐릭터의 생산적 확장 과정에서 매우 실천적이며 효과적인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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